ISSN : 2383-6334(Online)
마들렌 비요네 디자인에 나타난 촉각적 가치
Tactile Value Expressed in the Design of Madeleine Vionnet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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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21세기에 과거 기능 중심 디자인에서 소비자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감성 디자인이 중요해지면서, 각 브랜드들은 사람의 다섯 감각을 상호적으로 활용하여 긍정적인 효과를 높이고 있다. 제품 형태와 포장 및 광고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시각뿐 아니라 촉각, 후각, 청각, 미각을 통한 다각적인 접근은 소비자에게 브랜드에 대한 더 많은 기억을 심어준다. 그 중에서도 촉각은 일차적인 시각으로 대상을 인식한 후 더 잘 보고 느끼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는 능동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촉각의 중요성은 미술 분야에서 처음 제기되었고, 19세기 말 미술 사학자 버나드 베렌슨(Bernard Berenson)은 작품의 가치는 보는 사람에게 생동감과 움직이는 느낌을 주어 시각 경험이 다가가 만지고 싶은 촉각 경험으로 연결되는 촉각적 가치(tactil value)로 결정된다고 하였다.1) 베렌슨의 주장 이후 20세기 재료의 부드러운 물성을 이용하는 여성작가들의 조각에서 사용된 소재 표면 촉감이 여성 몸이 본래 지닌 유연하고 부드러운 신체적 특질과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촉각적 자극을 통한 여성성 표현이 나타나게 되었다.
1) Albert William Levi, Art Education: A Critical Necessity, (Illinois University Press, 1991), p. 7.
복식학자 아이커(Joanne B. Eicher)는 외양과 몸의 변형까지 포함하는 복식에서는 사람의 다섯 감각이 모두 중요하며, 외양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시각뿐 아니라 촉각, 청각, 후각 및 일반적으로 복식 연구에서 거론되지 않는 미각까지 모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 또한 복식의 미는 복식과 인체 표면, 인체 부위, 그리고 움직임의 긴밀한 구성을 통해서 관찰된다는 들롱(Marilyn Revel DeLong)의 주장과 같이3) 촉각은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복식연구에 필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복식에서 촉각적 가치는 현실적인 인체와 움직임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실루엣과 밝은 색, 유연하고 부드러운 물성과 드레이프성을 지닌 소재 사용으로 시각 위주에서 벗어나 은근한 자극과 옷에 가려진 몸에 대한 상상 및 가까이에서 만지고 싶은 촉각적 경험으로의 욕구로 정의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재단이나 바느질 없이 한 폭의 옷감을 몸에 두르면서 자연스럽게 주름이 생기도록 입는 현의(懸衣) 형식의4)복식과 19세기 초의 슈미즈 가운 그리고 20세기 초 무용을 위한 드레스는 기존의 신체 고형물들로 만든 가는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 및 가슴 형태로 보는 이에게 성적 감정을 유발하였던 시각 위주의 방식에서 벗어나 촉각적 가치를 통한 다각화된 에로티시즘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 Joanne B. Eicher, “Dress and Iddentity,” Clothing &Textiles Research Journal Vol. 10 No. 4 (1992), p. 3.
3) 김민자, 복식미학강의 1, (서울: 교문사, 2004), p. 23.
4) 최진영, “클래식 패션 스타일의 현대적 적용: 마들렌 비오네의 드레이퍼리 디자인 사례를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9), p. 1.
이후 20세기 초 디자이너 마들렌 비요네(Madeleine Vionnet)는 여체에 대한 해부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형태, 소재, 색을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보는 이에게 옷에 가려진 몸까지 느낄 수 있는 상상과 감성적 자극 및 몸을 만지고 싶은 물리적 욕구를 만들며 촉각적 가치를 발전시켰다. 이렇듯 촉각에 의한 여성성의 표현은 몸의 변형 및 노출을 통해 보는 사람의 시각 위주로 형성된 관능성보다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의 주체적이고 품격 있는 매력 표출을 가능하게 하였다.
선행 연구들은 촉각이라는 감각 양상과 특징을 파악하는 데 있어 촉각만을 독립적으로 다루기보다 시각과의 연결로 인한 통합적인 감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박민영(2009)5)은 음료 패키지 디자인에서 시각을 통해 촉각을 자극하는 시각적 촉감의 개념과 중요성을, 이정아(2004)6)는 디자인 발상에 있어서의 촉각 활용을 연구하였다. 김지혜(2008)7)는 여성 작가 루스 이리가라이(Luce Irigaray)를 중심으로 여성의 창작 활동에서 일차적인 시각보다 지속적이고 이차적인 촉각에 기반을 둔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또한 디자이너 마들렌 비요네와 관련하여 Bryant(1993)8)는 비요네의 드레스 디자인을 선정하여 몸을 둘러싸는 옷의 형태에 영향을 주는 직물 종류 및 재단 기법을 분석하여 여성 몸의 형태에서 시작되는 비요네의 디자인 방식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5) 박민영, “시각적 촉감을 활용한 주스 패키지 디자인의 차별적 표현요소 가치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9).
