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Introduction
글로벌 디자인 기업인 어도비(Adobe)는 매년 초 디자인 트렌드를 예측하여 발표하고 있다. 2024년 크리에이티브 트렌드 중에는 정신 및 정서적 건강의 균형을 중시하는 카밍 리듬(Calming rhythms)이 있다. 이는 진정 효과를 가지는 편안한 시각적 요소로 단순하면서 추상적인 형태가 반복되는 배경의 변화를 제시한다(Park, 2024). 최근 2년 동안 국제 추상미술의 경향은 기하추상을 회고하고 있다.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기하추상을 풍경화에 사용하는 중국화가 Liu Kuo-sung의 전시회가 있었고,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는 인도화가 Sayed Haider Raza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그리고 스위스 쿤스트 미술관에서도 화려한 기하추상으로 유명한 미국화가 Shirley Jaffe의 전시가 있었다. 국내에서는 체코의 몽환적인 기하추상 화가인 Jan Kaláb와 회화의 틀 자체를 기하학적 형태로 변주하는 독일화가 Imi Knoebel의 개인전도 있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2023년부터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전을 통해 국내 최초로 기하학적 추상을 확장하여 문학과 디자인까지 살펴보는 전시를 열었다. 이외에도 기하추상의 형태는 딥러닝을 통해 예술작품을 창의적으로 생성하는 NST(Neural Style Transfer), CLIP(Contrastive-Language-Image-Pretraining) 등을 사용하는 예술가들이 질감과 미세한 색상조절 또는 의미론적 개념을 추출하는데도 활용되고 있다(Büßemeyer et al., 2023;Chen, Ni, Chen, & Hu, 2023).
이처럼 20C 초에 등장한 기하추상은 현재까지도 동․서양에서 꾸준히 재조명되고 있으며, 새로운 세대에게는 다양한 창조적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Martinelli, 2022). 흔히 동양에서는 추상미술에 대한 필요성이 없어 추상미술이 태어나지 않았다고 여겨지지만(Park, 2015), 기하학 형태는 동․서양 모두 고대부터 나타났다. 한반도에서도 고대 유물인 빗살무늬의 직선이나 청동검의 곡선에서 기하학적 예술을 볼 수 있다. 또한, 가야와 삼한시대의 유물에서는 기하학 형태를 활용하고 동물을 단순화한 형태의 토기와 문양 등이 있다. 특히 이들은 기능적인 면뿐만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담아 추상성을 가지며 기하학적 추상형으로도 나타난다(Choi, 2020). 또한, 서양의 20C 큐비즘, 입체주의, 미니멀리즘 등의 추상은 정신세계와 기하학을 활용한 대상의 본질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고대부터 이어온 한국의 미학과 유사하다(Chae, 2017).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 1881-1965)의 추상이론에 따르면, 추상 양식의 근원은 기하학적 추상이며 고대의 추상과 현대의 추상은 유사함을 가지고 있다(Worringer, 1908/1967). 이와 같이 기하추상은 시대와 나라에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이지만, 현재 우리나라 예술․문화에서는 기하추상이 한국적 정서와 거리가 먼 예술로서 여겨져 왔다(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MMCA], 2023). 그러나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콘텐츠인 한복의 형태와 구조는 기하학의 기본도형인 ○□△을 기반으로 현재까지 유지되며 상징적 의미를 함께 담고 있어서 기하추상의 양식과 유사하다.
한국 전통복식의 기하학적 구조와 관련한 선행연구로는 구조 및 상징적 분석(Jung, 2011;Lim & Moon, 2002)이나 현대 과학 및 철학과의 유사성에 관한 연구(Han, 2012;Yang & Chae, 2018)가 존재하지만 기하추상 예술의 관점으로 연구한 내용은 전무하다. 또한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이론은 기하학적 추상으로 미술(Chang, 2022;Helg, 2015)과 무용(Yoo, 1990) 등의 예술분야에서 연구되었지만, 그의 이론을 적용한 패션과 복식에 대한 연구가 없어 기하추상의 양식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처럼 동․서양의 공통적 요소인 기하추상을 통해 현재까지 이어온 한국의 전통복식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복식문화의 독창성과 국제성을 조명할 수 있는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본 연구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이론을 기반으로 기하학적 추상의 내적 요인과 특성을 도출한다. 둘째, 빌헬름 보링거의 이론을 바탕으로 동․서양의 공통된 조형요소를 통한 표현방식을 한국의 전통복식과 기하추상 예술을 통해 비교한다. 셋째, 한국 전통복식과 기하추상 예술의 정신적 유사성을 도출한다.
연구범위 중 한국 전통복식은 조선 후기인 16세기 후반부터 대한제국 이전 시기인 19세기까지 기간을 한정하였다. 한국 전통복식 중 상고시대의 기본의(基本衣)를 중심으로 전승된 저고리 원형은(Seo & Kim, 1990) ○․□․△이 모두 포함된 상의류의 원형이다. 특히 당시 여성의 저고리는 표의(表衣)의 역할을 하였고, 원형을 담으면서도 디자인적 변화가 다양하다는 점에서 연구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기하추상 예술은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의 ‘추상미술의 전개(1936)’ 계보를 참고하여 1911년부터 1935년까지 기간을 한정하였다. 또한, 추상미술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던 유럽에 한정하여 당시 전성기를 누렸던 독일, 러시아, 네덜란드를 선정하였다. 연구방법은 한국 전통복식과 기하추상 예술 및 빌헬름 보링거의 이론을 다룬 국내․외 단행본과 학위논문, 학술지, 기관 홈페이지 및 인터넷 자료 등의 문헌연구를 진행하였다. 실증연구를 위해 한국 전통복식의 출토 유물과 기하추상 작품은 국내․외 박물관 및 미술관과 재단 및 기관의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소장품 자료를 선별하여 내용을 분석하고 복식 도식화는 박물관 도록을 참고하였다. 저고리 유물은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여성 저고리를 모두 소장하고 있는 석주선기념박물관 33점, 충북대학교 박물관 42점 중 훼손된 2점을 제외한 40점, 국립민속박물관 7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미술 작품은 채색되지 않은 드로잉 작품과 습작을 제외하여 뉴욕 현대미술관 51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62점, 시카고 미술관 3점을 중심으로 참고하였다. 본 연구는 빌헬름 보링거의 이론을 활용하여 한국의 전통복식과 20세기 현대예술인 기하추상 미술의 내면적인 정신적 유사성을 분석하여 공통의 미의식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대를 잇는 문화콘텐츠이자 자산인 한국 전통복식의 미래 경쟁력을 제안하고자 한다.
