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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6-0401(Print)
ISSN : 2383-6334(Online)
The Research Journal of the Costume Culture Vol.30 No.2 pp.281-296
DOI : https://doi.org/10.29049/rjcc.2022.30.2.281

A study on the reappearance of upper-class girls’ costume contents in early 18th century

Jeong Choi†
Professor, Dept. of Fashion Design & Apparel Industry, Wonkwang University, Korea
Corresponding author (yoolchss@naver.com)
February 28, 2022 March 23, 2022 March 26, 2022

Abstract


This study is designed to compensate for the lack of children’s clothing relics from the early 18th century and to reproduce young upper-class girls’ costume as hanbok content. The shapes and materials of costumes are based on the record of Sukjongsilrok in 1701 and the characteristics of adult ladie’s costume relics in this period, but reproduced as miniatures of these relics as like Joseon children’s clothing of another period. The reproduced costumes are formal wear for 3~4 year-old girls, consisting of yeoui [女衣], long unlined skirts, and lined skirts. Sizes were set at a height ratio of approximately 155:95. Yeoui is sam-hoejang-jeogori using pine pollencolored damask with a grape-squirrel pattern and a purple damask with flowertreasure pattern. The full length of yeoui is 24.5cm. It has a square-dangko outer collar with square inner collar. The long unlined skirt is a six-width overskirt that is 82cm long, made with lotus patterned sa. The lined skirt is a five-width skirt that is 61.3cm made with flower-treasure patterned red damask and ju. Several long pleats on both sides of these two skirts have been omitted. The result provides meaningful content for children’s clothing in the early 18th century and will be used as costume for an educational trial performance.



18세기 초 상류층 여아복식 재현 콘텐츠 연구
- 여의(女衣)와 치마를 중심으로 -

최 정†
원광대학교 패션디자인산업학과 교수

초록


    I. Introduction

    현재 비교적 많은 수의 17~18세기 조선 시대 복식유물이 남아 있으나, 온전한 18세기의 여아(女兒) 복식 유물은 찾기 어렵다. 현존하는 소수의 여아복식 유물은 주로 1500, 1600, 1800년대 및 그 이후의 것이며, 연결고리가 될 1700년대는 여아 복식뿐 아니라 아동복식 자체의 유물과 관련 문헌기 록이 드물어 콘텐츠가 부족한 시기이다. 그러나 1700 년대 초의 궁중여아복식과 관련된 진술이 실록에 남 았고 온전하게 보존된 성인용 복식유물이 존재하므 로, 이를 토대로 해당시기의 여아복식 콘텐츠를 보강 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18세기 초의 조선 시대 상류층 여아복식 을 재구성하고 실질적인 복식 콘텐츠를 제시하여, 해 당시기 아동복식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첫 단계의 연구이다. 이와 관련된 참고 고문헌은 비교적 다양한 여아복식 명칭이 언급된 숙종실록(肅宗實 錄) 35권 1701년의 기록이다. 그러나 이 기록과 관련 된 실물유물 또는 상세한 형태가 묘사된 문헌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관련 선행연구 및 성인 복식 유물 분석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동시대의 유물이며 다양하고 섬세한 복식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해평 윤씨의 유물이 이에 적합할 것으로 판단된다.

    관련 선행연구로 조선 시대 아동복식 유물의 전반 적인 특성을 다룬 연구(Seokjuseon Memorial Museum of Dankook University [DUSMM], 2019), 전통복식소 스의 체험 및 교육 관련 연구(Ahn & Lee, 2020;Ra, 2019;Shim, 2017), 18세기 초의 조선 시대 여성복식 유물의 특성 연구(Chang, 2006, 2008; DUSMM, 2010, 2017; Song, 2003)가 있다. 선행연구를 보완하는 의미 로서, 본 연구는 기록과 유물에 의거해 18세기 초 조 선 시대의 상류층 여아복식을 재현하고 복식 콘텐츠 를 보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연구범위를 1701년에서 약 50여 년 전후의 사료와 관련 유물로 제한하여 시대적 특성을 중시한다. 아울러, 실질적인 효용범위를 넓히기 위해 착용 시연(試演)이 가능한 형 태의 재현 복식을 제시한다.

    연구방법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숙종실록 에 기록된 여아복식들의 용도 및 상관관계를 분석한 다. 둘째, 가장 필수적인 상하의로 판단되는 저고리와 치마로 분석대상을 제한하여 실질적 효용성을 높인 다. 셋째, 고문헌, 현존 성인 복식유물, 선행연구를 통 해 저고리와 치마의 형태와 재료를 분석해 고증한다. 마지막으로, 분석 결과를 응용해 4세가량의 여아를 위한 실물 복식 재현 샘플을 제작한다. 본 연구를 통 해 실물이 부족한 시대의 여아복식 특성을 고찰하고 재현하여 복식사 교육용 시각자료를 보완하고, 역사 미디어 소스와 복식사 교육 소스의 융합점을 마련하 고자 한다.

    Ⅱ. Review of Literature

    1. The characteristic of girl’s costume in Sukjong-silrok

    조선의 19대 왕인 숙종(肅宗:재위 1674~1720)의 재 위기는 왕의 정치책략과 비빈들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다양한 미디어 제작에 응용된 소스이다. 궁중암투의 주요인물인 희빈 장씨(이하 장희빈)는 1701년 무렵에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숙종실록 35권 1701년 10월 3일의 기록을 보면, 숙정(淑正)의 심문 과정에서 ‘죽 은 공주가 원했던 옷’이라 하며 장희빈의 요구로 다양 한 여아복식이 제작된 사실이 아래처럼 기록되었다:

    …3~4년 전에 민 상궁과 숙영이 와서 말하길, 희빈 이 금단(錦段)을 내보내 옷을 지어 들여오게 했습니 다. 모양은 4세 아이가 입는 옷 같고, 납장의(衲長衣) 2벌, 납여의(衲女衣), 송화색여의(松花色女衣), 생초여 의(生綃女衣), 사여의(紗女衣), 초록사여의(草綠紗女 衣) 각 1벌, 다홍대단상(多紅大段裳), 남대단상(藍大段 裳), 다홍대사상(多紅大紗裳) 각 1벌, 사폭면주고(四幅 綿紬袴), 백릉고(白綾袴) 각 1벌 등, 모두 기억할 수 없 으나 합해서 저고리가 15~16건이고 치마는 10여 건 이었는데… 희빈의 꿈에 이미 죽은 공주가 와서 이 옷 들을 원하므로 지은 것이라 했습니다(三四年前閔尙宮 及淑英來言, 禧嬪出送錦段, 使之造衣以納, 而形如四歲 兒所着, 衲長衣 二件, 衲女衣 松花色女衣 生綃女衣 紗 女衣 草綠紗女衣 各一件, 多紅大段裳 藍大叚裳 多紅大 紗裳 各一件, 四幅綿紬袴 白綾袴 各一件, 雖不能盡記, 而合衣十五六件, 裳十餘件…蓋謂禧嬪夢中, 已亡公主來 言欲得衣服,故如是造成)…(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s [ITKC], 2005-2015b, para. 1).

    위 사건의 의복들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400 책에도 나타나며, 세부 용어가 다소 다르지만 복식의 벌수와 종류는 같다. 납장의는 누비장의(縷非長衣)로 표현되었으며, “누비저고리 1건, 송화색저고리 1건, 생초저고리 1건, 사저고리 1건, 초록사저고리 1건(縷 非赤古里一件, 松花色赤古里 一件, 生綃赤古里一件, 紗 赤古里一件, 草綠紗赤古里一件)”이라 하여 ‘여의(女 衣)’는 ‘저고리(赤古里)’라고 기록되었고, 다홍대사상 (多紅大紗裳)은 다홍대단사상(多紅大段紗裳)이라고 기 록되었다(ITKC, 2000-2015d, para. 1).

    설향(雪香)과 숙영(淑英)의 진술에 의하면 이 여아 복식들은 취선당(就善堂)으로 들어갔고, 이와 함께 이 들이 외신당(外神堂)에서 무녀(巫女)와 기원한 내용은 “중전이 없어지면 희빈이 다시 중전이 될 것이다(中 殿殿下若無 則禧嬪復爲中殿矣)”였다고 한다(ITKC, 2005-2015a, para. 12). 따라서 위의 여아복식들이 실 제로는 장희빈의 복권을 위해 중전을 저주하려는 매 개물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위의 기 록은 숙종실록에서도 드물게 다양한 여아복식 품목 이 나타나, 이 시기의 궁중여아복식의 종류와 특성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이다. 원삼과 대란치마 급의 격식 을 갖춘 예복 품목명은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기록에 나타난 여아복식은 궁중 소례복 이하의 격식을 지닌 일상예복으로 추정된다. 이상을 고려하여, 이 의복들 의 주술적 용도보다 해당시기 공주의 일상예복, 그리 고 공주 외에도 이러한 일상예복을 착용할 수 있는 신 분인 상류층 사대부 가문의 여아일상예복으로서의 특 징과 품목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추정할 수 있는 형 태를 재현하여 실물 샘플을 제시하고자 한다.

    2. The characteristics of children’s costume relics of Joseon

    18세기의 여아복식 옷본과 제작방법은 관련 유물 이 적어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의 아동용 출 토복식을 보면 묘주의 생존시기를 기준으로 1500년 대와 1600년대의 유물은 각각 13점과 15점으로 비교 적 많으나, 1700년대 유물은 단 2점이다(Lee, 2018). 따라서 본 연구에 직접 참고할 수 있는 아동복식 출토 유물은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러나 Lee(2018)에 의하면 현존하는 조선 시대 아동복식은 대부분 성인인 묘주 의 무덤에 함께 들어 있던 옷들이며, 성인의 것보다 현저히 작아서 어린이의 옷으로 분류되었다. DUSMM (2019)도 1400년대부터의 조선 시대 아동복식 유물은 크기를 제외하면 형태 자체가 성인복식과 매우 유사 한 경우가 많음을 밝혔다.

    1701년경의 아동복식도 성인복식의 축소판이었을 것을 가정하면, 참고자료가 될 수 있는 성인 여성복식 유물은 성천부사 심익창(沈益昌)의 부인 사천목씨 (1657~1699), 성주이씨(星州李氏) 형보(衡輔)의 부인 해평윤씨(1660~1701), 한성부 판윤 김원택(金元澤)의 부인 청송심씨(1683~1718), 의원군 이혁(李爀)의 부 인 안동권씨(1664~1722)의 유물 등이다. 숙종실록 1701년의 기록과 정확하게 염습 시기가 일치하는 것 은 해평윤씨의 복식유물이며, 1701년의 여아복식들이 3, 4년 전부터 제작된 것임을 감안하면 사천목씨의 유 물도 해당시기와 가깝다. 특히 해평윤씨의 복식유물은 선행연구가 잘 이루어졌고 유물 수가 많아 습, 소렴, 대렴, 보공용 복식들이 다양하며 사치성 금지품목이 었던 자수 저고리도 포함되어 있어, 다양한 상류층 여 성복식의 특징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이다(DUSMM, 2010). 해평윤씨의 유물은 원삼, 당의, 장의, 삼회장형 저고리가 모두 갖추어졌고 의식용으로 여겨지는 장치 마 1점도 존재하여(Lee, 2010), 전체적으로 사대부가 의 여성예복이 고르게 포함된 유물이다. 따라서 해평 윤씨의 유물을 본 연구의 중점 참고자료로 하고, 다른 유물을 부분적으로 참조하여 해당시기 여아복식의 특 성을 추정하도록 한다.

