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2383-6334(Online)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표현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
Stereotype Femininity Expressed in Fashion Illustration
Abstract
- 01(16)_논문 16.pdf7.43MB
Ⅰ. 서 론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적 특성은 여성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형되거나 새로운 형태로 창조되어왔다. 특히 20세기 후반 이후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성을 재현하는 시각적 기표로써, 인체1)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다움이라는 여겨지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지속적으로 재현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 ‘인체’는 ‘사람의 몸’을 뜻하는 것으로, 몸의 전체적인 형태적 구성이나 구조를 언급할 때 사용된다. 본 연구에서는 인체의 구조나 비례, 변형 등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몸의 형태와 구조와 관련되는 ‘인체’를 주요 용어로 사용하고자 한다. 또한 '몸'은 물리적인 신체나 그것의 활동 기능이나 상태를 의미하며, 최근 사회문화적 몸담론에서 미학적 의미를 내포하는 개념으로 사용되므로, 미학적 개념이나 활동과 관련된 경우 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또한 ‘육체’는 구체적인 물체로서 사람의 몸으로 정신과 구별되는 물질적인 몸을 의미할 때 사용하고자 한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편찬, 고려대 한국어 대사전 (서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9).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형성된 여성성의 개념은 여성의 정형으로 고착되면서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여성적 특성, 즉 여성성은 고정된 범주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형성물로써 변화된다고 인식되면서 여성성의 개념은 새롭게 제기되어왔다. 이러한 인식은 여성 억압적 기제로써 작용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복하고자 했던 페미니즘의 인식과 변화 가능한 영역으로 몸에 대한 개념을 변화시킨 몸 담론을 바탕으로 하여 사회 문화 전반에서 여성성 재현의 문제를 표면화시켜왔다.
한편, 인체를 매개로 하여 동시대의 패션 경향과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시각적 매체인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인체의 재현 방식에 따라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의미를 재생산하거나 새롭게 재구성하여 왔다. 따라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 인체의 재현이 시대성과 결부되면서 그 내재된 의미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본 연구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주요한 표현대상인 인체를 통한 표상들이 스테레오타입 여성성과 관련하여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봄으로써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표현된 여성 인체 해석에 새로운 방향을 마련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본 연구의 목표와 목적으로는 첫째,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이 형성된 배경을 19세기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 구체적인 개념을 고찰하고자 한다. 둘째, 20세기 이후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이 변화하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과 대중매체에서 여성성 재현의 정형화된 표현과 그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셋째,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표현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을 인체의 재현 방식을 통해 그 특성과 변화를 분석하고자 한다. 넷째,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의 의미 변화를 도출함으로써 인체의 표상과 여성성이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지 규명하고자 하는데 있다.
본 연구의 범위는 19세기부터 2010년대까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그 분석 대상으로 하고자 한다. 19세기는 대중매체의 발달로 다수의 패션잡지가 발행되어 상당수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이 시기 남녀의 이분법적 대립구조의 강화로 전형적인 여성성이 형성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분석에 앞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의 인체는 대부분이 복식을 착용한 인체이기 때문에 복식과 인체는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므로, 복식을 착용한 인체로 그 형태를 분석함을 미리 밝혀둔다. 본 연구에서 분석, 고찰한 작품은 패션 관련 문헌 및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전문 서적,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수집한 시각 자료를 그 분석 대상으로 하였다.
Ⅱ. 이론적 고찰
1.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의 개념
스테레오타입이란 일정한 방식이나 틀에 박힌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 또한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집단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는 비교적 고정된 견해와 사고로, 이는 불합리하더라도 기존의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고정관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2)
2) 김지현, “여성의 몸-그 파편화된 이미지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p. 4.
한편, 여성성은 여성의 본성이나 본바탕을 의미하는 것3)으로 영어로는 ‘femininity’이며, ‘여성 특유의 특성, 여성다운 특성, 여자다운 점’이라고 해석된다. 이와 같이 여성적 특성을 의미하는 여성성의 개념은 성(sex), 섹슈얼리티(sexuality), 젠더(gender)4)와 관련된다. 성, 섹슈얼리티, 젠더는 사회ㆍ문화적 구성물로서, 그 의미가 고정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정의된다. 즉, 여성성이라는 것은 당대가 가장 여성적이라고 규정한 여성 이미지로 실제 여성이기보다는 ‘규범화된 이상적 특성’이다.5) 따라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이란 관습화된 사고체계와 구조에 의해 형성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특성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정형화되고 규범화된 여성적 특성을 의미한다.
3)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편찬, op. cit., p. 4315.
4) ‘성’은 생물학적으로 얻어지는 성으로, 여자 혹은 남자라는 차이의 기표이다(정태섭 외 공저, 성역사와 문화, (서울: 동국대학교출판부, 2002), p. 40). 섹슈얼리티는 인간이 가지는 성에 대한 감성, 사상, 행동, 가치관 및 개인의 존재 의미 등과 관련된 복합적 잠재능력을 지칭한다(윤가현, 성 심리학, (서울: 정원사, 1990), p. 16). 한편, 젠더는 ‘성 특성’, ‘성 정체성’, ‘성 역할’이라는 의미로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는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인 여성성(여성다움)과 남성성(남성다움)을 통칭한다(크리스타니 폰 브라운, 잉테 슈테판, 젠더연구: 성평등을 위한 비판적 학문, 탁선미 외 역 (서울: 나남출판사, 2002), pp. 20-21). 젠더라는 용어는 생물학적 차이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몸을 규정하는 문화적인 이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5) Jennifer Craik, The Face of Fashion: Cultural Studies in Fashion, (London: Routledge, 2000), p. 46.
이와 같은 여성의 정형성은 서구의 알파벳 문자의 영향 하의 이항 대립적 사유체계와 관련된다. 서양의 사유체계의 결정적인 특징은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정, 문화와 자연의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전자는 남성적인 것, 후자는 여성적인 것을 표상하였다. 남성의 몸은 추상적 논리, 탈육체, 문자에 대한 상징인 반면, 여성의 몸은 통제 불가능성, 육체성, 구어의 상징이었다.6)
6) 크리스타니 폰 브라운, 잉테 슈테판, op. cit., p. 34.
19세에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1837~1901)에 이르러 알파벳 문자 형성과 관련된 상징적 성별체계는 생물학적 특징으로 규정되면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분법적 구분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 시기 남녀의 역할 구분론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면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동시에 여성에 대한 이상화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의 엄숙하고 견고한 도덕적 규범을 바탕으로 가부장적 제도가 강화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 재생산 기제 내에서 이루어지는 재생산 활동으로서 가사노동과 임신, 출산, 육아 등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여성의 성 역할이 강화되었다. 또한 여성은 경제적, 법적, 성적으로 남성에게 의존적이고 복종적이었으며, 순결하고 도덕적 존재였다.7) 한편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은 가정에서의 여성의 임무와 역할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강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써 작용하여 여성의 성 역할을 미화시키고 정당화하였다.
7) 리타 펠스키, 근대성과 페미니즘, 김영찬, 심진경 역 (서울: 기획출판 거름, 2010), pp. 94-101.
