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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6-0401(Print)
ISSN : 2383-6334(Online)
The Research Journal of the Costume Culture Vol.19 No.3 pp.501-517
DOI :

한국복식과 서구복식에 나타난 몸과 복식에 관한 전통적인 시각 비교

임은혁
성균관대학교 예술학부 의상학전공

Comparison of Perspectives on the Body and Dress in Korean and Western Traditional Costumes

Eun-Hyuk Yim
Fashion Design Major, School of Arts, SungKyunKwan University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s the concept of the body in Korean traditional costume by comparing the traditionalcostumes of the west and those of Korea while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body and dress. In orderto make a comparison of the traditional perspectives on the body in western and Korean costumes, this studyexamines the literature of history, art, medicine, philosophy as well as dress from the mid-fourteenth century tothe nineteenth century pertaining to the west and those of the Joseon Dynasty Korea. Western dress assumesapparent formal structures and pursues overall harmony via the completeness of its entities, while traditional Koreandress subordinates the parts to the whole, emphasizing the organic total. Whereas the proportion of bodily structureis stressed in western traditional costume, in Korean costume the body is perceived as a whole. By revealing thebody through the three dimensionalities of dress, the focus on the erogenous body parts is shifting in conventionalwestern dress according to changes in aesthetic consciousness, which reflects the western ideas of objectiveness andself-centeredness. In traditional Korean dress, in the space between the body and dress, the emphasis is onplanarization of the dress, which assumes the oriental relationship-centeredness concept.

01(5)_논문 05.pdf752.1KB

Ⅰ. 서 론

 전통이란 민족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형성된 정신적 이념이나 가치관, 정서 혹은 관습, 믿음, 행위의 집합체이다. 전통의 근본적인 결속체가 문화이며, 이러한 내재적 측면이 외적인 대상, 예술품이나 복식 등으로 표현된 것을 민족양식이라 하는데, 이를 통해 민족의 정체성 혹은 특수성을 파악한다. 특히, 복식은 일상생활에서 인간과 가장 밀접한 환경으로, 개인과 민족, 시대에 따라 특유한 미적 특성을 표출하는 가시적 조형물로서, 당대의 미적 가치 내지는 생활양식과 소통하는 문화적 산물이다.1) 복식은 인간의 의생활 문화를 만들어 내는 조형행위임과 동시에 개인, 집단, 국가 혹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성과 공간성에 대한 소통 수단이다.2)

1) 김민자, 한국적 패션 디자인의 제다움 찾기,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09), p. 75.
2) Ibid., p. 143.

 역사적 연속체의 일부로서 복식은 중요한 문화․경제적 조건, 양식적 선호, 테크놀로지와 재료의 발전을 나타내는 인류학적 산물이다.3) 복식은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제시한 모방을 통해서 전해지는 비유전적 문화의 요소인 밈(meme)4)의 하나로, 문화의 복제 역할을 하는 중간 매개물이다. 따라서 복식에 대한 연구는 그 복식이 속한 문화의 특성을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상적인 인체미와 복식의 형태와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는 서양복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3) Brooke Hodge (ed.), Skin+Bones: Parallel Practices in Fashion and Architecture, (London: Thames & Hudson, 2006), p. 12.
4) Richard Dawkins, 이기적인 유전자: 새로 쓰는 현대 진화론, 이용철 역 (서울: 동아출판사, 1992).

19세기 서양의 제국주의는 서양 우월주의를 탄생시켰고, 제 3 세계의 식민지화와 더불어 서양의 복식은 전 세계에 확산되어 보편적인 복식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따라서 제 3 세계의 전통 복식은 일상생활에서 물러나 의례적인 행사나 특별한 상황에서만 착용하게 됨으로써 타자의 위치에 머물게 되었고 서구복식이 일상복을 대체하였다.5) 그러나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여파로 서양 패션계는 서구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타자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의 복식에서 영감을 얻은 소위 에스닉 룩(ethnic look)이 지속적으로 한 장르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서구인들의 서구 중심주의적인 우월감은 여전히 아프리카 복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을 식민주의 풍, 아시아 복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을 오리엔탈리즘 풍으로 단순화하는 편견과 오류를 보이고 있다.6) 

5) 김민자, op. cit., p. 21.
6) Ibid., p. 24.

 다트나 구성선에 의해 인체가 입체화되고 인체의 축소나 과장을 위해 코르셋, 파팅게일(farthingale) 등의 보조물이 동원되기도 하는 등 ‘무엇을 입느냐’의 문제였던 서구복식에 비해, 한국복식에서는 착장 방식에 의해 원하는 실루엣을 나타내는 ‘어떻게 입느냐’7)의 문제가 중시되었다. 동아시아와 서양은 몸에 대해 서로 다른 복식의 체계를 발전시켜왔는데, 이러한 복식의 체계는 그 사회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기도 하고, 그들이 살아온 삶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서구복식이 도입된 이후의 한국복식사는 이러한 상이한 복식의 투쟁 및 상호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은 몸에 대한 전통적 인식의 체계가 강력한 서구식 체계로 대체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과학주의와 근대화라는 강력한 시대정신에도 불구하고 몸에 대한 전통적인 인식과 이해방식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7) 김민지, “인체미 인식과 복식형태의 변천,” 복식 32호 (1997), p. 240.

 한국복식과 서구복식에서 몸이 드러나는 방식의 차이는 각각의 몸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의 비교를 통해 이해될 수 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유방식과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은 복식이라 할 때,8) 동서양의 복식에 대한 고찰은 각각의 사유방식에 접근하는 유의미한 수단이 될 것이다. 이에 본 연구는 한국복식과 서구복식에 나타난 몸의 인식에 관한 전통적인 시각의 비교분석을 통해 한국복식의 정체성을 객관적으로 규명해 보고자 한다. 복식은 몸과 연관되지 않고는 이해될 수 없고, 몸은 항상 그리고 어디서나 복식을 착용한 상태이므로, 복식과 몸의 연구에 있어 복식으로부터 몸을 추출하기보다는 몸과 복식의 역동적인 관계를 탐구하고자 본 연구는 몸과 복식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복식의 개념을 근간으로 하고자 한다.

8) 김상일, 초공간과 한국 문화, (서울: 교학연구사, 1999), p. 126.

 대체로 선행 연구들은 한국 전통 복식미를 파악하는 데 있어 미적 대상으로서의 복식의 형식적인 측면과 미적 가치를 다루고 있다. 이진민과 김민자(2006)9)는 한국 전통 복식의 전반적인 형식구조는 비구조적 형식, 전개형(caftan) 의복의 발달, 비대칭적 디자인으로 나타나는 모호성을 내포하여 총체적인 조화를 우선시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였다. 금기숙(1990)10)은 조선복식미를 자연미, 인격미, 벽사의 미와 전통미로 분류하였고, 김영자(1991)11)는 한국복식미를 예의관을 중심으로 격식미, 단정미, 정적미로 논의하였으며, 최세완(1992)12)은 한국복식의 내용미를 자연주의적, 주술적, 의례적, 보수성향의 미로 규정하였고, 김윤희(1997)13)는 한국복식의 미적가치를 자연성, 순수성, 해학성으로 분류하였으며, 임영자와 유순례(2000)14)는 한국 전통 복식미를 형식미와 내용미로 분류하면서 이질적 성격이 조화를 이루는 선의 미, 평면 구성의 미, 비대칭과 파형의 미, 착용자에 의한 자율미 그리고 색채의 상징미로 파악하였다.

