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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6-0401(Print)
ISSN : 2383-6334(Online)
The Research Journal of the Costume Culture Vol.19 No.2 pp.402-415
DOI :

아프리칸-아메리칸 헤어 스타일에 나타난 이데올로기

장 미 숙
숙명여자대학교 특수대학원 미용예술전공

The Ideologies Expressed on African-American Hair-styles

Mee-sook Chang
Dept. of Beauty Art, Graduate School of Professional Studies, Sookmyung Women's University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search the ideologies of African-American hair-styles according to culturalphenomena. This is a qualitative research using the books and theses about society, culture, hair and beauty, andmaterials of internet. The results are; Firstly, African-Americans are citizens or 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whohave origins in any of the black populations of Africa. About 75 percent of the dark-skinned people on thiscontinent have hair labeled "kinky". Secondly, African hair-styles expressed Supernaturalism and Traditionalism inthe formative period of African culture. African-American hair-styles reflected Colonialism in the period of slaves.African-American citizen's hair-styles showed Nationalism after 1960s' Black Pride Movement in the period ofsettlement in America, and expressed De-territorialism since the boom of 1970s' Reggae. Today, the wearing ofdreadlocks, cornrows, and afros has transcended racial and religious barriers. No longer necessarily reflections ofancient traditions and cultural identification, they are just as often fashion items.

01(14)_논문 14.pdf2.11MB

Ⅰ. 서 론

 오늘날 포스트모던 사회는 여성, 동양, 흑인, 성적 소수자 등 이전 시대에 억압 받아왔던 타자들의 복귀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흑인 문화는 2008 미국의 흑인 대통령 당선과 2010 남아공 월드컵의 영향으로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의 흑인을 의미하는 아프리칸-아메리칸(African-American)은 17세기에 아프리카인들이 노예 신분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유입된 이후 열등하고 무지한 인종으로 치부되면서, 백인 기득권자들에 의해 오랫동안 정신적, 물리적 인종차별을 당한 어두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1863년 링컨(A. Lincoln)의 노예제도 폐지 이후 자유인이 된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은 미국 시민으로서 사회적, 경제적 기회를 얻기 위해 백인의 외모를 지향하기도 하였으나, 1960년대 일련의 흑인 인권 운동(Black Pride Movement)의 영향으로 “Black is Beautiful”이라는 구호 아래 아프리칸 고유의 헤어 스타일을 적극 수용하면서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였다. 1970년대에는 아프리칸 민족의 감성과 풍부한 성량으로 레게(Reggae) 음악의 붐을 일으켰으며, 마침내 현대 팝 음악계는 레게, 힙합(Hiphop), R&B(Rhythm & Blues) 등 흑인 음악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일명 ‘레게머리’를 한 뮤지션들의 모습이 MTV를 통해 전 세계로 방영되면서 흑인들만의 스타일로 간주되던 아프리칸-아메리칸 헤어 드레싱(hair-dressing)은 이제 하나의 패션 트랜드가 되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한 민족의 독특한 고유문화가 문화 접변과 변용 과정을 거쳐 전파되는 현상에 주목하고, 특히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이 아프리칸-아메리칸 헤어 스타일로 변용되어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전파가 이루어진 역사적 발자취와 그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이데올로기를 분석해 보는데 연구의 목적이 있다.

 연구 범위는 아프리칸-아메리칸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 시기’부터 시작하여, 아프리칸-아메리칸 헤어 스타일의 형성 및 이데올로기 변화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시기를 나누었다. 즉, 노예무역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입성한 ‘노예시기’, 1863년 링컨의 노예제도 폐지 이후 비로소 미국 시민이 된 ‘아메리카 정착기’, 19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으로 인한 ‘아프리칸 문화 회복기’, 그리고 1970년대 레게 음악의 유행부터 현재까지를 ‘아프리칸 문화 확산기’로 상정하였다.

 연구 내용은 첫째, 이론적 연구로서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정의, 아프리칸-아메리칸 헤어 스타일의 일반적 특징과 종류에 대해 살펴보고, 둘째, 실증적연구로서 상기와 같은 시대적 구분을 근간으로 하여 아프리칸-아메리칸 헤어 스타일에 표출된 이데올로기(Ideology)를 분석하는 사적 고찰이 이루어졌다. 연구방법으로는 사회, 문화, 헤어에 관한 문헌 및 선행 연구 자료, 인터넷 자료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Ⅱ. 이론적 고찰

1.아프리칸-아메리칸의 정의

 아프리칸-아메리칸(African-American)이란 미국에 정착한 아프리카 흑인들의 자손을 지칭하는 것으로, 20세기 초까지 ‘유색인종’(Colored) 또는 흑인과 백인 혼혈의 경우 ‘뮬라토’(Mulatto)로 분류되다가 그 이후 ‘니그로’(Negro)라고 불렸다. 그러나 흑인과 유색인종들의 인권이 신장됨에 따라 인종적으로 비하하는 의미의 이러한 명칭들은 사라지고, 1997년부터 미국 정부는 미국 흑인을 ‘아프리카의 흑인인종 계통’이라는 의미의 ‘블랙 아메리칸’(black American) 또는 ‘아프리칸-아메리칸’(African-American)으로 공식적으로 분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통계 목적에 의한 정부의 각종 조사에서는 개인의 ‘자기 분류’(self-identification)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말부터 남부 주 정부기관에서 시행한 원-드롭-룰(One-drop rule)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원-드롭-룰이란 흑인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여 있으면 흑인으로 규정하는 차별적인 인종구분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3백년 이상의 미국 정착 역사를 가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유럽계 미국인들을 포함하여 다른 인종들과 혈연관계를 갖고 있어 일률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점에서 기인한 것이다. 미국 역사학자 헨리 게이트 주니어(Henry Gates Jr)는 흑인들의 혈연관계를 다음과 같이 네 종류로 분류하고 있다. 즉, 아프리칸-아메리칸은 현재 4천 70만명이고, 미국 인구의 13.5%에 달하는데, 이들 중 58%는 12.5%의 유럽 혈연(증조부모 한 명), 19.6%는 25%의 유럽 혈연(조부모 한 명), 5%는 50%의 미국 인디언 혈연(고조부모 한 명), 1%는 50%의 유럽 혈연(부모 한 명)에 해당한다.1)