Ⅱ. The Geometric Structure and Traditional Thought of Traditional Korean Costume
한국의 전통복식은 우리 민족의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의 평안을 염원하고 예를 갖추는 중요한 매개체이다(Korea Heritage Service, 2022). 한국 전통복식은 철학과 정신의 내적인 의미와(Kang, 2000) 우주론적 철학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론적 철학은 자연, 인간, 사회가 조화를 이루어 자연법칙과 우주의 질서를 정신적으로 일치시키는데 기여한다(Chung Young Yang Embroidery Museum, 2005). 한복에는 인간을 소우주로 보는 천부경(天符經)의 우주관이 담겨있으므로 의복에 천․지․인의 상징을 원․방․각으로 표현하였다(Jung, 2011). 특히, 한복에 나타나는 원․방․각의 상징적 의미는 한국의 전통사상과 종교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석된다(Jung, 2011;Lim & Moon, 2002;Park & Lim, 1996). 20세기 일본 복식사학자인 스기모토 마사토시(杉本正年)는 세계에서 수천 년의 긴 시간 동안 민족 복식이 일관되게 지켜진 예는 한복밖에 없으며, 외래 복식의 영향에도 기본 복식이 지속된 점에서 세계 전통 의복 중 독특한 존재라고 언급하였다(Yoo, 2022). 이처럼 한복의 형태적 구성은 고대부터 이어온 기하학적 내부 구조에 기반한다.
원․방․각의 상징은 샤머니즘의 세계관과도 연결된다. 천부경의 단군신화는 제사장인 천군(天君)이라는 샤먼이 자연의 재앙으로 인해 신의 개념을 천․지․인에 부여하였다(Im, 2021). 한반도의 고대 민족들은 외부의 자연현상에 두려움과 신성함을 느꼈고 이를 통한 우주관을 형성하여 샤머니즘으로 재앙에 대비하고 안정을 찾았다(Choi, 2010). 샤먼 복장과 도구에 표현된 기하학 도형은 상징을 지니는데, 원은 하늘을 의미하며 영원과 우주를 상징한다. 사각은 땅을 의미하면서 수직과 수평의 균형으로 사방관념과 안정성을 상징하고, 삼각은 사람과 다산을 의미하며 우주의 생성과 발전을 상징한다(Han, 2013). 형태적으로는 기하학의 패턴이 품목마다 다르게 조합되어 제로 웨이스트처럼 효과적인 면 분할을 이룬다. 또한, 20세기 한국의 추상미술과 한국 전통의 고유한 형태미는 유사하다고도 전해진다(Kwon, 2017). 저고리의 내부 구조에는 원․방․각의 형태가 담겨있다(Jung, 2011). <Fig. 1>은 맞깃 형태로 여며지는 대금형(對襟形)저고리다. 깃을 마주하면 사다리꼴로 동일한 넓이의 양 섶과 도련의 이어진 곡선으로 인해 원과 삼각 형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기하학 구조는 현재에도 유지되어 전통적 형태로 여겨진다. 이외에도 우리나라는 천․지․인을 활용하여 고대에 형성된 삼태극(三太極)의 색상과 수(數)의 개념에서 한국만의 음양의 예를 찾을 수 있다(Im, 2021;Kang, 2000).
샤머니즘은 범세계적으로 보편적인 민간신앙이지만 인류학자 시로코고로프(S. M. Shirokogoroff)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샤먼이 원시종교가 연계된 독특하고 특수한 형태라고 정의한다(Han, 2013). 한국 전통복식의 원류인 스키타이계 복장은 실용성과 주술성을 더한 샤머니즘적 요소를 포함하여 전파되었다(Kim, 2007). 우리나라는 토속 신앙인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이후 음양오행과 외래사상인 유․불․도교가 유입되면서 한국적 문화로 정착하게 된다(“Thought”, n.d.). 동양미학이자 한국의 사상인 유․불․도교 역시 우주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다(Choi,2010). 특히 한복은 삼교의 종교․문화적 전통을 가진 지역적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Lee, Kim, & Son, 2011). 조선의 국교인 유교는 복식에도 영향을 주어 검소, 실용, 예의 표현과 실행을 위한 목적이 중시되었다. 또한 기(氣)의 흐름과 조화를 중시하는 도교의 영향은 의복에 동양적 공간 개념을 담았다. 그 중에서 누비는 정신적 청렴을 기원하는 불교와 유교의 종교적 정서를 담고 있다(Lee, 2008).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승복의 평상복인 납의(衲衣)도 점차 한국적인 것으로 변화하였다(Go, 1997). 우리나라 누비는 긴 실처럼 장수를 염원하거나, 누비골을 밭에 비유해 수확의 풍요를 기원하기도 한다. 고행의 수련방법이었던 납의에서 유래된 누비옷 <Fig. 2>는 일정한 간격의 땀으로 원단의 식서를 따라 곧게 누비어 형태적으로 점(○)․면(□)․선(△)을 모두 인식할 수 있다(Lee, 2008). 이처럼 한국의 전통복식은 종교적 정서에 기복신앙 등의 주술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샤머니즘의 근본 원리인 음양오행은 도교의 기반이기도 하다. 음과 양은 각자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조화롭게 짝을 이루어야 작용한다. 이러한 음양오행은 의복에서 색상이나 ○․□․△의 형태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장저고리에서 발전한 당의는 도련의 둥근 곡선미와 트임이 특징인 저고리이다. 당의는 일상생활에서 남자의 도포에 준하는 의례복으로 착용하였으나, 여성의 복요(服妖)차림으로 인해 소례복으로 착용되었다. 음양에 따르면 상의는 양이고 하의는 음으로 상․하의 균형이 반반이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가면서 여성 저고리의 품이 줄어들고 길이의 비율이 짧아지자 이러한 차림을 복요라 보았다. 긴 당의는 18세기 이후부터 이전보다 착용이 확대되었고 상․하의 균형을 위해 남성 학자들이 여성의 저고리 위에 착용하도록 권고하였다(Chang, 2011). 즉, 개체의 구성에 관한 원리인 음양은 의복의 균형까지도 적용되었다.