    Lee(2018)는 조선 시대 아동 출토복식의 특성으로 어른복식과 조형은 같으나 크기는 작은 점, 무늬 없는 옷감을 많이 사용한 점, 용변용 밑트임 및 넓은 말기 와 긴 옷고름으로 배를 보호한 점을 들었다. 재현 과 정에서 형태와 실루엣은 해평윤씨의 유물을 중심자료 로 하되, 필요에 따라 이러한 특징도 함께 고려하려고 한다. 또한 착용 가능한 교육용 아동복식 재현을 목적 으로 한 연구이므로, 여유분 및 외형의 심미성도 중요 하다. 진동 부분이 좁은 18세기 여성용 저고리의 특성 을 고려해 여아용 저고리의 좌우 진동길이를 각각 0.3cm가량 늘리고, 넓은 깃너비도 아동의 목 길이를 고려해 0.3cm가량 줄일 수 있다. 또한 시대성이 잘 드 러나고 격식이 있으며 뛰어난 제작기술과 섬세한 문 양의 직물로 지어진 유물을 참고하여, 가능한 한 이와 유사하게 재현해 심미성을 높일 수 있다.

    3. Dimension and direction of reappearance

    1701년의 기록에 나타난 여아복식은 4세용이지만, 아이가 태어난 해를 1살로 여기는 전통 셈 방식을 고 려하면 약 3세도 착용할 수 있는 크기였을 것으로 보 인다. 이를 고려해, 본 연구의 중심 치수로 현대의 3세 여아 치수를 참조하도록 한다. Kim and Hong(2015) 에 의하면 2004년 사이즈코리아(Size Korea)의 만 3 세 여아 신장은 94.4cm이며, 관련 선행연구 중 최근 의 유아 사이즈를 중점적으로 측정한 조사결과는 아직 없다. Korea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Agency (2017)에 의하면 2017년의 한국 36개월 여아의 신장 백분위수 50번째 치수는 95.4cm이다. 따라서 약 95cm 전후의 신장을 본 연구의 기본 사이즈로 설정해도 무 리가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조선 시대 여성의 미이라(미라)의 신장을 살펴보면, 안정나씨 중종 선산의 1500~1600 년대 추정 미라는 150cm(Yi, 2011), 1566년 무렵의 파 평윤씨 묘역의 미라는 153cm(Kim, 2002), 17세기 온 양정씨의 미라는 155cm가량이다(Internet news team, 2009). 이 중에서 현대여성의 평균 신장에 가장 가까 운 155cm를 기준으로 하고 본 연구에서 설정한 여아 신장을 대입하여, 155:95의 비율로 여아복식의 치수 를 계산하도록 한다. 다만 주요 참고 복식유물의 주인 인 해평윤씨의 정확한 신장은 현재 알 수 없어, 추정 된 복식치수에 미세한 오차가 있을 수 있음을 밝힌다.

    연구결과물은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 복식사 고증 콘텐츠 외에도 실질적인 방향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 다. Ahn and Lee(2020)는 고궁 관광객의 경험품질 연 구에서 복식체험객과 일반방문객에게 서로 다른 대응 이 필요하다는 점을 서술했고, Ra(2019)는 백제복식 체험 콘텐츠의 개선사항을 심미성, 기능성, 특수성으 로 나누고 기술개선과 보존관리 및 역사고증을 통한 문화이해가 중요하다는 점을 밝혔다. 전통문화 중 복 식체험을 원하는 대상은 일반 관광객과 다른 성격을 지니므로, 복식의 미적 우수함과 편리함 및 고증을 통 한 문화적 만족감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관련 기관인 설경궁중복식문화관(Seolkyoung_royalcostume) 과 협의하여, 한국복식문화에 관심이 높은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복식 이벤트에서 시각교육 및 시연(試演, trial performance)이 가능한 여아복식 샘플 을 제작하려 한다.

    숙종실록의 여아복식들은 1700년대의 상류층 여 아복식 품목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러나 주술 용으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이 의복들 을 모두 그대로 재현하면 교육용 또는 시연용으로 적 합하지 않다는 거부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 이를 해결 하기 위해 1701년의 기록에서 의복들의 종류와 재료 를 관찰하되, 상류층 여아복식을 재현하기 위한 주요 근거로서만 참조하려 한다. 또한 기록에 묘사되지 않 은 구체적인 형태, 문양, 세부 제작방식, 아동복식 특 유의 특성은 현존하는 성인여성 복식유물 및 선행연 구를 통해 분석하여, 종합적으로 재구성된 복식 샘플 을 제시한다. 이는 합성섬유로 대량 제작되는 일반 대 여용 체험한복과 다르게 가능한 현존유물에 의거한 형태와 재료로 재현될 것이며, 한국복식교육 이벤트 참가자가 직접 관찰할 수 있고 해당 연령의 여아가 착 용해 볼 수 있는 실물샘플의 성격을 지닌다.

    아동복식이라는 특성상, 착용했을 때 편안하고 입 고 벗기 쉬우며 귀여운 이미지를 지닌 의복이 필요하 다. 이러한 사항을 고려하여, 가장 기본적인 상하의 품목인 저고리와 치마를 본 연구의 중심 재현 품목으 로 설정하였다.

    III. Research Method

    1701년의 기록에 나타난 여아복식은 종류로 보아 일상예복으로 추정되며, 장의를 제외하면 각각 1벌이 다. 문양 종류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앞서 밝혔듯 장 희빈이 제공했던 의복재료는 금단(錦段)이었고 그 외 에 생초, 사, 대단, 대사 등이 재료였다. 따라서 무문직 외에도 해당시기에 선호되던 문양직이 사용되었을 것 이다.