이 시기 여성성의 범주는 과학과 의학 등 다양한 메카니즘에 의해 남녀의 생물학적 성의 차이에 기초해 구체화되었다. 1859년 다윈(Darwin. C.)의 진화론적 관점과 의학적 담론들은 여성이 육체적으로 열등한 존재임을 과학적으로 밝힘으로써 육체적인 측면에서도 여성의 종속성을 재확인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여성 몸은 생리, 출산, 수유 등 특정한 생물학적 속성으로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출산력과 생식력의 범주로 의미화 되었다. 따라서 남녀의 인체차이가 정신적⋅지적 능력의 우열의 지표가 되었다.8)
8) 정태섭 외 공저, op. cit., p. 39.
또한 전통적 여성성이 심리적⋅정서적⋅관능적 영역으로 정치⋅경제의 남성적 영역과 분리되면서 아름다움의 개념은 오직 여성성과 관련된 것으로, 진화론적 관점에서 생식력과 다산의 모성성과 관련된 여성의 관능적 인체미가 전형적인 여성미의 핵심이 되었다.9) 이와 같이 인간의 몸을 자연적⋅생물학적 차이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결정하고 그것에 따라 성 역할이 주어진다는 가부장제의 여러 담론 속에서 형성된 생물학적 본질주의는 여성의 전형(typicality)으로 최근까지도 사회문화 내에 잔재하고 있다.
9) 김정선, “빅토리아 시대 유행복식과 반유행 복식운동에 나타난 여성성과 인체미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6), p. 21.
2.여성성 변화의 사회 문화적 관점
1)사회적 관점
사회적 구조는 젠더와 젠더와 관계된 모든 행위를 규정하는 것과 관련된다. 즉, 사회⋅문화에 따라 성질서가 달라지는데, 이 질서는 사회적 일 분담체계를 통해 여성들과 남성들에게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 및 활동 범위를 규정해왔다.10) 산업화 과정에서 사회적 성별 분업은 전체 사회 영역을 생산과 재생산, 직장과 가정, 남성적인 영역과 여성적인 영역 등으로 구분하여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강화시켰다.11) 19세기는 사회적 성별분업과 여성종속이 구체화되는 시기인 동시에 페미니즘의 참정권 획득과 여성해방을 위한 운동을 기반으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가져다 주는 시기였다. 이후 20세기는 산업화와 도시화, 과학 기술의 발전 등 사회의 대변혁 등을 계기로 여성들은 경제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가속화된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바탕으로 여성들의 경제력 확보와 교육을 통한 의식개혁은 위계적인 성별 관계를 변화시켰다.12)
10) 크리스타니 폰 브라운, 잉테 슈테판, op. cit., p. 200.
11) 정태섭 외 공저, op. cit., p. 50.
12) 홍태희, “젠더의 역사적 구성: 성별관계와 여성경제사,” 여성경제연구 6집 2호 (2009), p. 96.
20세기 후반은 여성운동의 괄목할 만한 성장과 함께 생식 및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던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모델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80년대에 들어서면서 70년대의 사회정치적 투쟁이 아닌 물질적인 목표와 개인적인 야망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자아실현이 중요하게 부각되어, 이는 20세기 후반을 특징짓는 삶의 질의 목표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와 이념의 변화를 바탕으로 경제적 독립을 획득하고 교육을 받은 여성이라는 기본적인 조건을 가진 여성인 빅토리아 시대의 전통적인 여성의 모습을 탈피한 슈퍼우먼이 등장하였다. 이들은 사회적 성공을 위해 결혼과 임신, 출산 등을 포기하는 등 여성성을 감추는 것이 보편적인 경향이었다.13)
13) 김경집, 생각의 프레임, (서울: 현실문화연구, 2007), p. 310.
이와 같이 20세기 말까지는 여성의 권리 획득과 여성 억압의 사회적 구조의 개혁을 주장해온 페미니즘의 측면이 강하였으나, 2000년대 이후 남녀의 성 역할이나 지배와 복종과 같은 전통적인 사회구도들에 집착하지 않는 새로운 여성상인 ‘알파걸(alpha girl)’이 등장하였다. 알파걸은 1980년대 말 이후 태어난 아이들로 학업이나 운동, 리더쉽 등 모든 면에서 남성보다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엘리트 집단을 의미한다. 이들은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고 더 나아가 그 차이를 적극 활용하며 사회적 출세와 경제적 성취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로, 이전의 커리어 우먼이나 슈퍼우먼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14) 알파걸은 지금까지의 가부장제의 불합리한 제도에 저항하고,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복하려는 노력들을 바탕으로 성장한 세대로, 자신의 성과 몸에 대한 주체적 인식 등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14) Ibid, pp. 309-310.
2)몸 담론의 관점
소비사회에서 몸은 사회의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기호이며, 자기도취의 숭배 대상으로 다이어트와 수술을 통해 자기의 몸을 관리하고 투자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몸의 20세기 후반의 중요한 문화기호로써의 몸과 성정체성과의 체현 사이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가 중요한 화두로 부각되었다.15)
15) 양혜림, 김선희, 김철운, 유성선, 섹슈얼리티와 철학, (서울: 철학과 현실사, 2009), pp. 35-36.
20세기 후반의 몸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관심의 증가와 더불어 등장한 몸 담론들은 몸과 섹슈얼리티가 생물학적 속성과 억압이나 통제와 연결되어 있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게 했다. 메를로-퐁티(Merleau-Ponty)에 의하면 몸의 외형은 내적 본질 방식으로 고정적이거나 단일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문화적ㆍ역사적인 가능성을 구현하는 능동적 과정으로 이해되는 것으로, 이렇게 구성된 의미를 재구성하는 행위에 의해 몸은 젠더화된다.16)
16) 조현준,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정체성 이론: 퀴어 정치학과 A. 카터의「서커스의 밤」, (파주: 한국학술정보(주), 2007), p. 185.
한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성에 대한 담론에서 몸은 일상적인 관습들과 남성들에 의한 대규모 권력조직과 연결한다. 푸코는 지배 권력과 훈육에 의해 규제되어온 몸과 섹슈얼리티의 지배적 담론의 힘을 제거하고, 성적인 충동과 욕망의 실천형태를 새롭게 의미화 하였다.17)
17) 양혜림, 김선희, 김철운, 유성선, op. cit., pp. 38-45.
엘리자베스 그로츠(Elizabeth Grosz)에 의하면 사회적 법과 도덕성, 그리고 가치에 의해 형성된 성의 제도에 의해, 젠더화된 몸과 그것을 규정하는 의미를 생산한다. 그로츠는 생물학적으로만 환원되는 여성의 존재방식에 도전하면서 복합적인 여성의 몸의 가능성을 이론화하였다. 이로써 몸이 행하는 것, 즉 몸의 행위와 수행이 주체를 만들어 가는 것으로, 여성의 몸은 자기결정이 이루어지는 적극적인 장소이자 지배와 저항이 맞물리는 생생한 장으로 인식되었다.18)
18) (사)한국여성연구소, 새 여성학 강의: 한국사회, 여성, 젠더, (파주: 동녘, 2005), p. 126.