특히 유교적 영향이 컸던 조선 후기에는 사회상과는 다른 여성의 의복도 존재했다. 기본 구조에서 짧고 좁아진 저고리는 억압된 사회 구조에서의 여성 심리가 반영된 현상이다(Ryoo, 1996). 당코목판깃의 삼회장저고리(Fig. 3)는 18세기 동시대 여성 저고리의 보편적 형태이다(Song, 2012). 고대 저고리의 선(線)이 유래가 되었던 무는 줄어든 품에 맞춰 곁마기까지 이어졌다(Seo & Kim, 1990). 조선 후기로 가면서 곁마기의 회장은 신분에 대한 억압된 심리적 모순과 갈등의 해소를 위한 표시였다(Ryoo, 1996; Fig. 4). 삼회장 저고리는 19세기 전후에 기녀도 착용하였지만, 일반적으로 의례 상황에서 반가의 여성들만 입을 수 있었다. 즉, 양반층 여성들의 사회 활동 통제와 신분적 갈등 속에서 곁마기의 회장(回裝)을 통해 이를 시각적으로 드러내어 심리적인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한국 전통복식은 원․방․각의 기하학 도형을 통해 인간을 소우주로 보는 한국의 내재된 사상과 철학을 해석할 수 있는 의복이다. 한복의 기하학적 구조는 한국적 사상에서 기원하며,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의 근원적 조형원리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여성이 자유로웠던 조선 초기와 달리 성리학과 유교로 인해 여성의 사회적 활동 범위가 점차 줄어들면서 억압과 제한에 대한 그들의 의식이 의복에 표출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전통사상과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현상도 복식에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하학적 도형이 한국의 전통사상에서 가지는 의미를 정리한 표는 <Table 1>과 같다.
Ⅲ. Geometric Abstraction Art
고대부터 존재한 기하추상은 20세기에 명명되어 현대예술의 주요한 경향이 되었다. 기하추상 예술은 정신적으로 미래적인 경향과 연결되며 예술가가 관객에게 철학적․지적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 중점이다(Kim, Lim, & Chung, 2024). 본 장에서는 미술사가이자 미학자인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 이론을 통해 기하추상의 특성을 분석하여 도출하였다.
1. Geometric abstraction
기하추상은 특정 시대의 사조가 아니라 추상 회화의 한 유파로 정의된다. 이는 점과 선 그리고 면의 기하학 형태와 원색으로 구성되어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회화의 한 경향이다(MMCA, 2023). 즉, 실제 대상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여 비재현적으로 표현한다. 추상(抽象)은 대상의 보이지 않는 정신이자 질서인 상(象)을 꿰뚫어 보는 것이다(Kim, 2022). 따라서 기하추상은 외형적으로 점, 선, 면, 입체로 구성된 기하학 도형의 기본 요소와 색채를 가지며, 내적으로는 추상 예술의 특징인 고유의 표현적 목적과 분석적인 정신의 작용이 더해져 작가의 목적 및 상징을 실현한다(MMCA, 2023;Osborne, 1981/2001). 기하추상의 대중화는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 의한 발견이지만, 이러한 예술의 형태 표현은 고대부터 유사한 형태로 사용되어 왔다(Google Art & Culture, n.d.). 가장 대표적인 예로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Fig. 5)는 사후세계에도 삶이 지속되도록 영원불변성을 강조한(Malek, 1999/2003) 모뉴멘트 건축으로, 기하학 조형 속에 그 의미를 담았다. 내세를 중시한 이집트인은 땅의 기운을 최대한으로 받기 위한 사각형과 하늘․땅․영혼을 받아들이기 위한 삼각형으로 입방체를 형성했다(Park, 2005). 또한, 고대의 기하학은 직선이나 곡선의 교차로 이루어지는 추상적 문양에서도 나타난다(World Happy Books, 2017). 국내에서는 고대 토기의 빗살무늬나 가야시대 종장판갑(Fig. 6)의 와문(渦文)처럼 추상적 표현으로 상징화하여 실생활뿐만 아니라 벽사 및 의례적 용도로 사용하여 정신적 위안을 삼기도 했다. 기하학을 활용하여 사회적 언어로서 각 집단의 공통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러한 예술은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에서 기하추상으로 불리며, 가장 위대하고 지속적인 운동의 하나로 여겨진다(Gooding, 2001/2003). 산업혁명 이후 유럽은 추상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문명 밖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공통된 심리를 원시적 민속품을 통해 재현하였다(Yun, 2011). 그러나 이러한 현대 추상의 출발점인 입체주의는 원시주의에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하였지만, 작가 개인의 의미가 담겨있다(Lévi-Strauss & Charbonnier, 1961/2016). 추상 예술이 등장했던 1910년대 러시아와 독일 등 기계문명이 활성화된 서유럽에서는 입체파를 근원으로 하여 구축주의, 데 스틸, 바우하우스 등에서 모더니즘의 핵심인 기하추상이 나타났다(MMCA, 2023). 폴 세잔을 시작으로,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1879-1935)와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 그리고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등의 이성 우위의 미술은 기하추상의 기반이 되었다.
처음으로 극한적인 기하추상이 시도된 작품은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Black square, 1915; Fig. 7)으로 전해지며, 당시 시대를 빗대어 자연에는 없는 순수한 형태의 사각형으로 세상의 부재와 소멸을 표현하여 무(無)를 의미했다. 예술을 절망상태의 피신처로 사용한 것이다(Lee, 1994). 직관적 통찰의 정신성과 종교적 내세관을 의미하는 그의 기하학 개념은 몬드리안뿐만 아니라 균형과 질서를 통해 보편적인 미의 조형양식을 추구하는 데 스틸(1917) 유파에도 영향을 미쳤다(Kim et al., 2014;Yun, 2011). 데 스틸을 창간한 되스부르흐(Theo van Doesburg, 1883-1931)는 기하학의 도형을 활용하여 새로운 기계미학으로 보편적인 예술을 만들었다. 또한, 바우하우스의 초대 교장인 그로피우스는 보링거의 영향을 받아 1차 세계대전으로 혼란해진 국가를 재건하기 위한 새로운 디자인으로 기하학적 형태에 접근하였다(Wingler, 1978/2001;Zeleniuk, 2023). 추상화의 선구자인 칸딘스키는 예술을 정신의 표현으로 여기며 바우하우스에 이르러 기하 추상을 발전시켰다. 그의 작품은 선과 중앙 초점 없이 배열된 단순한 기하학적 모양으로 유명하다. <Fig. 8>은 정확한 선과 단순한 기하학 형태의 조밀한 구성이 특징이었던 바우하우스 기간의 작품이다(The Museum of Modern Art [MoMA], n.d.b). 칸딘스키는 신지학(神智學)과 내적 경험을 통해 기하학적 요소, 색상, 배치 및 상호 작용이 관람자에게 신체․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분석하여 구성하였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한 신지학은 그리스어의 신(theos)과 지혜(sophia)를 합친 단어로, 종교와 철학의 우주적 세계관이 융합되어 있다(Hong, 2020;Yang, 2001). 이들은 전쟁으로 혼란해진 유럽 사회가 가진 기존의 불확실한 가치를 거부하고 순수하며 절대적인 형태를 추구하였다. 추상은 외부의 모습이나 사회적 현실과 무관해 보이는 형태와 달리, 사회․역사적 맥락이나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즉, 현대의 기하추상은 공통의 사회적 언어보다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철학이나 이념을 표현한다.