6) 이정아, “촉각을 이용한 디자인 발상 교육에 관한 연구” (국민대학교 교육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4).
7) 김지혜, “루스 이리가라이(Luce Irigaray)의 촉각성에 근거한 시각의 재개념화”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8) Nancy O. Bryant, “Facets of Madelein Vionnet's Cut,” Clothing & Textiles Research Journal Vol. 11 No. 2(1993).
본 연구의 목적은 기존에 다루어지지 않았던 촉각과 복식미의 연관성을 시작으로, 촉각적 가치의 개념과 이후 21세기 순수 예술과 디자인 영역에서 나타나는 촉각적 가치의 사례를 알아보고, 복식 분야에서의 촉각적 가치를 재정의하여 마들렌 비요네의 디자인 요소에 나타난 촉각적 가치를 알아보고자 한다. 비요네의 직접적인 신체 노출을 통한 시각적 자극이 아닌 촉각적 가치와 독창적인 여성성 구현과의 연관성을 분석하여, 동시대 패션 디자인에도 촉각이라는 감각 양상을 적용하여 촉각과 관련된 소재의 질감 및 표면효과 등에서 새로운 발상을 통한 복식의 여성성 표현에 도움을 주며, 나아가 후각, 청각 등의 다른 감각들까지 활용하여 복식미를 총체적이고 다양하게 분석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연구방법으로는 본 논문의 연구 방법 및 범위는 다음과 같다. 먼저 촉각적 가치의 개념과 디자인으로의 적용 및 복식 디자인에서의 촉각적 가치를 살펴보기 위해 미술, 복식, 제품 디자인 관련 문헌을 고찰한다. 이를 바탕으로 비요네 디자인에 나타난 촉각적 가치를 살펴보기 위해 비요네와 관련된 국내외 서적 및 논문 자료로 사례 분석과 문헌 연구를 병행하였다. 연구 범위로는 비요네가 디자이너생애 중 미국으로 매장을 확장하고, 이브닝 드레스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했던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1924~1937)9)를 중심으로 하였다.
9) Berg Publishers, The Berg Companion to Fashion, (New York: Berg, 2010), p. 710.
Ⅱ. 이론적 배경
1.촉각적 가치의 개념
1)촉각적 가치의 등장
촉각적 가치의 개념이 정립되기 전 14세기에 이미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가 로렌조 기베르티(Lorenzo Ghiberti)는 미술 평가 방법에 있어 촉각의 중요성을 제기하였다. 로렌조에 따르면 관람객은 시각만으로는 작품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촉감까지 전달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였다.10)〈그림 1〉은 그의 대표작으로 28개의 청동 패널은 그리스도의 23가지 삶을 연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각 패널에 묘사된 인물 형상, 동작, 옷에 생긴 주름은 부조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에게 선명함과 생동감을 주었다. 이로써 로렌조는 감동을 주는 작품의 질적 기준으로 촉각적 자극을 제시하였다.11) 이후 미술사학자 버나드 베렌슨(Bernard Berenson)은 촉각적 가치의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촉각적 가치는 작품 속 형태, 색상, 공간, 움직임이라는 요소들이 3차원적인 촉각성을 만들며, 이를 통해 작품과 보는 사람 사이에 거리가 있더라도 인물의 근육과 움직임을 느끼고 만지고 있다는 착각을 주며, 가까이 다가가 만지고 싶은 욕구가 생기면서 작품이 생명력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12)
<그림 1> The Gates of Paradise. Cornin Vincent, Florence of the Medici, (New York: National Geographic, 1970), p. 63.
10) 마크 스미스, 감각의 역사, 김상훈 역 (서울: 수북출판, 2010), p. 215.
11) Cornin Vincent, Florence of the Medici, (National Geographic, 1970), pp. 62-63.
12) Ernest Samuels, Bernard Berenson: The Making of a Connoisseur, (Havard University Press, 1981), p. 227.
그에 따르면 이러한 촉각적 가치를 작품에 잘 나타낸 작가는 지오또(Giotto di Bondone)이며, 그는 이전 시대 회화의 신성하고 거대하여 근접할 수 없는 인물이 아닌 현실적인 인간 형상을 표현하였다. 〈그림 2〉에서 앉아있는 여자와 그 주변을 줄지은천사 무리의 얼굴, 꿇고 있는 무릎에는 돌출부분과 함몰부분이 교차로 구성되어 있다. 대상의 볼록함과 오목함이 만드는 입체적 공간은 인물의 중요한 부분을 나타내고, 보는 이의 손가락과 눈을 작품속 대상에 따라가게 하고 있다. 선을 눈으로 따라 가면 인물의 방향, 근육의 움직임까지 느낄 수 있으며, 대상이 현존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준다. 더욱이 지오또는 중심 대상을 밝은 색으로 칠하고 배경의 그림자와 대조시켜 앞으로 부각되는 느낌을 통해 촉각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13)
<그림 2> The Ognissanti Madonna. John T. Paoletti, Art in Renaissance, Italy, (London: Laurence King Publishing, 2005), p. 86.