이처럼 몸과 몸의 형태와 의미, 그리고 섹슈얼리티가 주체성과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실천들과 결부된다는 새로운 인식은 몸과 섹슈얼리티가 사회적 역사적으로 상황에 의해 형성된 문화적 기호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으로 새롭게 개념화하였다. 이와 같이 몸 양식으로 젠더가 구성된다는 몸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은 페미니즘에서의 성정체성에 관한 논의들을 재 이론화하는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였다.
3)페미니즘 관점
19세기 말 시작된 페미니즘은 기존의 지배논리에 의해 설정된 전통적인 성적 관계에 의해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사회적ㆍ주관적으로 구성된다는 인식을 획득하려는 정치적 운동인 동시에 이론적 분석의 장으로 ‘여성’ 또는 ‘여성적인 것’에 대한 정의와 제약에 도전하고자 하였다.19)
19) Linda Mcdowell, Gender, Identity & Place: Understanding Feminist Geographies,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9), pp. 8-9.
1949년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제 2의 성』에서 타자로서의 여성이 초월적인 주체인 남성과 동등하게 되기 위해 여성의 성별성을 제거하고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 타자가 아닌 주체를 택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페미니즘은 가부장제하에서 여성들은 그 주체성이 거부되고, 남성=주체, 여성=대상으로 구도화된 지배구조를 벗어나 타자성을 극복하고자 했다.20) 또한, 보부아르는 생물학에 근거한 고정된 개념으로서의 남성과 여성 간의 절대적인 성차에 반박하면서 여성성이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다는 인식의 틀을 제공하여 페미니즘에서 여성성 논의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20) 김은실, 여성의 몸, 몸의 문화정치학, (서울: 또 하나의 문화, 2001), p. 57.
1970년대 이후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사회 내에 존재하는 여성적인 것에 대해 열등적인 것으로 평가절하가 아닌 여성의 출산능력과 심리적 특성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여성 중심적 시각의 확보와 여성문화운동을 통해 가부장제의 가치체제에 도전하였다.21) 이는 본질주의적 관점으로 여성성의 몸에 대한 긍정적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21) 박정순, 김훈순, 대중매체와 성의 상징질서, (서울: 나남출판, 1997), p. 49.
한편, 80년대 이후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가부장제하에서 여성은 성적 대상이고 자율적인 성의 권리가 부인되어 왔음에 반박하고 여성의 성적 쾌락과 욕망을 회복하고자 하는 관점이 제기되었다. 이는 가부장제의 힘에 의해 억압된 여성들의 성적 욕망을 수용 가능한 형태로 조직하여 자율적으로 정의된 여성의 욕망, 그리고 여성들을 성적 주체로 만드는 능동적인 성을 주창하는 것이었다.22) 이리가레(Luce Irigaray)는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남성적 상징질서에 의해 억압되어 본질적인 여성성과 유리되어왔다고 주장하면서, 남성 욕망의 기표인 남근중심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부터 여성의 성적쾌락으로 강조점을 바꿈으로써 여성 자신의 육체와 욕망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하였다.23)
22) 김은실, op. cit., p. 58.
23) 앤 브룩스, 포스트페미니즘과 문화이론, 김명혜 역 (서울: 도서출판 한나래, 2003), pp. 136-137.
페미니즘의 시각은 20세기 후반 사회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젠더 연구(gender research)라는 새로운 연구영역을 탄생시키고, 더 나아가 대중문화 연구와 대중 매체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에서의 젠더 연구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24) 가부장제적 문화에서 여성 재현은 사회 속에서 실재하는 여성들이 아닌 남성의 욕망을 위해 구성된 이미지로서의 여성, 즉 성적인 대상으로 존재한다. 페미니스트들은 대중 매체에서 재현되는 남성 지배를 드러내는 여성의 스테레오타입 이미지를 밝혀내고, ‘여성의 성의 대상화’에 관한 재현을 비판함으로써 여성성 재현에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게 하였다.
24) 박정순, 김훈순, op. cit., p. 20.
3.대중매체에서의 스테레오타입 여성성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대중매체에서 여성에 부여해온 상징적 의미들이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제도적으로 조직화되고 전문화되기 시작했다.25) 특히 광고는 여성을 상품의 소구전략으로 여성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그를 통해 상투적 의미를 유포하고 고정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성 재현은 대중매체, 특히 광고에서의 여성성 재현과 유사한 특성을 지니는데, 이는 여성성을 규정하는 시각적 기표에 의해 여성적 특성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표현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을 해석하기 위해 대중매체에서 여성적 특성이 어떻게 재현되고 정형화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5) 로버트 골드만, 광고에서 사회를 읽는다, 박주하, 신태섭 역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p. 52.
19세기 말부터 발달하기 시작한 대중매체를 통하여 전형적인 모습으로 유형화된 여성의 이미지가 크게 확산되었다. 1971년 코트니와 로커레츠(Cortney & Lokeretz)가 인쇄매체의 광고에서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의 여성에 대한 연구에서 남녀 간의 성차별적 묘사 중 하나는 남성은 여성을 일차적으로 성적인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섹스톤과 하버만의 연구 결과에서도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시대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광고에서 여성은 유혹적이고 사고하지 않는 장식적인 역할의 전통적 존재로 묘사되었다. 이와 같은 분석에서 볼 수 있듯이 광고에서 여성은 성적인 매력과 육체적인 아름다움에 치중하는 성적인 존재로 대상화되었다(그림 1).26)〈그림 2〉는 1940년대 글래머러스한 볼륨을 지닌 체형으로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광고로 글래머러스한 여성을 남성들이 즐거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광고에서는 남성은 보는 주체로서, 여성은 성적 응시의 대상의 이분법의 전통적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다.
26) 김선남, 매스미디어와 여성, (서울: 범우사, 1997), pp. 162-163.
<그림 1> 코르셋 광고. 1900년대 초(밸러리 멘데스, 에이미 드 라 헤이, 20세기 패션, 김정은 역(서울: 시공사, 2003), p. 15).
<그림 2> Weight-gain 광고. 1940년대(http://the-f-word.org).
한편, 대중매체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이상을 전형화 해왔다. 특히 여성은 남성에 종속되거나 열등한 것으로 묘사되어 왔는데, 이는 여성 피사체가 취하는 포즈와 시선, 손동작, 그리고 역할 등 이미지 코드들과 관련된다.
사회학자 고프만(Erving Goffman)은 미디어 속의 젠더 규범을 분석하여 스테레오타입의 젠더를 남녀의 상대적 크기(Relative Size), 여성적 터치(Feminie Touch), 기능적 지위(Funtion Ranking), 가족(The Family), 종속의 의례화(Ritualization of Subordination), 용인된 시선 돌리기(Licensed Withdrawal)의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고프만의 분석에 따르면 대체로 남성들의 키가 여자들보다 훨씬 크게 묘사된다. 또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어떤 사물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손동작이 많은데, 이는 그 사람의 몸이 우아하고 섬세하고 귀한 것이라는 느낌을 전달한다. 그리고 여성들은 주로 낮은 직책으로 묘사되거나 가족의 묘사에 있어서는 딸과 더 친밀하게 묘사된다.27)
27) Fitria Mayasari, “Gender Portrayal in Indonesian Women's Lifestyle Magazine Advertisements” (경성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9), pp. 18-20.