    <Table 1>은 숙종실록에 기록된 1701년의 여아 복식들을 종류, 명칭, 벌수, 재료, 색상 카테고리로 나 누어 정리한 것으로, 본래의 명칭은 Note에 표기하였 다. 장희빈이 만들게 한 15~16벌의 여아복식 종류가 모두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장의는 누비인 납장의뿐 인 것에 비해 여의(女衣)는 누비, 생초, 사 등 재료가 다양하므로 특정한 계절을 한정해 지은 일습으로 보 기는 어렵다. 치마는 대단상(大段裳)과 대사상(大紗 裳), 속바지로 여겨지는 바지는 백릉고(白綾袴)와 면 주고(綿紬袴)로 정확하게 재료가 명시되었다. 장희빈 이 제공했다고 진술된 ‘금단’은 재료가 확실하게 명시 되지 않은 옷에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 중에서 가 장 기본적인 상하의로 보이는 ‘여의’와 ‘치마’를 중점 적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1. The characteristics of jeogori

    승정원일기에서 1701년의 사건을 다룬 부분을 보면, <Table 1>의 품목 중 ‘여의’는 <Fig. 1>처럼 ‘저 고리’로 기록되었다(ITKC, 2000-2015d). 이보다 1주 일 전인 9월 26일의 숙종실록을 보면 “…혹은 당여 의를 신당에 설치해(或設唐女衣 躬禱之)…”라고 하여 ‘唐’이란 명칭이 붙은 여의도 있다(ITKC, 2005-2015a, para. 12). ‘당여의’는 당의를, ‘여의’는 저고리를 가리 키는 용어로 보이며, 본 연구에서는 확실한 구분을 위 해 ‘여의’를 ‘저고리’로 명명하였다.

    저고리의 형태와 종류는 정확하게 묘사되지 않았 다. 외투인 ‘장의’는 2벌 모두 납장의이고, 성인용 현 존유물을 참조하면 단(緞)으로 지은 겨울용 누비장의 로 추정된다. 이에 비해 저고리인 ‘여의’는 5종으로, 색상은 송화색과 초록색이고 재료는 누비, 생초, 사 등 다양한 계절에 적합한 직물들이어서 일상적으로 자주 착용하던 상의로 여겨진다. 그러나 1701년에 사 망한 해평윤씨의 다양한 저고리 유물들의 재료에 생 초는 없으며, 대다수는 문단이다. 특히 <Table 1>의 ‘여의’ 중에서 ‘송화색 여의’의 재료는 언급되지 않았 으므로, 이는 희빈이 제공했다고 기록된 금단으로 만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청주 김원택 묘역 전주이씨(1722~1791) 묘 출토복 식 중에 <Fig. 2>처럼 당의-장의-저고리 순으로 조합된 예도 존재한다(Chungbuk National University Museum [CNUM], 2010). 이에 대해 Chang(2006)은 일상복인 장의보다 더 의례적인 소례복인 당의를 겉쪽에 둔 것 으로 추정했다. <Table 1>에 당의에 대한 언급은 없으 나, 추후의 연구에서 이러한 조합과 형태의 착용방식 도 참고할 수 있다.

    1) The shape of jeogori

    1701년의 여아용 저고리의 형태를 해평윤씨의 유 물을 통해 추정하면, 누비, 겹, 홑겹, 민저고리, 반회 장 저고리, 삼회장 저고리까지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 한다. Lee(2010)는 <Fig. 3>처럼 “목판 당코깃, 겨드 랑이가 각진 일자형 소매, 약 40cm 전후로 치마 허리 가 약간 덮이는 길이”를 가진 해평윤씨의 유물 저고 리 33점을 전형적인 17세기 형식의 저고리로 정의했 다(p. 151). <Fig. 4>의 사천목씨 삼회장 겹저고리도 “각진 겨드랑이와 일자형 소매를 가졌고 당코깃에 끝이 사선인 동정이 있으며 길이는 약 39cm”이다 (Gyeonggi Provincial Museum [GPM], 2010, p. 187). 두 부인의 사망시기가 각각 1701년과 1699년으로 단 2년의 차이밖에 없어, 큰 복식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Song(2003)은 이보다 수십 년 전에 사망한 여흥민 씨의 저고리에 완전히 내어달린 안깃과 완전히 들어 와 달린 안깃이 공존하여 과도기적 현상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해평윤씨의 저고리의 안깃은 <Fig. 3>처럼 완전히 내어달린 목판깃으로 정착되었으므로, 여아용 저고리에도 이를 적용한다.

    본 연구의 주요 목적은 교육용 및 시연용 여아복식 제작이므로, 가능한 격식 있는 일상예복인 동시에 시 대상을 반영할 수 있는 품목을 여아용 저고리로 설정 하여 체험자의 흥미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에 해당되 는 것은 해평윤씨의 저고리 중에서 가짓수가 많은 <Fig. 3>과 같은 삼회장 겹저고리, 또는 역사적 사치 품목이었던 <Fig. 5>의 견마기 자수 저고리이다.

    2) Fabrics of jeogori

    저고리와 치마로 상하 세트를 구성하려면 재료의 두께와 태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1701년의 치 마 재료는 대단과 대사이며 ‘납’ 또는 ‘누비’라는 언급 은 없으므로, 여아용 저고리의 재료도 단 또는 사로 제한할 수 있다.

    해평윤씨의 다양한 저고리 유물 중에 1701년의 기 록과 재질이 가장 가까운 저고리는 화문갑사 홑적삼 과 숙초 민저고리이지만(DUSMM, 2010), 이는 대단 및 대사 치마와 재질감이 맞지 않고 밑받침옷 또는 무 문직 저고리여서 시각적 효과가 중요한 교육용 복식 겉옷에 적합한 품목은 아니다. 앞서 밝혔듯 해평윤씨 의 자수 저고리는 당시의 사치품이어서 시대성이 잘 드러나고 주재료도 단이다. 그러나 이는 1701년의 기 록에 없는 품목이고, 뒤품이 다른 저고리보다 좁으며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문양직이 사용되었고 마찰이 많은 견마기에 자수가 포함되었다(Fig. 5). 따라서 이 를 여아용 저고리에 참조하려면 재료에서 시대성 반 영의 문제가 생기며, 어린이가 착용하는 경우 품이 좁 아 불편하고 자수가 망가질 위험이 있으며 자수로 인 해 제작비가 매우 높아진다는 단점이 있다.