9) 이진민, 김민자, “동양 미학적 관점에 의한 한일 여성 전통복식의 미적 특성 고찰,” 복식 56권 5호 (2006), pp. 132-149.
10) 금기숙, “조선복식미의 연구: 예의관과 표현미를 중심으로,” 복식 14호 (1990), pp. 167-183.
11) 김영자, “한국복식미의 연구,” 복식 16호 (1991), pp. 231-239.
12) 최세완, “현대패션에 표현된 한국복식의 전통미”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2).
13) 김윤희, “한국복식의 미적가치에 대한 고찰: 조선복식을 중심으로,” 한국의류학회지 21권 6호 (1997), pp. 946-955.
14) 임영자, 유순례, “한국인의 미의식 변천과정과 복식미의 특질에 관한 연구,” 복식 50권 8호 (2000), pp. 57-66.

본 연구의 목적은 선행 연구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몸을 주체로 삼는 발상에서 시작하여 복식과 몸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국복식과 서구복식의 특징을 비교함으로써 서구복식과는 다른 한국복식에서의 몸에 대한 이해를 규명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한국복식의 미에 대한 선행 연구와 한국복식의 미적 특징을 형태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한국복식에 나타난 몸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을 고찰하고자한다. 

이상의 연구목적을 위해 본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연구문제를 설정하였다. 첫째, 몸과 복식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통해 복식연구에 있어서 몸의 의미와 중요성을 탐구한다. 둘째, 몸과 정신의 이원론을 바탕으로 하는 몸에 관한 서구적 사고를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서구복식에 나타난 몸에 관한 시각을 분석한다. 셋째, 몸과 정신의 일원론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 및 한국사상의 전통을 고찰한 후, 이를 참고로 하여 몸의 인식을 기반으로 한 한국복식의 형태미를 살펴본다. 넷째, 몸에 대한 인식에 관한 서구복식과 한국복식의 형태미를 비교하여 논의한다.

 연구방법으로는 몸과 복식에 관한 서구적 사고와 한국적 시각을 살펴보기 위해 복식 연구, 역사 및 철학 관련 자료와 함께 의학 및 미술 관련 문헌을 고찰하며, 한국복식과 서구복식에 나타난 몸에 관한 시각을 비교하기 위해 복식사 자료를 살펴본다. 연구의 범위로는 현대복식이 출현하여 현대화되기 이전의 시기로,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되 한국복식은 조선시대로 한정하고 서구복식은 재단법의 발달로 입체적인 인체 중심의 서구복식의 전통이 확립된 시기로 여겨지는 14세기 중반15)부터 19세기까지로 정한다.

15) James Laver, Costume and Fashion, (London: Thames & Hudson, 2002), p. 62.

Ⅱ. 몸과 복식에 관한 시각

1.복식연구에서의 몸의 중요성

 지난 십 년간 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놀라울정도로 높아졌다. 이를 반영하듯 몸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도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몸이라는 연구대상은 그 어느 영역보다도 인접영역들과 긴밀한 상호연관을 맺고 있다. 몸과 복식 또한 인접 학문의 연구를 수용하며 이루어지는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연구영역이다.

 고전적인 사회학은 몸을 무시하거나 억압하여 몸과 몸의 활동을 경시해 왔기에 복식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앤트위슬(Joanne Entwistle)16)은 그 원인을 패션과 복식을 진지한 학문적 대상의 가치가 없는 하찮은 것으로 인식하는 오래된 반감과 연관이 있다고 보면서, 사회계층에 있어서 복식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복식과 몸에 관한 연구의 부재는 놀랄만한 일이라 하였다. 몸에 관한 이론가들은 패션과 복식을 하찮은 것이라 하여 간과했으며, 패션과 복식 이론가들은 의복 자체에만 집중하여 그들의 연구에서는 현상적이고 추론적인 장소로서의 복식을 착용한 몸은 사라지고 몸과 복식은 분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몸은 당연히 착장한 상태로 간주되어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거나 의복은 단독으로 존재하여 몸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명백하다고 간주된 것이다.17) 그러나 복식은 일단 몸으로부터 분리되면 활기를 잃고 이질적인 대상이 된다. 복식은 항상 몸을 참조하므로 몸의 형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복식은 몸에 착용되면서 몸과 복식의 실루엣이 만들어내는 공간과 몸의 움직임에 의한 변이 공간을 형성한다. 복식 공간은 몸과 복식에 의해 형성되는 공간의 확장 및 축소라는 유동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장소이다.

16) Joanne Entwistle, “The Dressed Body”, in Real Bodies: A Sociological Introduction, E. Evans & E. Lee (eds.)(New York: Palgrave, 2002), pp. 133-150.
17) Ibid., pp. 133-150.

 복식은 선험적으로 몸의 형태를 무시하고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몸과 복식의 디자인 법칙을 따른다. 문화적 의미의 풍부한 저장소로서의 몸은 복식과 함께 정체성의 시각적 상징의 한 종류로서, 개인적이며 동시에 사회권력에 의해 구성되고, 사회적·도덕적 압력에 지배되는 사회적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복식을 간과한 몸에 대한 이론과 몸을 제외시킨 패션과 복식 이론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연구가 필요하다. 문화적 맥락하에서 몸을 통해 사고하는 것은 복식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몸과 복식의 밀접한 관계는 복식을 통해 몸을 변형 또는 은폐하는 그 문화의 복식조형에 대한 태도의 분석을 통해 탐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은 하나의 물리적 실체일 뿐만 아니라 추상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몸은 고정된 실체이기보다는 부단한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는 유연하고 가변적인 존재이다. 몸은 대상일 뿐만 아니라 담론과 실천에 참여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몸에 대한 담론과 실천의 방식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의 가치 체계와 세계관에 의존한다. 몸을 대상으로 한 복식은 끊임없이 몸을 규정하지만 몸에 대한 담론과 실천은 또다시 몸에 영향을 미치면서 몸과 복식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다. 

2.동양과 서양의 몸에 대한 사유

 한국복식과 서구복식에 나타난 몸과 복식에 관한 전통적인 시각을 비교하기에 앞서 서양과 동양의 몸에 대한 사유의 차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구의 경우, 예를 들어 독일어에서는 물질적 구조로서의 몸을 몸뚱이(肉體, Körper), 인식과 감각, 감정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살아 있는 몸을 몸(Leib)으로 구분한다. 영어에서는 전자를 몸뚱이(body), 후자를 살아온 몸(lived-body)이라 하기도 한다. 한편, 고대 중국에서 몸을 뜻하는 신(身)은 물질적 구조와 우주적 경험이 분화되지 않은 상태를 뜻했지만 점차 분화되어 ‘자신(自身)’의 뜻을 더 많이 갖는 말로 굳어졌다. 우리말의 ‘몸’ 또한 경험적 영역과 물질적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지 않다.18) 한국어의 관용적인 용례들을 살펴보면 육체보다는 몸이 더 포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육체는 물질적인 부분만을 지칭하는 반면 몸은 물질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지칭한다. 예를들어 “이 한 몸 다 바쳐 조국에 충성하리.”와 같은 표현에서 몸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 즉 정신과 물질을 모두 포함한 총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19)

18) 강신익, 몸의 문화, 몸의 역사, (서울: 휴머니스트, 2007), p. 171.
19) 주형일, “이미지로서의 육체, 기호로서의 이미지,” 몸의 인문학적 조명,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편) (서울: 도서출판 월인, 2005), p. 111.