기하추상이 명명되어진 발생 초기의 유럽과 2차 세계대전 후 중심지가 된 미국의 기하추상은 경향의 차이가 크다(Dabrowski, 2004;Kim et al., 2024). 추상화의 기하학적 경향은 유럽의 영향을 받았지만, 전후의 기하추상은 세계로 확산되며 다양한 조류로 전개되었다. 예를 들면, 기하추상의 후기 사조인 하드에지는 형태적 구성의 공통점은 있으나 기하추상의 근본인 정신적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Kim, 2011). 이처럼 기하추상은 기하학 형태를 기반으로 다양한 유파로 분화되었지만, 이를 추구한 작가의 정신성이나 철학은 희석되거나 변화되었다(Kim et al., 2014). 기하 추상은 그 기원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과 의미를 통해 지속되어왔다. 고대의 기하추상은 외부의 자연현상이 인간에게 공포를 주어 형성되었다면, 20세기에 부활한 기하추상은 문명화 이후에도 적대적 현실이나 새로운 변화로 인해 다시 외부와 낯설어지며 형성되었다. 이처럼 기하추상은 시대․사회적 상황에 따라 내용은 변모하지만 내적 불안함의 극복, 종교나 이념을 통한 정신적 대처, 각 문화의 합리적 질서라는 발생 요인은 유사하다. 기하추상은 현재까지도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남아있다.
2. Wilhelm Worrionger’s abstract impulse
추상이라는 개념은 독일의 미술사학자인 빌헬름 보링거가 박사 학위논문을 통해 최초로 사용했다(Kim, 2010). 보링거는 추상의 개념을 미술사 연구에 도입하고 예술의 형성을 정신적 의욕으로 접근하여 내적인 요인에서 해석한다. ‘추상과 감정이입(1907)’은 비유럽 미술을 미술 담론에 통합하고 해석한 논문으로, 양식심리학이라는 부제로 출간되었다(Murray, 2003). 보링거는 리글(Alois Riegl)의 예술의욕 이론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아 이를 추상충동의 개념에 구체화하고, 내적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형태에 초점을 맞췄다(Bushart, 1995). 이처럼 정신적 양식론의 흐름인 보링거의 양식심리학은 양식의 발전사를 인간의 ‘예술 의지’라는 심리학으로 접근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보링거는 미술사를 심리학으로 분류하면서 당대 인류의 정신․문화적 맥락과 연관하여 미술사의 영역을 넓혀주었다. 그는 저서를 통해 수천 년을 아우르면서 기원에 관계 없이 모든 예술 작품에 적용될 수 있는 패러다임인 기본 원리를 확립했다(Less, 1988). 그는 예술의 창조적 행위를 심리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추상과 감정이입의 양극성으로 구분하였다. 그 중 추상충동은 공간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어 무기적이고 추상적인 합법칙성에서 자기 미(美)를 발견하는 것이다(Worringer, 1908/1967). 이러한 추상충동은 여러 민족이 외부세상과 우주 현상에 의해 느끼는 인간의 내적 불안이라는 심리적 태도를 전제로 한다. 이로 인해 종교적 의미에서는 공포스러운 현상의 초월과 연결되며, 심리적 요구를 만족시킬만한 예술의 추상성과 종교성의 연관성이 설명된다(Čačić, 2023). 예술의 정신세계와 종교의 내재적 초월성이 같은 맥락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Kim, 2010). 그는 고대의 원시 민족들이 자신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미지의 혼돈을 두려워했고, 이러한 두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질서와 통제를 창조하기 위해 추상미술을 창작했다고 주장한다. 보링거는 추상충동의 근원적 형태를 기하학적 추상이라고 설명한다(Worringer, 1908/1967). 외부에 대한 불안의 감정은 예술적 창조의 근원이었으며, 순수한 기하추상은 인간의 정신이 잠시 멈출 수 있는 휴식처이자 평정의 수단이었다(Worringer, 1908/1967). 보링거는 인간 내면의 혼란에서 유일한 휴식처가 되어 줄 순수 추상을 불안에 대한 방어 기제로 판단했다(Kim, 2023). 즉, 추상충동의 결과물은 기하학적 합법칙성을 통해 혼돈된 상태의 불안함 대신 그와 분리하여 최대의 행복 가능성을 제공한다.
보링거는 이러한 추상충동의 결과로 평면화, 공간표현의 억제 그리고 단일 형태라는 3가지 특징을 강조했다(Worringer, 1908/1967). 그는 평면을 통해 기하추상과 촉각을 연결시켰다(Glover, 2012). 어떠한 대상이 입체성을 가져서 그림자가 생기면, 인지과정에서 다른 지각과 결합되어 대상의 객관적 사실들이 주관적으로 흐려진다. 즉, 공간적 착시를 피할 수 있는 평면을 선호하는 것은 내면의 불안감을 극복하는 기법이다. 그래서 고대 민족은 시각적인 주관성을 피하고자 평면으로 촉각적인 객관성을 선호했다(Worringer, 1908/1967). 이로 인해 공간에 의존하지 않는 평면은 대상의 개성이 살아있는 불가분의 단일 형태로 개별화된다. 단순하고 명확한 단일형태는 시각적 안정성을 취할 수 있는 순수한 형태이다(Glover, 2012). 추상충동을 설명하는 고대 문화의 예로는 이집트와 비잔틴 문화가 대표적이다. 보링거는 피라미드처럼 입체적이라도 평면적으로 보여질 경우에는 추상의 예술적 형식을 획득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외에도 이집트의 대표적 평면화인 부조는 사후에도 자신의 존재를 보호하여 불변함을 묘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Jin, 2021). 또한, 비잔틴의 모자이크는 추상적인 기하학 형태를 조각으로 평면에 표현하여 신앙적 세계관을 담아 초월성을 열망한다(Worringer, 1908/1967). 이러한 추상미술은 대상을 보다 영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심리적 표현이며, 일탈이나 결핍이 아니라 긍정적인 충동을 반영한다(Holdheim, 1979;Purgar, 2020). 따라서 대상의 추상화는 평면의 범위에서 표상을 추상화하여 관조자가 안심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보링거에 따르면 추상은 원시 및 고대 미술뿐만 아니라 현대 표현주의의 특징이기도 하다(Ionescu, 2016). 그는 추상충동 이론에서 혼돈의 감정과 질서의 필요성을 특징으로하는 공유된 정신 상태를 통해 고대와 현대를 연결하는 방법을 기하추상으로 제시했다(Glover, 2012). 보링거가 서술하는 추상미술은 표면적인 외부환경이 아닌, 인간에게 내면적 불안이나 불균형이 존재할 때면 어느 시대에서나 추상충동이 등장할 수 있다. 추상충동은 모든 예술의 초창기에 존재하지만, 그리스나 다른 서양민족처럼 점차 감정이입 충동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추상충동이 영구히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해당 민족의 문화적 단계가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Worringer, 1908/1967). 이를 통해 보링거는 각 문화의 미에는 우열이 없으며, 추상과 감정이입의 차이만이 존재하여 지역․시대 등에 따라 각 민족의 미의식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Chang, 2022). 이처럼 비교미학 방법론의 하나인 보링거의 이론은 상이한 문화와 시대의 넓은 범위를 비교할 수 있다(The Korean Companion to Asthetics, 2007). 양식적으로 보링거의 이론은 외적으로 순수 기하학적 추상의 형태이며, 내적 원리는 인간의 ‘예술 의지’인 정신세계가 양식 변화의 주체이다. 그는 각 예술에서 추상과 감정이입 중 어느 것이 우세한지를 관찰하는 것은 중요한 심리적 특성을 제공하고, 이러한 특색과 그들의 종교 및 인생관이 일치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언급한다(Worringer, 1908/1967). 따라서 보링거의 양식심리학은 정신적 맥락에서 서로 다른 문화의 영역이나 시간적인 간극을 연결할 수 있는 예술이론이자(Lee, 2023) 기하추상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이론이다. <Table 2>는 추상충동의 원인과 특징이자 내․외적 특성을 분석한 표이다.