13) Ibid., pp. 93-94.
2)촉각적 가치의 변천
촉각적 가치는 시각에 의한 상상이 만지고 싶은 촉각적 욕구로 연결되는 개념에서 출발하여 이후 다양한 장르의 예술분야에 응용되고 발전되어왔다. 먼저 회화에서는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가 그림 속 대상의 선과 색상, 부피감을 통해 촉각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였다. 그는 이상화되지 않고 현실에나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풍만한 몸매의 여성들을 주제로 하였다. 주된 표현 기법인 둥근 선과 밝은 색상의 풍부한 볼륨감은 형태를 통해 그림 속 여체를 만지고 싶은 촉각의 에로티시즘을 만들었고,14) 〈그림 3〉 속 풍만하고 둥근 여체는 보는 이에게 생동감을 주며 손을 내밀어 만져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그림 3> Dancer at the Barre. John Sillevis, The Baroque world of Fernando Botero, (New York: Yale University Press, 2006), p. 175.
14) 이동섭,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 (서울: 미진사, 2010), p. 200.
다음으로 여성 작가들이 재료의 유연한 물성을 활용하는 부드러운 조각 작품을 많이 선보이면서 작품 텍스처가 주는 촉각적 자극을 통한 여성성의 표현이 등장하였다. 루스 이리가라이에 따르면 남성과 다른 여성의 몸 형태와 피부, 머리카락, 털과 같은 신체적 특질은 시각보다는 촉각과 더 긴밀하며, 촉각은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상상과 시각 이후의 감성까지 가능하게 하고 있다.15) 이들 작품의 완곡한 형태와 섬세한 표면질감은 보는 동시에 손끝으로 촉감을 느끼고 있거나 만지고 싶은 촉각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그림 4〉는 1930년대 독일 출신의 여성 작가 메레 오펜하임(Meret Openheim)의 작품으로 차가운 커피 잔과 받침, 스푼을 부드러운 모피로 감싸고 있다. 컵의 둥근 모양대로 감싼 털은 결을 따라 만지고 싶게 하며, 부드러운 털의 촉감은 에로틱함을 주어 에로스라는 저널에도 소개되었다.16)
<그림 4> Coffeecup of fur. Uta Grosenick, LE DONNE E L'ARTE, (Italy: TASCHEN, 2001), p. 149.
15) Ibid., p. 52.
16) Uta Grosenick, LE DONNE E L'ARTE, (Italy: TASCHEN, 2001), pp. 148-151.
〈그림 5〉는 시카고 컨템퍼러리 소프트 스컬프처그룹(Contemporary Soft Sculpture Group)의 여성 작가 조안 리빙스턴(Joan Livingston)의 작품으로 부드러운 펠트 소재와 대상의 안과 겉이 섬세하게 꼬여 있다. 표면과 무게감은 여성 몸의 요소들을 부분적이지만 명백하게 표현하고 있다.17) 털이 부드럽게 엉킨 펠트 표면과 볼록함과 오목함이 만드는 입체적 공간은 빛에 의한 명도 차이로 움직임을 느끼게 하면서 보는 동시에 만지고 있는 착각과 촉각적 가치를 형성하고 있다. 같은 그룹 작가 드넬 라르슨(D'nell Larson)의 주제는 로맨틱한 여성으로〈그림 6〉은 흰색과 분홍색 깃털로 된 둥근 형태로 가볍고 섬세하여 날아갈 것 같은 깃털은 로맨틱하게 부푼 여성의 감성을 표현하였다.
<그림 5> Tailed. Joan Livingston, 작가 웹 사이트 http://www.joanlivinston.com
<그림 6> Weight of my heart. D'nell Larson, Hobby Lobby 2002 전시 웹 사이트 (members.core.com)
17) Joan Livingstone, Gerry Craig and James Elkins, Portfolio Collection, (Telos Art Pup, 2002), p. 6.
20세기 후반 산업 디자인 분야 또한 시각적 미와 촉각의 상호작용을 통해 화면이나 광고 속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감성과 친밀감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래픽으로 시각화된 디자인에 있어서 눈으로 느낄 수 있는 촉각적 경험을 시각적 촉감(Visual Tactility)이라 하는데,18) 이 시각적 촉감이 제품의 촉각적 가치를 구성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각을 통한 촉각의 연상은 보는 사람에게 상상을 자극하고, 형태와 선의 구성은 시각에서 촉각으로 연결되며 가벼움과 무거움의 부피감, 모남과 곡선, 나아가 감성까지 형성한다.19)
18) Ibid., pp. 18-19.
19) Dan Hill, Body of Truth, 이정명 역 (서울: 비즈니스 북스, 2003), pp. 263-271.