한편, 여성의 종속을 의례화하는 이미지 코드는 비스듬히 누워 있는 피사체를 보여주거나, 팔과 다리를 위쪽이나 측면으로 찌르는 어색한 자세를 취한다. 또한 여성들은 무릎을 굽히거나 머리를 갸우뚱한 자세를 취하거나 어린 아이와 같은 태도로 여성의 품위를 미묘하게 떨어뜨리는 자세로 묘사된다. 또한, 시선의 마주침은 여성스런 품행 기준에 어긋나며 우월함을 나타내는 동작으로, 여성 쪽에서 응시하는 것을 피하는 시선으로 처리되었다. 또한 대중매체 속에서 여성의 주된 활동 무대는 가정이었으며, 그 역할은 주부나 어머니였다. 이는 결국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결과였다. 이와 같이 대중매체에서 여성에 대한 정형화된 묘사는 사회와 문화에 따라 일정한 형식이 부여되며, 대중매체는 그것을 관습화시켜왔다.
80년대 이후 대중매체의 광고에서는 페미니즘의 시각을 전략적으로 사용하였는데, 남성의 지배 권력의 기호로써의 여성의 육체를 벗어나, 능동적 주체로서의 여성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새로운 인식을 반영하면서 외설과 여성 몸에 대한 자율권이라는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었다. 특히 여성들이 남성에게 의존하는 모습보다는 독립적인 여성이미지로 직장 내에서의 비전통적인 활동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점차 정숙함에서 벗어난 노골적인 성적 묘사나 인체 노출은 증가하였다.
1980년도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광고 캠페인은 적극적이고 도발적인 포즈를 취한 여성을 내세워 사회 전반에 파란을 일으켰다(그림 3). 또한 2000년 이브 생 로랑(Yves Saint-Laurent)의 오피엄(Opium) 향수 광고는 여성의 성적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파격적인 이미지를 선보였다(그림 4). 이는 여성의 성적 쾌락이 통제의 대상이라는 성에 대한 금기를 깨고 여성의 몸에 대한 여성 스스로의 주체적인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이브 생 로랑의 다른 광고에서도 전통적인 젠더 상징에 대한 이분법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읽을 수 있다.
<그림 3> Calvin Klein. Jeans 광고. 1980(http://navercast.naver.com).
<그림 4> Yves Saint-Laurent. Opium 광고(http://www.jahsonic.com/YSL.html).
〈그림 5〉는 마네(Edouard Manet)의『풀밭 위의 점심식사』(그림 6)을 패러디한 것으로, 원화에서 여성의 누드를 남성의 누드로 교체시킴으로써, 20세기초 성적 대상으로 묘사된 여성 누드화에 대한 남성적 젠더 재현 체계를 전복시키고자 하였다.
<그림 5> Yves Saint-Laurent. 광고(김홍탁, 광고, 리비도를 만나다, (서울: 동아일보사, 2003), p. 91).
<그림 6> Edouard Manet. 풀밭위의 점심식사. 1863(김홍탁, 광고, 리비도를 만나다, (서울:동아일보사, 2003), p. 90).
Ⅲ.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표현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
1.젠더화된 인체
젠더화된 인체란 성별화된 인체로, 이는 생물학적인 특성으로 성별이 구별되는 물리적 특성을 갖지만 사회문화 속의 다양한 담론이 체화된 문화적 의미의 인체를 말한다. 젠더적 시각으로 보는 인체는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인체가 갖는 다의적 의미를 고찰하는데 있어서 중요하다.28) 전통적으로 인체의 젠더화된 코드는 남성은 근육질의 몸, 여성은 가냘프고 날씬한 몸매였다. 특히 생물학적 범주로 의미화된 여성성의 핵심 범주는 생식과 출산과 관련된 생산기능이 여성의 성적인 아름다움과 관련되었다. 즉, 모성적 여성성을 나타내는 가장 상징적 형태는 여성의 생식기능을 나타내 주는 잘록한 허리,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한 19세기의 모래 시계형이다.29)
28) 김주희, “춤에서 드러난 젠더적 몸의 양상 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1), pp. 19-21.
29) 수전 보르도, 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 박오복 역 (서울: 또 하나의 문화, 2003), p. 240.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전형적 여성성과 관련된 인체의 특징은 19세기 말, 30년대에서 50년대, 그리고 70년대, 90년대 이후에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에서 주로 살펴볼 수 있다. 1867년에서 1898년 하퍼스 바자(Harper's Bazar)에 실린 빅토리안 패션과 복장을 소개하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들에서 여성의 인체는 모성과 관련된 인체의 특징이 다소 과장된 형태로 묘사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엄격함과 정숙함에 대한 요구에 의해 의복으로 목부터 전부 감싸 여성의 인체는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한편, 19세기 말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대상을 나타내는 기표로써 가는 허리는 더욱 강조되었다(그림 7). 이 시기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로맨틱 리얼리즘(Romantic Realism)의 영향으로 여성과 복식은 사실적이고 정교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며, 당시의 시대적 이상미를 완벽하게 재현하였다.
<그림 7> G. Joubard, 1894(Stella Blum(ed.), Victorian Fashions & Costumes from Harper's Bazar: 1867-1898(New York: Dover Publication, 1974), p. 268).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정형적인 여성이미지의 표현은 1930년대에 다시 등장하여 1950년대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 여성해방운동은 수그러 들었으며, 여성은 양육과 가사라는 전통적인 성 역할이 강조되어 여성성은 모성성과 동일시되었다.30) 특히 50년대 이상적인 여성의 과제는 19세기 여성에게 부과되었던 것과 같이 남편을 포획하고 잡아두기 위한 관능적인 육체적 매력을 중요시하게 되었다.31)
30) 발트라우트 포슈, 몸 숭배와 광기, 조원규 역 (서울: 여성신문사, 2004), p. 55-56.
31) 발트라우트 포슈, op. cit., p. 58.
따라서 50년대까지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전통적 여성성에 대한 요구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빅토리아니즘의 다시 부활한 굴곡이 강조된 인체의 관능성, 우아함, 그리고 완벽한 아름다운 이상적 인체의 재현으로 나타났다. 30년대에서 40년대는 칼 에릭슨(Carl Ericson)(그림 8)과 르네부에-위요메(René Bouet-Willaumez)(그림 9) 등은 표현주의 화법의 자유로운 붓놀림과 선의 강약에 의한 풍부한 선 감각으로 20년대 직선의 형태에서 곡선적인 형태로 바뀐 우아하고 굴곡진 여성의 인체를 더욱 강조하였다.
<그림 8> Eric, 1946(윌리엄파커, Fashion Drawing in Vogue, 강은숙 역(서울: 경춘사, 1995), p. 157).