1) Wikipedia, “African-American,” [encyclopedia online] (15 December 2009) [retrieved 17 December 2009]);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www.wikipedia.org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조상은 15세기부터 시작된 서구 열강의 식민지 건설을 위한 노예무역의 일환으로 17세기 경 아프리카로부터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온 노예들이다. 이들 대다수는 세네갈(Senegal)강으로부터 해안을 따라 앙고라(Angora)의 남방한계에 이르기까지 3천 마일에 펼쳐져 있는 아프리카 서해안 출신이고, 소수이지만 모잠비크(Mozambique)와 동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섬(Madagascar), 사하라 사막을 경계로 하는 초목지대의 수단(Sudan) 출신 등 다양한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2)

2) Benjamin Quarles, 미국흑인사, 조성훈, 이미숙 역, (서울: 백산서당, 2002), pp. 21-22.

 본래 미국은 다민족 국가로서 모든 출신(Heritage)을 명료하게 구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므로, 본고에서는 아프리칸-아메리칸을 아프리카 대륙에 뿌리를 둔 미국 시민으로 광범위하게 정의하고자 한다.

 흑인 주요 인물로는 흑인 해방운동을 주도했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와 말콤 X(Malcom X)를 비롯하여 현재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Barak Obama), 국무부 장관을 역임한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2010년 3천6백억 원을 벌어들여 헐리우드에서 수입 1위를 차지한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Oprah Wifrey), 2010년 사후 수입 3천억 원으로 1위를 차지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등 백인을 능가하는 명성과 재능을 펼치고 있다.

2.아프리칸-아메리칸 헤어의 특징과 대표적 스타일

 아프리카 전역에서 노예를 잡아왔기 때문에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신체 유형은 다양하며, 이들의 헤어컬러(hair color)와 텍스처(texture) 또한 진한 블랙의 곱슬곱슬한 머리카락부터 브라운톤의 부드러운 컬까지 다양하다. 과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전형적인, 조밀하고 컬이 있는 헤어 텍스처가 강한 햇빛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3)

3) Anana D. Byrd and Lori L. Tharps, Hair Story, (New York: St. Martin's Press, 2002), pp. 4-5.

 흑인의 75%는 곱슬곱슬한 ‘킨키’(kinky) 헤어를 하고 있으며, 15%는 컬이 있는 헤어(curling hair)를 하고 있다. 컬이 있는 헤어는 에티오피아(Ethiopia), 누비아(Nubia), 소말리아(Somalia) 등 습한 지역과 사하라, 수단의 산림지역에서 발견된다.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은 일반적으로 블랙 헤어를 가지지만, 일부는 좀 더 밝은 브라운, 블론드, 레드 톤을 가지기도 하는데, 과학자들은 이러한 밝은 톤들은 때때로 환경적 요인 때문에 또는 색소 형성을 방해하는 영양 결핍의 결과로 발생한다고 지적하였다. 고대 시대 이후로, 헤어 드레서(hair dresser)들은 아프리카 전통 문화 속에서 높은 지위를 누려왔고, 헤어 치장 시간은 사교 시간이었다. 헤어 드레싱은 클렌징(cleansing), 코밍(combing), 오일링(oiling), 다양한 브레이드(braids), 랩(wraps), 컬(curls), 트위스트(twists), 그 외 장식 액세서리들로 스타일링하는 것을 포함한다. 1602년 네덜란드 탐험가 피터 드 마리(Pieter de Marees)가 저서「Description and Historical Account of the Gold Kingdom of Guinea」에서 16가지 독특한 헤어 스타일이 있다고 언급한 바와 같이, 아프리카인들은 수천 년 동안 헤어 스타일링에 많은 시간과 관심을 기울여 다양한 헤어 스타일을 해왔다.4)

4) Victoria Sherrow, Encyclopedia of Hair-A Cultural History, (London: Greenwood Press, 2006), pp. 12-13.

 이 가운데 컬러링이나 헤어 스타일링 테크닉 면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현재까지도 아프리칸-아메리칸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드레드락(Dreadlocks), 콘로우(Cornrows), 아프로(Afros)를 아프리칸-아메리칸의 대표적인 헤어 스타일5)로 상정하고, 이에 대해 살펴보았다.

5) Anana D. Byrd and Lori L. Tharps, op. cit., pp. 50-111.

 첫째, 드레드락(Fig. 1)은 줄여서 드레드(dreads) 또는 락(locks)이라고 하는데, 전혀 관리를 하지 않아 자연적으로 엉클어진 헤어 형태를 말하는 것으로 ‘오가닉’(Organic) 드레드락이라고 하며, 이는 빗질을 하지 않는 등 게을러서 형성된 것이라 하여 ‘니글랙’(Neglect) 드레드락이라고도 한다.6) 고대부터 이어져온 아프리칸 전통 헤어 스타일이지만 드레드의 명칭은 15세기경 노예선에 묶여 몇 달을 지낸 흑인들의 엉클어진 머리를 보고 백인들이 ‘끔찍하다’(dreadful)고 말한 데서 유래되었다.7) 그러나 그 형태는 아프리카뿐 아니라 고대 이집트 왕 투탕카멘(Tutankhamen)의 그림에서도 발견되었고, 힌두교 시바(Shiva) 신의 신화8)를 포함한 고대 아시아 부족들에서도 발견되는 등 인류의 가장 광범위하고 오래된 헤어 형태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장미숙의 ‘드레드락 헤어 스타일의 상징성 연구’에 따르면, 드레드락은 아프리칸 문화와 힌두이즘(Hinduism)에서 발생되어 자메이카 문화인 라스타파리아니즘(Rastafarianism)에 전파되었고, 다시 아프리칸과 라스타파리아니즘에서 아프리칸-아메리칸 문화로 유입되어 오늘날 청소년 하위문화와 현대 주류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9)

6) Wikipedia, “Dreadlocks,” [encyclopedia online] (15 December 2009) [retrieved 17 December 2009]);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www.wikipedia.org
7) Victoria Sherrow, op. cit., p. 106.
8) Alice Walker, Dreads, (NY: Artisan, 1999), pp. 18-22.
9) 장미숙, “드레드락 헤어스타일의 상징성 연구,” 한국미용학회지 16권 3호 (2010), pp. 772-782.