 권영걸20)은 서양의 사유는 시각적으로 지각이 가능한 실체에서, 동양의 사유는 정신에서 출발하여 실체를 인지한다고 보았다. 서양의 관념적 사유가 눈과 연결되어 시각으로 인지하는 것이라면, 동양은 시각적 인식에 앞서 모든 감각 기관을 동원하는 전(全)감각적 인식을 추구하며, 나아가 선험적으로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즉, 동양의 사유형태는 직접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는 형태나 형질을 갖추고 있으며, 통합과 차별, 전체와 개체의 종합을 지향하는 사유형태를 보인다. 이에 반하여 서양의 사유형태는 이성을 주체로 하고 언어를 매개로 하여 논리에 따라서 추리하며, 명제를 세우고,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리인 이법(理法)을 통하여 진리를 획득하는 사고형태를 갖는다. 이처럼 동양의 사유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고 종합하려는 특징을 보인다면, 서구의 사유형태는 대상에 대해 분석적이며 이성에 기반을 둔 논리에 따른다.21,22)

20) 권영걸, 한·중·일의 공간 조형, (서울: 도서출판 국제, 2005), p. 49.
21) 김용정, 동서 사상의 만남과 한국, (서울: 일념, 1982), p. 12.
22) 권영걸, op. cit., pp. 32-33.

서구에서 정신과 몸의 명확한 분리가 사상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가 근대적인 철학의 기초를 닦은 후부터로 알려져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존재가 사유하는 정신의 현존성에 의해서만 보장된다고 보고, 육체는 물질적인 부품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자동기계와 같다고 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몸을 완전히 정신과 분리된 것으로 파악한 서구인들은 몸을 과학적으로 객관화하고 분석해 이용하는 용신(用身)의 전통을 확립했다. 이와 같이 서구에서는 몸을 분석하고 체계화해야 할 물질적 대상으로 파악했다면, 극동에서는 몸을 기(氣)가 만들어낸 것이고 기의 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며, 마음에 직접 연결된 것으로 파악했다. 서구에서 몸은 해부를 통해 각 구성요소의 형태와 구조, 기능 등이 파악되는 구체적인 물질이었지만, 극동에서 몸은 정(精), 기(氣), 신(神) 등의 실체가 불분명한 요소들의 집합체였다. 

Ⅲ. 서구복식과 한국복식에 나타난 몸에 관한 시각

1.서구복식에 나타난 몸에 관한 시각

1)몸과 정신의 이원론 및 몸의 실체적 명료성

 초상화와 인물화를 제외한 서양미술 작품에는 누드화가 대종을 이루는데, 미술사가들에 의하면, 서구인들은 이상미의 형식을 실체화된 육체에서, 즉 이성의 가상을 띤 육체의 완벽함과 순종에의 의지에서 찾았다.23) 즉, 서구의 미술에서 몸은 세계에 대한 인식의 주체로서의 인간으로 표현되었으며,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해 명료한 실체로서의 몸이 이상화되어 묘사되었다.

23) 홍덕선, 박규현, 몸과 문화, (서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9), p. 346.

 서구에서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위는 플라톤 이래 서구철학의 전통이며 데카르트에 의해 현대적 형태로 완성된 이원론적 전통에 기인한다. 기독교 문화 역시 인간의 정신과 외면을 분리시킴으로써 이원론적 전통을 강화시켰다. 서구의 몸과 정신의 이원론을 바탕으로 한 몸의 실체적 명료성의 형성에 대해 르네상스와 근대사회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 정신은 신이 아닌 인간을 세계를 인식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몸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담고 있는 그릇이어서 그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육체를 정확히 이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의 해부학자들이 실시한 인간 해부는 몸과 인간을 구분하는 이원론의 시작을 의미한다(그림 1). 인간의 물리적 몸이 더 이상 존재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서구의 근대적 사고가 출발한 것이다.24)

24) Ibid., pp. 290-296.

<그림 1> 다 빈치, 인체 비례도, 1490년경. 최경원, GOOD DESIGN(서울: 길벗, 2004), p. 60.

르네상스 시대에는 평면 위에 공간감과 거리감을 표현하는 방법인 원근법이 발견되었는데, 원근법은 이후 500년 동안 서구 회화의 기초가 된다. 이것은 한 개인의 눈높이와 욕구가 세계를 자신의 시각에서 통제하고자 하면서 나타나는 근대적 의지의 표현이자, 세계를 자신의 시각적 전망에 따라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세계의 질적 내용을 기하학적, 수학적 논리 형식 아래 환치하는 방식으로서 근대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원리가 된 방식이다.25)

25) Ibid., p. 285. 

이후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서구 근대의 몸 이론에 결정적인 족적을 남겼다. 그는 몸과 마음을 구별하여 몸은 마음에 의해 통제된다는 이원론을 주장했다. 감각의 몸은 비합리적 불확실성을 낳는 불확실한 인식체라 규정하여 데카르트는 감각 지각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폐기하고, 대신 연역의 방법만으로 지식체계를 구축해 나갔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몸을 기계로 축소시킴으로써 인간성과 몸을 분리했다. 

서구에서는 몸과 정신을 분리할 수 있는가, 분리할 수 있다면 정신이 우위에 있는가, 몸이 우위에 있는가 하는 식의 질문이 몸에 대한 담론을 바라보는 주된 시각을 결정했다. 몸과 정신을 명확히 구분되는 것으로 사고했던 서구인들은 순수하게 몸에 관한 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26) 따라서 서구 실체 세계의 구조를 형식화하면 필연적으로 명료함에 이르게 되며, 명료함은 서구 형식구조의 특징이 된다. 서구의 근대사회는 자연과학의 발전으로 기존의 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점차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이행해 가기 시작했다. 인간존재가 영혼을 지닌 고유한 신의 창조물이라는 인식은 점차 쇠퇴하는 대신 과학적 발전에 의해 인간 존재를 유물론적으로 파악하려는 입장이 널리퍼져 갔다.27) 

26) 주형일, op. cit., p. 116.
27) 홍덕선, 박규현, op. cit., p. 324.

르네상스 시대에는 육체의 능동적 감각을 통해 만물에 접근한다고 생각했던 반면, 신고전주의 시대에는 육체를 수동적 기계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서구역사에서 교회의 권위와 초월적 신앙에서 인간이 해방된 것은 인간 인식의 능력의 확인으로 가능했으나, 이는 다른 한편 인간의 몸을 사유의 노예로 만드는 균열을 가져왔다. 인간 존재 내에서 정신과 몸의 균열이 생긴 것이다.28) 이러한 몸의 수동성은 여성의 몸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와 같은 사고방식에 의하면 여성은 이를 통해서 자기 정체성을 가장 잘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이후 프랑스의 신고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인 앵그르(J. A. D. Ingres, 1780~1867)의 누드화〈그랑 오달리스크(La Grand Odalisque)〉(1814)(그림 2)는 소위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서구인들이 오리엔트라고 하는 동양 문화에 대해 환상적으로 품고 있는 매력과 기호를 가리킨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인들의 이성적 문화와는 대조적으로 동양의 문화를 신비하고 이국적인 타자로 간주하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인식의 저변에는 서구의 이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비이성적이고, 열등하며, 비도덕적이고 야만스런 동양문화라는 제국주의 이념이 깔려 있다고 비판을 받는다. 앵그르의 그림에서도 신비스럽고 육감적인 동양의 여성을 재현하는 화가의 시선에는 오리엔탈리즘의 인식이 스며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의 이면에는 여성의 몸을 에로티시즘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남성적 사고도 반영되어 있다. 여성과 남성의 몸이 각각 대변하는 이미지가 분리되고 있는 것이다.29)

28) Ibid., pp. 316-321.
29) Ibid., pp. 347-349.