<그림 9> René Bouet-Willaumez, 1933(Cally Blackman, 100 Years of Fashion Illustration (London: Laurence King Publishing, 2007), p. 107).
1940년대 이후 르네 그뤼오(René Gruau)(그림 10)이나 르네 브쉐(René Bouché)(그림 11) 등의 작품에서 재현된 여성은 노동에 참여하지 않고 장식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중류계급의 여성에 대한 이상적 규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 시기 작품에서 여성들은 섬세하고 감각적이며 간결한 선으로 우아함과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재현되었다.
<그림 10> René Gruau, 1949-1950(François audot, Gruau, (Paris: Assouline, 2004), p.59).
<그림 11> Rene Bouche, 1953(David Downton, Masters of Fashion Illustration, (London: Laurence King Publishing, 2010), p. 136).
70년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점차 여성의 성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으로 전개되었으며, 다시 여성의 인체미를 강조하는 관능적 인체 표현이 나타났다(그림 12). 70년대 이후 여성 중심적인 성 담론의 확대 등 여성성에 대한 재해석이 요구되면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의 재현의 의미는 과거의 남성적 시선에 순응하는 이미지 코드가 아닌 여성과 그 인체에 대한 자존심의 표현으로 바뀌게 된다. 특히〈그림 13〉은 젠더화된 여성 인체의 의미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에서 완벽하게 균형 잡힌 몸매의 여성은 주변의 남성들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몸을 드러냄으로써 수동적 의미에서 능동적 주체로의 여성성의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그림 12> Antonio Lopez, 1972(Juan Ramos, Antonio 60, 70, 80, (London: Thames & Hudson, 1995), p. 105).
<그림 13> Jordi(RM Verlag (2003). Hayday: Jordi Lavanda. New York: RM, p. 61).
한편, 옐롬(Marilyn Yalom)을 비롯한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 즉 섹스의 상징으로 여겨진 여성의 유방을 ‘자유로운 유방’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되돌리고자 가슴을 드러낼 수 있는 권리를 되찾고자 했다.32)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 변화는 90년대 이후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 인체를 적극적인 표현하는 경향으로 나타나며, 여성의 성적 부위의 노출과 관능적인 인체 표현이 급증한 것을 볼 수 있다. 가슴의 노출은 키톤로스(Kiton Ross)의 그림(그림 14) 등에서 보이는 데, 70년대 로페즈의 그림(그림 15)에서 나타난 여성의 가슴 노출과는 다른 맥락으로 해석된다. 로페즈는 강인하게 보이는 남성의 다리 위에 가슴을 노출한 채 수줍게 앉아 있는 여성을 표현함으로써 남성은 강하고 여성은 연약하고 수동적 성적 대상으로 드러나는 반면, 로스의 그림에서 여성은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섹슈얼리티를 표출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32) 샤오춘레이, 욕망과 지혜의 문화사전: 몸, 유소영 역 (파주: 푸른숲, 2006), pp. 208-209.
<그림 14> Kiton Ross, 2003(Laird Borrelli, Fashion Illustration Next, (London: Thames and Hudson, 2004), p. 95).
<그림 15> Antonio Lopez, 1970(Antonio 60, 70, 80, 1995, p. 76).
한편, 전통적으로 여성 누드에 음모를 그리지 않는 관습은 남성의 성욕 만을 인정하고 여성의 성적인 힘과 열정에 대한 억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33) 90년대 이후 그림에서 여성의 음모를 묘사하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2003년 조르디 라벤다(Jordi Lavanda)의 그림에서도 음모를 노출한 하반신 만을 클로즈업하여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억압에 저항하고 몸에 대한 능동성을 표출하고 있다(그림 16).
33) 강태희, 현대미술의 문맥읽기, (서울: 미진사, 1995), p. 52.
<그림 16> Jordi(Hayday: Jordi Lavanda, 2003, p. 11).
컴퓨터 디지털 기술이라는 표현매체의 보급으로 2000년대 이후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가상공간안에서의 인체개념인 ‘하이퍼 리얼(hyper real)’이라는 새로운 인체 재현 방식이 나타났다. 하이퍼 리얼은 현실의 모델을 따라 형성되었으나, 현실을 뛰어넘는 어떤 것을 뜻하는 것34)으로, 여성의 이상적미와 리얼리티를 오가며 이상적 인체미를 극대화시켜 표현하고 있다(그림 17). 이는 남성 전유물로 인식되어온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대상물로써의 여성 인체라는 논의에서 벗어나 오히려 당당하고 완벽한 주체라는 여성 스스로의 판타지를 재현하고 있다. 이는 지배적인 여성다움과 동일시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이미지가 더 이상 나약함과 수동성의 표시가 아니라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관리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물리적 형태로 성별화된 인체는 전통적인 여성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의식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34) 스티븐 베스트, 더글라스 켈너, 탈현대의 사회이론: 탈현대의 비판적 질의, 정일준 역 (서울: 현대미학사, 1995), p. 157.
<그림 17> Habermacher Rene & Tsipolanis Jannis, 2003(Fashion Illustration Next, 2004, p. 82).
2.포즈의 정형화와 탈정형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은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의미의 기표로서의 인체의 행위, 즉 포즈, 손동작, 시선 등을 통해 정형화(standardization)되어 왔다.
빅토리아 시대의 젠더 이데올로기는 여성성을 정숙함, 종속성, 순종성과 같은 덕목과 일치시켰다. 특히 사회적으로 정의된 여성성의 속성은 여성다움의 본성을 인식하는 방법과 바른 행실과 사교 에티켓 등 학습지침서에 의해 정형화되었다.35) 여성다움에 대한 지배적인 이미지 코드는 전통적인 품행기준과 관련된다. 이는 헨리(Nancy M. Henley)에 의하면 단정하고 깔끔한 의상과 가지런히 모은 사지와 자세 등이었다.36)
35) 이윤희, “한국 근대 여성잡지의 표지화를 통해본 여성 이미지-신여성과 여성을 중심으로” (이화여자대학교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6), p. 69.
36) 다이애나 크레인, op. cit., p. 326.
19세기 말부터 50년대까지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재현된 여성의 포즈는 대부분 다리는 가지런히 모으고 어색하게 팔을 옆으로 벌린 동작 외에는 과도한 팔 동작도 거의 보이지 않아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품행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그림 18). 또한 침대에 눕거나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에로틱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도 스테레오타입화된 여성성의 이미지 코드였다. 패션일러스트레이션에서도 이러한 여성다움의 정형적 포즈가 재생산되어 왔으며, 이는 여성의 수동성이나 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었다(그림 19).
<그림 18> Anonymous, 1942(Fashion Illustration 1930 to 1970 Harper's Bazaar, 2010, p. 87).
