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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6-0401(Print)
ISSN : 2383-6334(Online)
The Research Journal of the Costume Culture Vol.31 No.5 pp.573-585
DOI : https://doi.org/10.29049/rjcc.2023.31.5.573

Perception of the Neo-Confucian body in men’s dress during the Joseon Dynasty

Yoon Jung Ko, Eunhyuk Yim*
Ph. D. Candidate, Dept. of Fashion Design, Sungkyunkwan University, Korea
*Professor, Dept. of Fashion Design, Sungkyunkwan University, Korea
Corresponding author (ehyim@skku.edu)
September 11, 2023 October 18, 2023 October 19, 2023

Abstract


Comprehending the prevailing ideals of the body within a specific era requires grasping the intricate interplay between social phenomena and the evolution of clothing. Accordingly, this study investigates the distinctive facets of the perception of the Neo-Confucian body as reflected in men’s dress during the Joseon Dynasty. We examine a comprehensive body of scholarship, literature, and historical records concerning the body and dress. Additionally, we also employ a framework developed by M. Y. Kim, which categorizes the Neo-Confucian body in three ways: as the natural body, the cultural body, and the body as a fully-realized moral subject. Our findings unveil three crucial insights: firstly, guided by Neo-Confucian discourse positing appearance as a manifestation of innate energy (氣), men’s dress was deliberately designed to demarcate stylistic distinctions in women’s dress; secondly, the Chinese gwan (冠) was employed as a tool of self-cultivation (修身) to symbolize the legitimacy of Joseon’s Neo-Confucian governance; and thirdly, sim-ui (深衣), a philosophical emblem of Confucianism extensively represented across through an intensified exploration of historical sources, served as a means to consolidate the political standing of the Neo-Confucian faction. As a consequence of these factors, the attire of noble men conferred upon them both sexual and moral ascendancy as political entities; men’s dress became a visual manifestation of the legitimacy of their power, thus embodying Neo-Confucian ideals. This study carries significance by applying a discourse analysis approach to Korean dress research and elucidating the factors underlying the development of men’s dress during the Joseon Dynasty.



조선시대 남성복식에 발현된 성리학적 몸 인식

고 윤 정, 임 은 혁*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 박사수료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 교수

초록


    I. Introduction

    몸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정신과 육체, 자아와 타자,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총체적 담지체로서(Jeong, 2008), 몸에 대한 담론과 실천은 지배적인 사회관과 밀접하게 상응하는 은유라고 할 수 있다(Shilling, 1993/1999). 또한 원단을 사용하여 몸을 변형하고 은폐하는 복식은 몸을 참조하고 규정하며 새로운 관점을 부여함에 따라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권력에 의해 구성되는 정체성을 시각화한다 (Yim, 2011). 즉 몸은 사회 이념을 실천하는 장소이며 복식은 몸에 대한 관념을 표현하므로, 사회적 현상과 복식의 형성 및 변화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몸에 대한 고찰이 필수적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사람의 몸은 사상가들의 주요한 사유 대상이었다. 19세기까지 서양에서의 몸은 정신의 위대한 가치를 운반하는 수단이자 고상함을 표현 하는 도구로 이해되었다(Lee, 2012). 이성을 주체로 논리에 따라 대상을 명료하게 분석하는 서양사상에서는 인간의 정신과 외면을 분리하는 이원론적 사고를 통해 몸을 독립적인 구조로 규정한다(Yim, 2011). 반면, 동양사상에서의 몸은 정신과 엄격하게 독립된 것이 아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연관적 관계로 이해된다(M. Y. Kim, 2002). Hong and Park(2009)은 동양적 사유의 관점에서 사람의 몸을 하나의 기(氣)라는 측면에서 우주의 일부임과 동시에 그 우주의 운동을 본받아 따르는 소우주라 정의하였고, Kang(2007)은 동아시아 사상에서의 몸은 마음․사회․우주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뒤섞이는 장(場)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동양에서의 몸 개념은 몸과 정신을 분리하는 전통적인 서양철학과 달리 몸과 자아를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하는 일원론의 관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며, 나아가 우주의 질서와 인간과의 관계를 내포한다.