<그림 2> 앵그르, La Grand Odalisque, 1814년. H. W. 젠슨 & A. F. 젠슨, 서양미술사, 최기득 역 (서울: 미진사, 2001), p. 408.

2)서구복식의 형태미

헤겔(G.W.F. Hegel)은 “피부는 자연의 불완전함을 증명하는 일종의 덮개이다.”30)라고 언급한 바 있다. 서구 미학은 의복을 불완전함을 가리는 수단으로 인식해왔다. 의복은 몸의 불완전함을 감추기 위한 것이므로 의복에는 주름이나 구겨짐 같은 아주 작은 결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31) 이러한 견지에서 서구 패션은 복식을 통해 아름답고 완벽한 피부를 창조하는 것을 추구해왔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비평가 바르트(Roland Barthes)의 말대로 서구복식은 몸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몸을 감쌈으로써 오래된 신비인 ‘천의무봉(天衣無縫, seamlessness)’을 반영한다.

30) G. W. F. Hegel, Vorteungen uber die Asthetik, Hiroshi, Hasegawa (trans.) (1996), p. 349, Louise Mitchell, The Cutting Edge, Fashion From Japan, (Sydney: Powerhouse Publishing, 2005), p. 23에서 재인용.
31) Louise Mitchell, The Cutting Edge, Fashion from Japan, (Sydney: Powerhouse Publishing, 2005), p. 23.

서구복식에서는 몸이 입체적으로 인식되며, 실체의 유한한 확장의 개념으로서의 서구복식은 몸이라는 구조적인 형에 근거해서 가시적인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그리스 시대부터 서구인들은 자연의 형식적 기초 개념으로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간주하였으며,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의 특성을 중시하였다. 특히 복식에서의 에로티시즘은 각 시대의 인체구조에 대한 이상미의 표출로, 이에 따라 복식의 구조가 변화해왔다. 

수 세기 동안 서구유럽에서 복식의 형태는 유행 복식에 있어서 주요한 재현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중세 후기의 90cm까지 달했던 여성의 두식(頭飾)인 에넹(hennin), 지름이 60cm에 달했던 스페니쉬 러프(Spanish ruff), 양 옆으로 약 80cm까지 연장되었던 로코코 시대 궁중 복식의 후프 스커트인 빠니에아 꾸드(panier à coudes) 등의 형태의 과장을 예로들 수 있다. 오늘날 몸은 어깨 패드, 플랫폼 슈즈(platform shoes)와 원더 브라(Wonderbra) 등으로 변형되고 왜곡된다. 

서구 복식은 1200년에서 1400년 사이에 토르소에 패딩을 하거나 구속을 하고, 길이가 지나치게 짧거나 길어지고, 신발, 소매, 머리장식의 형태가 표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요건은 이후 끊임없이 변화했다.32) 형태를 바꾸고, 토르소를 단단하게 조이기 위한 재단법과 맞음새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등장하였으며, 장식으로서의 시각적 흥미를 제공하는 기본적인 형태의 구성을 훨씬 넘어서는 과시적인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해 몸의 가시적인 시야를 확장하는 소재의 추가적인 사용이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패드가 추가되고, 후프(hoop)와 케이지(cage)와 같은 장치가 드레스 속에 채워지고, 또는 철사, 나무, 고래뼈 또는 신축성 소재가 몸의 윤곽선을 깎아 내는데 사용되었다(그림 3). 새로운 재현 방식으로서의 서구복식은 몸의 사실성으로부터 물러나 상징적인 형상으로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각 시대나 문화마다 주목하는 부위는 다를 수 있지만, 서구복식은 꾸준히 실제 몸의 형태에 대한 대조적인 요소를 적용하면서 몸의 비례를 조작했다. 

32) Anne Hollander, Sex and Suits, (New York․Tokyo․London: Kodansha International, 1994), p. 31. 

<그림 3> Grande Parure 가운, 1780년경. Francois Boucher, 20,000 years of Fashion(New York : H.N. Abrams, 1987), p. 298.

이렇듯 서구복식의 역사는 인체 비례를 재구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대마다 그것이 어떠한 종류이든 시각적 과장이 있었으며, 이는 속옷을 통해 달성되었다. 서구복식에서 복식의 변화와 함께 여성의 몸도 변화하고 있음은 쿄토 복식문화연구재단이 제작한 상반신 석고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림 4). 여성의 몸에서 뼈가 없는 유연한 부분, 즉 가슴, 허리 등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서구문화에서 몸은 시대의 미의식이나 사회적인 이상에 의해 재구성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구복식의 메커니즘은 몸의 실루엣과 신체구조를 인공적으로 변경하면서 비례와 형태를 지배하며 몸의 부위를 변형시켜왔다.

<그림 4> 상체부 석고상의 변화. Akiko Fukai, Visions of the body 2005 전시 카탈로그 (서울시립미술관, 2005), pp. 32-33.

서구복식에는 16세기부터 패턴이라 불리는 구성계획의 도안이 도입되었으며,33) 서구인들은 자연상태의 몸에 대한 인간의 불만족으로 고래뼈, 나무, 캔버스, 풀 먹인 빳빳한 천 등을 이용하여 수많은 다양한 형태를 실험해왔다. 여성의 몸의 자연스러운 형태는 오늘날까지 1500년이 넘게 감추어져 왔다. 한 예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초상화를 보면 복식은 얼굴의 틀을 모양 짓는 칼라, 압박된 가슴, 확대된 어깨, 코르셋으로 가늘게 죄인 허리, 파팅게일로 부풀린 엉덩이, 그리고 굽이 달린 작은 구두 등의 모든 부위의 비례 변형의 융합이라 할 수 있다(그림 5). 이에 대해 건축가이자 문화역사가인 루도프스키(Bernard Rudofsky)34)는 서구복식에서의 창의성의 목표를 인간의 몸의 변형에서 찾았다. 루도프스키는 서구복식이 인간의 형상에 관한 시각적 환영을 현실화한다는 측면에서 패션디자이너를 ‘트롱프 뢰유(trompe l’oeil) 아티스트’라 규정하였다. 

33) Ingrid Loschek, When Clothes Become Fashion, Design and Innovation Systems, (Oxford․New York: Berg, 2009), p. 10.
34) Bernard Rudofsky, The Unfashionable Human Body, (New York: Prentice-Hall, 1986), p. 151.

<그림 5> Queen Elizabeth Ⅰ, 16세기. Harold Koda, Extreme Beauty (New York: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01), p. 104.

이러한 서구복식에서의 몸의 입체적 인식에 따른 복식에서의 몸의 표현은 자연스럽게 성적 특징의 강조로 이어진다. 플뤼겔(J. C. Flügel)35)은『The Psychology of Clothes』에서 복식에서의 성적 구별이 인류 역사에서 오래되고 보편적인 전통으로 자리잡아왔음을 상기시키면서 특정한 의복을 선택하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 본질적으로 성적 본능을 자극하는데 있다고 말하고, 나아가 ‘성적 부위의 이동(shifting erogenous zone)’이라는 개념으로 패션 변화를 설명하였다. 레이버(James Laver)36)는 신체 장식 욕구를 종족의 보존과 번식이라는 본능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하면서 남성이 외모를 기준으로 여성을 선택하는 경향 때문에 여성복식에서 신체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35) J. Flügel, The Psychology of Clothes, (London: Hogarth Press, 1930), pp. 145-201.
36) James Laver, Dress, (London: John Murray, 1996), p. 15.