    <Table 1>의 ‘여의’의 색상은 송화색과 초록색이다. 초록색의 재료는 사(紗)이며 송화색의 재료는 명시되 지 않았는데, 앞서 밝혔듯 장희빈이 따로 제공했던 재 료가 금단이므로 송화색 단이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 생산되는 전통 문양직 중 18세기 초 저고 리 유물들의 재료와 완전히 같은 문양직은 매우 드물 고, 가장 충실하게 재현된 것은 포도다람쥐단과 포도 다람쥐사였다. 사보다 단이 더 다양한 계절을 아우를 수 있는 재료로 판단되어, 포도다람쥐단으로 제작된 <Fig. 3>을 주요 참고유물로 선택하고 여아용 저고리 의 길 부분 재료를 포도다람쥐단으로 설정하였다. <Fig. 3>의 견마기 재료와 완전히 같은 문양인 직물도 현재 구하기 어려우나, 면적이 작은 부분이므로 가능 한 한 유사한 조합의 화보문단을 사용하도록 한다.

    2. The characteristics of skirt

    <Table 1>에 나타난 치마 색상은 다홍색과 남색으 로 가장 일반적인 치마 색상이며, 각각 초록색과 송화 색인 여의와 보색조화를 이루는 색상이다. <Table 1> 과 승정원일기의 기록을 비교하면, 다홍대단상(多 紅大段裳) 1건, 남대단상(藍大緞裳) 1건은 명칭이 같으 나 다홍대사상(多紅大紗裳) 1건은 승정원일기에 다 홍대단사상(多紅大段紗裳) 1건으로 기록되었다(ITKC, 2000-2015d, para. 1). ‘바지[袴]’는 속바지로 판단되지 만, 그 외에 속치마는 언급되지 않았다. <Table 1>의 치마 재료는 대단(大段)과 대사(大紗)인데, 이와 관련 해 숙종실록 65권을 보면 1720년에 숙종의 소렴례 를 치른 연잉군의 발언이 아래처럼 기록되었다.

    대행왕(大行王)은 평소에 의대(衣襨)로 대단(大段) 류는 입지 않으셨고, 동궁(東宮)의 의복도 이를 따르 도록 하셨다. 이번에 습렴(襲殮)에 쓰이는 것들은…의 대가 모두 대단이어서 평소 숭상하신 것에 어긋날 수 있으나…(行平日衣襨大段之屬 未嘗進御 至於東宮衣服 亦令依此爲之. 今此襲歛所用…衣襨皆是大段 似若有違 於平日所尙…)(ITKC, 2005-2015c, para. 71).

    이를 고려하면 대단은 해당시기에 사치성 직물이 었고, 대단으로 지은 궁중 여아 일상예복은 생전의 숙 종의 뜻에 어긋나는 하극상의 복식으로 분류할 수 있 다. 이와 관련해 승정원일기 33책 1631년의 기록을 보면 인조 9년 이후부터 수의(繡衣)가 사치품목으로 서 금지되었고(ITKC, 2000-2015b), 해평윤씨의 유물 에도 자수 저고리가 존재하지만, 1701년의 여아복식 품목에는 자수 저고리가 없다. 진술 기록에서 누락되 었을 수도 있으나 국법으로 금지되어 온 사치품목이 라 제작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숙종이 솔선 해 착용하지 않았던 대단 및 대사가 1701년의 여아복 식 재료로 사용되어, 직물 방면으로 궁중의 질서를 어 긴 양상이 보인다.

    <Table 2>는 DUSMM(2010)과 Lee(2010)의 연구를 참조하여, 대단, 대사를 대신할 수 있는 문단(紋緞)과 문사(紋紗)로 지어진 해평윤씨 치마유물의 특성을 정 리한 것이다. 총길이 순으로 연꽃덩쿨화문사 홑 장치 마(134cm), 수국모란화문단 겹치마(106cm), 만자문화 문단 겹치마(105cm), 보문연화문단 겹치마(103.5cm), 추사 겹치마(100cm)로 정리된다.

    총길이가 134cm에 달하는 장치마는 단 1점인데 (Fig. 6), Lee(2010)는 이를 금선단 치마 및 뒷길이가 긴 거들치마와 함께 의례용으로 추정하고 이보다 더 짧은 치마들은 평상용으로 분류했다. 본 연구의 주 소 재가 궁중여아복식임을 감안하면, <Table 2>의 품목 중에서 가장 격식을 갖춘 홑 장치마를 분석대상에서 배제하기 어렵다.

    1) The shape of skirt

    해평윤씨 장치마는 보공용이며, <Fig. 6> 및 <Fig. 7>에 보이듯 주름이 길게 잡혔고 비치는 소재인 연꽃 덩쿨 화문사로 제작된 홑치마여서 덧치마에 적합한 형식을 지녔다. 이와 관련해 안정나씨 일가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용인이씨의 홑 장치마(Fig. 8)는 다른 거들치마 위에 겹쳐져 발견되어 의례용 덧치마로 추 정되었고 “길이 119cm에 반투명하게 비치는 얇은 생 초 치마이며 성근 홈질로 제작된” 의복이다(Daejeon Municipal Museum [DMM], 2016, p. 81). 이와 형식 이 비슷한 <Fig. 6>도 의례용 덧치마로 추정되므로, 길 고 얇은 홑치마를 더 짧은 치마 위에 덧입는 형식이 상당기간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속단할 수는 없 으나, 앞서 밝힌 승정원일기의 다홍대단사상(多紅 大段紗裳)이 대단과 사 치마를 같이 착용하는 다홍색 이중치마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를 고려하고 더 다양 한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홑 장치마를 겹치마 위에 덧입는 형식으로 구성하고 겹치마는 단독으로도 착용 할 수 있도록 설정하였다.