    조선을 건국한 유학자들은 세계의 중심을 신비한 신(神)으로 여기는 관습에서 벗어나 인간의 실제 삶에 관심을 두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합리적으로 판단 하고자 하였다. 그들의 사상적 이상은 주희(朱熹), 즉 주자(朱子)가 집대성한 성리학(性理學)으로, 조선 유교문화에서 성리학은 철학적, 문화적 담론의 보편적인 양식이 되었다(Lee, 2009). 성리학에서의 몸은 기운(氣)과 마음(心) 지각의 총체로서 몸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총합 이상을 의미하므로 마음과의 관계에서 논의될 때 온전한 의미를 지닌다(Ji, 2010). 따라서 성 리학적 몸은 사회의 관계망 속에 있는 체험과 실천의 주체인 행위자의 역할을 담당하며 육체와 정신이 일체화된 그 사람 자체로 정의된다. 이처럼 성리학에서의 인간에 대한 탐구는 몸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으며, 몸 담론의 실천을 가시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당시의 복식 체계에 그 인식이 발현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몸 담론을 바탕으로 복식과 패션을 고찰한 선행연구로 Hollander(1993)는 몸과 복식의 상호존중 관계를 강조했으며, Entwistle(2000/2013)은 몸에 대한 담론을 통하여 패션의 사회학적 위치를 규명했다. 또한 Kim(2013)은 인체를 보는 이론들을 종합하여 시대에 따른 몸에 대한 의식과 복식 및 패션과의 관계를 정리 한 바 있다. Lee(2003), Lee(2012), Yeon(2011)은 서양 철학자의 몸 인식 관점을 바탕으로 몸을 통해 권력이 행사되는 형식으로서의 남성복식을 고찰했으며, 나아가 Yim(2011)은 동양과 서양의 전통적인 몸과 복식에 대한 시각을 분석하여 복식 발달의 근원이 사회적 사상임을 밝혔다. 한국복식 분야에서는 사회적 사상과 복식 간의 관계 파악을 위하여 Lee(2000)Lee(2010)가 조선후기의 문헌자료에 나타난 당시의 복식관을 정리하였고, Lee(2007)는 유교적 의식이 복식문화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이처럼 시대적 사상과 복식과의 관계는 다수의 학자들에 의해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나 성리학에서의 몸 개념이 복식에 발현된 내용을 심도 있게 고찰한 연구는 미비하였다.

    한편, 많은 사회에서 사람의 몸은 성별을 기준으로 분류 및 정의되어 여성은 본능적인 자연에 가까운 것으로, 남성은 이성적인 문화로 대변되는 구조가 일반화되었다(Kim, 2013). 유교에서는 하늘과 땅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와 같은 위계적인 인간관계를 질서정연한 것으로 보았는데(Wiesner-Hanks, 2001/2006), 성리학을 근본으로 하는 조선 역시 인간사회를 평등이 아닌 차등으로 정의하며 철저한 등급의 질서에 따라 사대부(士大夫) 계층이 사회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다(Lee, 2000). 성리학의 차등적 질서는 음양(陰陽)의 개념으로 더욱 구체화되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바른 기와 치우친 기로 분류하였으며, 어떠한 종류의 생물에 비견하여도 언제나 바르고 통하는 기인 양 (陽)에 위치하는 존재는 인간 중에서도 남성이었다. 즉, 조선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상은 상류층 남성이었으며, 남성의 몸과 복식이야말로 성리학적 이념이 완전하게 표현된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이상적인 몸에 대한 담론이 발현된 남성복식을 분석하여 이를 바탕으로 당시의 사회적 이념 실천과 복식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에 따른 연구 문제는 첫째, 남성의 몸이 복식에서 갖는 의미와 성리학에서 남성의 몸을 인식하는 관점 고찰, 둘째, 성리학적 몸 담론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복식을 분석할 수 있는 이론적 틀 도출, 셋째, 성리학적 몸 인식이 표현된 조선시대 남성복식 사례의 분석과 특성 파악으로 설정하였다. 연구방법으로는 몸과 복식에 관한 연구, 문헌, 역사 기록물을 고찰하는 문헌연구와 M. Y. Kim(2002)의 선행연구를 주요 토대로 하여 사례분석을 병행하였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 복식의 형성 및 변화 원인 규명을 위한 방법으로 지배적인 사상과 결합된 몸 담론을 적용한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이를 통하여 조선시대 복식문화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Ⅱ. Background

    1. Men’s body and dress

    인간의 몸은 생물학적 물체로서는 성별이 정해진 자연의 존재이지만,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 형성되어 사회적 관계와 사건들에 반응하고 영향을 받는다 (Shilling, 1993/1999). Douglas(2003/2014)는 몸이 물리적 범주와 사회적 범주에서 겪는 경험의 상호 조응을 통해 구성된다고 봄으로써 강력한 사회적 통제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력을 강조하며 몸을 사회적 압력을 표현하는 매체로 정의하였다. Kang(2007) 역시 몸은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와 시대가 생성하는 문화의 영향 아래에 있으며, 몸을 이해하는 방식은 문화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의존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몸을 하나의 자연이자 사회적 용인에 따라 달라지는 구성물로서, 문화와 공존하며 경험을 만들어내는 장소로 파악하는 사고는 문화권의 경계를 넘어 몸을 이해하는 유용한 방법이 된다.