근대에 이르러 서구복식은 복식의 형태가 전체적인 인체의 실루엣과 각 인체부위에 대응하는 구조를 갖춤으로써, 외적으로는 복식을 통해 인체의 윤곽뿐 아니라 분절적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내적으로는 복식에서 형태와 움직임에서의 효율성 및 효용성이 추구되었다. 서구인들은 인체에 꼭 맞게 복식을 표현하기 위해 인체에 대한 비례와 질서를 근간으로 성립되어온 복식의 구조적인 구성법을 개발하고, 산업혁명 이후 기계적 생산에 적합한 규격화, 표준화, 획일화를 추구하였다. 이는 기능성과 실용성을 만족시키는 복식으로, 복식의 외형이라는 기표와 인체의 구조와 활동이라는 기의가 일치하게 되어 합목적성과 적합성을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한국복식에 나타난 몸에 관한 시각

1)몸과 정신의 일원론 및 몸의 현상적 모호성

 서양의 사고가 ‘존재’ 중심의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한국의 사상은 ‘관계’ 중심의 우주론에 근거하고 있다.37)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에서 인간은 언제나 자연과의 관계 속에 자리한다. 자연을 상징하는 하늘(天)과 인간(人)은 언제나 하나이며, 따라서 사람의 몸은 단순한 물질이나 기계로 여겨진 적이 없다. 몸과 마음의 구분도 없고, 주체와 대상의 구분도 없다. 여기서 ‘몸’과 ‘사람’은 같은 말이며, 우주(하늘)와 일체를 이룬다. 몸-사람-우주가 하나를 이루는 일체적 구조가 천인상관(天人相關)의 동아시아적 인간관이며 우주관이다.38)

37) 강신익, op. cit., p. 111.
38) Ibid., pp. 122-123.

김용옥39)은 기(氣) 우주관을 중시하는 동양인에게 우주는 구체화하거나 분할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 파악되어 전체를 떠난 부분과 구조를 논할 수 없게 된다고 하였다. 즉, 전체가 부분을 우선하며, 하나의 유기적 전체가 부분을 규정하는 것이지 부분이 전체를 규정하지 않는다. 이렇듯 동양에서는 하늘과 인간, 하늘과 땅, 인간과 사회, 자연과 인간, 시간과 공간 등의 대립적 관계항을 하나의 유기적 체계 안에서 질서 있게 다룬다.40) 이러한 동양의 사유는 물질의 근본 원소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을 거부하고 인간을 비롯한 만물의 존재를 기(氣)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한국을 비롯한 극동에서 몸과 정신은 명확히 구분되는 것으로 사고되지 않았다. 서양은 허(虛)와 실(實), 안과 밖의 확실한 구분에서 출발하며, 현존하는 실을 통해서만 새로운 실의 생성이 가능하다고 보는 반면, 동양은 허와 실을 구분하지 않고 유기적인 관계로 인지함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동양에서 몸과 정신은 별도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동일한 원리에 의해 생성되고 움직이는 것이다. 극동의 사상에서는 육체와 정신의 구분 대신에 몸(身)과 마음(心)의 구분이 존재했다. 그런데 이 몸과 마음은 구분되는 별개의 존재라기보다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것으로 이해됐다. 유교의 기본 덕목인 수신(修身)은 물질적 존재인 몸을 단련한다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도덕적 주체로서의 ‘나’를 닦는다는 개념으로 몸과 마음의 수양을 모두 포함한다.41) 동아시아에서의 몸은 자연의 절대적 구성요소인 동시에 자연 그 자체이기도 하며, 몸의 존재론은 ‘우주가 총체적으로 구현된 존재로서의 몸’이라는 신념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에서 몸은 물질의 덩어리나 기계적 기능이 구현된 존재일 수 없다. 몸은 개방적이고 유동적인 기의 체계로서 다른 몸들과 그리고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는 부분인 동시에 전체인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42)

39) 김용옥,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 통나무, 1996), pp. 59-67.
40) 김일권,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서울: 고즈윈, 2008), p. 363.
41) 주형일, op. cit., p. 116.
42) 강신익, op. cit., pp. 92-101.

동양과 서양의 우주관에 대한 차이는 예술 양식의 형식에도 차이를 보인다. 서구인에게 있어 세계는 하나의 실체이며, 실체 세계를 구체화하고 정교화한 것이 형식이다. 서구인은 이러한 형식으로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였고, 이는 미의 보편법칙이 되었다.43) 동아시아에서는 몸 자체를 찬미하는 일은 거의 없다. 동양화의 인물들은 항상 의복과 더불어 등장하며, 의복을 입지 않은 인물을 묘사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서양의 미술 작품들이 대부분 나신(裸身)을 표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처럼 동아시아인들은 물질적 몸에 독립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으며, 항상 주변 상황과의 연관 속에서만 바라보았다.44) 

43) 김용옥, op. cit., pp. 268-279.
44) 강신익, op.c it., pp. 92-101.

 한국회화는 그리고자 하는 대상과 공간의 구성이 모호한 확대 지향적인 열린 미를 추구한다(그림 6). 이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적 경계가 모호함을 의미한다. 한국의 조형의식은 보이는 부분간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다원적 통일성보다는 모든 부분을 하나의 주제로 합류시키거나 지배적 요소에 여타 요소를 종속시키는 단일적 통일성을 추구하며, 기를 중심으로 하나의 주제를 표현하려는 유기적 총체성을 중시한다.45) 한국의 예술에서는 형식이 곧 내용이며 내용이 곧 형식의 표출로서, 그 구분이 모호하다. 따라서 한국의 복식양식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를 빌려 표현하고자 하는 정신적인 미적 가치를 같이 논해야 한다.46)

45) 김민자, op. cit., p. 59.
46) Ibid., p. 76.

<그림 6> 안견, 몽유도원도, 1447년. 정병모, 한국의 풍속화, (서울: 한길아트, 2000), pp. 164-165.

 엘빈(M. Elvin)47)은 아시아인의 몸은 몸의 속성(corporeal attribute)과 옷의 속성(sartorial attribute)을 함께 갖는다고 설명하였다. 여기서 몸은 마음을 담고 있고, 옷은 몸을 담고 있다. 따라서 몸은 마음과 몸과 옷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몸은 정신적(마음)·물질적(몸)·도덕적(의복)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전통에서 복식의 속성이란 몸의 사회적·도덕적 상태를 표현하는 속성으로서, 주로 의복 등 몸에 걸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예컨대 우리가 ‘학생의 몸으로’ 또는 ‘여자의 몸으로’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사람(몸)의 도덕적 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 속성 속에는 학생으로서 또는 여자로서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와 갖추어야 할 외모, 입어야 할 옷의 종류, 그리고 사회적 지위 등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48)

47) M. Elvin, “Tales of Shen and Xin: Body-Person and Heart-Mind in China during the Last 150 Years”, in Zone 2: Fragments for a History of the Human Body, M. Feher, R. Naddaff, and N. Tazi (eds.) (Cambridge: Zone Book, 1989), p. 267.
48) 강신익, op. cit., p. 96.

 서구의 형식구조가 명료함을 추구하는 반면, 동양의 형식구조는 필연적으로 모호할 수밖에 없어, 모호함은 동양 문화의 형식적 특징이며, 이는 혼돈속에서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49) 이와 같이 동양에서의 몸은 정신사적인 측면의 연장으로, 이는 몸에 착용되는 복식의 유형을 결정하는 데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동양적 사유에서 몸을 우주의 일부, 나아가 우주 자체로 인식한 것은 동양의 전통복식이 몸의 전체와 부분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인식하는 재단방식을 취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49) 김용옥, op. cit., pp. 67-84.