<그림 1> Dreadlocks. wikipedia.org(2011.3.11)

 둘째, 콘로우(Fig. 2)는 다른 용어로 캐인로우(Canerows)라고도 하며, 연속적인 선을 이용하여 직선, 곡선 또는 복잡한 기하학 형태로 두피에 매우 가깝게 머리를 땋는 브레이드(braids) 스타일이다. 콘로우라는 이름이 암시하듯이 땋은 줄의 결과가 땅에서 자라는 옥수수를 닮아 지어진 이름이며, 헤어 스타일은 농업, 의식, 삶의 교화, 즉 문명화(Civilization)를 표현하였다. 아프리카 전통에서 콘로우는 비즈(beads) 또는 조가비로 장식되며, 지역에 따라 남성 또는 여성에 의해 행해져왔다. 아프리칸들은 콘로우 스타일을 만드는 콘로우잉(cornrowing)을 헤어 스타일링 테크닉뿐 아니라 하나의 예술로 간주하였다. 누비아인(Nubian)들은 머리 주위에 타이트한 코일들을 줄지어 만들기 위해 아이론 빗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트랙 브레이즈’(track braids)라고도 알려진 콘로우는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과 그들의 자손들에 의해 전수되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수세기 동안 행해져 왔고, 1990년대 동안 대중화의 물결을 타고 2000년에는 파리 쿠틔르 쇼에서 런웨이 모델들에 의해 행해졌다.10)

10) Victoria Sherrow, op. cit., p. 97.

<그림 2> Cornrows. wikipedia.org(2011.3.11)

 셋째, 아프로(Fig. 3)라는 명칭은 ‘아프로-아메리칸’(Afro-American)에서 온 것으로, 보통 ‘프로’(Fro)로 줄여 말하거나 ‘내추럴’(Natural)로 잘 알려져 있다. 머리카락을 펴기 위한 화학제품 등의 처치 없이 아프리칸의 자연스러운 컬이나 킨키 헤어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으로, 이와 이의 사이가 듬성듬성한 ‘아프로 픽’(afro pick)이라는 빗을 사용하여 두피로부터 머리카락을 빗어 구름 또는 공처럼 부풀린다. 아프로 헤어 스타일은 특히 아프로-캐리비안(Afro-Caribbean)과 같이 두껍고 타이트하게 컬된 헤어에 적합하다. 1860년대, 서카시안(Circassian) 원주민 여성들의 이끼같이 생긴 머리를 뜻하는 ‘모스헤어’(Moss-hair) 스타일(Fig. 4)이 미국 서커스에서 선보였고, 이 여성들은 이국적인 미로 백인 관중들을 사로잡았다.11)

11) Wikipedia, “Afro,” [encyclopedia online] (10 December 2009 [retrieved 19 December 2009]);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www.wikipedia.org

<그림 3> Afro. pollsb.com(2011.3.11)

<그림 4> Moss-hair. flickr.com(2011.3.11)

 남아프리카에서 ‘부시’(bush)라 불리던 이 스타일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 ‘아프로’로 알려지면서, 미국에서 패션이 되었다.12)

12) Victoria Sherrow, op. cit., p. 21.

Ⅲ. 시기별 아프리칸-아메리칸 헤어 스타일에 나타난 이데올로기 분석

 본 장에서는 시기별 아프리칸-아메리칸 문화적 특성을 고찰하고, 각 시기의 헤어 스타일이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지 분석하였다. 아프리카 대륙의 전통적인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이 17~19세기 노예시기를 거쳐 오늘날 아프리칸-아메리칸 스타일로 전 세계적인 패션이 되기까지의 시대적 구분을, 아프리카 시기, 노예 시기, 아메리카 정착기, 아프리칸 문화 확산기로 상정하고, 각각의 시기에 헤어 스타일에 표현된 이데올로기를 고찰한 결과,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와 전통주의(Traditionalism), 식민주의(Colonialism), 민족주의(Nationalism), 탈영토주의(De-territorialism)가 도출되었다. 상기의 분류는 아프리칸-아메리칸 헤어 스타일 관련 Walker(1999), Seiber & Herreman(2000), Byrd & Tharps(2002), Sherrow(2006), Davies (2008)의 문헌 연구 결과를 토대로하였다.

 이데올로기는 인간, 자연, 사회에 대해 품는 현실적이며 이념적인 의식의 제형태로, 플라톤(Platon)사상에서 유래되어 사상이나 관념형태의 내용을 순수하게 내면적으로 이해하는 이데아(idea)적 견해와, 사회적 기반과 관련시켜 관념형태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는 이데올로기적 견해로 나뉜다.13)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데올로기적 견해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흑인이 겪은 역사를 통해 시기별 사회문화적 특징과 관련하여 헤어 스타일의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자 한다.

13) 네이버, “이데올로기,” [온라인 백과사전] (2011년 3월 14일 [2011년 3월 14일 검색]);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100.naver.com

1.아프리카 시기 :초자연주의와 전통주의

 아프리카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떨어져 있고, 대륙의 북동쪽 끝에 폭 163km의 수에즈지협으로 이어지는 아시아 다음으로 면적이 넓은 대륙이다. 고인류학자 대부분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류가 발생하였으며, 지구상에서 인간이 최초로 거주한 땅이라고 보고 있다. 15~17세기 서구 열강들의 아프리카 탐험을 시작으로 흑인 노예들이 캐리비안(Caribbean)과 북아메리카로 끌려오기 전, 아프리카에는 10,000개 이상의 국가와 집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각각의 정치 조직과 지배체제를 바탕으로 고유한 문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가운데는 아프리카 남부의 산족처럼 사냥과 채집생활을 하는 작은 가족 집단도 있었고, 아프리카 남부와 중부의 반투(bantu)어권 씨족 집단처럼 좀 더 크고 조직을 갖춘 집단도 있었으며, 더 나아가 아프리카의 뿔의 씨족 집단, 사헬 지역의 왕국들, 서아프리카의 요루바(Yoruba)와 이그보(Igbo) 혹은 동아프리카의 스와힐리(Swahili) 해안의 무역 도시와 같은 자치 도시국가나 왕국처럼 더욱 체계를 갖춘나라도 있었다.14)

14) 위키피디아, “아프리카,” [온라인 백과사전] (2011년 3월 24일 [2011년 4월 14일 검색]);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ko.wikipedia.org

 아프리칸 고유문화에서 헤어는 자연의 이법(理法)을 넘어 신비한 초월적 세계를 추구하는 초자연주의(超自然主義)와 대대로 내려온 관습을 계승하는 전통주의(傳統主義)를 반영하였다.