    몸의 요소 중 가장 활발한 논의가 일어나는 부분은 성(性)적인 측면이다(Kim, 2007). Connell(1987)은 주 된 사회적 불평등은 몸에 영구적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된 기준에 근거한다고 언급하였는데, 대표적으로 남성의 몸과 여성의 몸은 서로 다른 사회적 지위를 형성해왔다. 몸을 생물적 토대로 분석하는 자연주의적 관점은 인체의 능력과 한계가 개인과 외부의 관계를 규정한다고 본다(Shilling, 1993/1999). 18세기 이후 서양에서는 과학의 진보로 몸의 구성에 대한 세세한 파악이 가능하게 되었으나, 이는 역설적으로 여성 육체의 상대적 연약함을 공적으로 증명해 보이며 남성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근거 가 되었다. 생물학과 의학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모든 특성을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설명하였고, 여성의 몸에서 남성과 다른 부분은 변칙적이고 불완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Grosz & Lepervanche, 1988). 동양 의학에서도 이러한 성별 프레임은 유사하게 나타난다. 조선의 대표적인 한의학서인 동의보감(東醫 寶鑑)은 여성의 몸은 음기(陰氣)와 감정(感情)으로 인 해 남성보다 질병이 잘 생길 뿐만 아니라 여성의 질병은 복잡하고 치료하기도 어렵다고 서술하며 양기(陽 氣)에 속하는 남성의 몸을 인체의 기준으로 한다(Ha, 2018). 즉, 인체를 하나의 자연으로 보는 해석은 여성의 몸의 왜곡을 동반한 남성의 몸의 이상화를 통하여 남성에게 삶의 가치에 대한 우선권을 부여한다.

    한편, 구성주의적 관점에서의 몸은 사회관에 따라 산출되는 사회적 산물로서 유연하고 가변적인 존재이며, 몸에 대한 담론과 실천 방식은 사회의 가치체계라 할 수 있는 문화에 기인한다(Kang, 2007). Shilling (1993/1999)이 가장 영향력 있는 구성주의 접근법이라 칭한 푸코(Michel Foucault)의 이론에 따르면 몸은 전적으로 담론에 의해 변화하고 구성되는 대상이다. 푸코는 신체가 정치의 영역에 속하여 권력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으며(Foucault, 1975/ 2020), 권력은 지식의 통일체이고 지식 속에는 권력이 작용하고 있으며 권력은 그 작용을 위하여 지식이라는 형태를 요구한다고 했다(Yim, 2006). 부르디외(Pierre Bourdieu) 역시 사회 문화의 공간을 권력 계급이 상정한 위계화된 구조로 해석하고, 몸을 계급의 상징물이자 자본으로 간주했다(Kim, 2013). 즉, 문화를 인류 지식의 총체라 할 때, 사회적으로 구성된 몸은 문화적 방식으로 재생산되는 권력 행사의 장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학적 성(gender)은 지배와 종속 의 위치를 형성하고 권력의 우위에 있는 남성을 중심으로 한 패권적 남성성(hegemonic masculinity)을 조직한다(Connell, 1995/2013). 유학을 비롯한 동양의 사상에서도 몸과 사회의 연관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나아가 몸을 전체의 질서에 귀속시키는 경향을 보인다(Jeong, 2008). 또한 타자와의 관계에서 사회성을 획득하기 위한 몸의 수양 방법인 수신(修身)과 치신 (治身)은 국가 통치를 위한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는 방법으로써 다분히 권력지향성이 내포되어 있다.

    남성의 자연적 몸과 사회적 몸으로부터 부여된 남성성은 상호주체적으로 교류하면서 체화되어 하나의 장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시각적 수단이 바로 몸과 함께 움직이는 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Entwistle(2000/2013)이 사회라는 세계에서 자아를 구성하게 된 인간의 몸은 ‘옷을 입은 몸’이라 고 하였듯이, 사회적 담론으로 형성된 몸의 정체성은 복식을 통하여 드러난다. Goffman(1963)은 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몸이 보낸 정보를 분류하고 이 정보에 따라 서열화의 범주를 제공하는 ‘몸 관용구(body idiom)’라고 주장하며 그 대표적인 예로 복식을 제시 하였다. 즉, 몸과 가장 밀착해 있는 복식에 부가된 문화적 의미는 자연스럽게 몸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Entwistle, 2000/2013). 이러한 관점에서 복식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생산하는 요소이자 차이를 암시하는 기표로서, 권력이 규정한 바람직한 남성성과 여성성에 관한 개념을 시각화하고 개인의 성적 정체성을 권 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도구이다(Lee, 2006). “남성성은 생물학적 남성다움을 둘러싼 사회적 구성 물이자 복잡한 권력관계의 망으로 유지되고 지배적 문화의 틀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구체화된 패러다임” 이라는 관점에서(Park, 2009) 남성의 몸을 둘러싼 권력의 기제는 공고하게 구축된 거대 담론에 의해 형성 되며, 이 권력은 복식이라는 형태화된 구조물을 통해 행사된다고 할 수 있다.