3.한국복식의 형태미

 서양과 동양의 복식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바, 각각의 복식이 구성한 두 몸을 비교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만큼 이질적인 복식을 갖게 되었다.

 복식의 조형적 특성이란 복식의 객관적인 미에대한 분석을 말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디자인의 요소와 원리, 즉 형식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미적가치를 따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서양과 달리 미의 구성에 대한 원리나 형식에 의해 조형성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한 복식의 조형성이 창조되어 왔다.50) 따라서 한국복식의 형태미를 분석하기 위해 앞서 논의한 한국복식에서의 몸에 관한 시각을 바탕으로 한복의 조형적 특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50) 김민자, op. cit., p. 103.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한국의 몸에 관한 시각은 몸과 정신이 존재론적으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일원적 사고이며, 복식에서도 의복과 자아가 하나라는 정신적인 측면이 강조된다. 한국복식에서는 인체를 추상형으로 인지하며, 몸의 형태와 성적 특징은 몸의 직접적인 노출이 아니라 몸태와 옷맵시를 통해 암시적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최세완․김민자(1993)51)의 연구에서 밝히고 있는 전통복식의 형식미에 따르면 한국복식의 형태는 유연한 흐름의 선, 전체성, 인체 부위의 모호성을 특징으로 한다.

51) 최세완, 김민자, “현대패션에 표현된 한국복식의 전통미: 1980년대 이후 한국 디자이너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국의류학회지 17권 1호 (1993), pp. 103-117.

 복식 공간은 몸과 복식, 그리고 공간의 관계라 할 수 있으므로, 본 절에서는 한국복식의 형태미를 몸, 복식, 공간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한다.

1)몸의 평면적 인식

 인체와 복식의 관계를 시각적인 우선성의 개념(Body-Clothes Priority)52)으로 설명한 들롱(M. R. Delong)의 관점에서 한국복식은 인체보다는 복식의 형태가 우선적으로 인지되는 복식우선형이라 할 수 있다. 한국복식이 인체의 형태를 무시하거나 전혀 고려하지 않은 형태라기보다는 다트 등을 이용하여 의복 자체가 인체우선형인 서구복식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평면적이기 때문이다.53)

52) M. R. Delong, The Way We Look, (Iowa: Iowa State University, 1987), pp. 49-50
53) 김윤희, “한국 복식의 미적 가치에 대한 고찰,” 한국의류학회지 21권 5호 (1997), p. 146.

서양복식은 삼차원의 인체에 맞추기 위해 다트, 솔기, 구성선 등의 구조적인 재단법으로 입체적인 형태를 띤다. 반면, 한국복식의 패턴은 내부적인 구성선이 존재하기 않는 비구조적인 특성을 띠며, 각각의 평면적 패턴은 인체 위에 착용됨으로써 비로소 입체성을 드러낸다. 인체의 삼차원성을 강조하는 서구복식과는 달리, 평면화 된 전통적 한국복식은 인체의 해부학적 차이를 중시하지 않는다.

서구와 한국은 예로부터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있었다. 복식구성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서구복식의 구성법은 곡선적인 재단과 봉제로써 형태를 입체화시키는 입체구성법인데 비해, 한국복식은 직선적인 재단과 봉제로 형태를 구성하는 평면구성법에 의거하여 제작되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예컨대, 서구복식의 여성복 기본 원형에는 다트가 있어 가슴과 허리와 엉덩이의 곡선을 입체화하였고, 어깨선이 경사져 있으며, 진동이 곡선으로 처리된 점 등 인체의 형태를 입체적으로 인식하여 구조적으로 구성하였다. 한편, 한국복식에서는 이러한 기본 원형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의복은 직선적으로 재단되고 봉제되므로 입체화를 위한 다트나 구성선은 필요하지 않다. 구성시 직선 혹은 사선재단을 기본으로 하고, 부분적으로 배래나 도련 등에 곡선을 쓰지만, 이 곡선은 인체의 형태를 따라 입체화시키기 위한 곡선이 아니다. 또 어깨선은 소매와는 수평을, 진동선과는 수직을 이루고 있어 경사진 어깨선, 원통형의 소매가 달리는 진동부위와는 무관한 구성이다.54) 한국 전통복식의 재단과정을 살펴보면 길과 소매의 식서방향이 동일한 반면, 서구복식의 소매는 직물의 식서방향으로 재단된다(그림 7). 이는 한복에서 몸을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하며, 부분과 전체의 일체성을 추구함을 나타낸다. 또한 한복의 제도와 마름질에서 길이와 너비는 각각의 몸에 따라 결정되므로 고정적인 척도는 없다. 이와 같이 한국복식에서 입체적인 인체의 각 부위들은 직선적으로 처리되고 복식의 앞과 뒤의 길이나 너비의 차이가 서구복식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다. 

 54) 김민지, op. cit., p. 227.

<그림 7> 여자 두루마기 마름질. 홍나영, 김남정, 김정아, 김지연, 한복만들기 (서울: 교문사, 2007), p. 93.

 한국복식의 형태는 몸의 굴곡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보다는 원형이나 사각형 등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으로 추상화되어 표현하여, 몸의 재현이 아닌 기하학적 순수형태를 띤다. 즉, 한국의 전통복식은 서구복식에 비해 내부에 구조적인 선이 없고 평면적이며, 의복패턴의 앞과 뒤의 모양이 거의 같다. 동양의 전통복식 중 한·중·일 삼국에서 공통적으로 착용되었던 포(袍)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그림 8).

<그림 8> 도포, 17세기 초반. 서울역사박물관․단국대학교석주선기념박물관, 환생 전시 카탈로그 (2006), p. 122.

 한국 전통복식은 사용된 직물의 폭 내에서 최대한 활용되었고, 원단이 거의 잘려 나가지 않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제작 방식으로 구성된 한국복식은 몸을 드러내지 않는 무정형의 비구조적인 형태를 취하며, 몸의 움직임과 착용자의 착용방식에 따라 형이 결정되는 특징을 갖게 된다. 또한 원단을 직선으로 재단해 옷감의 낭비를 최소화하였으며, 재활용의 여지를 남겼다. 다시 말해, 곡선 재단은 자투리가 많이 남지만 직선 재단은 버리는 면적을 최소화하며, 봉제된 의복을 분해하면 여러개의 크고 작은 사각형을 얻을 수 있어 다른 옷을 만드는 것이 용이하다.

 이와 같이 한국복식의 구성에는 기하학적인 형태의 사각형이 복식의 구성상 많이 사용됨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한국 전통복식의 평면적 구성은 인체의 굴곡을 무시하거나 구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현상과 실체를 근본적으로 분리하지 않는 동양적인 일원론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55)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분석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56) 한국복식의 평면구성이 인체의 형태를 입체적으로 고려한 것은 아니며, 특정 부위를 강조하거나 과장하는 서양복식에 비해 은폐하는 형을 고수하였으므로 인체미 인식의 여부에 따른 복식형태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복식에도 사회적 속성이나 성격, 사상, 감정이 반영되어 나타났고, 이상적인 여성의 인체 형태도 시대에 따라 달랐으며, 머리모양, 화장, 복식의 형태 및 착장법 역시 당시의 이상미에 근접하기 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음을 볼 수 있다.57) 또한 시종일관 인체미가 부정되었던 것은 아니며, 때로는 착수(着手)에 의해 인체를 부분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였다.