<그림 19> Rene Gruau, 1946(Volker Zahm(ed.), Art Fashion, (Morlbach: Ausgabe, 2003), p. 87).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거나 열등한 것으로 보여주는 전형적인 여성이미지는 손동작과 시선 등에서도 나타난다.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재현된 여성의 손동작을 분석해 보면 난간이나 의자 등의 사물에 가만히 손을 대고 있는 모습(그림 20)이나 손을 살짝 자신의 몸에 대거나 무의식적으로 입술이나 얼굴에 손가락을 대는 등의 동작을 취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그림 21). 이와 같은 여성적 터치의 손동작은 남성 재현에 있어 남성들은 일반적으로 물건을 움켜잡거나 조정하는 모습으로 표현37)되는 것과 대조를 이루며, 여성의 우아함을 암시하는 젠더 표상이었다.
37) Fitria Mayasari, op. cit., p. 19.
<그림 20> George Barbier, 1914(Masters of Fashion Illustration, 2010, p. 44).
<그림 21> Alastaire Michie, 1950(Fashion Illustration 1930 to 1970 Harper's Bazaar, 2010, p. 130).
또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종속적인 모습의 의례적인 코드로 여성들은 시선을 교묘하게 피하거나 눈을 지그시 감은 모습이 표현되고 있다. 이는 피사체가 수동적이며, 상황을 관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그림 22). 그러나 70년대 이후에 대상을 제압하는 도발적이고 강렬한 시선의 표현들이 등장하여 여성의 우월함을 암시하는 동작, 즉 탈정형화(destandardization)된 표현들이 나타났다(그림 23).
<그림 22>Marcel Vertes, 1938(100 Years of Fashion Illustration, 2007, p. 125).
<그림 23>Antonio Lopez, 1972(Antonio 60, 70, 80, 1995, p. 99).
80년대 가부장제의 힘에 의해 억압되어온 여성의 성적 쾌락과 욕망을 회복하고자 하는 관점이 제기되면서 90년대 이후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의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포즈들이 등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피오나 와일리(Fiona Wylie)는 라인 드로잉과 파스텔 톤의 배경으로 로맨틱하고 에로틱한 여성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데, 이는 비정상적이라고 정의되고 통제되어온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며, 섹슈얼리티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드러낸다(그림 24). 이처럼 여성의 노골적인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선정적인 포즈는 성적으로 이용 가능하다는 성적 암시가 아니라 여성 몸에 대한 주체적 인식과 성적 능동성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림 24>Fiona Wylie, 2003 (Martin Draber, Image Makers: Cutting Edge Fashion Illustration, (London: Mitchell Beazley, 2004, p. 152).
또한 80년대 이후 이전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볼 수 없었던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등장했다. 데이비드 램프리(David Remfry)의 그림에서 여성은 다리를 벌리고 당당하게 대상을 응시하는 모습으로 재현되어, 여성의 순결과 단정함이라는 전통적인 성적 코드체계를 벗어남으로써 여성 스스로 섹슈얼리티의 주체가 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그림 25).
<그림 25>David Remfry, 2004(100 Years of Fashion Illustration, 2007, p. 354).
3.젠더 표상과 배경
‘표상’은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의 심리적 절차와 행위에 의해 이루어진 표현의 결과이다. 대상의 인식은 대상이 함축하고 있는 개념의 이해와 의미의 해석에 관한 것이다.38) 따라서 젠더 표상은 성정체성의 범주에 대한 사회적 주체의 인식을 토대로 형성된다. 여성의 전통적인 젠더 표상은 남성 주체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범주화되었다.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여성의 인체와 포즈, 시선과 더불어 정형적인 여성의 성 역할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젠더 표상이 되어왔다.
38) 이성남, “디자인 요소의 속성 범주와 표상의 전형성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5), p. 3.
특히 꽃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배경이나 장식으로 등장하여 여성의 전형적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 바느질을 여성의 덕목과 일치시키는 전통적 이데올로기는 작은 자연 대상을 묘사하는 일 역시 ‘여성의 일’로 비하시켰다.39) 이로써 꽃그림은 ‘문화=남성적인 것’, ‘자연=여성적인 것’이라는 이항적 대립적인 보편적 개념과 융합되면서 여성성으로 표상되어 왔다. 꽃이 여성과 여성의 아름다움의 도상으로 작용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의미화 되면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꽃은 디자인적인 의미를 넘어 연약함과 아름다움과 관련된 여성다움으로 표상되어 배경과 장식으로 60년대 이전까지 자주 등장하였다(그림 26).
39) Whitney Chadwick, Women, Art, art, Society, (London: Thames & Hudson, 2007), p. 129.
<그림 26>Charles Martin, 1934(Fashion Illustration 1930 to 1970 Harper's Bazaar, 2010, p. 47).
한편,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여성을 출산과 어머니의 역할, 가사 노동 등 남성과 구분되는 성별 역할로 제한하였다. 19세기 회화에서처럼 20년대까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도 여성은 아이와 같이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 규범화된 여성의 역할, 즉 가정에서 어머니로써의 역할에 대한 고정된 인식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그림 27). 1943년 하퍼스 바자의 표지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은 검약하고 남성에게 순종적이며 가정에 충실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시기 여성들에게 가장 여성다운 활동은 어머니의 역할과 채소를 가꾸고 의복을 손질하는 것이었다.40) 테이지 워너(Tage Werner)가 그린 바자 표지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검소하고 실용적인 의복을 착용한 여성은 채소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 충실함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지그시 감은 눈은 이러한 역할에 순응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그림 28).
40) 발트라우트 포슈, op. cit., p. 56.
<그림 27>Anonymous, 1925(Fashion Illustration in Vogue, 1991, p. 154).
<그림 28>Tage Werner, 1943(Fashion Illustration 1930 to 1970 Harper's Bazaar, 2010, p. 88).
한편, 19세기 말까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의 주된 배경은 주로 살롱(salon), 즉 집안의 거실이나 자연이었다. 19세기 말 하퍼스 바자에 실린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의 대부분이 상류계층의 화려한 거실을 배경으로 하거나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모습이었다. 20세기 초에서 50년대까지 패션 일러스트레이션도 여성은 주로 자연 속에 등장하거나(그림 29) 지나치게 장식이 많은 스튜디오나 거실을 배경으로 뻣뻣하게 포즈를 취한 조각상 같은 모델들의 모습이 대부분이었다(그림 30).
<그림 29>Eric Fraser, 1931(Fashion Illustration 1930 to 1970 Harper's Bazaar, 2010, p. 14).
<그림 30>Anna Zinkeisen, 1931(Fashion Illustration 1930 to 1970 Harper's Bazaar, 2010, p. 25).
이러한 배경들은 자연과 동일시되는 여성성과 사회와 분리된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구분되는 여성을 정의한 방식으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표상이었다.
배경의 젠더 표상의 변화는 20세기 초 1909년 영국 해러즈(Harrods) 백화점의 카달로그에서 근대 도시의 상징인 백화점을 배경으로 여성들이 군중 속에 등장하였다(그림 31). 이는 사적 영역에서 벗어나 근대 도시의 공적 영역으로 진출한 여성들의 모습은 여성이 소비의 주체로 등장한 새로운 문화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1920년대 말 이후 도시의 빌딩이 패션지의 표지 그림에서 배경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형성된 도시문화와 달라진 여성의 지위와 사회적 역할 등 시대적 변화를 암시하였다(그림 32). 40년대와 50년대 여성들의 가정에서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기에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화려하게 장식된 실내나 스튜디오로 한정되었으나, 6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부활과 함께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증가하면서 도시를 배경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의 모습이 다시 등장하였다.