    2. Perception of the body and dress within the Joseon Neo-Confucian context

    주자의 성리학은 조선 유학자들이 제도의 구상과 실천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궁극적인 원천과 기반으로 작용하였다(Lee, 2009).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학문적 구심점이 되는 학자를 내세워 각자의 논리로 세계관 을 형성하는 여러 학파를 조직하였으나 사람을 이해 하는 기본적인 원리는 모두 주자의 관점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성리학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은 천도(天道) 와 인도(人道)에 대한 것으로, 우리가 삶을 기탁하고 있는 이 세계의 질서와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적응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를 철학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Jeong, 1998). 즉, 성리학은 우주와 일체가 된 소우주인 인간의 생존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몸을 천지(天地)를 상징 하는 존재로 여겼다. 이에 주자는 사람을 동물과 구별 할 수 있게 하는 이성(理)의 작용을 성리학의 핵심 기 제로 삼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몸의 행동을 오륜(五 倫)과 같은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하였다.

    성리학의 사유체계에서 몸은 마음의 작용을 아우르는 매개적 의미를 지니는 대상이며, 감각기관의 개 별적 특성에서 발현된 감각지각인 인심(人心)과 직분의 지각에서 발현된 분별력인 도심(道心)의 작용이 몸 담론의 중심이 된다(Ji, 2010). 마음에 대한 논의는 주 자가 서경(書經)대우모(大禹謨)편의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켜야 진실로 그 중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人心惟 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는 구절을 설명하면서 시작되었다(Ji, 2010). 주자는 이 16자 심법(心 法)을 그의 저서 중용장구(中庸章句)의 머리말에서 ‘인심은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나오고, 도심은 성명의 바름에서 발현된다(其或生於形氣之私 或原於性命之正)’ 고 해설하였는데, 이와 같은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은 성리학의 근본정신을 내포하여 조선의 유학에서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었다(Cheon, 2009;Ji, 2010;M. Y. Kim, 2002). 주자가 주장하는 마음 작용의 원리는 인심에 의해 자연적 지각인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추 구하면서 이치에 따른 도덕성을 잃지 않도록 도심이 인심을 인도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스스로 주인 이 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Cheon, 2009). 앞서 언급하였듯이, 성리학에서의 마음과 몸의 관계는 상호 교차 되어 존재하며 인심과 도심의 작용은 지각의 총체로서의 몸에 드러나게 되어 한 개인의 인격을 나타내는 틀이 된다(M. Y. Kim, 2002). 요컨대, 몸은 마음과 기능과 실체가 다르지만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관계성하에 영향을 미치며(Shin, 2004), 도덕적 이치를 구현하기 위한 사회적 몸이 생명 활동을 위한 자연적 몸을 이끌어가며 체득되는 조화의 상태가 되어야 몸에 대한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M. Y. Kim(2002)은 이처럼 유기적인 영향 관계에서 설명되어 엄격한 구분에 따라 정의하기에 모호한 부분이 있는 성리학의 몸 개념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몸에 해당하는 신(身)의 개념을 인심도심설을 통해 ‘자연적 몸’, ‘문화적 몸’, 그리고 ‘도덕주체로서 완성된 몸’으로 분류하였다. 자연적 몸은 이치에 대한 분별력이라 할 수 있는 도심으로부터 절제되기 전의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 몸의 기관들인 타고 난 생물로서의 몸이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한다. 문화적 몸은 인심이 사적인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도의(道義) 수양으로 절제를 가능하게 하여 인간이 놓여있는 세계의 연결망을 통해 사회와 관계를 맺는 몸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도덕주체로서 완성된 몸은 인심도심설에서 중요하게 제기하는 정일(精一)의 완성으로 과불급이 없는 중도(中道)를 획득하게 된 상태이다. 따라서 문화적 몸으로서의 도의가 자연적 몸으로 들어가 개별 인간의 본래성을 회복하는 몸의 이중적 교차를 통해 온전한 성리학적 인격체로 거듭난 몸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孔子)는 자연인으로서의 몸과 사회인으로서의 몸을 종합적으로 이어주는 가교를 예(禮)라고 하였다(Jeong, 2008). 거가잡복고(居家雜服考)에 따르면, 주자는 옷을 제대로 알면 예의 반(半)을 생각하는 것 이라 하였고, 이를 인용한 저자 박규수(朴珪壽) 역시 옷에 대해 배우지 않으면 예가 편안할 수 없다고 언급 했다(Park, 1841/2000). 즉, 예는 몸의 행동에 언제나 수반되는 복식을 통해 발현되는 것이다. Lee(2009)는 ‘복(服)’이라는 글자의 의미가 군주를 섬기고 군주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상하관계를 나타내며, 예의 외재적인 규정이 복식제도의 기준이 되는 바 복식의 형상은 착용자에 대한 의경을 갖게 한다고 설명한다. 이와 같은 예와 복식의 관계는 사대부의 복식문화를 형성 하는 근간이었다. 조선의 지배층인 사대부는 관직에 진출한 학자 그 이상을 의미하는 집단으로서 특별한 도덕적 자질을 근거로 지도자의 역할을 맡은 것이 정당화된 존재였다(Deuchler, 1992). 따라서 그들은 복식제도를 통해 계급의 질서를 구분하는 정치적 권한은 물론 자신들이 윤리적으로 완성된 군자의 몸임을 드러내고자 하였으며, 이를 표현하기 위한 복식 구성의 근거는 성리학에서 규정하는 몸의 특성이었다. 결론적으로 성리학에서의 몸은 마음의 절제와 수양을 통한 예를 실천하여 통치의 기반이 되는 장소로서, 복식과의 관계에서 그 정체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