    장치마와 함께 착용될 겹치마는 장치마보다 길이 와 폭은 더 적고 여아용 저고리와 소재가 유사한 치마 여야 한다. 해평윤씨의 치마 중에 <Fig. 6>처럼 보공용 이며 총길이는 103.5cm이고 본 연구의 여아용 저고리 처럼 단 소재여서 상하의의 태를 맞출 수 있는 유물인 <Fig. 9>를 겹치마의 참고유물로 선별하였다.

    2) Fabrics of skirt

    <Table 1>의 저고리와 바지의 재료가 생초, 사, 면 주, 능직 등으로 비교적 국내에서 조달하기 쉬웠던 직 물인 것에 비해, 치마에는 사치품 또는 중국 수입직물 로 보이는 대단과 대사가 사용되었다. 대단에는 다홍 색과 남색 모두 쓰였고, 대사 또는 대단사는 다홍색이 었다고 기록되었다. 직물의 특성으로 보면 1701년의 치마는 고급 직물을 사용해 궁중여아복식으로서의 품 위와 사치성을 최대한 높인 의복으로 여겨진다. 또한 넓은 치맛단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도록 힘 있는 직물 인 대단과 대사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그 외에 이 직물들이 주술용 도구로서 또 다른 의미를 지녔었는 지는 알 수 없다. 대단과 대사 직물의 문양은 기록되 지 않았으므로, 관련 실물유물에서 추정하도록 한다.

    Lee and Hong(2016)은 명에서 수입되었을 가능성 이 있는 직물이 17세기 전반 장기 정씨의 출토유물에 존재함을 밝혔다. 그러나 승정원일기 인조 6년(1628 년)의 기록을 보면 중국에서 각색 유문대단(各色有紋 大段)의 수출을 엄금하므로 호중(胡中)에 줄 물건은 국내 생산품으로 바꾸자는 김상헌(金尙憲)의 청이 있 었고(ITKC, 2000-2015a), 인조 22년(1644년)에 곤룡 포를 만들 대홍운문대단(大紅雲紋大緞)을 상의원의 기술로 직조해 달라는 비변사의 요청도 있었다(ITKC, 2000-2015c). 따라서 1701년의 대단과 대사는 수입직 물일 수도 있으나, 이와 유사하게 국내에서 직조되던 직물일 가능성도 크다.

    해평윤씨의 장치마(Fig. 6)는 얇은 연꽃덩쿨 화문 사, 용인이씨의 덧장치마(Fig. 8)는 얇은 숙초로 제작 되었으므로, 해당시기의 의례용 덧장치마는 비교적 얇고 투명한 직물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Fig. 9>를 포함한 <Table 2>의 겹치마들은 각종 화문 에 문자문 또는 보문이 조합된 복합문 겉감으로 제작 되었고, Chang(2008)을 참조하면 이는 숙명공주의 손 녀로 1718년에 졸한 왕족 청송 심씨의 복식유물에서 도 나타나는 직물 특성이다. 1701년의 대단과 대사가 왕족복식에 사용된 재료이며 해평윤씨와 청송심씨의 복식유물 재료와도 유사했을 가능성을 고려하여, 가 능한한 이와 유사한 시판직물을 치마 제작에 응용하 도록 한다.

    IV. Results and Discussion

    재현 여아복식은 해당시기의 복식특성을 충분히 갖추어야 하며, 비교적 움직이기 편하도록 여유분도 필요하다. 해평윤씨의 저고리와 치마 중에 품과 길이 가 넉넉한 복식유물을 참조하여 재료와 치수를 추정 하고 사천목씨 저고리의 디테일도 일부 참조하였다.

    1. Reproduction of jeogori

    재현 제작된 저고리는 다양한 계절에 어울리며 격 식을 갖춘 포도다람쥐단 삼회장 겹저고리이며, 길의 색상은 1701년의 기록에 존재하는 송화색이다. <Fig. 10>에 보이는 참고유물의 길 재료처럼 매죽문이 조합 된 포도다람쥐단 시판직물이 없어, ‘할머니갑사’ 제 품인 포도다람쥐단을 주문 염색해서 사용하였다(Fig. 12).

    참고유물의 견마기 재료는 매죽보배문단이며(Fig. 10), Chang(2008)에 의하면 1718년에 사망한 청송심 씨의 유물에도 포도다람쥐문 삼회장 저고리가 있는데 견마기와 소매에 석류문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 시중에서 이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형식의 문양직은 입수하기 어렵다. 따라서 해평윤씨의 치마 유물 재료 인 사양화 화보문단(Fig. 11)과 비교적 유사한 형식이 며 2종 이상의 화문과 보문이 조합된 시판 단(Fig. 12) 을 견마기, 깃, 끝동에 사용하였다. 참고유물처럼 안 감과 동정의 재료로 주를 사용하고, 유물 안고름 재료 인 문주는 적절한 시판직물이 없어 주로 대체하였다.

    155:95의 비율로 추정한 여아용 저고리의 치수는 뒷 길이 24.5cm, 화장 44cm, 당코 끝부터 잰 겉깃 길이는 18.7cm, 안깃 길이는 20.5cm, 겉고름은 1.5×19.8cm, 안고름은 1.5×24.3cm이다. 그 외의 세부 치수는 <Fig. 13>과 같다. 17~18세기 초반 저고리의 특성인, 비교 적 넓은 목판 당코 겉깃, 목판 안깃, 수구가 다소 좁은 일자형 소매, 위쪽이 약간 뉘여진 겉섶과 안섶 형태를 저고리 샘플에 재현하였다. 다만 해당 비율로 축소하 면 깃 너비가 매우 넓고 품이 좁아 3~4세 여아가 착용 할 때 불편할 수 있다고 판단되어, 전체 형태를 훼손 하지 않는 범위에서 깃 너비를 6.6cm에서 6.3cm로 조 정하고 안깃 너비를 다소 좁혔으며 진동 길이를 좌우 각각 0.3cm가량 늘렸다. 완성된 샘플의 형태는 <Fig. 14>와 같다.