〈그림 7〉은 유럽의 하이퍼 전자제품을 만드는 뱅앤 올룹슨(Bang & Olufson)사의 리모트 컨트롤로 묵직한 무게감으로 손으로 쥐었을 때의 강한 밀착력을 느끼게 한다. 볼륨 있고 완만한 곡선형의 형태 표면이 주는 시각적 자극은 보는 동시에 직접리모트 컨트롤을 쥐고 느끼는 것 같은 연상을 주며 시각경험과 촉각경험을 잘 연결하여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다.〈그림 8〉은 시리얼 제품 켈로그(Kellogg)의 패키지 디자인으로 하얀 그릇에 담긴 시리얼 조각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갓 구어 내 물렁거리지 않는 촉각과 신선한 느낌을 주면서 씹을 때 바삭거리는 청각까지 연결되고 있다. 시각적 구성을 통해 촉각과 청각의 연결은 맛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높이며 나아가 미각까지 자극한다.20)〈그림 9〉는 시원한 대화라는 포스터 디자인으로 시원함이라는 형용사가 가지는 느낌을 색 투명도와 글씨체 및 색상으로 표현하여 청량감과 가벼운 부피감도 상상하게 한다. 이와 같이 르네상스 고전 조각에서 시작한 촉각적 가치는 이후 현대미술, 부드러운 조각, 시각 디자인분야까지 접목되어 원래의 개념에서 더욱 세분화되고 다양하게 활용되는 현대적 의미로 발전하였다.
<그림 7> Timeless Remote control. 마틴 린드스트롬 & 필립 코틀러, 오감 브랜딩, 최원식 역 (서울: 랜덤하우스 중앙, 2006), p. 58.
<그림 8> Kellogg 패키지 디자인. 마틴 린드스트롬 & 필립 코틀러, 오감 브랜딩, 최원식 역 (서울: 랜덤하우스 중앙, 2006), p. 40.
<그림 9> 시원한 대화 포스터. 시각적 촉감을 활용한 주스 패키지 디자인의 차별적 표현 요소 가치에 관한 연구, 박민영, (한양대학교 대학원, 2009), p. 20.
20) 마틴 린드스트롬, 필립 코틀러, 오감 브랜딩, 최원식 역 (서울: 랜덤하우스 중앙, 2006), p. 37.
2.복식에서의 촉각적 가치
앞에서 살펴본 조각이나 회화와 달리 복식에서의 촉각적 가치는 형태, 소재, 색 그리고 움직임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다. 복식역사에서 촉각적 가치를 살펴보면 먼저 형태는 인체를 우선시하는 옷의 실루엣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실루엣은 옷을 통한 인체의 변형으로 대상에게 근접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모습이 아닌 현실적인 형상과 움직임을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살아있는 대상에게 다가가 만져볼 수 있는 촉각적 욕구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색상과 소재에서는 밝은 색 위주의 단색과 얇고 부드러운 표면 질감을 지닌 소재 결합으로 직물의 주름이 옷과 몸 사이의 유연하고 미세한 공간을 형성하고, 의복 밑의 인체를 드러나게 하여 가려진 몸을 더 가까이 가서 보고 만지고 싶은 촉각적 가치를 형성한다.
그 예로 고대 그리스 복식과 19세기 초 신고전주의 복식, 20세기 초 무용을 위한 드레스를 들 수 있다. 그리스 복식의 현실적인 육체와 움직임을 구속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흐르는 듯한 실루엣을 기본으로 몸을 감싸며 만들어진 주름들은 그 공간감과 입체감으로 가려진 몸을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신고전주의 시대 슈미즈 가운의 실루엣은 과장 없이 몸에 알맞게 단순하며 얇고 부드러운 모슬린이나 성글고 가늘게 직조된 린넨 소재를 사용하였다.21) 이러한 형태와 색상의 단순성은 몸을 감싼 옷의 질감과 촉감으로 여체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누드의 형상을 관능적으로 표현하고 있다.22) 드레스의 앞자락과보다 길게 늘어진 뒷자락의 풍성한 헴 라인과 얇은 옷감은 움직일 때마다 살짝 보이는 다리 곡선과 작은 발, 흰 피부를 부각시키며 몸을 들여다보고, 만지고 싶은 욕구를 강화시킨다. 이후 1920년대 등장한 무용 의상 역시 장식을 배제하고 동작 시에만 몸의 곡선이 희미하게 드러나는 드레스의 반투명 효과로 여성의 몸이 가지는 본연의 곡선과 유연하고 섬세한 움직임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이들 복식 모두 옷을 통해 가려진 몸에 대한 성적 상상과 느낌이 손으로 만지고 싶은 촉각경험으로까지 연결되는 촉각적 가치를 형성하면서 시각 위주가 아닌 다각도로 한층 발전된 복식의 에로티시즘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1) 김홍기, 샤넬 미술관에 가다, (서울: 미술문화, 2008), p. 76.
22) 앤 홀랜더, 의복과 성, 채금석 역 (서울: 경춘사, 1998), pp. 127-130.