3. Geometric abstraction characteristics based on Wilhelm Worrionger’s theory
앞서 살펴본 기하추상의 표현양식은 기하학적 형태와 작가의 목적 및 상징인 정신적 작용을 기반으로 한다. 기하추상은 주로 서양 및 현대의 미술, 건축, 공예품과 관련되어 연구되고 있지만, 한국의 고대 미술이나 전통문화 및 사상을 분석하는 연구(Kang, 2011;Kim, 2021;Lee, 2011)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본 연구는 기하추상의 양식사적 해석을 정립한 빌헬름 보링거의 시선을 연구의 관점으로 한다. 보링거의 추상충동 이론은 비교미학적 방법론으로 시대, 문화, 국가가 다르거나 예술의 형식이 다르더라도 비교가 가능하며 각 문화의 양식의 다원성을 인정하였다. 특히, 그는 전통에서 현재의 예술을 이끌어내는 구속력 있는 원리를 예술에 대한 이해의 근간으로 삼는다(Bushart, 1995). 추상충동의 원인인 내적 요인은 인간의 본능이나 심리적 필연성으로 인한 예술 의지이다. 보링거의 개념에서 기하추상은 순수한 창조적 원리이며, 자연과 우주의 질서에 인간의 특수성을 부여하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Purgar, 2020).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충동은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한 정신적 활동에서 나타난다. 이론에서 도출된 추상충동의 원인은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외부세계와 우주 현상에 의해 느끼는 인간의 내적 불안이다.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 의지가 예술적 창조의 근원이 되었다. 두 번째는 두려움에 대처하기 위한 인간의 종교적 초월 의지이다. 신과 예술을 통해 정신적 공포를 완화하고 종교 및 이념적 가치관을 확립하였다. 세 번째는 불안과 두려움의 안정을 위한 시각적 휴식처 생성이다. 지역․상황적 맥락에 따라 자체적인 무의식의 기제가 고유한 정신의 표현을 통해 미적 가치와 질서로 나타난다. 따라서 기하추상 예술은 내적 불안의 극복, 종교적 믿음 또는 이념적 체계의 확립, 그리고 각 민족 및 문화만의 안정적 수단이라는 원인으로 나타난다.
본 연구에서는 보링거의 이론에서 분석한 기하추상 예술의 특성을 통해 20세기 기하추상의 내적 특성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첫째, 기하추상의 심리적 전제인 인간의 내적 불안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예술성이 나타난다. 특히 보링거는 예술적 창조의 근원을 외부에 대한 불안의 감정으로 보았다. 둘째, 대상 속에 내재된 영적인 차원인 초월성이다. 보링거의 이론은 공포스러운 현상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정신적 요구를 반영한다. 고대에는 공통의 사회적 언어를 통해 종교적으로 풀어갔다면, 현대에는 개별의 종교뿐만 아니라 이념이나 철학을 예술에 표현하여 정신적 위안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각 문화권의 미적 감각이나 가치관이 드러나는 시각적 안정성이다. 보링거의 이론에서 대상의 개성이 살아있는 불가분의 단일 형태란 시각적 안정성을 취할 수 있는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를 의미한다. 현대의 기하추상은 외부의 변화에 명료한 기하학을 활용하여 각 문화 또는 작가가 추구하는 합리적인 질서를 형성한다. 추상적 형태는 문화나 민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이를 통해 인간은 불안을 극복하고 안정을 느낄 수 있다.
본 장을 통해 현대 기하추상의 유래부터 발생 요인을 살펴보고, 보링거의 기하추상 관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본 연구에서는 20세기 기하추상 예술과 빌헬름 보링거의 이론에서 도출된 내적 요인의 특징들을 반영하여 분석한 결과, 공통된 기하추상 예술의 내적 특성은 예술성, 초월성 그리고 안정성으로 나타났다. 또한, 세 가지 요인은 대상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다. 도출된 기하추상 예술의 내적 특성을 정리한 표는 <Table 3>과 같다.
Ⅳ. The Mental Similarities Between Traditional Korean Costume and Geometric Abstraction Art
형태적 측면에서 복식의 외적인 표현방식은 형식을 파악하는 것을 의미하며, 내적인 표현방식은 미의식을 살피는 것(Wölfflin, 1929/1940)이다. 본 장에서는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충동의 내적 특성을 기준으로 한국 전통복식과 기하추상 예술에서의 표현방식을 비교하여 정신적 유사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1. Overcoming anxiety through artistry
한국의 전통복식과 기하추상 예술은 외형적 구성 요소 외에도 내면적으로도 유사성을 보인다. 첫 번째 유사성은 겪어보지 못했던 외부에 대한 내적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나타난 예술성이다. 예술성은 예술적인 특성을 뜻하며, 비예술은 예술적 사고와 행동 방식의 영향을 받는 상황과 과정을 통해 예술화가 된다(Naukkarinen, 2012). 저고리 구조의 원형은 시대가 변하여도 성별과 지위에 관계없이 동일하다. 한국의 전통복식은 ○․□․△의 옷꼴을 통해 인간을 소우주로 여기는 내재된 사상을 반영한다. 기하학 도형은 원․방․각의 조화를 추구하는 샤머니즘의 우주관과도 연결된다. 우리 민족은 사후세계에 큰 의미를 두었고, 외부의 재앙에 대비하고 안정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토착 신앙인 샤머니즘으로 신성시하거나 기원하였다. 샤머니즘은 세상의 초자연적인 현상을 극복하거나 풍요를 기원하는 등 인간이 해석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고대 한국인은 이를 바탕으로 외부의 자연현상 등의 불확실한 혼돈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며 예술로서 나타내었다(Park, 2018). 보링거는 추상예술을 인간과 우주 그리고 외부 현상의 관계인 심령적 상태가 인간에게 영감을 준 내적 불안의 결과로 설명한다(Glover, 2012).