 아프리칸들은 신체에서 머리(head)를 통제(control), 소통(communication), 정체성(identity)의 중심으로 보았다. 헤어(hair)는 개인을 인격화하는 힘의 원천으로 간주되었고, 행운을 빌거나 악을 막기 위한 초자연적 목적이나 주문을 거는데 이용되었다. 헤어는 신체의 가장 높은 지점에 있기 때문에 헤어 자체가 신, 초자연과 정신을 나누고, 이러한 의사소통은 헤어를 거쳐 영혼에 이르게 된다고 보았다.15) 카메룬에서 주술사(medicine men)들은 약을 보호하고, 약의 효과를 강화시키기 위해 치료약을 담은 그릇에 헤어를 붙이기도 하였다.

15) Anana D. Byrd and Lori L. Tharps, op. cit., pp. 4-5.

 또한, 아프리칸 헤어는 전통적인 풍습에 따라 인간의 생사(生死)와 관련된다. 요루바(Yoruba)에서는 태어난 후 7~9일에 걸쳐 이름을 짓는 행사 동안, 초자연 세계에서 인간 세계로 옮겨옴을 상징하기 위해 아기의 머리카락을 면도하고 잘린 머리카락은 행운의 부적 또는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의식은 ‘imori’(know the head) 또는 ‘ikose waye’(the first steps on earth)라고 불린다. 나이지리아(Nigeria)에서는 태어난 지 7일 후, 엄마와 아이 둘 다 얼굴을 포함한 전신에 황토를 바르고, 아이는 머리 중앙에 작은 부위만 남긴 채 머리카락을 면도한 모습으로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전통이 있다(Fig. 5).16)

16) Roy Sieber and Frank Herreman, Hair-in African Art and Culture, (NY: The Museum for African Art, 2000), p. 111.

<그림 5> Mom & baby. Nigeria, Hair, p. 110.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은 이승에서 저승으로의 전이를 표시하기 위해 면도 되었는데, 가나(Ghana)의 아칸(Akan)에서는 죽은 사람과 친분이 있었던 여성과 남성들은 경의를 표하기 위해 머리카락과 몸을 면도하였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미망인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관습이 있었는데, 어떤 여성들은 애도 기간이 끝난 이후 자른 머리카락을 가발로 만들어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를 간직하였다. 남자나 여자나 단정치 못한 헤어를 가진 사람을 피하므로, 서아프리카의 어떤 곳에 사는 여성들은 미망인이 되었을 때 다른 남성들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머리장식을 중단하였다. 이외에도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들은 전통적으로 개인의 나이, 출생 장소, 종족, 사회경제적 지위, 남편의 지위 그리고 직업 등을 드러내었다. 마사이족(Masai) 사이에서, 여성과 아이들은 전통적으로 머리를 면도하지만, 전사들은 붉은 진흙으로 염색한 긴 브레이드(braid)를 하였다. 사회 지도자들은 가장 공들인 헤어 스타일을 하였고, 단지 통치자 만이 헤드 드레스(head dress)를 착용하였다. 왕관은 가죽, 금, 비즈, 그리고 장식 브레이드로 만들어졌다. 성직자들 또한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헤어 스타일을 해왔다.〈Fig. 6〉은 나이지리아의 성직자를 표시하는 ‘agogo’ 헤어 스타일이다. 또한 젊은 여성들은 결혼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헤어 스타일을 한 반면, 기혼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은 결혼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Fig. 7). 전통적으로 나이지리아 이보족 소녀들은 결혼 전 찰흙, 석탄, 팜 오일을 사용하여 뿔 모양의 헤어를 만들었다(Fig. 8). 아프리카 남성들은 전쟁에 나갈 때 특징적인 스타일을 하였는데 그들의 가족들이 죽음의 가능성을 준비하도록 하기 위한 표시였다.17)

17) Victoria Sherrow, op. cit., p. 15.

<그림 6> Priest with the agogo. Nigeria, Hair, p. 100.

<그림 7> Married woman. Angola, Hair, p. 132.

<그림 8> Girl's hairstyle. Ibo, Hair, p. 52.

 이와 같이 아프리칸 문화 형성기에 헤어 스타일은 초자연주의와 전통주의 이데올로기를 표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노예시기 :식민주의

 7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아랍의 노예무역은 사하라 사막과 인도양 교역로를 통하여 1800만의 아프리카 노예를 데려 갔다. 또한 15세기 중반에는 유럽의 식민지 정책에 따라 1482년 포르투갈을 선두로 한 근대 아프리카 노예교역에 의해 본격적인 흑인 매매가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16세기 후반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17세기에는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독일 등이 아프리카 무역을 이끌어갔다. 포르투갈은 엘미나(Elmina)에 자리를 잡고 기네아(Guinea) 해안에 수많은 무역 항구를 설립하였다. 주요 상품은 노예, 황금, 상아와 후추였다. 유럽인들이 1492년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자, 이전에는 육상무역으로 여러 대륙에 걸쳐 분화되었던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를 주축으로 급속하게 발달하게 되었다.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대서양간 노예무역으로 700만~12,00만 명의 노예가 신세계로 보내졌다.18)

18) 위키피디아, “아프리카,” [온라인 백과사전] (2011년 3월 24일 [2011년 4월 14일 검색]);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ko.wikipedia.org

 아프리칸-아메리칸 역사는 아프리카 본토에서 끌려와 1649년 버지니아(Virginia)에 처음 도착한 노예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노예들은 아메리카 개척에 기여하게 되었는데, 1619년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 입성할 당시 흑인은 계약 하인의 신분이었으나, 1650년대부터 흑인을 백인 주인의 동산(動産)으로 간주하는 노예제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19)

19) Benjamin Quarles, op. cit., pp. 21-22.