Ⅲ. 마들렌 비요네 디자인에 나타난 촉각적 가치
1876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마들렌 비요네는 1920년대 그리스 복식에서 영감을 받아 몸의 움직임과 역동성에 기초한 디자인으로 동시대 여성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비요네는 여성의 타고난 몸의 비율과 움직임,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균형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옷의 커프스나 칼라 등에 부분적으로 쓰였던 바이어스 재단을 여성의 드레스에 확대해 적용하여 허리는 꼭 맞고 치마 아래 부분은 플레어가 생기는 유연한 드레스를 만들어냈다.23)
23) Brenda Polan and Rager Tredre, The Great Fashion Designers, (New York: Breg, 2009), p. 47.
그녀의 대표작으로 설명되는 화이트 새틴 바이어스 드레스가 주목받던 1930년대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발달, 코르셋의 소멸 및 여성성의 강조가 대두되었던 시기로, 스타 시스템과 영화 속 패션에 대한 대중의 모방은 가장 큰 경제적 변수였다.24) 흑백영화 전성기에 천연색과 가슴 노출이 한정된 환경에서 여배우의 관능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의상이 중요해졌는데, 비요네 스타일의 드레스는 색상과 광택의 활용으로 흑백화면 속 여배우의 여성적 매력이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또한 몸을 속박하던 딱딱한 코르셋과 단단한 외피의 스토마커와 크리놀린 등이 실질적으로 소멸되면서 복식과 피부는 더욱 가까워졌다. 이러한 복식과 피부의 밀착성으로 피부의 촉감이 중시되면서 제 2의 피부가 된 소재의 중요성이 증대되어 다양하고 기능적인 소재 개발이 진행되었다.25)
24) 루이스 자네타, 영화의 이해, 김진해 역 (서울: 현암사, 2000), p. 264.
25) 밸러리 맨데스, 에이미 드라 헤이, 20세기 패션, 김정은 역 (서울: 시공사, 2003), p. 89.
비요네는 소재의 물성과 이전에는 칼라와 커프스에 주로 사용되었던 바이어스 재단을 드레스에 확대 적용하여 부드럽고 유연한 옷 위로 엉덩이나 가슴의 볼륨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다. 또한 여체와 유기적으로 밀착되는 드레스 형태와 해부학적인 선 구성은 간접적인 신체 부위의 시각적 강조와 소재의 유연한 재질감으로 촉각적인 자극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비요네는 옷이 곧 여성의 몸처럼 느껴지는 착각을 주었고, 옷에 가려진 몸을 만지고 싶은 욕구로 연결되는 촉각적 가치로 여성을 세련되고 고귀한 존재로 만드는 동시에 새로운 에로티시즘을 형성하였다. 본 장에서는 비요네 작품들을 디자인의 기본 요소인 형태, 소재, 색으로 나누어 촉각적 가치를 분석하였다.
1.형태
1)재단을 통한 밀착된 구조
여성 복식에서 동일한 디자인일 때 식서 재단은 몸에 직선으로 떨어지는 반면, 바이어스 재단은 상체를 부드럽게 감싸 밀착되고, 헴 라인의 드레이퍼리가 정교하다.26) 비요네의 바이어스 재단은 몸을 코쿤처럼 둥글게 감싸는 것이 아니라 갈비뼈와 위의 위치, 엉덩이뼈 등의 해부학적 접근을 바탕으로 여체의 나오고 들어간 부분들을 원단 절개를 통해 유연하게 몸에 밀착시킨다.27)
26) Ibid., p. 40.
27) Ibid., p. 712.
비요네는 패널과 무를 부분적으로 삽입하고 기존의 옆선을 없애는 새로운 방식의 프린세스 실루엣을 고안했는 데,〈그림 10〉에서 등과 옆선은 몸의 곡선에 최대한 가깝게 밀착시키며, 아래 도련의 공간은 상대적으로 퍼지게 하였다. 상체 부분의 절개는 돌출된 가슴과 상대적으로 들어간 허리, 배의 공간이 최대한 밀착되어 옷이 곧 몸의 굴곡처럼 느끼게 하고 있다. 엉덩이의 곡선을 살리며 떨어지는 치맛자락은 아치형의 엉덩이뼈와 도드라진 둔부를 그대로 나타내고, 이러한 밀착된 구조는 드레스를 보는 동시에 입체적이고 볼륨 있는 몸을 만지고 싶은 촉각의 에로티시즘을 형성하고 있다. 드레스뿐 아니라 팬츠 스커트와 와이드 팬츠 또한 허리와 골반 사이는 고어드 절개 방식으로 밀착시켜 몸의 곡선을 살리고 다리를 덮는 아래 부분은 풍성한 공간을 만들었다.28)〈그림 11〉은 허리까지는 밀착되고, 암홀과 헴 라인은 공간을 형성하며, 전체 실루엣에서 풍부성과 밀착성의 상대적 차이는 미묘한 상호작용을 통해 여성스러움을 극대화시키고 있다.29)
<그림 10> Climing princess-line dress, 1930. Pamela Golbin, Madeleine Vionnet (New York: Rizzoli, 2009), p. 141.
<그림 11> Shirred romain dress, 1935. Pamela Golbin, Madeleine Vionnet (New York: Rizzoli, 2009), p. 205.
28) Golbin Pamela, Madeleine Vionnet, (New York: Rizzoli, 2009), p. 93.