보링거의 이론에서 도출된 예술성은 추상충동의 요인 중 불안을 통해 비유기적 형태의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다. 즉, 외부 혼돈에 대한 극복을 순수 추상을 통해 방어기제로서 표현한 것이다. 한국 전통복식에 담긴 원․방․각의 조화는 자연의 법칙이나 재해를 이해하여 극복하고자 하는 의미를 볼 수 있다. 조선 후기 초반의 저고리(Fig. 9)를 보면, 주로 사각형이 기반이 되고 삼각형과 사다리꼴의 부차적인 부분이 더해져있다. 평면적으로는 도련의 곡선으로 인해 원의 형상을 담고 있다. 한복은 기하학 구조를 통해 우주에 대한 상징과 인식 체계를 표현하였으며, 한국인들은 보이지 않는 내적 세계인 인간의 정신을 중시하였다(Chae, 2022). 이처럼 형태적 의미를 중점으로 보면 모두 예술성에 포함된다. 인간를 소우주로 여긴 한국인들의 예술 의지는 조선 후기에 사회적 현상을 반영하면서도 기하학 구조를 기반으로 의복에 의미를 더하였다. 이를 정신적 측면에서 분류하면, 천․지․인의 상징을 담고있는 보편적 원형인 민저고리와 의례용으로 발전하며 계층이 표현되는 당저고리(Fig. 10) 또는 장저고리 총 32점 그리고 혼란한 사회에서 회장을 통한 계층적 분류로 안정감을 얻고자 한 회장저고리 31점이 해당되었다.
기하추상에서도 기하학을 통한 창의적인 표현이나 기법으로 인간의 내적인 불안을 표현하는 예술성이 나타난다. 말레비치는 절대주의 예술에 대해 인간이 처한 상황의 부조리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욕망에 기초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추상이 등장한 배경은 문명․사회 밖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였으며, 전쟁 후의 유럽에서는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사회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바라면서 명료한 기하학의 형태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추상미술의 정당성은 인간에 내재된 무의식적 표현이자 시대를 초월한 형태인 기하학 형태에 있다(Park, 2003).
데 스틸을 이끌었던 되스부르흐의 <Fig. 11>은 파괴된 사회가 아닌 구축의 시대를 위해 사각형과 색채를 활용하여 건축을 강화하기 위한 요소로 제작한 건축의 도면이다. 건축 설계도임에도 음영을 주지 않고 면 자체로 공간성을 표현하여 색과 선을 통해 평면 속에서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이처럼 경직되고 파괴된 사회 전반의 무질서와 내재된 혼란에 대해 기하학 형태를 통해서 이상적인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 질서로 가시화하였다(Yun, 2010). 이외에도 몬드리안과 건축가 리트벨트(Gerrit Rietveld, 1888-1964) 등은 기하학을 통한 새로운 예술을 통해 전쟁의 혼란 이후 유럽을 새롭게 재건할 수 있다고 믿었다(MoMA, n.d.c). 따라서 당시 예술가들은 기하추상을 통해 새로운 질서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목표였다.
한국의 전통복식과 기하추상 예술은 인간의 내적인 불안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적 맥락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한복의 기하학 구조는 천․지․인의 상징을 담고 있으며, 새로운 사회인 조선 후기에도 내면의 불안감을 기하학을 활용한 형태로 극복하였다. 특히, 한국 전통복식은 고대에 형성된 샤머니즘적 의미의 기하학 구조를 기반으로 집단의 지속적인 예술로서 이어지고 있는 보편적 예술성이 보인다. 기하추상 예술은 일시적인 기간동안 개인 또는 소수 집단이 하나의 유파를 형성하는 예술의 경향이다. 20세기 유럽의 기하추상은 파괴적인 혼란 이후 기하학을 통해 질서를 창조하여 사회 밖으로 도피하거나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도피적 예술성이 나타난다.
2. Transcendence for spiritual solace
두 번째 유사성은 정신적 위안을 위한 종교적 믿음 또는 철학적 이념을 통한 초월성이다. 초월성이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으로, 현상이나 종교 등을 통해 현실을 넘어 신적 영역에 이르는 것이다. 추상미술에 대해 종교와의 연관성을 설명한 브리옹은 인간이 신적인 것에 가까이 갈수록 사실적인 표현으로부터 멀어짐을 언급했다(Kim, 2010). 한국 전통복식의 구성에 나타난 형태와 상징성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에 기인한다고도 본다(Jung, 2011). 도교와 유교의 영향인 천인합일 사상은 인간과 신의 조화로운 관계와 연결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세계관이다. 과도기 형태인 해평 윤씨의 당의(Fig. 12)는 대렴의로 발견되었으며, 생전에는 의례용으로 사용되었다. 조선후기에는 초기의 장저고리가 의례용 저고리로 자리 잡게 되었고 염습의, 상례, 제례에서도 착용하는 예복 중 하나이다(Chang, 2011). 또한, 불교가 등장하면서 샤머니즘의 영향이 줄어들었고, 유교가 국교로 등장하면서 불교가 억압되었으나 유․불․도의 종교는 여전히 존재하였다. 의복의 공간 개념과 착장 구성 등에 영향을 준 도교와 유교 외에 불교는 직접적으로 유래된 누비옷이 있다. 종교적 의미가 깃든 누비는 우리나라에서도 실용성과 내구성 등의 이점으로 민간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Fig. 13>은 18세기에 유행하던 삼회장저고리이며, 40여년을 수절한 한산 이씨의 누비저고리이다. 점을 찍어 선으로 반복되는 누비 기법은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슬픔과 괴로움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효과가 입증되었으며, 정신적 청렴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다(Lee, 2002). 누비는 민속적 측면에서 행운, 풍요, 다남(多男)뿐만 아니라 제액초복의 주술적 의미도 가진다. 이처럼 한국 전통복식의 조형에는 삼교와 기복신앙 등의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보링거의 추상충동에 대한 요인 중 종교 및 이념은 예술이 실현되면서 현실의 공포 및 현상을 넘어 인간에게 정신적 위안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보링거는 종교적 의미에서 예술의 정신세계와 현상의 초월을 추상예술과 연결하였고, 여기에는 구원의 욕구를 반영하는 심리가 드러난다(Kim, 2010). 한복은 옷 자체에 마음과 정성을 담은 상징 기호를 함께 담고 있다(Korean Regional Humanities Resource Institute, 2018). 한국 전통복식에 나타난 천․지․인의 상징은 재앙을 면하고 길상과 번창을 누릴 수 있다는 천부경의 해석이 담겨있다. 