55) 김윤희, op. cit., p. 149.
56) 김용옥, op. cit., pp. 267-282.
57) 김민지, op. cit., p. 240.

2)가변적 공간성

 서구복식은 입체적인 인체 표현을 위해 인체부위에 따른 비례와 구성선, 다트, 솔기 등 구조적인 디자인으로 입체화를 추구한다. 반면, 한국복식에서는 몸의 변형을 추구하지 않고 비구조적 디자인으로 인체를 평면적이며 전체로서 인식하며, 앞이 트여 여밈이 있는 카프탄(caftan)형으로 여유롭고 풍성함을 추구한다. 한국인의 생활양식이 서양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앉는 문화’58)였기 때문에 여유롭고 형태가 고정되지 않은 개방형의 의복이 필요했을 것이다.59) 한국복식은 단추나 지퍼가 아닌 끈으로 묶는 구성이 유지되어 왔고, 포나 치마에서 긴트임으로 여유로움과 개방성을 유지하였다. 이렇게 인체의 움직임을 구속하지 않으며, 인체 부위를 왜곡하거나 과장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한국복식의 형태는 가변적 공간성을 추구한다.

58) 이규태, 우리의 옷 이야기, (서울: 기린원, 1991), pp. 238-242.
59) 김윤희, op. cit., p. 147.

 한국복식은 조형의 과정에서부터 열린 가능성이 존재했고, 인체에 착용되기 전의 복식 형태도 긴트임으로 완전한 개방형을 띤다. 특히 치마는 하나의 커다란 사각형의 천으로 구성되며, 긴 뒷트임으로 뒤가 완전히 열리는 형이고, 저고리 또한 앞판을 완전히 열 수 있는 앞트임을 갖추고 있다. 한국복식의 형태적 특징은 열린 형으로, 직선으로 재단되지만 봉제에 따라 그것이 곡선이 될 여지가 있으며, 직사각형의 몸판의 양끝에 붙을 무의 크기에 따라 의복 전체의 여유는 나중에 결정된다.60) 이와같이 한국 전통복식은 대체로 평면적인 구성에 의해 제작되며, 입체적인 인체에 걸쳐짐으로써 무한한 형을 창출한다. 또한 착용자의 착장법에 의해 자유분방한 미를 표현하며 착용자가 자신의 개성에 따라 연출할 수 있는 열린 구조이다. 복식에서 외부와 내부의 공간을 소통하는 기능은 여밈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때, 한국복식의 여밈은 외부와 독립된 구조가 아닌 지속적인 변화가 가능한 열린공간으로 구성하는 역할을 하여 착용자가 복식 공간을 자유로이 구성할 수 있게 한다. 요컨대 한국복식은 몸을 드러내지 않는 무정형적이고 비구조적인 형태를 띠므로, 몸의 움직임과 복식의 착용방식에 따라 그 형태가 결정된다.

60) Ibid., p. 146.

 한국복식에서의 저고리의 고름, 치마의 드레이퍼리, 도포의 폭넓은 소매 등은 인체의 움직임에 따라 형상이 달라지며 공간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61) 한복은 평면적이고 비구조적인 구성과 선과 면을 휘고 비틀면서 생기는 시간과 공간의 가변성을 추구한다.62) 특히 치마의 열린 형태는 착용자의 착장 방식에 따라 몸과 복식 사이에 존재하는 가변적인 공간을 창출한다. 치마는 단순한 구조로 착장 방법과 움직임에 따라 무한한 형을 창출하는 ‘무정형의 형’63)으로, 치마의 주름에 의한 드레이퍼리도 재질과 움직임에 따라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그림 9).

61) 김민자, op. cit., p. 109.
62) Ibid., p. 107.
63) 이우환, 이조의 민화, 구조로서의 회화, (서울: 열화당, 1979), p. 237.

<그림 9> 미인도, 조선시대. 금기숙, 朝鮮服 飾美術 (서울: 열화당, 1994), p. 41.

 한국 전통복식에서는 몸이 반사적으로 취하는 비대칭적인 자세를 반영하듯 비대칭적으로 몸의 움직임을 수용하였다.64) 한국 전통복식의 포와 저고리의 비대칭 앞 여밈이나 치맛자락을 한쪽으로 둘러 입는 착장 형태는 자발적으로 대칭성을 파괴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한복 바지는 좌우 비대칭으로 허리 크기에 따라 한쪽으로 접어 허리 끈으로 매어 입는데, 착용된 모양도 비대칭을 이룬다. 이와 같이 한복의 조형적 형태는 비례적인 대칭형보다는 도포 자락과 치마, 저고리의 여밈에서 비대칭구조를 띤다. 이러한 비대칭적 구성은 몸의 움직임으로 인해 파괴되는 몸의 대칭성을 자연스럽게 반영하므로, 착용자에게 고정된 정형적인 자세를 요구하기보다는 움직임의 자유로움을 수반한다.

64) 이윤경, “복식에 표현된 초공간 패러다임”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9), p.94.

 한국의 몸과 복식에서의 공간 개념은 동양의 사유에서 출발한다. 동양적 사유는 자연의 확장 개념과 무형에서 출발한다. 동양에서의 몸은 자연의 확장과 무한의 대상이며, 복식은 무한을 감싸는 의미, 또는 무한의 확장 개념으로, 몸을 덮는 의미에서부터 몸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공간 변화까지 담을 수 있는 범위로 확장된다.65) 이는 동양미술이 추구한 “마음의 동(動)을 마음의 정(靜)으로 변용시키는 것”66)이라는 개념이 복식의 형태에도 일관적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몸은 물질이 아닌 정신세계의 확장인 무형의 개념으로 인식되며, 몸과 복식은 그 자체로 ‘기의를 담는 기표’67)이다.

65) 김윤희, “현대 한국적 복식에 나타난 인체와 복식에 대한 미의식”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8), p. 109.
66) 윤재근, 동양의 미학, (서울: 도서출판 둥지, 1995), p. 125.
67) 이윤경, op. cit., p. 77.

3)성 구분의 모호성

 우리나라 복식은 기후적 요인으로 인해 최대한 공기층이 존재하도록 약간 느슨한 여러 겹의 가벼운 재질의 의복으로 구성되어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고안된 상하 분리형이며, 전개형 복식의 형태를 띤다. 이러한 한국복식에서의 레이어링(layering)을 김민자(2009)68)는 중첩의 미라 규정하였는데, 이는 복식에서의 몸의 평면적 인식과 더불어 성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

 68) 김민자, op. cit., p. 125.

 한국복식에서는 인체 부위에 따른 성적 구분이 모호하며, 허리선과 가슴선의 노출은 예의에 벗어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한국의 전통복식의 구성에서는 남녀 복식에서 모두 복식의 앞뒤의 길이나 너비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나, 서구복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고 있다(그림 10). 따라서 한복의 실루엣은 허리선을 강조한 것이 거의 없고, 치마의 주름과 드레이퍼리에 따라 전반적으로 유연한 곡선을 이루는 것이 한국복식의 미적 특성이다.

<그림 10> 조반부인상, 고려 말~조선 초. 백영자, 한국의 복식(서울: 경춘사, 1993), p. 147.