29) 마릴린 혼, 루이스구델, 의복: 제 2의 피부, 이화연 역 (서울: 도서출판 까치, 1992), p. 329.
여성 몸과 옷의 밀착성으로 인해 움직일 때 몸과 드레스의 작은 틈으로 보이는 곡선과 은밀한 노출은 시각적 자극과 성적 관심을 일으킨다. 바이어스재단을 통한 교묘하고 기술적인 밀착성은 의복 안의 코르셋이나 거들로 신체 부위의 볼륨을 만들지 않아도 의복의 형태를 통해 곡선적인 몸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각적 경험과 상상이 촉각적 가치를 형성하였다. 이로써 몸의 굴곡에 밀착된 드레스가 주는 시각적 촉감과 상상은 실제로 여체의 볼륨을 만지고 싶은 촉각적 자극으로 연결되어 은근한 성적 자극과 여성적 매력을 강조하고 있다.
2)곡선을 통한 유기적 연결
보테로는 인체가 다른 사물과 달리 흥미로운 주제인 이유는 접힘과 펴짐이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했다.30) 이러한 탄력적인 인체에 입혀지는 복식에서 몸의 둥근 형태와 상반되는 직선에 비해, 유연한 직물의 곡선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몸의 곡선과 피부 그리고 움직임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다.31)
30) Ibid., p. 188.
31) Maitland Graves, The Art of Color and Design, (New York: McGraw-Hill Book Company, 1951), p. 202.
비요네는 형태 구성을 위해 평면의 원단을 자른 네 개의 사각형으로 시작하지만, 직접 마네킹에 원단을 씌워 원통형의 인체를 둘러싸면서 곡선형의 윤곽선과 유연한 선들을 만들어냈다. 비요네 드레스에서 곡선들과 여성 몸은 같은 방향과 각도로 연결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여성 몸의 선과 움직임을 더 친밀하게 느끼고 상상하며 만지고 싶은 촉각적 가치를 형성하였다.〈그림 12〉는 드레스의 형태를 구성하는 부드러운 곡선과 나선이 몸의 움직임에 따라 주변 공간까지 연결되는 과정을 드로잉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성의 몸의 유연한 피부가 접히고 움직이는 형태가 옷으로 표현됨으로써 드레스의 곡선을 시선으로 따라가는 느낌이 곧 몸의 섬세한 움직임을 만지는 촉각적 상상을 주고 있다. 〈그림 13〉에서 물결 모양의 헴 라인은 살짝 노출되는 인체의 다리 곡선과 연결되고, 어깨로 모인부분은 천의 사용을 줄여 몸과 옷 사이의 공간을 거의 없애고 부드럽게 만들었다.32) 이러한 곡선들이 모여 움직임에 따라 만들어내는 비대칭은 균형잡히고 대칭적인 형태보다 보는 사람에게 긴장과 활력을 높인다.33)
<그림 12> Dress dawing from Thayat, 1925. Pamela Golbin, Madeleine Vionnet (New York: Rizzoli, 2009), p. 68.
<그림 13> Handkerchief dress, 1920. Pamela Golbin, Madeleine Vionnet (New York: Rizzoli, 2009), p. 47.
32) Golbin Pamela, Madeleine Vionnet, (New York: Rizzoli, 2009), p. 53.
33) 제르다 북스다움, 20세기 패션 아이콘, 금기숙 역 (서울: 미술 문화, 2009), p. 59.
비요네의 드레스는 과장된 복식의 형태에 몸이 맞춰져 고정된 인체와 달리 자유로운 움직임과 탄력적인 피부를 가진 현실적인 여성의 몸을 표현하여 만질 수 있고, 만져보고 싶은 촉각적 자극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인체 본연의 볼륨에 연결된 복식의 유기적인 선은 동작과 함께 자유로운 접힘과 퍼짐을 반복하고, 이를 통해 복식 안의 몸이 가진 미묘하고 섬세한 곡선을 느끼는 촉각적 상상을 줌으로써, 촉각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2.소재
1)광택을 통한 시각적 강조
그레브스(Maitland Graves)에 따르면 재질은 촉감뿐 아니라 시각으로도 감지되며 시각경험과 촉각경험의 연상으로 매끈하고 거친 상태를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34) 비요네 또한 눈으로 보는 동시에 복식의 표면 촉감을 효과적으로 느낄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하였다. 그녀가 드레스 제작에 주로 사용한 새틴 크레이프(Satin Crepe)는 겉면은 부드러운 광택을 내고, 이면은 무광택으로 오돌토돌한 감촉의 입체적인 크레이프 효과를 내는 신축성이 좋은 직물이다.35) 비요네는 새틴 크레이프의 양면이 가진 광택과 무광택을 모두 활용하여 신체 부위의 노출과 시각적 강조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주었다.