한복은 대부분 각 가정에서 제작되며, 형태적 조화에 건강과 부귀 등의 기원과 희망을 담아 제작한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마름질을 옷의 근본으로 여겨 마르기 좋은 날을 정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복식은 구성에 내재된 점․선․면의 기하학 형태를 통해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거나 가족을 위한 기복신앙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한국 전통복식에서 정신적 측면의 초월성은 총 80점 전체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기하추상은 단순한 형태를 통해 작가의 정신 및 철학적 세계를 표현한다. 20세기 기하추상의 작가들은 신지학의 영향을 받아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관람자에게 영적이고 심리적인 영향을 주는 철학적 대응을 하였다. 칸딘스키와 클레는 신지학을 통해 정신적인 작용으로서의 미술을 추구하였고, 되스부르흐는 신지학 이전에도 금욕주의의 엄격한 기독교의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다. 말레비치는 기하학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인간의 정신적 힘을 표현했고, 몬드리안은 기하추상의 절제와 명료함으로 세상의 질서를 표현하였다(Lee, 1994;Yun, 2010). 몬드리안의 마름모꼴 작품들은 신지학의 영향이 잘 드러난다. 두 개의 삼각형이 위아래로 합쳐진 형태는 상반되는 힘이 합일되는 의미로서 영원한 균형을 얻을 수 있다(Yun, 2010). <Fig. 14>는 마름모꼴 구성 중 자유로운 구성으로 나타난 최초의 작품으로 개성과 감성을 제거하여 수직, 수평, 기하학의 조형요소를 통해 변하지 않는 정신적 세계를 나타낸다. 이를 통해 신지학이 추구하는 직관적 합일에 도달하여 신적 존재를 드러냈다. 몬드리안은 초월과 자유를 향한 균형이라는 목표에 이르렀으며, 미술 작품의 해석에 철학적 사유의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구했다(Yun, 2010). 이처럼 작가들은 개인의 종교적 신념과 철학을 통해 구원에 대한 강한 믿음을 표현하여 정신적인 대처를 하였다. 이에 대한 표현방법으로 대상을 단순화한 기하학적 추상을 통해 본질이 가진 형이상학적이고 초자연적인 정신을 나타냈다.
보링거는 두려움에 대처하려는 인간의 종교적 초월 의지가 추상충동을 일으킨다고 보았다. 한국의 전통복식과 기하추상 예술은 종교 또는 이념을 통해 시대 상황을 초월하거나 인간 내면의 염원 또는 초월적 의도를 표현한다는 맥락에서 초월적 의미의 유사성을 보인다. 한국의 전통복식은 고대부터 이어온 의복의 구성적 의미와 공동체 또는 가족에 대한 염원의 의도가 주를 이루는 내재적 초월성이라면, 기하추상 예술은 작가 개인의 정신적 세계 또는 신적 존재와 이념을 표현하는 종교적 초월성이라는 차이가 있다.
3. Stability expressed through cultural aesthetics
미의식은 문화마다 표현이 다르고, 현대의 여러 미술 사조들은 시대와 사회의 역사적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한국 전통복식과 기하추상 예술의 마지막 유사성은 각 문화의 특이성과 시각적 조화가 돋보이는 안정성이다. 한복의 구성에 담긴 동양의 문화 정신은 기를 중심으로 혼돈 속에서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음양오행의 원리로는 만물의 변화를 이해하고자 한다(Kim, 2009). 유교적 영향이 강했던 조선 후기에는 여성의 외출과 사회 활동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저고리가 외의(外衣)로서 다양한 종류로 발달하였다. 우리 옷은 개수의 차이가 있지만, 외의 안에 받침옷을 입는다. 받침옷은 저고리의 형태와 유사하며, 16~17세기의 홑 저고리(Fig. 15)나 적삼은 활동에 편하도록 네모로 만든 세모의 안정적인 무가 특징이다. 또한, 삼회장저고리(Fig. 16)에서는 통제와 심리적인 갈등의 표출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실용적 용도의 곁마기는 18세기 이후부터 곡선형의 장식적 선과 면으로 변화하였으며, 신분적 표출을 할 수 있는 장식이 되었다. 이러한 신분제도의 갈등으로 계층 간 복식경계선의 차이가 완화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사상과 문화적 요소들을 통해 조선후기로 가면서 당시 조선의 사회현상을 반영한 의복이 나타난다. 당시 복요 차림의 수용을 위한 대안의 하나이자 음양의 균형원리를 위한 의복이었던 당의는 소례복의 역할을 유지하였다. 17세기 후반부터 당의의 형태는 지역별 편차가 없는 하나의 유형으로 안정화되기 시작했으며, 19세기로 갈수록 품이 좁아지면서 당의(Fig. 17)의 긴 길이와 저고리의 작은 품에 맞춰 옆선과 도련의 곡선이 깊어졌다.
보링거는 기하추상을 규칙성이 가장 완벽한 스타일로 평가한다(Helg, 2015). 이러한 기하추상은 뚜렷한 형태를 특징으로 하여 지친 정신이 잠시 멈출 수 있는 휴식처이자 사색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기하추상은 심리적 영역을 시각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안정성을 이루고(Ionescu, 2016) 문화와 시대에 따른 미의식을 반영한다. 한국의 전통복식은 기본형을 통해 시각적으로 독립된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시대에 맞추어 사회와 동화될 수 있는 안정적인 구성이 나타난다. 저고리의 유형을 보면, 16~17세기의 적삼 6점, 17~19세기의 사회현상이 반영된 당의 11점과 18~19세기의 짧아진 민저고리 및 반회장저고리와 둥근 곁마기의 삼회장저고리 29점으로 총 46점을 분류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시대가 반영된 저고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기하추상의 구성은 기하학 형태의 독립된 개별 요소를 활용해 질서와 균형으로 상호관계의 조화를 이룬다. 현대의 기하학 형태는 기계문명으로 인한 재현의 불필요 및 대량생산 환경과 결합 되었으며, 형태적인 적합성으로 인간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단순한 형태는 질서와 규칙적인 조형으로 안정감을 주는 형태로서 시대적 상황의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몬드리안과 되스부르흐는 종교 및 철학적 사유관을 통해 현대의 혼란과 무한한 우주 공간 등을 기하학적 질서와 균형 및 조화로 표현하여 영원하고 안정된 상태를 이루었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시대에 따른 조형의 형태와 필요한 정신이 있음을 언급하였다. <Fig. 18>은 1920년대 도형화의 시대가 반영된 회화로, 파란색 원을 통해 정신적 안식을 의미하는 기하추상 작품이다. 그러나 원을 떠받치는 듯한 검정색 직사각형의 존재로 직선의 사각과 곡선의 원은 화폭에서 가변적 중심점으로써 공존하고 있다. 형태의 중심성이 가변적이라는 것은 균형이 적절히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이며 평온감을 준다(Kim, 2023). 칸딘스키는 기하추상 흐름의 중심에 있었던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점․선․면의 분석을 통해 기하추상 형태의 고유성과 내면의 정신을 입증하였다(Kim, 2023). 따라서 기하추상의 작가들은 데 스틸, 신조형주의, 절대주의, 바우하우스 등의 각 유파가 추구하는 기하추상적 정신과 질서를 충족한다.