 이로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불평등한 문화 접촉이 이루어진 이후 아프리칸 헤어 문화는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쇠퇴하고, 그들의 주인인 백인 문화의 영향을 받아 백인 헤어 스타일을 지향하게 되는 데, 이러한 문화 접변은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植民主義)를 반영하였다.

 식민주의는 국가 주권을 국경 외의 영역이나 사람들에 대해서 확대하는 정책 활동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사고 체계를 말한다. 정책 활동에 있어서는 자원, 노동력, 그리고 시장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원동력이 된다. 또,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것은 식민자가 피식민자보다 뛰어나, 식민지 지배는 근대화에 필요한 경제 기반ㆍ정치 기반을 발전시키는 것에 연결되므로, 피식민자에게 있어서 이익이 되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이다.20)

20) 위키피디아, “식민주의,” [온라인 백과사전] (2011년 2월 11일 [2011년 3월 14일 검색]);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ko.wikipedia.org

 식민주의는 제국주의(帝國主義)의 구체적 실행으로, 제국주의는 세계사를 통해 정치적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전 대륙을 분할하고 식민화함으로써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를 포함한 인류 문명 전체를 황폐화시켰다.21) 논자는 식민주의를 ‘영토에의 정착, 자원의 약탈과 개발, 점령지 토착민들을 다스리려는 시도’로 보는 엘레케뵈머(Elleke Boehmer)22)의 정의보다는 ‘문화적 과정’으로 본 박지향23)의 정의를 토대로, 노예시기에 아프리칸들의 문화적 박탈을 식민주의 이데올로기 반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21) 이승순, “나이폴의 서구 식민주의와 제3세계 퇴행적 민족주의 비판” (충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5).
22) Elleke Boemer, Colonial and Post Colonial Literature,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p. 2를 John McLeod, 탈식민주의 길잡이, 박종성 역, (서울: 한울, 2003), pp. 23-24.
23) 박지향, 제국주의: 신화와 현실,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p. 4.

 노예제도가 끝이 난 1800년대까지 그들의 고향으로부터 납치, 판매되어온 아프리카인 대부분은 10~24세였다. 그들의 자유와 가족들, 집, 커뮤니티를 잃었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인들은 헤어 스타일을 포함한 개인적, 집단적 정체성의 상징들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아프리카 전통에서 익명의 포로라는 표시로서 전쟁 포로에게 행하던 면도를 노예상에게 당하면서 심한 굴욕감을 느꼈다(Fig. 9).24)

24) Victoria Sherrow, op. cit., p. 16.

<그림 9> African slave trade. ushistoryanewvision.blogspot.com(2011.3.13).

 대부분의 노예들은 그들의 외모 또는 다른 개인적인 활동을 할 여유 있는 시간을 갖지 못했다. 남부 플랜테이션(plantation) 노예들은 일주일에 7일을 일했고, 보통 머릿니와 피부병이 두피를 고통스럽게 하는 비위생적인 노예지역에서 살았다. 또한,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헤어를 가꾸기 위해 사용했던 비누, 빗, 오일 등이 부족했다. 헤어 드레싱이 그들 고유문화에서 중요했기 때문에 이는 아프리칸 아메리칸 노예들이 겪은 문화적 박탈의 한 형태였다. 또한 노예들은 주어진 일에 따라 헤어 스타일이 결정되었다. 야외에서 일을 하는 노예(Fig. 10)의 경우 여성들은 머리수건이나 모자를 쓰거나, 깨끗해 보이고 다루기 쉬우며 긴 시간 노동을 해도 얼굴에 흘러내리지 않는 실질적인 이유에서 콘로우를 즐겨 하였다. 남성들은 머리를 면도하고 밀짚모자를 착용하거나 가축 제모용 큰 가위를 사용하여 머리카락을 잘랐다. 집안일을 하는 노예의 경우는 백인 주인의 헤어 스타일을 모방하였는데, 예를들어 18세기 백인 상류층에 가발이 유행하자, 흑인 노예도 가발을 착용하거나 가발을 구할 수 없는 경우,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발처럼 스타일링하였다. 식민지 미국에서 이상형, 즉 ‘매력적인 것’의 기준은 밝은 스킨톤과 스트레이트 또는 부드러운 웨이브 헤어를 가진 백인 유럽인의 모습이었다.25)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은 그들의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포함해 모든 면에서 차별을 경험하였다. 특히 미국 노예시절 이들의 헤어 텍스처를 가리켜 ‘kinky’(꼬인), ‘coarse’(굵고 거친), ‘cottony’(솜같이 푹신한), ‘nappy’(짧고 곱슬곱슬한), ‘woolly’(양털같이 북슬북슬한)라 하였는데, 이는 아프리칸 헤어에 대한 반감을 반영한 것이었다.26)

25) Anana D. Byrd and Lori L. Tharps, op. cit., p. 13.
26) Carole Boyce Davies, Encyclopedia of the African Diaspora: Origins, Experiences, and Culture, (CA: ABCCLIO, 2008), p. 493

<그림 10> African slaves in America. www.bradyen terpriseassociation.com(2011.3.13).

 1863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을 계기로 그동안 인권과 전통을 상실했던 아프리칸-아메리칸 노예들은 자유를 획득하였으나, 여전히 남부에서는 인종차별이 행해졌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연방의회는 1866년 민권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백인과 흑인 간의 갈등으로 미국 사회 전체에 내분이 깊어지자, 오히려 ‘흑인단속법’이 제정되는 등 흑인들에 대한 굴욕적인 차별을 관용하는 정책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1896년 대법원이 플레시 대 퍼커슨의 공판에서 “분리는 하되 평등하다”(Seperate but equal)라는 결정을 내린 후, 남부 주는 주법을 개정하고, 결과적으로 아프리칸-아메리칸들에 대한 배타주의 정책을 법률로 통과시킴으로써 짐 크로우 법률안(Jim Crow Laws)을 집행하기 시작하였다.27)  이로 인해 힘들고 고된 순회 소작농이나 굴욕적인 하인 이외에는 직업 선택의 기회가 제한되어 버린28) 흑인들은 1907년 마침내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보다 산업화된 북부로의 이주를 감행하였다.