<그림 31>Harrod's Catalogue, 1909(100 Years of Fashion Illustration, 2007, p. 14).
<그림 32>Erte, 1933(Masters of Fashion Illustration, 2010, p. 58).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90년대 이후 여성의 공간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제시하는 라이프스타일 일러스트레이션이 증가하였다(그림 33). 라이프스타일은 특정사회에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가치, 신념, 규범, 태도에 따른 행동양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삶의 방식의 변화와 가치기준, 소비활동의 변화와 함께 변화하며, 패션트렌드를 예측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41) 라이프스타일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의 증가는 80년대 이후 가속화된 여성해방과 경제력의 향상에 따라 여성들의 생활영역이 다양화되고 세분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달라진 여성의 공간은 성역할로 분화되었던 전통적 젠더 표상의 탈피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41) 김지연, “국내 여성복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기초한 패션트렌드 선호도 분석 및 패션 상품기획의 트렌드 반영 방향 모색: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3), p. 7.
<그림 33>Sakilica(Pict(ed.), Illustration Book Pro 01 (Tokyo: Pie Books, 2007), p. 107).
Ⅳ.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표현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의 의미 변화
1.대상화된 여성에서 주체로서의 여성
이원론적 세계관의 지배적 담론에서 여성과 몸은 성적 욕망, 폭력성, 공격성에 굴복하게 하는 부정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규정되었다. 타자로서의 여성은 절대정신인 주체로서의 남성을 위협하는 여성의 육체적, 성적 면모를 감출 수 있도록 우월한 존재에 의해 계도되고 정복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42)
42) 김지현, op. cit., p. 4.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도 여성은 타자로서 남성의 지배적인 시선에 순응하는 수동적 인체로 정형화되어 표현되어왔다. 다시 말해 전통적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욕망을 억압한 탈성욕화(desexualized)된 인체, 정숙함, 우아함으로 규정된 인체였다.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가인 존 버거(John Berger)에 의하면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남성 주체의 시선의 응시 ‘대상’으로 만든다. 이와 같은 여성=대상, 남성=주체라는 이분법의 극단적인 반영은 포르노였다. 일반적으로 포르노의 주체는 남성이고, 대상은 여성으로 197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를 여성의 종속성, 수동성 등 성의 사회적 실천의 표상으로 보았다.43) 따라서 이분법적 성별 위계 체계속에 구축된 성에 대한 해방적 담론으로 여성 중심의 자율적인 성적 실천을 여성의 해방과 권력화로 등치시켰다. 대중매체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의 노골적인 성의 재현인 포르노그라피적 표현은 남성적 상징질서에 의해 구축된 성이 아닌 지배적인 젠더의 저항의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다.
43) 양혜림, 김선희, 김철운, 유성선, op. cit., pp. 100-106.
특히 여성의 몸이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대상이자 저항의 장으로써의 인식 전환과 몸에 대한 사회문화적 관심의 증가는 90년대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도 인체는 패션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의 의미를 넘어 인체 자체가 패션으로써 디자인되거나, 사회적 담론을 적극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하였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 인체는 성적 대상화에 대항하여 여성의 성적 욕망과 관능성을 새롭게 규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캐시 슈위텐버그(Cathy Schwichtenberg)에 의하면 “시뮬라시옹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몸, 즉 성차이의 구조물이라는 고정된 개념에 도전하고, 여성의 몸을 다양한 목소리의 다양한 정체성의 흐름 속에서 재구축할 수 있는 에로틱한 정치학을 사용하는 몸”이다.44) 몸을 통해 가부장적 사회의 여성 정체성과 부르주아적 환상에 대항하는 역할 모델로 1980년대의 마돈나(Madonna)를 들 수 있다. 또한 2000년대 알파걸이라는 새로운 여성상의 등장도 여성의 성에 대해 주체적 인식을 갖게 하였다. 따라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의 순결과 단정함이라는 전통적인 성적 코드체계에서 벗어난 이미지들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강조함으로써 여성의 몸을 주체로써 재배치함을 의미한다.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 성적 부위의 노골적인 노출이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포즈들은 섹슈얼리티와 욕망의 억압으로 작용하는 젠더 규정의 일탈로써 정체성을 재구축하는 몸, 능동적인 몸의 개념을 확립하려는 의지와 관련된다. 따라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응시 대상이 아닌 자신의 여성성을 인정하고 주체화된 여성으로서 본질적 몸의 의미를 재구성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44) 수전 보르도, op. cit., p. 325.
2.전형적인 미 구현의 의미 변화
전형적인 미는 완벽한 미 혹은 절대미와 관련된다. 이와 같은 완벽한 미와 관련된 아름다움은 전통적으로 여성성의 정의와 관련되었다. 이상적 인체의 개념은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폴리클레트(Polyklet)가 ‘표준/전범’(kanon)의 개념을 인체에 적용하여, 인체란 미터법에 부합하는 ‘완전하게 계산 가능’한 확고한 질서를 가진 체계이어야만 ‘영혼을 담은 전체’일 수 있었다. 이러한 인체의 규범화는 언제나 남성의 인체를 근거로 했으며, 여성의 인체는 규범과 다른 ‘계산 불가능성’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후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인체에 대한 표준적 모습이 기계와 동일시되면서 계산 가능한 것이라는 인체의 이상적 척도가 남성과 여성에게 모두 적용되었다.45) 따라서 여성의 미적 이상형은 계산 가능한 척도에 표준화되고 규범화된 인체였다.
45) 크리스타니 폰 브라운, 잉테 슈테판, op. cit., pp. 43-53.
앞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이러한 전형적인 여성다움의 표상은 완벽하게 구조화되고 아름답고 날씬한 인체로 구현되어 왔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완벽한 미와 날씬한 인체에 대한 미 이상은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인체구조로 묘사되었으며, 이상미의 과장으로 표현되었다. 즉, 허리는 더욱 가늘게 강조되고, 인체의 비례는 이상적 인체비례인 8등신 이상으로 과장되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와 빅토리아 중기의 날씬함에 대한 이상을 여성의 이상형으로 본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날씬함은 능력, 절제력, 지성과 동일시되어 왔으며, 이는 ‘과도함, 지나친 탐닉, 통제의 부족’으로 정의되는 여성적 특질과 대립적 개념인 ‘자기 억제, 자기 통제, 조절’ 등의 남성적 특질과 동일시되는 것으로 코드화된 젠더와 관련이 있다. 수잔 보르도(Susan Bordo)에 의하면 다이어트와 식이장애는 여성들이 젠더의 지배적인 정의에 대한 저항과 퇴각을 동시에 의미한다.46) 따라서 날씬한 인체는 아름다움과 동일시되는 남성지배적 정의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몸의 물리적인 형태를 조절함으로써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지배함으로써 젠더의 정의에 대한 저항을 내포한다.