    Ⅲ. Neo-Confucian Body Perception in Men's Dress of the Joseon Dynasty

    1. Visualizing energy (氣) as a distinction between men’s and women’s dress

    성리학에서의 자연적 몸은 감각기관인 형기(形氣) 와 형기에서 비롯된 기질(氣質)이 절제되기 이전의 상태에 있는 몸으로(Ji, 2010), 사람의 바탕을 구성하는 타고난 개인성을 규정하는 것이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만물이 태어날 때 부여받는 기질의 차이를 통하고 맑은 기질을 바른 기인 양(陽)으로, 막히고 어두운 기질을 치우친 기인 음(陰)으로 나누었다. 이황(李滉) 은 기질의 차이가 외형적인 모습의 다름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은 동식물과 달리 양의 기운으로 태어나 머리가 하늘과 같이 둥글고 발이 땅과 같이 평평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H. Kim, 2002). 이러한 양과 음 의 이분법적 논리는 모든 생물 세계의 균형을 의미했지만, 인간을 분류하는 방법에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남성을 여성보다 우월한 대상으로 보았다. 즉, 주어진 기질에 따른 몸의 구분은 남성의 생물학적 우위를 합리화하는 이론에 사용되었으며, 이는 남성과 여성의 복식에 차이를 두는 근거가 되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비롯한 문헌에는 조선 여성들이 남성과 같은 형태의 복식을 입는 것을 ‘복요(服妖)’라 하며 비판하는 내용이 여럿 기록되어 있다. 복요는 괴상하고 경박한 복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풍속의 타락으로 인한 국가의 몰락을 경고하는 의미를 지닌 개념이다(Jeong, 2012). 조선시대에는 복요로 논란이 되는 여러 복식 풍속이 있었는데, 그중 여 성의 남성 복식 착용은 법도를 문란하게 만드는 대표 적인 문제로서 조선전기인 세조 2년(1456)부터 거론 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직제학(直提學)이었던 양성지 (梁誠之)는 복색(服色)의 재정비가 필요함에 따라 여성의 복식 제도 역시 자세히 정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 리며, 당시 여성들이 상의와 치마 사이에 남자의 장의 (長衣)를 껴입어 세 겹이 되도록 하는 차림이 유행하는 현상의 문제점을 호소했다(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NIKH], 1362-1863a). 조선전기 남성의 장옷 유물(Fig. 1)은 여성의 장옷으로 알려진 직령 포와 크기와 형태가 유사하여 착용자의 성별을 구별 하기 어려울 정도이다(Jeong, 2012). 이후 성종 2년 (1471)에도 부인이 남자의 옷을 입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등장하였고(NIKH, 1362-1863b), 17~18세 기의 출토복식에도 저고리 속에 장의가 겹쳐진 유물이 있는 것으로 보아(Fig. 2) 여자의 남복(男服) 착용은 오랫동안 사회적인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이 문제로 제기된 시기에는 각각 차이가 있으 나 서로 다른 성별의 복식 착용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를 한결같이 복식 제도가 성별과 계급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라 밝혀 남성과 여성의 외양이 같을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여성들의 원삼(圓衫)에 흉배를 붙이는 것 역시 괴이한 복장으로 규정되었다. 양성지는 성종 9년(1478), 여성의 복식 풍조가 문란하여 황색 옷을 지어 입고 원삼이라고 부르며 그 위에 흉배(胸背)를 붙이고 거리를 다니면서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비판했다 (Jeong, 2012). 성종 16년(1485)에 간행된 경국대전 (經國大典)에 따르면, 흉배는 정1품부터 종3품에 해당하는 당상관이 집무 시에 입는 상복(常服)에 부착할 수 있는 것으로 관리 중에서도 상급자임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 Jeong(2012)은 당시 흉배를 붙인 여성의 원삼이 남성의 관복제도와 유사하기 때문에 유학자 관료의 시선에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 한다. 또한 연산군 11년(1505)에 사라능단의 값이 올라 형편이 되지 않는 관리는 여자의 옷으로 단령을 만들었기 때문에 조하(朝賀) 또는 조참(朝參) 때면 반 이 상이 여자의 원삼을 입고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NIKH, 1362-1863c), 16세기까지 남성의 관복인 단령은 여성의 원삼으로 대체하여 입을 수 있을 만큼 동일 한 형태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유물에서도 16세기까지는 여성의 묘에서 남성의 단령(Fig. 3)과 유사한 교임(交袵)의 단령포(團領袍)가 출토되었으나(Fig. 4), 17세기 이후의 유물은 목둘레가 둥글지만 합임(合 袵)인 형태의 포(袍)(Fig. 5)가 나타나게 되면서 여성의 예복이 남성의 관복과는 다른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처럼 성리학에서의 자연적 몸을 의미하는 선천적인 기질은 외양으로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성리학자들은 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복식을 통해 그 차이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자연적 몸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사실에 기반을 둔 인식이었으나, 성리학에서는 음양의 논리에 따라 남성의 몸에 우선권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조선전기부터 남성과 여성은 같은 형태의 옷을 입을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여론과 규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즉, 조선의 남녀 복식 구별은 인체의 성별을 생물학적 본성으로 설명하여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의도와 일치한다고 할 수 있으며(Yeon, 2011), 여성의 복식 생활 규제를 통하여 남성복식에 우월성을 더하는 권력관계를 보여준다.