 전통복식에서는 겉과 안을 구별하여 속옷을 입지 않으면 마치 벗은 것처럼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이는 인체를 노출을 지양하는 은폐적인 관념에서 비롯된 의복 착용 습관이라 하겠다.69) 즉, 겹침으로 인한 풍성함이 애호되었으며, 체형을 드러내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중첩은 피부를 가리기 위한 보호기능보다는 부끄러움에 대한 은폐적 성격이 더 강해 여름에도 중복착용을 했다. 겉저고리와 안저고리를 입고, 속치마와 겉치마, 너른바지와 고쟁이 등이 의복 일습에 포함된다. 이렇게 의복을 겹쳐 입는 경우 다양한 형태의 의복을 여러 개 착용하여 속옷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하였다. 이렇듯 한국 전통복식에서는 인체의 부분에 대한 인식 없이 전체적인 인체구조의 은폐가 도모되어 복식 형태상의 성적 구분이 모호하였다.

69) 김영자, “한국 복식미에 표현된 에로티즘에 관한 연구,” 복식 21호 (1993), p. 172.

Ⅳ. 논의 및 결론

 서양에서는 복식이 인체에 밀착되어 명료하게 인체미를 드러내지만, 한복은 평면 구성이나 여러겹의 의복을 겹쳐 입는 착장 방식인 레이어드 룩을 통해 인체를 자연스럽게 감춘다. 유념할 것은, 입체적인 서양복식의 구성 방식과 달리 한국복식에서 평면구성 방식이 애호된 것은 인체에 꼭 맞게 만드는 기술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몸에 대한 인식이 서양과는 다르다는 이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한국복식은 직물의 형태에 기초한 기하학적 형태로 솔기가 직선이므로 몸에 밀착되지 않고 몸의 윤곽을 드러내지 않았다. 직물의 너비가 좁았고 직물이 귀했다는 기술적인 문제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복식을 통해 몸의 윤곽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없었을 것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서양의 고전적인 의복 구성의 체계는 각각의 부분이 전체의 일부가 될지라도 항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다원성을 지닌다. 서구복식은 합리적 사고에 근거한 명료한 형식구조를 띠며, 개체의 완전성을 토대로 총체적 조화를 추구한다. 따라서 부분간의 비례와 질서의 조화를 통해 통일성을 추구하는 반면, 동양에서는 지배적인 주제가 부분적 요소를 아우르는 유기적인 총체성을 중시한다. 즉, 한국복식에서는 몸이 하나의 통일체로 인식된다. 한국복식에서는 몸이 직관에 의해 전체로 인지되는 반면, 서구복식에서는 인체의 구조에 따른 비례가 중시된다.

 서구복식에서는 허리, 가슴, 엉덩이 등을 여성의 성적인 신체부위로 인식했으며, 미의식의 변화에 따라 부분적으로 강조하는 신체부위가 변화했다. 서구복식은 복식의 입체화를 통해 자신의 몸 또는 자아를 드러내는데 집중하는 객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서구적 사고의 특징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한국복식은 복식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복식의 평면화를 통해 착용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몸과 복식의 공간적인 관계를 중시함으로써 관계 중심의 동양적인 사고를 드러낸다고 유추할 수 있다.

 한국복식에서는 신체부위에 따른 성적 구분이 모호하며, 허리선과 가슴선의 노출은 비정숙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한국복식과 서구복식에서는 복식의 형태가 허리를 중심으로 다르게 이루어진다. 허리에 관한 인식이 중요하지 않은 한국복식은 몸에관한 것이 아니라 복식이 몸 위에 상정하는 형태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서구의 테일러링에서 각각의 체형에 맞게 소재를 재단하여 의복을 구성하는 것이 대상과 개체를 중시하는 서구의 관점을 나타낸다면, 한국의 전통복식에서 서로 다른 몸이 일정한 양의 소재에 맞춰지는 것은 일반화된 타자(generalized other)를 중심의 한국적 개념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서구복식과 한국복식에 나타난 몸에 대한 개념의 비교를 표로 정리해 보면〈표 1〉과 같다. 이는 단순화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과 서구의 복식과 몸을 비교하여 조화나 종합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표 1> 한국복식과 서구복식에 나타난 몸에 관한 시각 비교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어느 쪽이 우월하다든지 열등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 현재는 이성과 합리성에 치우쳐 ‘같음’을 강조하는 근대정신을 극복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한 상태에서 새로운 의미의 보편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현대화는 전통적인 가치를 전적으로 폐기하고 서구적인 현대적 사상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전통성과 현대성의 결합을 통한 전통성의 재창조라 할 수 있다. 김민자(2009)의 논의대로 ‘한국적 패션 디자인의 제다움’을 찾기 위해 혹은 세계의 패션과 차별화 할 수 있는 특수성을 찾기 위해 한국 전통복식의 미를 규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은 옛 것 그대로의 모방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해체함과 동시에 새롭게 다시 탄생시킬 때 생명력이 있는 것이다.

 원단을 최소한으로 재단한 기하학적 형태로 구성되는 비서구적 복식형태는 20세기 초반부터 서구패션의 의복 구성에 영향을 미쳐 왔는데 현대 디자이너들은 그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를 새롭게 해석해왔다. 특히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 등은 자국의 전통 복식미를 승화시켜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잡는데 성공하였다. 물론, 일본은 유럽과 미국의 의류 브랜드를 과소비하면서도 자국의 디자이너를 양성하거나 세계적인 패션 중심지가 되는 데는 실패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문화의 바탕 위에 서양적 영감을 흡수하여 몸과 복식에 대한 사회적 인습의 경계를 타파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서구의 드레스메이킹(dressmaking)은 이차원의 소재를 사용한 삼차원의 형태의 형상화를 위한 해결책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반대로, 일본 디자이너의 디자인은 몸을 뒤덮어 몸의 자연스러운 비례를 은폐한다. 예를 들어, 미야케의 A Piece of Cloth시리즈는 한 장의 천으로 만들어진 솔기나 여밈이 없는 의복이다. 이는 서구의복이 아닌 기모노의 정신에 입각한 것으로 기모노의 전통에서 의복의 치수는 몸에 따라 변하지 않으므로 몸을 감싸고 남은 천의 여유분은 늘어지게 된다. 즉, 소재의 이차원적 본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소재로 몸을 감싸 여분의 소재로 드레이프를 만들어내며, 여분을 하나의 공간으로 보고 불필요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많은경우 비대칭의 무정형적인 이들의 디자인은 패션이 서구적 사고 밖의 개념으로부터 창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민족들은 그들만의 라이프스타일과 관습을 가지고 있으며, 단순히 동양과 서양으로 구분될 수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적인 패션디자인의 사례를 살펴보면 기표와 기의가 해체되는 현상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한국복식의 전통미를 재현했다기 보다는 여러기표만을 단순한 방식으로 차용하여 기념품에 지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코다(Harold Koda)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중국 복식을 생각할 때 운문(雲紋) 장식이나 예복 등을 떠올리는데, 본질적인 개념은 ‘Dragon Empress’가 아니라 ‘A piece of cloth’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역복식의 특징이 노골적인 내러티브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의복 구성의 요소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적인 디자인의 개발과 이의 세계화는 여러 디자이너들이 고민해온, 또 고민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한국적 패션디자인의 개발에 있어, 우리는 전통 복식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고민 없이 가시적인 조형적인 특징만을 기준 없이 차용하거나, 디자인의 상품성을 고려하지 않고 예술성에 치중할 위험에 빠져 단순한 기념품(souvenir)이나 미술작품(art piece)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적 패션디자인을 전개함에 있어서 전통복식을 장식요소가 아닌 개념적인 전략으로 사용하여, 서구인의 관점에서 한국복식을 이국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복식의 고유한 형태미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세계화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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