46) Linda Mcdowell, op. cit., p. 66.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날씬하고 아름다운 인체는 작가의 개성을 담으면서 극적으로 묘사되어 왔는데, 그러한 인체의 의미는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외적인 억압으로 규제받는 출산⋅양육과 관련된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에서 20세기 후반에는 자기 통제와 정복으로 변화였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이라는 것으로 젠더화된 인체는 성별에 따른 물리적인 구분을 벗어날 수 없으나, 이는 여성 억압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것에서 다양한 담론이 체화된 인체를 매개로 하여 사회적 문화적 의미로 재구성되었다.
3.인체의 관용적 표현의 변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재현된 인체는 사회적범주를 생산하는 표상체계로 작용한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에 의하면 몸은 관습ㆍ위계질서ㆍ문화의 형이상학적 실행이 새겨져 있는 상징의 형식이다. 즉, 몸은 문화의 텍스트일 뿐아니라 사회적 통제가 실현되는 현장인 것이다.47) 자세, 몸짓, 시선 등과 같은 몸을 통해 행해지는 테크닉은 문화적으로 체계화되어 고착됨으로써 성정체성을 결정짓는 관용적 표현을 만들어왔다.
47) 수전 보르도, op. cit., p. 207.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은 인체의 포즈나 시선, 손동작, 그리고 인체가 위치하는 배경 등 관용적 코드로 재현되고 있음을 살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성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바탕으로 그러한 기표들이 의미하는 바가 달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인체에 대한 사회문화적 작용, 즉 문화화(enculturation)를 통해 생물학적인 토대 위에 구축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젠더는 ‘사회적 실천’과 ‘문화적 의미체계’이다.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젠더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축하고 특정한 사회적 관계로 조직한다. 또한 문화적 의미체계로서의 젠더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가 자연과 문화, 악과 선, 육체와 정신 등 상징적 질서를 구성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구축된 젠더적 상징질서는 한 문화 속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젠더 이데올로기로써 작용한다.48)
48) 박정순, 김훈순, op. cit., pp. 67-68.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은 인체를 통한 관용적 표현으로 젠더 이데올로기를 내포해왔다. 즉, 정숙함을 상징하는 포즈, 수동성과 복종을 의미하는 시선, 우아함을 내포하는 손동작 등의 시각적 기표는 여성성이란 의미 영역을 규정하는 관용적 표현이 되었으며, 이는 다시 여성성을 정숙함, 수동성, 우아함 등으로 이분법적 상징질서를 재생산하였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남성 중심적 젠더 이데올로기에 도전을 받으면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이러한 관용적 표현은 재구성되었다.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포즈는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써의 여성이 아닌 여성의 능동성의 표현으로 그 의미가 변화하게 되었으며, 또한 우월성을 내포하는 시선, 정숙함이나 수동성에서 벗어난 당당한 포즈 등 탈관용적 표현이 나타났다. 이와 같이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인체표상의 변화는 문화적 의미체계로서의 젠더의 상징질서를 일탈하고 재구성하였다.
한편,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이 위치하는 공간은 여성성과 동일시되는 자연과 가정의 사적영역으로 국한되었다. 그러나 20년대 말 이후부터 젠더 표상으로서의 여성공간은 변화하게 된다. 그로츠는 몸과 장소를 연결하고 언급하는데, 특히 도시는 문화적 삶을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으로 나누고, 개인의 특정한 사회적 위치와 관계, 그리고 성적인 관계를 조직하고 방향을 제시한다.49) 즉, 몸과 몸의 장소에 대한 태도는 젠더관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공적 영역이나 다양화된 여성의 공간 표현으로의 변화는 여성의 달라진 사회적 위치와 여성의 역할 변화를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것이었다.
49) Linda Mcdowell, op. cit., p. 66.
<그림 34>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표현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의 의미 변화.
Ⅴ. 결 론
본 연구에서는 19세기 말부터 201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표현되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의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을 인체의 코드들을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그 의미의 변화를 고찰하였다.
스테레오타입의 여성성은 19세기 말 가부장적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되어 여성의 전형이 되어 왔으나, 사회적 변화에 따른 여성의 성 역할의 변화와 더불어 20세기 후반 몸 담론과 페미니즘에 의해 새롭게 재구성되었다.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여성성 재현은 대중매체의 광고에서처럼 시각적 기표에 의해 여성적 특성을 제시하므로 우선 대중매체에서의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을 고찰하여 분석의 근거로 삼았다.
이와 같은 이론적 고찰을 토대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표현된 스테레오타입 여성적 특성을 인체, 포즈, 그리고 배경으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 전통적으로 여성 인체의 젠더화된 코드는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는 20년대, 60년대, 80년대를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재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또한, 50년대까지 정형적인 여성 이미지는 우아함과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재현되었다. 70년대 이후 젠더화된 인체표현은 나약함이나 수동성을 벗어나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하게 된다. 한편,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정숙함을 상징하는 포즈, 수동성을 내포하는 시선과 손동작 등의 기표로 여성의 전형적 이미지를 재생산해왔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노골적인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포즈나 당당함을 드러내는 표현 등 탈정형화된 모습으로 변화하게 된다. 또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배경은 사회적으로 규범화된 여성성과 동일시되었던 자연과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20년대 이후 도시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여성들이 나타나며, 특히 90년대 이후에는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의 급증으로 여성 공간이 다양화되고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 같이 19세기말 형성된 여성성의 전형은 광고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재생산되어 왔으나, 70년대 이후 여성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식의 변화를 토대로 여성성 재현 방식이 상투적인 표현을 벗어나 새롭게 재구성되어왔다.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 표현된 스테레오타입 여성적 특성의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이 여성성 재현의 의미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지배적인 담론에 의해 타자로서 대상화되었던 여성은 전통적인 성적 코드체계를 벗어난 젠더 규정의 일탈로써 능동적인 몸의 개념을 확립하게 되었다. 또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전형적인 여성다움의 표상은 완벽하게 구조화된 아름다운 인체로 구현되어왔다. 그러나 날씬하고 아름다운 인체의 재현은 여성성을 강조하는 젠더화된 인체의 코드에서 자기 통제와 정복의 의미로 변화하게 되었다. 한편, 인체를 통해 행해지는 관용적 표현들, 정숙성이나 수동성을 암시하는 포즈나 시선 등은 전통적 젠더 이데올로기를 내포해왔다. 그러나 능동성, 우월성을 암시하는 탈정형화된 포즈의 등장과 여성이 위치하는 배경의 변화는 젠더의 상징질서를 재구성하였다. 이와 같이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스테레오타입 여성성은 성별화된 인체로 표현되어 왔으나, 젠더 표상의 변화를 통해 사회문화적 의미가 재구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90년대 이후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성별화된 의미를 벗어나 양성이나 무성의 인체,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정의된 여성성이 해체된 모습으로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고 있는 표현들이 주된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스테레오타입의 유형에서 벗어난 여성성과, 그것과 관련된 인체 재현의 의미에 대한 후속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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