〈그림 14〉는 가슴에서 허리까지 오는 부분은 광택이 있고 아래로 퍼진 헴 라인과 리플에는 광택이 없는 쪽이 함께 사용되었다. 매끄러운 광택 표면은 여성의 신체 부위 중 에로티시즘을 가장 잘 표출하는 허리부분으로,36) 이차적인 시각적 강조를 통해 만지고 싶은 욕구를 높이고 있다.〈그림 15〉의 옆선을 중심으로 가슴 밑에서 엉덩이 부분의 곡선적인 라인은 금, 은 메탈사와 얇고 비치는 라메 직물로 덧대어져 있다. 이처럼 반짝이고 늘어뜨리는 장식은 로체(Herman Lotze)에 의하면 신체를 확장시키고, 보는 이에게 기분 좋은 상상을 만들며 감성화된 여성성을 높인다.37) 비요네가 사용한 광택과 무광택 원단의 대조와 혼용은 특히 빛과 조명 아래서 드레스의 소재가 주는 시각적 촉감과 자극이 효과적이었다. 몸의 굴곡과 움직임에 따라 여성의 인체미를 나타내는 신체 부분을 원단의 광택과 무광택으로 절묘하게 대체하여 여성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비요네는 소재의 부드럽고 윤기 있는 표면과 질감의 효과적인 사용으로 기존 몸 위의 복식에서 발전하여 복식 위의 몸을 만들어냈다. 보이지 않는 몸을 대신하는 복식을 통한 시각적 강조는 실제보다 빛나고 매끄러울 것 같은 환상을 주고, 피부를 직접만지고 싶은 촉각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림 14> Black satin-crepe princess dress, 1932. Pamela Golbin, Madeleine Vionnet (New York: Rizzoli, 2009), p. 89.
<그림 15> Lame embroidery dress, 1924. Pamela Golbin, Madeleine Vionnet (New York: Rizzoli, 2009), p. 38.
34) Ibid., p. 221.
35) 김성련, 새 의류소재, (서울: 교문사, 2005), p. 50.
36) 김민자, 복식미학 강의 2, (서울: 교문사, 2008), p. 24.
37) 이영희, 여성을 위한 디자인,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005), p. 262.
2)파일직물을 통한 촉각적 자극
신고전주의 시대 화가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의 초상화에 표현된 백조 털로 된 숄은 모슬린 드레스를 감싸며, 털의 섬세함과 부드러운 촉감으로 여성을 유혹적으로 표현하였다.38) 비요네 또한 직물 표면에 털을 심어 만든 벨벳이나 털의 물리적 특성을 디자인에 반영하는데, 이러한 소재는 새틴 크레이프(satin crepe)와 함께 표면 특성, 촉감, 빛 반사력 등에서 같은 종류에 속한다.39) 털과 벨벳 직물의 빛 반사와 흡수를 동시에 하는 성질은 명도차를 만들어 어떤 부분은 뒤로 물러나고, 어떤 부분은 앞으로 진출함으로써 출렁거리는 표면직물을 만든다.40) 이러한 빛에 의한 3차원적인 질감과 매끄러움은 새틴과 같이 사용되면 표면의 촉각성과 자극이 증가하여 드레스의 에로틱한 분위기는 강해질 수 있다.〈그림 16〉은 벨벳으로 만든 드레스로 평평한 직물에 짧은 털 다발을 심은 원리는 그 결에 따라 사람 손으로 쓸고 내린 듯한 착각을 주고 있다. 또한 1930년대 진 할로우(Jean Harlow)의 비롯한 영화배우들은〈그림 17〉처럼 오스카 시상식이나 화보 촬영에 새틴 소재로 제작된 화이트의 이브닝 가운에 비슷한 색상의 모피와 털을 걸쳐 고급스럽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41) 털은 벨벳보다도 길이가 긴 기모 자체가 지닌 촉각성이 두드러지며, 실크 소재와 재질감을 이루는 물리적 조건들이 일치하면서 함께 매치되었을 때 전체적인 분위기의 통일성과 조화는 극대화될 수 있다. 털이나 모피, 벨벳 표면의 섬세한 털 다발이 주는 시각적 촉감은 보는 사람에게 여성 몸의 부드러운 체모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옷의 표면이 주는 촉각성에 의한 자극은 에로틱한 상상을 유발하고, 실제 여성 몸의 머리카락과 체모에 대한 부드러운 느낌과 만져보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불러 일으킨다.
<그림 16> Red velvet dress, 1937. Lydia Kamistsis, Madeleine Vionnet (London: Thames and Hudson, 1996), p. 12.
<그림 17> Dinner at Eight, Jean Harlow, 1933. http://www.allposters.it
38) Ibid., p. 80.
39) 김영인, 디지털 패션 디자인, (서울: 교문사, 2001), p. 73.
40) 린다 홀즈스키, 윤희수 역, Understanding Color, (서울: 미술문화, 1999), p. 140.
41) 양숙희, 한수연, 패션과 영상,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출판국, 2008), p. 158.