    Lee(2010)에 의하면 해평윤씨의 저고리들은 모두 비슷한 재봉법으로 제작되었는데, 삼회장 저고리 겨 드랑이 아래 무의 시접은 가름솔이며 도련을 따라 세 땀 상침이 되어 있다. 또한 목판깃머리에 고운 박음질 을 했고 목둘레 위를 홈질로 오그렸다(Lee, 2010). 현 존하는 조선 시대 아동복식은 성인복식과 형태상으로 큰 차이는 없었으므로, 여아용 저고리의 깃머리에도 고운 상침을 하고 도련을 따라 3땀 상침을 더했으며 끝동 부분은 거들지 형식으로 제작하여 시대성을 반 영하였다(Fig. 15).

    2. Reproduction of skirts

    해평윤씨의 홑 장치마가 의례용 덧치마일 가능성 을 고려해, 재현 치마도 홑 장치마와 겹치마의 이중 치마로 설정해 다양한 방식으로 착용할 수 있게 구상 하였다. 포도다람쥐단 겹저고리로 설정된 저고리에 맞추어 겹치마는 단으로 제작하고 덧입는 홑 장치마 는 얇은 사로 제작하여, 한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착용할 수 있도록 상하의의 태를 통일하였다. 현재 국 내의 시판 문양직 중에 18세기 초의 문양이 정확하게 제직된 대단과 대사를 찾기 어려워, 가능한 재질과 문 양 형식이 이와 유사한 시판 전통직물을 사용하였다.

    홑 장치마(long skirt)는 ‘skirt A’, 겹치마(lined skirt) 는 ‘skirt B’로 명명한다. Skirt A는 해평윤씨의 홑치마 길이와 치수를 참조했으며, skirt B의 참고유물 길이 는 103cm이지만 키가 다소 큰 아동에게도 맞도록 <Table 2>에서 가장 긴 106cm 치마의 치수를 응용하 였다.

    1) Long skirt

    홑 장치마인 skirt A는 국산 사 직물 중, 비교적 참 고유물과 문양 형식이 유사하고 색상이 다홍색에 가 까운 연화문사로 제작하였다. 155:95의 비율을 따른 총길이와 폭은 각각 82cm와 206.4cm이며, 말기끈은 4.3×48.6cm이다. 그 외의 치수는 <Fig. 16>, 완성된 샘 플은 <Fig. 17>과 같다.

    Skirt A의 겉주름은 약 1.2cm, 안주름은 약 2.4cm 이다. 참고유물은 옆선 제물단과 밑 별단이 있고 긴 주름이 잡혔으며, 왼쪽과 오른쪽 옆선에 각각 9, 10cm씩 주름이 잡히지 않은 부분이 있다(Lee, 2010). 위와 같은 방식으로 skirt A의 옆단과 밑단을 3.8cm 너비로 제작하고 비침을 고려해 공그르기로 마무리했 으며, 시접은 통솔로 처리했다. 직물 폭을 고려해 왼 쪽에 약 5.5cm, 오른쪽에 약 6cm를 남기고 최대한 긴 주름을 잡았다(Fig. 18).

    참고유물은 주름이 길어서 거들치마와도 유사한 특징을 지녔으나, 거들치마 특유의 바느질 고정 자국 이 없었다(Lee, 2010). 이를 참고해 skirt A도 걷어 올 리지 않고 착용하도록 한다.

    2) Lined skirt

    Skirt B의 크기와 재질은 DUSMM(2010)의 연구에 서 장치마보다 폭이 좁은 겹치마(No.9617)를 참조했 으며, 155:95의 비율을 따른 총길이와 폭은 약 61.3cm 와 201.5cm, 말기끈은 3×62cm이다. 그 외의 치수는 <Fig. 19>와 같다. 2종 이상의 화문과 보문이 조합된 국산 홍색 화보문단으로 겉감을 제작했으며 홍색 주 안감을 대었다. 완성된 샘플은 <Fig. 20>과 같다.

    Skirt B의 겉주름은 1.4~1.5cm, 안주름은 약 3.2cm 이다. 참고유물의 주름은 길지만 밑단까지 잡히지 않 았고 왼쪽과 오른쪽 옆선에 각각 8, 11cm씩 주름이 없는 부분이 있다(Lee, 2010). 이를 따라 skirt B의 왼 쪽에 4.9cm, 오른쪽에 6.7cm를 남기고 그 안쪽에서 주름을 잡았으며, 밑 안단의 너비는 약 1cm이다(Fig. 21).

    3. Wearing appearance

    약 17cm 길이인 두상을 제외하고 발판을 포함한 길이가 73cm인 3~4세 아동 마네킹에 재현 샘플을 착 용시켜 관찰하였다. 마네킹의 목 부분이 두껍고 단단 해 깃의 여유가 미세하게 부족했으나, 이는 마네킹과 인체의 차이로 볼 수 있다. 또한 skirt A의 길이가 매 우 길어서 그대로 착용시키면 아랫단이 상당히 구겨 지며 벌어지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장치마의 밑단을 더 자연스럽게 퍼지게 하기 위해 밑단 주름을 일부 다 림질하고, 5cm 높이의 단을 받쳐서 안에 입는 skirt B 의 길이를 늘렸다.