27) 조숙진, “어거스트 윌슨의 작품에 나타난 흑인 정체성의 시대적 변화” (전주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3).
28) Benjamin Quarles, op. cit., pp. 21-22.

 이로서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 기회를 얻기 위해 자신들의 전통적인 아프리칸 스타일을 포기하고, 미국 백인들이 하는 주류 헤어 스타일을 받아들여야 했다(Fig. 11).

<그림 11> Henry Bibb. Hair Story, p. 18.

 머리카락을 곧게 펴기 위해 알칼리제를 포함한 화학약품을 사용하였고, 189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경 마담 워커(M adam C. J. W alker)(Fig. 12)는 미국에서 뜨거운 빗(hot comb)을 이용한 방법을 대중화시켰다. 인위적인 처치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타이트한 브레이드나 콘로우를 선택하였다. 이러한 모든 헤어 스타일 방법들은 때때로 윤기가 손상되거나 머리카락이 손실되는 결과를 낳았다.29)

29) Anana D. Byrd and Lori L. Tharps, op. cit., pp. 33-36.

<그림 12> Madam C. J. Walker(1914). Hair Story, p. 33.

 이와 같이 아프리칸과 아메리칸 문화 접변기인 노예시기에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은 아메리칸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식민주의를 표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아메리카 정착기 :민족주의

 미국 흑인 노예 해방 이후 노예제도에서 기인하는 백인과 흑인 간의 갈등은 미국 사회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구분하는 분열적인 요인이 되어 백인들은 흑인 선거권 폐지와 인종 격리 등 일련의 불평등 정책과 법률조례들을 만들어 내었다. 이는 흑인들의 저항심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1955년 흑인 여성이 버스 안에서 흑인 전용 칸으로 옮기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건을 계기로 교회세력과 연합한 흑인들은30) 폭력과 차별을 반대하는 강력한 저항운동인 아프리칸-아메리칸 민권운동(African-American Civil Rights Movement)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마틴 루더 킹(Martin Luther King) 목사를 필두로 한 이 운동은 1968년까지 지속되었으며,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 대통령의 조치로 의회에서 민권법이 통과됨에 따라, 직업 차별을 금지하고, 흑인에게 경제적, 정치적 이권 분배를 시도하였다. 여기에는 투표, 교육, 공공편의시설의 이용에서 차별과 격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 규정도 포함되었다.31)

30) 서일경, “『보이지 않는 손』에 나타난 흑인정체성”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31) 장승진, “공익소송과 인권보호에 관한 연구” (건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8).

 아프리칸-아메리칸 민권운동은 1965년 투표권 운동(Voting Rights Act), 1966년부터 1975년까지 지속된 흑인권력운동(Black Power Movement)의 근간을 이루었다.32)

32) Wikipedia, “African-American,” [encyclopedia online] (15 December 2009) [retrieved 17 December 2009]);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www.wikipedia.org

 그들의 민족의식을 제일로 하여, 민족의 독립과 자립을 위해(동아출판사 편집부, 1985) 때로는 과격성을 보여준 흑인 민족주의(民族主義)는, 아프리카로부터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았고, 노예생활이라는 고통의 공통 체험을 통해 미국 흑인들로 하여금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흑인들이 단결하고 조직화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모든 흑인들이 집단적 운명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33)

33) 서일경, “『보이지 않는 손』에 나타난 흑인정체성”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아프리칸 노예들이 아메리칸 문화를 받아들임에 따라 자칫 사라질 수도 있었던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은, 1960~70년대의 일련의 흑인인권운동의 영향으로 아프리칸 민족의 문화적 뿌리를 반영하는 헤어 스타일로 재생되었으며 이 시기 헤어 스타일은 백인 주류 문화에 대한 저항과 강력한 민족주의를 표출하는 수단이 되었다.

 아프리칸-아메리칸 여성들이 공식적으로 백인의 헤어 스타일을 모방하고 있을 때, 1963년 흑인 여배우 시슬리 타이슨(Cicely Tyson)(Fig. 13)은 TV시리즈 ‘East Side/West Side’에서 콘로우로 주목을 끌었다. ‘트랙 브레이즈’(Track braids)로 알려진 이 스타일링은 1960~70년대 흑인 인종주의자 운동(Black Nationalist Movement)의 하나의 결과로서, 미국에서 크게 대중화되어 ‘내추럴’(natural) 헤어 텍스처를 강조하는 트랜드로 발전하였다. 이때, 수백 개의 뷰티 샵과 살롱들은 흑인들에게 전통적인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주목을 받았다.34)

34) Wikipedia, “Cornrows,” [encyclopedia online] (12 March 2011 [retrieved 13 March 2011]);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www.wikipedia.org

<그림 13> Cicely Tyson. www.locasporelpelo.com(2011.3.13)

 몇몇 사립학교에서는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을 금지 당하였고, 직장에서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주류 또는 보수적인 스타일을 하도록 하는 압력을 느꼈으며, 결국 법정 싸움으로 확대되기도 하였다.35) 이러한 사회문화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를 필두로 한 흑인 인권 운동의 결과는 아프리칸-아메리칸 커뮤니티(community)에게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 아프리칸 뷰티와 미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포함하여 개인적 스타일을 재정의하는 결과를 낳았고, 블랙이 아름답다는 ‘Black is beautiful movement’로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운동은 좀더 자연스러운 헤어 스타일로 되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 때 유행한 아프리칸 전통 헤어 스타일인 콘로우와 아프로는 문화의 ‘동화(assimilation)와 통합(integration)’ 이라는 개념에 반기를 든 흑인의 자존심을 반영한, 파워풀한 정치적 상징이 되었다. 이는 아프리카와의 재연결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특히 흑인 연예인과 사회 유명인사들이 그들의 인지도를 통해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을 전파시켰다. 1970년대 라스타(Rasta) 뮤지션 밥 말리(Bob Marley)의 영향을 받은 레게 음악과 락(Rock) 그룹 멤버들 또한 드레드락을 하였는 데, 이들은 아프리카 전통을 지키기 위해 또는 ‘자연으로 돌아가자’(back-to-nature)는 철학으로 드레드락을 선택하였다. 그 외 드레드락 헤어 스타일을 한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은 가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Fig. 14), 로베르타 플랙(Roberta Flack), 발레리 심슨(Valerie Simpson) 등이 있으며(Sherrow, 2006), 1960년대 중․후반에는 점점 더 크기가 커진 아프로는 정치 행동가 안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Fig. 15), 여배우 팜 그리어(Pam Grier), 음악 그룹 잭슨 파이브(The Jackson Five)(Fig. 16)와 슈프림(The Supremes)의 멤버들에 의해 유행되었다.36)