3.색:색조를 통한 시선 집중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한스 발둥(Hans Baldung-Grien)의 작품에서 화이트 톤으로 채색된 여성은 배경과 대조되어 에로틱한 느낌을 부각시킨다고 하였다.42) 한편,〈그림 19〉의 실버 화이트 드레스는〈그림 18〉의 명도 단계에서 보듯 조명이 중요한 흑백 영화에서 저명도의 배경과 고명도의 의상이 대조되어 인물이 앞으로 나와 보이는 극적효과를 높이고 있다.43) 이처럼 밝은 색을 통한 생동감과 여성 실루엣의 부각은 거리를 두고 화면을 통해 보더라도 가까이 가서 만지고 싶은 욕구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비요네는 실제 백인 여성에게서 볼 수 있는 눈동자, 머리카락, 눈썹, 피부색인 그린, 블루, 아이보리, 핑크 등의 내추럴 칼라를 선호했다.44)〈그림 19〉의 라이트 그린 색과〈그림 20〉에서 보이는 라이트 핑크 색은〈그림 18〉에서처럼 백인 여성의 피부색이 속하는 색조와 유사하게 고명도의 라이트 톤, 페일 톤 위주로 변화를 주었다. 신체 색과 비슷한 색조의 액세서리를 하면 얼굴의 피부색이 보는 사람 시선의 중심이 되는 것처럼45) 비요네 드레스에 사용된 색은 신체 부분의 색과 차이가 적은 약한 명도 대비를 보이지만, 오히려 강한 대비보다 보는 사람이 은근하고 지속적인 긴장감으로 시선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드레스의 은은한 색은 이와 유사한 톤의 여성 피부와 몸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을 연결시켜 부드러운 느낌의 몸을 부각시키며 만지고 싶은 촉각적 가치를 형성한다.
<그림 18> PCCS 톤의 변화, 이현미 외, 패션 스타일리스트 (서울: 시대고시기획, 2008), p. 218.
<그림 19> Satin white & light green dress, 1933. Pamela Golbin, Madeleine Vionnet (New York: Rizzoli, 2009), p. 6.
<그림 20> Light pink dress, 1925. Pamela Golbin, Madeleine Vionnet (New York: Rizzoli, 2009), p. 22.
42) 움베르토 에코, 미의 역사, 이현경 역 (서울: 열린 책들, 2005), p. 66.
43) Ibid., p. 41.
44) Ibid., p. 103.
45) Ibid., p. 341.
Ⅳ. 결 론
20세기 이전의 복식에 나타난 촉각적 가치는 복식 형태에 몸을 맞춰가는 고정된 중세 복식에서 벗어나 단색 위주의 사용으로 피부색을 부각시키고 단순화되고 알맞게 맞는 형태와 부드러운 소재의 촉감이 옷에 가려진 몸에 집중하도록 만들며, 시각적 자극뿐 아니라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지고 싶은 촉각적 자극까지 강화시키는 사례로 나타났으며, 이로써 촉각적 자극을 통한 에로티시즘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후 20세기 디자이너 마들렌 비요네는 코르셋을 거치지 않고, 형태, 소재, 색의 효과적 사용으로 복식에서의 촉각적 가치를 더욱 발전시키며, 옷과 여성 몸의 관계에 다각적으로 접근하였다. 형태는 여성만이 가진 몸의 굴곡에 최대한 밀착되어 떨어지는 바이어스 커팅과 서로 연결되며 옷을 구성하는 유기적인 곡선들은 신체 부위에 변형을 가하지 않고도 가려져 있는 실제 몸의 볼륨감을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하고, 만지고 싶게 하는 촉각적 가치를 형성하였다.
비요네는 강도와 유연성이 좋은 크레이프 직과 결합된 새틴 크레이프 직물을 통해 새틴 실크의 매끄러운 표면 질감과 크레이프의 형태감을 활용하여 가려진 실제 피부의 부드러움에 대한 촉각적 상상으로 연결하였다. 또한 촉감이 부드러운 파일직의 벨벳 소재와 털을 결합하여 여성 몸의 표면이 가진 촉감을 대체하였고, 이는 눈으로 직접 피부를 보는 것보다 더 지속적으로 만져보고 싶은 욕구를 강화해 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드레스의 형태와 원단 사용은 화이트 톤 위주의 밝은 색과 결합해 흑백 화면 속 빛의 대비로 육감적인 몸매의 여배우가 튀어나올 것 같은 입체감을 만들어 보는 동시에 가까이 다가가 만지고 싶은 촉각적 가치를 만들었다. 여성의 헤어와 눈동자, 눈썹, 피부 톤과 유사한 컬러 톤 드레스는 옷 밖으로 드러난 여성의 얼굴과 몸의 일부를 더욱 부각 시키는 효과를 주었다.
비요네의 해부학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재단법과 소재의 물성에 대한 이해, 착용자를 부각시키는 색 사용은 옷에 몸을 입히는 개념에서부터가 아닌 옷을 입는 몸의 개념에서 출발한 디자인을 잘 보여주며, 또한 복식 디자인에서 촉각적 가치의 중요성도 함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시대를 앞서 가는 패션 디자인을 위해서는 인체가 느끼고 반응하는 감각 양상을 옷에 적용하고 접목 시켜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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