보링거의 추상충동 이론은 시각적 안식처라는 측면에서 예술의 형태에 각 문화에 따른 미의식이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다. 한국의 전통복식은 평면과 기하학으로 구성된 기본형을 바탕으로 당시 한국 문화에 적합한 비율적 균형과 신분적 질서에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독자적 안정성을 보인다. 기하추상은 기계문명의 발달과 혼란스러운 사회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단순화된 형태를 활용하여 합리적 안정성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추상충동의 정신적 특성은 복합적으로 각 예술에 영향을 미치며, 심리적 요인을 매개로 하여 과거와 현재의 예술을 연결해 비교할 수 있었다(Fig. 19). 또한, <Fig. 20>은 한삼 및 적삼, 민저고리, 반회장저고리, 삼회장저고리, 당저고리, 장저고리 그리고 당의로 7가지 유형을 시대별로 분석하였다. 각 시대․문화적 특징과 저고리 유형 및 인물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분류하였으며, 선행연구에 따라 기하학적 형태 구성의 의미와 함께 분석하였다. 한국 전통복식의 예술성은 총 80점 중 64점인 80%가 해당하였으며, 그 중 18세기가 100%로 가장 높고 19세기가 가장 낮은 55.5%의 분포를 보였다. 초월성은 기하학 구성의 의미가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전체 해당한다고 보았다. 안정성은 총 80점 중 46점인 57.5%가 해당하였고, 19세기가 88.8%로 가장 높았으며 16세기가 18.2%로 가장 낮았다. 따라서 한국 전통복식은 기하추상의 정신적 관점에서 볼 때, 고대의 내적 불안과 조선후기의 혼란한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기하학의 예술적 결과물이 지속적으로 형성되었다. 아울러 기하학적 형태를 통한 초월적 의미가 기반이 되어 있으나, 후대로 갈수록 한국적 사상의 영향과 사회의 혼란이 강해지면서 독자적 형태가 구축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Table 4>는 빌헬름 보링거의 이론에 기초하여 한국 전통복식과 기하추상 예술의 표현 방식과 정신적 유사성을 정리한 표이다.
Ⅴ. Conclusion
본 연구는 동․서양의 공통적 요소인 기하학 도형을 활용한 한국의 전통복식과 기하추상예술의 정신적 유사성을 살펴보기 위해, 연구의 틀로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충동 특성을 활용하였다. 추상충동 이론을 통해 기하추상의 표현방식을 분석하고 내적 요인의 특성을 도출하였다. 이를 활용하여 한국의 전통복식과 현대 기하추상 예술의 정신적 유사성을 살펴보고 한국 전통복식 고유의 한국적인 예술성과 세계적 통용성을 고찰하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원형을 지니고 있으면서 가장 다양한 디자인이 나타난 조선후기 여성의 저고리를 대상으로 연구하였다. 국내 박물관 소장유물과 도식화 및 사진자료를 수록한 도록을 중점으로 분석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이론에 따른 기하추상의 특성은 공간표현이 억제된 평면화의 기하학 형태를 외형으로 한다. 내적인 요인과 특성은 외부에 대한 불안이 요인이 되어 나타난 예술성, 종교나 이념을 통해 두려움에 대처하는 초월성, 휴식이나 질서를 위한 시각적인 안식처의 필요로 이루어진 안정성으로 도출되었다. 둘째, 한국 전통복식과 기하추상은 보링거의 이론에 따라 기하추상의 내적 특성인 예술성, 초월성, 안정성의 정신적 맥락을 공통점으로 한다. 한국 전통복식은 천․지․인의 상징과 우주관을 담은 지속적인 형태를 활용한 보편적 예술성이며, 기하추상은 혼란스러운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일시적인 도피를 위한 도피적 예술성이 나타났다. 특히 초월성은 두 대상 모두 종교적 요인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 전통복식은 종교 외에도 형태적 상징과 신앙적 영향으로 공동의 염원을 표현한 내재적 초월성이 나타났고, 기하추상은 각 개인의 종교와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을 통해 신적 존재를 표현하거나 정신적 위안을 얻는 종교적 초월성으로 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시각적인 안정성을 형성하는데, 한국 전통복식은 기하학의 조형에 한국적 사상을 활용하여 시대 및 문화적 혼란에 대처하는 독자적 안정성을 보인다. 기하추상은 기계문명과 시대에 맞춘 형태로 구성하여 질서와 조화를 통해 합리적 안정성을 나타내었다. 마지막으로 보링거의 추상충동을 통해 한국 전통복식과 기하추상 예술의 정신적 유사성에 대해 연구해 본 결과, 한국 전통복식은 예술성 80%, 초월성 100%, 그리고 안정성 57.5%로 기하추상과 정신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전체 비율에서는 19세기로 갈수록 예술성보다 안정성의 비율이 높아져 본능적 방어기제로의 결과물보다는 이를 바탕으로 한 한국의 독자적 복식을 이루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예술성은 불안의 극복을 위한 방어기제, 초월성은 종교나 이념을 활용하여 두려움에 대한 정신적 위안, 그리고 안정성은 각 문화적 미의식의 표현으로 도출되었다.
이처럼 한국 전통복식은 기하학 형태와 전통사상 및 문화가 상호 영향을 주며 복합적으로 발전해왔고, 기하추상과 정신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 현대에서도 예술적 문화교류가 가능한 의복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기하추상의 표현방식이 지속 되고 있는 한국 전통복식은 보링거의 이론을 통해 높은 문화적 단계의 민족 복식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출토 유물 중 16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의 여성 저고리로 연구범위를 제한하여 동시대의 다양한 복식에 대한 유사점과 차이점을 모두 포함하지 못한 한계점이 있었다. 그러나 빌헬름 보링거의 추상충동 양식의 특성을 도출하고, 한국 전통복식에서 기하추상의 표현양식에 대한 특성을 분석함으로써 한국적 패션 및 디자인에 창의적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후속연구에서는 본 연구에서 도출된 추상충동의 특성을 활용하여 다양한 한국 전통문화의 현대적 활용에 대해서도 연구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 연구가 한국 전통복식의 현대적 예술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는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