    2. Evolution of the gwan (冠) for self-cultivation (修身)

    성리학의 몸에 대한 논의에는 욕망의 발생지로서의 몸과 도의를 구현하여야 할 몸이 공존하고 있는데, 문화적 몸은 이치에 대한 분별력이 감각지각을 절제 하여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사회성을 획득하도록 작용하는 몸을 의미한다(ji, 2010). 사회적, 윤리적 존재로서의 몸은 성리학자들이 미신이라 간주한 타 사상과 성리학의 차이점으로, 나의 몸을 갈고 닦는 수 신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유교 사상 실천의 근원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수신은 단순히 개인의 몸가짐 정비가 아닌 통치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양(修養)이었다. 천하 국가의 중함이 모두 한 몸에 달려있기에 군자의 위의(威儀)를 엄숙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 박규수의 기록과 같이(Park, 1841/2000), 성리학에서는 수신하는 몸과 정치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 몸을 가꾸고 돌보는 일은 곧 나라와 세계를 다스리 는 것으로 규정하였다(Jeong, 2008). 이에 성리학자들은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이념 실현을 가시적으로 나 타낼 수 있는 방법으로 의관정제(衣冠整齊)를 강조하였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예기(禮記)의 “군자는 옷만 갖추고 용의(容儀)가 없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는 구절을 인용하며 각종 복식의 착용법을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피로할 때도 포를 벗어서는 안 되고, 추운 날씨라도 짧은 상의를 덧 입어서는 안 되며, 더운 날씨라도 옷깃을 열거나 버선을 벗고 바지단을 올려서도 안 된다고 하였다. 또한, 대님을 느슨하게 매거나 소매의 한삼을 길게 하여 나태한 습관을 갖는 것을 지양하고, 비록 옷이 낡았더라도 정돈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ITKC], 1795). 즉 성리학에서는 복식의 착용을 통하여 몸의 태도를 정비 하는 수신을 실천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머리의 모양은 군자가 총명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고 만물을 살피기 위해 반드시 곧게 해야 하는 부분으로 강조되어(Park, 1841/2000), 수식(首飾)의 관리는 의관을 갖추는 의식의 시작점이 되었다. 부모에게 아침 문안 인사하기 위해 일어나 의복을 갖추기 전 머리를 손질하고 관(冠)을 쓰는 일을 우선하며(Zhu & Liu, 1187/2013), 사인(士人)은 아무리 바쁘고 권태롭다 해도 언제나 머리에 관을 쓰고 있어야 하기에(ITKC, 1795) 변소에 갈 때에도 맨상투를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ITKC, 1740) 정돈된 머리의 상태를 예의 실현과 동일시했다. 이에 따라 조선후기에는 사대부들이 편복(便服)에 착용하는 방관(方冠), 충정관(沖正冠), 동파관(東坡冠)(Fig. 6), 주자관(朱子冠), 와룡관(臥龍冠) (Fig. 7)과 같은 관모가 발달하게 되었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다(Hong, Shin, & Lee, 2012). 송시열(宋時烈)은 관은 중국의 제도이고 입자(笠子)는 민속의 것이므로 민속을 중요하게 여기고 중국의 제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을 비루하다고 하면서 주자의 옛 제도를 회복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관을 쓰기를 장려하였다(Park, 1841/2000). 이외에도 여러 유서류의 기록에 관의 착용을 언급하는 내용이 나타나는데, 유형원(柳馨遠)은 반계수록(磻溪隨錄)에 중국의 관건 (冠巾) 제도를 따르는 이유를 인문(人文)에 맞고 법상 (法象)에 정당함을 얻기 때문이라고 밝혀(ITKC, 1770) 사대부의 수식이 통치의 당위성을 증명하는 데 영향력 있는 부분임을 예상할 수 있다.