35) Victoria Sherrow, op. cit., p. 98.
36) Wikipedia, “Afro,” [encyclopedia online] (10 December 2009 [retrieved 19 December 2009]);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www.wikipedia.org

<그림 14> Stevie Wonder.kimhyuns00.tistory.com(2011.3.13)

<그림 15> Angela Davis. waxinandmilkin.com(2011.3.11)

<그림 16> The Jackson Five. website37.com(2010.3.11)

 흑인 소설가이자 시인인 워커(Walker, 1999)는 빗질하지 않고 내추럴하게 헤어를 늘어뜨린 몇 년 동안 그녀가 가졌던 자유로운 느낌에 대해 에세이를 썼다. 또한, 전통 아프리칸 헤어의 재생은 아프리칸들이 킨키 헤어를 화학적 방법으로 곱게 펴는데 수십 년을 소비한 끝에, 서양 유럽 패션의 독재로부터 형태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그들을 해방시키는 방법이 되었으며, 민족성을 표현하고 그들의 고유방식으로 만든 블랙 헤어가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하였다고 평가한다.

 이와 같이 아메리카 정착기에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표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아프리칸 문화 확산기 :탈영토주의

 1970년대 중반 자메이칸 라스타(Jamaican Rasta)출신 영국 가수인 밥 말리(Bob Marley)는 ‘내티 드레드’(Natty Dread) 앨범을 발표하면서 레게 음악을 유행시켰으며, ‘레게의 왕’(King of Reggae)이라 칭송되었다. 그는 아프리카 전통을 지킨다는 이유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는데37), 노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인 드레드를 멋지다고 인식시키는데 기여하였다.

37) 장미숙, op. cit., p. 779.

 1960년대에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의 저항문화로서 재생된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은 레게 음악의 붐이후, 백인문화에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21세기에는 급기야 대중문화산업에 흡수되어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현상이 일어났고, 전 세계적인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은 흑인의 에너지를 발산하며, 저항적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지만, 동시에 그들이 대항하고자 한 자본주의의 지배자들에게 경제적 이득을 남겨줌으로써 헤게모니(Hegemony)의 산물이 되었다. 아프리칸 문화가 변용되어 세계적으로 전파되면서 잡종화되고 아프리칸 영토를 탈주하는 탈영토화(脫領土化)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영토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탈영토주의(脫領土主義)는 다시 영토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토의 구분 자체마저도 소멸시킬 절대적 탈영토화 과정의 하나의 지점으로서 새로운 영토성을 구성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된다.38)

38) 네이버, “탈영토,” [지식iN 검색] (2010년 12월 31일 [2011년 3월 14일 검색]);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kin.naver.com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elix Guattari)는 보다 복합적인 다원적 확장 개념으로 탈영토화를 설명하기 위해 위계성, 방향성, 목적성이 없는 다방향적이고 복합관계적인 리좀(rhizome)의 개념을 도입하였다.39) 리좀은 곁뿌리체계(systém-radicelle)로(Deleuze & Guattari, 2000), 식물학에서 분류하는 줄기 형태의 하나이되, 줄기처럼 뻗어나가며, 나무와는 전혀 다르게 중심을 갖지 않는 이질적 선들이 수평적으로 사방팔방 뻗어나간다. 이질적인 선들은 상호교차하고 다양한 흐름들과 방향들로 복수의 선을 만들면서 수평적 구조를 갖는다.40)

39) 양희영, 이명희, “기관 없은 신체와 탈영토화 된 패션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비판적 고찰,” 복식문화학회지 18권 5호 (2010), p. 826.
40) 김선영, “들뢰즈와 카타리의 리좀 이론에 의한 소수자 관점에서의 장애인 사진 분석”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이러한 리좀적 체계를 탈근대적인 체계로 본 들뢰즈는 세계 민중들이 주권체제를 넘어서 세계적 차원으로 횡단하고 잡종화되고, 탈주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의 과정에서 새로운 영토성을 구성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41)

41) 네이버, “탈영토,” [지식iN 검색] (2010년 12월 31일 [2011년 3월 14일 검색]);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kin.naver.com

 결국 1970년대 후반이 되자 아프리칸-아메리칸들에게 전통 아프리칸 헤어의 인기는 떨어지고, 급진적, 정치적 사안이 사라진 비(非)아프리칸들에 의해 채택되어 주류문화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42) 이후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전통이나 문화적 정체성의 반영이 아니며 단순히 패션 명제의 하나가 되었다.43)

42) Wikipedia, “Afro,” [encyclopedia online] (10 December 2009 [retrieved 19 December 2009]);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www.wikipedia.org
43) Alice Walker, op. cit., p. 18.