    <Fig. 22>는 마네킹에 저고리와 skirt B를 그대로 착용시킨 모습, <Fig. 23>은 단을 받쳐 skirt B의 길이 를 늘린 모습, <Fig. 24>는 <Fig. 23>에 skirt A를 덧입 힌 모습이다. 직물의 투명도와 주름 태를 고려해 <Fig. 23> 및 <Fig. 24>의 치마끈은 옆으로 돌려 착용시켰 다. 결과물은 의뢰처의 호응을 얻었으며, 착용자의 신 장에 따라 장치마의 밑단 태가 다소 달라지므로 시연 대상의 신장을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시장 수요 문제로 인해 18세기 직물 재현 제품이 부족 한 점도 추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V. Conclusion

    본 연구는 18세기 초 상류층 여아복식을 착용 가능 한 시연복식으로 재현하여 아동복식 유물이 매우 드 문 시대의 복식 콘텐츠를 보완하기 위해 진행되었다. 이는 한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현재의 트렌드에 부 합해 전통 아동복식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연 구이다. 주요 참고자료는 해당시기의 성인여성 복식 유물 및 숙종실록 1701년의 기록에 나타난 4세용 여아복식 품목이다. 후자는 정치적 위기를 맞은 장희 빈의 요구로 제작된 의복들이지만, 주술적 의미보다 품목 자체의 특징을 중시하였다. 18세기 외의 조선 시 대 아동복식이 대부분 성인복식의 축소형임을 참조하 고 조선 여성 미라의 신장과 현대 여아 신장을 고려하 여 155:95 비율을 적용하였다. 연구의 효용성을 높이 기 위해 재현 대상을 기본복식인 저고리와 치마로 구 성하였다. 염습시기가 1701년이며 보존상태가 좋고 섬세하며 다양한 품목으로 구성된 해평윤씨의 복식유 물을 중점 참고유물로 선별하고, 염습시기가 1699년 인 사천목씨의 유물 및 유사한 시기의 복식유물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형태와 직물 종류를 부분적으로 참고하였다.

    재현된 복식은 당코 겉깃이 부착된 여아용 삼회장 저고리, 홑 장치마(skirt A), 겹치마(skirt B)이다. 숙 종실록 1701년의 기록에 나타난 복식 종류와 재료, 사천목씨와 해평윤씨의 유물에서 보이는 형태 특성과 직물 문양, 바느질 방법, 18세기 초 전후의 사대부가 성인여성 복식유물을 다룬 선행연구에서 안깃 형태의 변화 양상과 직물 종류 및 문양 구성을 참조하였다. 어린이가 착용할 때의 편안함을 고려해 저고리의 진동 길이와 품에 미세한 여유분을 넣었고, 심미성을 높이 기 위해 외형이 정교하고 격식을 갖춘 삼회장 저고리 와 이중 치마를 재현 대상으로 선별했으며 섬세한 문 양을 지닌 사와 단 유물을 중점적으로 관찰하여 가능 한 이와 유사한 문양을 지닌 시판직물을 선택하였다.

    복식의 기본재료로는 다양한 계절을 아우를 수 있 는 단을 사용하였다. 저고리는 장희빈이 제공한 금단 으로 제작했다는 가정하에 송화색 단 저고리로 설정 했으며, 해평윤씨의 삼회장 저고리 재료와 유사한 포 도다람쥐단과 화보문단을 사용해 삼회장 겹저고리로 제작하였다. 치마는 의례용인 홑 장치마를 겹치마 위 에 덧입는 형식으로 설정되었다. Skirt A는 해평윤씨 의 장치마 유물을 참조해 얇은 덩쿨연화사로, skirt B 는 저고리형 여의에 맞추어 화보문단으로 제작하였 다. 두 치마 모두 양옆을 일부 남기고 가운데에 긴 주 름을 잡았다. 재현된 복식 결과물로서 실물샘플의 형 태, 도식화, 3~4세 아동 마네킹에 착장한 모습을 함께 제시하였다. 결과물은 복식교육기관의 고증복식 콘텐 츠 및 한정 인원을 대상으로 한 시연복식으로 활용될 예정이나, 착용 태를 위해 착용자의 신장이 제한될 수 있다. 본 연구는 기본 품목인 저고리와 치마를 중심으 로 진행되었으며, 지면의 한계로 인해 장의와 바지의 분석 및 재현은 후속연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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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Daily Records of Royal Secretariat of Joseon Dynasty, 1701 Reprinted from ITKC. (2000-2015c). http://kyudb.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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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gui & jangot Reprinted from CNUM. (2010). https://museum.chungb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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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hoejang-jeogori of Madam Haepyeong Yoon (No. 9584) Reprinted from DUSMM. (2010).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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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m-hoejang-jeogori of Madam Sacheon Mok Reprinted from GPM. (2010). p.187.

    RJCC-30-2-281_F5.gif

    Embroidered part of Madam Haepyeong Yoon’s jeogori (No. 9579) Reprinted from DUSMM. (2010).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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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lined long skirt of Madam Haepyeong Yoon (No. 9616) Reprinted from DUSMM. (2010).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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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tus pattern of unlined long skirt (No. 9616) Reprinted from DUSMM. (2010).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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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lined long skirt and lined skirt of Anjeong Na clan Reprinted from DMM. (2016).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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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ned skirt of Madam Haepyeong Yoon (No. 9617) Reprinted from DUSMM. (2010).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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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brics of Sam-hoejang-jeogori (No. 9584) Reprinted from DUSMM. (2010).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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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brics of lined skirt (No. 9617) Reprinted from DUSMM. (2010).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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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brics of reproduced jeogori Photographed by the author. (December 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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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grams of reproduced jeogori Worked by the author. (November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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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produced jeogori Worked by the author and Lee Seo-yun. (December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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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tails of reproduced jeogori Worked by the author and Lee Seo-yun. (December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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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gram and fabric: skirt A Worked by the author. (November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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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irt A Worked by the author and Lee Soon-Hwak. (December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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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tails of skirt A Worked by the author and Lee Soon-Hwak. (December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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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agram and fabric: skirt B Worked by the author. (November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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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irt B Worked by the author and Lee Soon-Hwak. (December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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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tails of skirt B Worked by the author and Lee Soon-Hwak. (December 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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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aring appearance I Photographed by the author. (January 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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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aring appearance II Photographed by the author. (January 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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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aring appearance III Photographed by the author. (January 1, 2022).

    Table

    The girl’s costume recorded in the Sukjong-silrok of 1701

    Madam Haepyeong Yoon’s skirt made with dan or sa (Unit: cm)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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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end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