    관건의 착용 이외에도 남성의 머리 손질을 위해 동 곳, 풍잠, 살쩍밀이와 같은 여러 가지 물건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상투를 틀었을 때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정돈하기 위해 이마에 두르는 망건(網巾) (Fig. 8)의 사용에서 수기치인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따르면, 망건은 명나라 초기에 도사들이 사용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저자인 이수광(李睟光)이 중국의 수도에 방문했을 때 명나라 이 외에는 조선만이 망건을 사용하고 있었고, 다른 나라의 사신들은 조선에서 평상시에도 망건을 쓰는 것에 놀라워했다(ITKC, 1614). 또한 명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는 조선에서만 망건을 사용하게 되어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중화(中華)의 의관 문물을 조선만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리학적 문화 계승의 자부심을 느꼈다(Lee, 2010). 수기치인의 지향점은 정치적 존재인 개인의 몸의 수양을 통해 집안, 국가, 그리고 천하를 다스리는 것에 있다(Jeong, 2008). 따라서 망건의 사용은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통치 이념의 근원이라 여긴 중화의 질서를 실현하기 위한 문화적 몸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성리학적 정신을 계승하는 정통성이 오직 조선에 있음을 수식의 사용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복식을 통한 예의 실현은 곧 수신의 기본자세로, 타인을 다스리기 위한 치인(治人)의 첫 번째 조건이다. 이에 복식의 착용에 있어 편안함보다 군자의 위엄을 표현하는 바른 몸가짐을 실천하고자 하였고, 수식은 성리학의 원류인 중국의 관건을 사용함으로써 사상의 정통성이 조선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복식 행동은 성리학 통치의 핵심인 몸의 내적 수양과 외적 관계의 통일을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Jeong, 2008),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복식의 정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절제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문화적 몸이 작용하고 있음을 나타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조선시대 남성복식에서 관의 발달은 문화적 몸의 목적인 평천하(平天下)의 당위성이 사대부 남성에게 있음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3. Sim-ui (深衣) as a symbol of Neo-Confucian ideology

    성리학에서는 위계화된 문화적 몸이 한 개인 속에서 친숙해져 자연의 몸 스스로 도의를 표현할 수 있게 된 상태를 도덕적 주체의 경지에 이른 것으로 본다 (M. Y. Kim, 2002). M. Y. Kim(2002)은 이러한 몸의 상태를 이중적 몸의 교차를 통한 문화적 몸의 비대화로 설명하였으며, 이에 따라 도덕주체로서 완성된 몸은 성리학이 목표하는 이상을 온전히 충족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성리학 이념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복식으로 사대부의 연거복(燕居服)인 심의(深 衣)를 들 수 있다. 심의에는 군자의 심수(深邃)한 법상 (法象)과 문장(文章)과 제도가 담겨 있으며, 구성의 각 부분은 우주의 원리인 사계절과 열두 달, 그리고 성리학의 도덕 강령인 부모에 대한 효과 공경을 상징한다 (Park, 1841/2000).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르면, 남자가 성인(成人)의 예를 갖추는 의식인 관례(冠禮) 시 환복의 첫 번째 절차는 어린 날에 입던 사규삼(四 揆衫)을 벗고 심의를 입는 것으로(Zhu, n.d./2005), 심의를 착용한다는 것은 군자의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심의를 입은 군자는 언제 어디에서나 만물을 교화시키고 다스리는 도(道)를 순탄하게 실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Park, 1841/2000). 즉, 심의는 자연 의 원리와 성리학의 철학이 내포되어 있어 그 옷을 착용하는 몸이 성리학의 정신과 일치하여 중도의 조화를 이루게 되었음을 실증적으로 나타낸다.

    이처럼 심의는 성리학의 실천에 있어 근본이 되는 상징체였기에 정확한 제도에 따른 심의의 구현은 조선 성리학자들의 주요한 의무 중 하나였다. 16세기 이후 성리학적 질서의 실행이 본격화되면서 학파 또는 당파 간의 학문적 견해와 정치적 입장이 예서(禮書) 해석과 결합되었고, 각 계파에서는 자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심의제도를 제시하였다. 기호 학파 서인들은 주자가례에 나타난 직령심의(直領深 衣)를 기준으로 여겼다. 서인계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 열은 1651년 주자의 뜻을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아 주자가례의 제도와 같은 직령심의에 복건(幅巾)을 쓰고 대대(大帶)와 조대(絛帶)를 매고 흑리(黑履)를 신은 차림으로 첫 번째 초상화를 제작했다. 송시열이 직령심의 일습을 주자의 사례에 따라 완벽하게 구현하고자 한 이유는 성리학에서의 몸은 기운과 마음을 종 합하는 것이고, 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복식은 육체와 정신이 일체화된 그 사람 자체를 상징하기에 주자의 복식제도를 재현한다는 것이 동일한 사상체계를 이어받는다는 의미로 추정할 수 있다. 이후 송시열은 당쟁이 심화되었던 숙종대에 두 점의 초상화를 더 제작함으로써 주자의 제도를 계승한 노론에게 학문적 정통성이 있음을 복식을 통해 가시적으로 드러내었다 (Kim, 2019; Fig. 9).