 1980년경 런던 헤어 드레서 시몬 포비스(Simon Forbes)는 백인 헤어를 위한 드레드락과 익스텐션을 고안했고, 1986년 ‘Back to Eden’이라 불리는 런던 살롱은 영국에서 드레드락으로 특화한 첫 번째 살롱이 되었다. 이후 헤어 스타일리스트들의 노력으로 드레드 펌(dread perm)을 포함하여 다채로운 컬러의 인공 락 헤어 익스텐션(lock hair extension)이 고안되었다.44) 콘로우는 1979년 영화〈10〉에서 비즈로 장식된 콘로우를 했던 금발머리 배우 보 데렉(Bo Derek)(Fig. 17) 이후에 백인들 사이에서 일시적인 유행, 즉 패드(fad)가 되었다. 콘로우는 처음에 아프리칸-아메리칸 여성에게만 행해지던 것이 1970년대 이후 남녀 모두에게 행해졌다. 전통적으로 남성들 사이에서 머리카락을 땋는 헤어 브레이딩(braiding)은 동성애를 의미하는 호모 섹슈얼리티(homo sexuality)의 상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45) 2000년대에는 스포츠 스타를 중심으로 다시 유행하였는데, 영국의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Fig. 18), 메이저리그 야구팀 보스톤 레드 삭스(Boston Red Sox)의 브론슨 애로요(Bronson Arroyo)는 2003~2004년 동안 콘로우를 하였다.

44) Victoria Sherrow, op. cit., p. 108.
45) Wikipedia, “Cornrows,” [encyclopedia online] (12 March 2011 [retrieved 13 March 2011]);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www.wikipedia.org

<그림 17> Bo Derek. www.leninimports.com(2011.3.13)

<그림 18> David Beckham. www.news.com.au(2011.3.13)

 아프로 또한 처음에는 인종 차별과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여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대항의 의미였지만, 이후 구세대로부터의 자유와 독립을 표현하면서 젊은이들 특히 학생, 정치행동가, 뮤지션 사이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1990~2000년대에 아프로 스타일을 한 대표적인 아프리칸-아메리칸은 NBA 농구선수 벤 월리스(Ben Wallace), 뮤지션 로린 힐(Lauryn Hill), 에리카 바두(Erykah Badu), 신디 블랙만(Cindy Blackman) 등이 있고, 비욘세(Beyoncé Knowles)는 〈Austin Powers in Goldmember〉(2002)에서 팍시 클레오파트라(Foxxy Cleopatra)로 거대한 아프로 위그(Afro wig)를 쓰고 출현하였다.46) 오늘날 아프로를 하기 위해서는 컬이 없는 경우 퍼머넌트를 하거나, 블랙부터 블론드까지 다양한 색상의 아프로 위그를 구입할 수 있다. 일부 헤어 드레서들은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을 위한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을 만드는 것으로 특화하였다. 예를 들어 뉴욕시의 할렘 가에서 여성들은 아프리카나 캐리비안에서 태어난 헤어 드레서들이 있는 작은 살롱에서 헤어를 땋을 수 있다.47)

46) Wikipedia, “Afro,” [encyclopedia online] (10 December 2009 [retrieved 19 December 2009]); available from World Wide Web@http://www.wikipedia.org
47) Victoria Sherrow, op. cit., p. 97.

 서구사회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서태지(Fig. 19)를 시작으로 신화, 주얼리, 박효신, 안정환 등 많은 가수와 스포츠 스타가 드레드락과 콘로우를 패션으로 받아들인 반면, 아프로는 크게 부풀린 유희적인 형태로 인해 개그맨(Fig. 20)을 중심으로 유행하기도 하였다.

<그림 19> Seo, Tae-ji. cafe394.daum.net(2011.3.13)

<그림 20> Yoon, Tack. www.khgames.co.kr(2011.3.13)

 이처럼 기존의 경직된 사고와 이분법적 경계가 해체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반영하듯,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 또한 인종, 성별, 국가의 경계를 초월한 탈영토주의를 표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Ⅳ. 결 론

 본 연구를 통해 아프리칸 고유의 헤어 스타일이 아프리칸-아메리칸 문화를 거쳐 오늘날 전 세계로 전파, 확산되어 하나의 패션 명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주류문화의 주권체제를 넘어 세계적 차원으로 횡단하고 잡종화되고 탈주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라는 점에서 이분법적 경계의 해체와 억압된 타자의 전복이라는 포스트모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아프리칸 고유 헤어 스타일이 아프리칸-아메리칸 문화를 거쳐 세계문화가 되기까지 전 시기를 통해 표출된 이데올로기(Ideology)를 분석하는 사적 고찰을 수행하기 위하여, 이론적 연구에서는 아프리칸-아메리칸의 정의와 아프리칸-아메리칸 헤어 스타일의 일반적 특징과 종류를 살펴보았으며, 실증적 연구에서는 각 시대적 구분을 아프리카 시기, 노예시기, 아메리카 정착기, 아프리칸 문화 확산기로 나누고, 각각의 시기에 헤어 스타일에 표현된 이데올로기를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프리칸 고유문화 형성기인 고대 아프리카 시기부터 17세기 아메리카 노예로 끌려오기 전까지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은 자연의 이법을 뛰어넘는 신비한 초자연주의와, 조상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관습을 반영하는 전통주의를 표출하였다.

 둘째,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정책으로 노예 무역에 실려 아메리카에 정착한 이후 흑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에 대해 무시를 당해야 했고, 곧 백인의 스타일에 대한 추종 및 동화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를 반영하였다.

 셋째, 1960~70년대에 일어난 흑인 인권 운동은 아프리칸들의 저항적 에너지를 일깨우고 블랙 뷰티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으로, 이를 계기로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는 문화 재생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민족주의를 반영한 것이었다.

 넷째, 1970년대 레게 음악의 세계적인 붐은 아프리칸 문화를 확산시켜 음악과 헤어 스타일 모두를 패션으로 만들었으며, 특히 아프리칸 헤어 스타일은 인종, 성별, 국가적 경계를 허무는 탈영토주의를 표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는 헤어 스타일의 변화를 마치 아프리칸들의 전체 문화적 현상으로 확대 해석한 것과 1602년 네덜란드 탐험가 피터 드 마리가 저서「Description and Historical Account of the Gold Kingdom of Guinea」에서 언급한 16가지 헤어 스타일 중 일부 헤어 스타일에 관해 고찰한 것으로, 연구 결과의 일반화에는 제한점이 있다.

 이를 통해 발전된 기록문화와 심도 있는 연구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면서 민족 전통 문화가 희석되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아프리카뿐 아니라 다른 민족의 고유 헤어 스타일에 대한 연구를 제안하는 바이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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