    반면, 노론과 정치적 경향이 달랐던 소론과 동인계 남인은 송시열과 다른 유형의 심의제도를 주장하였다. 동인계 남인이었던 이황(李滉)은 기본적으로 예 기, 가례(家禮), 주자대전(朱子大全) 등 성리학 원전에 나타난 심의제도를 따르고자 하였으나, 주자의 심의도(深衣圖)는 앞뒤의 폭을 분명하게 나타내지 못 하여 옷을 여몄을 때 모양이 맞지 않는다는 문제를 제 기했다(Jeong, 1998). 또한 심의를 입을 때의 수식인 복건이 마치 승려가 사용하는 승건(僧巾)과 같아 제도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복건 대신 정자관을 썼다 (ITKC, 1598). 이에 남인에 소속된 학자들은 이황의 선례에 따라 심의에 복건을 대신하는 관을 착용한 모습이 초상화로 남아있다(Fig. 10). 한편, 송시열과 반대되는 경향을 가졌던 소론의 박세당(朴世堂)은 노론과 다른 학문적,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남인 학자인 한백겸이 제시하였으나 따르는 이가 많지 않았던 합임형 방령심의(方領深衣)를 착용하고 초상화를 제작하였다(Kim, 2019; Fig. 11). 18세기 이후로는 여러 남인 학자들이 섶이 있는 방령의 심의를 제시함에 따라 방령심의는 사용 집단의 성향이 노론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즉, 심의 제도의 해석을 중심으로 전개된 학파 또는 당파 간의 이데올로기 논쟁은 심의가 내포하는 군자로서 완성된 몸 인식이 공신력을 갖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복식을 통해 권력관계에 영향을 받는 몸의 사회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판단된다.

    성리학이 내포하는 철학적 의미의 집합체인 심의는 도덕적 주체로 완성되어 중도의 경지에 이르게 된 몸이 가장 명확하게 발현된 복식이었다. 따라서 심의는 그 자체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도덕적 자질이 갖추어진 군자를 의미하였기에 무형의 지배적 권력을 가시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학파와 당파의 학풍 및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의미작용의 질서에 편입 되어 기호로서의 사물로 작용하게 되었다(Lee, 2009). 이러한 면에서 심의는 성리학적 몸 인식을 종합하는 시각적 상징이었으며 조선 사대부의 정치적 위상 강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Ⅳ. Conclusion

    본 연구는 사회적 이념의 실천과 복식 간의 관계를 살펴보기 위하여 성리학에서의 몸 담론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남성복식을 분석하였다. Taylor(2002)는 복식사의 연구에 있어 복식 현상을 사회적 조건과 문화적 구조를 연결하여 분석하는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 한 바 있다. 따라서 몸이 사회적 조건을 표현하는 장이라 할 때, 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복식의 분석을 위해서는 사회의 표상이 되는 몸의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신체의 형태와 관계없는 구성으로 신체를 은 폐하는 한국의 복식은 몸의 구조와 복식의 구성이 상응하여 신체 구조가 복식에 그대로 표현되는 서양복식에 비해 대상의 이해와 방법 적용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사회와 몸, 그리고 복식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연구가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성리학적 몸 인식이 발현된 조선시대 남성복식의 구체적인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였 다. 그 결과, 타고난 기의 차이에 따라 외형이 구분된다는 성리학자들의 몸 담론에 따라 여성의 복식 생활을 통제하여 남성과 여성의 복식 형태가 분화되었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수신의 방법으로서 중국의 관 모류를 사용하여 성리학적 이념에 따른 통치의 정통성이 조선의 사대부에게 있음을 보여주었으며, 유학의 철학적 상징체인 심의에 대한 고증의 심화로 다양한 형태의 심의가 제시되어 학파의 정치적 위상 강화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파악하였다. 즉, 조선시대 사대부 남성의 몸은 정치적 주체로서 갖추어야 할 성적, 그리고 도덕적 우위성이 부여된 존재였으며, 남성의 복식은 성리학적 이념을 발현하는 권력행사의 장으로서 그 정당성을 가시화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한국복식 연구에 몸 담론 분석을 적용하고, 조선시대 남성복식의 형성 및 변화 원인을 밝히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한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성리학의 체계는 매우 복잡한 것으로 조선시대 안에서도 시기별 또는 학파별로 학문적 동향이 상이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에서는 각각의 특성을 다루지 못했다는 한계점과 함께 조선시대 남성복식 중 한정적인 사례만을 분석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따라서 이후 한국의 다양한 복식의 변화와 사회적 흐름 간의 관계를 분석하기 위한 다각적인 연구가 계속되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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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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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end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