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Introduction
20세기가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문화원형의 인문학적 가치를 논하던 시 대였다면, 21세기는 문화원형을 어떻게 활용하여 문화산업적 가치를 창출할 것 인가에 대해서 논하는 시대이다. 문화유산의 의미는 전통문화자원의 영역에서 정의한다. 그리고 그 영역 에서는 ‘문화원형’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 원래 문화원형이라는 개념은 한국 전통문화원형으로서 문 화콘텐츠의 원천 소재로 지칭되기도 한다. 문화원형 은 문화콘텐츠의 ‘창조적 상상력’과 ‘문화기술’에 의 해 영상, 공연, 애니메이션, 출판 등의 문화콘텐츠로 개발되어 문화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원천 소재를 제공 하고 있다. 그래서 가공되지 않은 고유의 문화원형 속 에서 가치를 평가하기보다는 새롭게 창조된 문화콘텐 츠에서 문화원형의 가치를 평가하게 된다(Han, 2013).
이러한 문화원형은 시각적인 자료로 출토 유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본 연구에서는 출토 유물 중 에서 군사복식이라 할 수 있는 갑옷문화원형을 중심 으로 재현 및 이를 창조적 상상력과 문화기술을 활용 하여 공연복식 문화콘텐츠로의 접목을 시도해 보고자 하였다.
현재 한반도에서 출토된 철제 갑옷은 500여점에 달하나(Gimhae National Museum [GNM], 2015), 그 중 찰갑은 130여점에 이르며, 그 대부분은 4~6C 대의 출토품이다. 삼국시대의 찰갑은 신라․가야지역에서 는 부장품으로 고분에 매납된 경우가 대부분이며, 고 구려․백제지역에서는 생활유적이나 관방유적(關防 遺蹟)에서도 출토된다. 6C 중엽 이후에는 고분에서의 무기 부장이 중단되고 고분 이외에서의 출토품도 없 어 통일신라시대의 찰갑 자료는 거의 볼 수 없다. 그 리고 7C 이후의 국내 찰갑으로는 백제가 멸망한 660 년 무렵의 부여 공산성에서 출토된 옻칠갑, 통일신라 시대의 동궁과 월지 출토 청동소찰, 조선시대의 류성 룡 찰갑, 부안 수안동 동래읍성 해자에서 출토된 찰 갑이 전부인 상황(Silla Cultural Heritage Research Institute [SCHRI], 2018)이었으나, 2014년 신라문화 유산연구원이 경주 재매정지(財買井址) 5차 발굴 조사 를 통해 13호 수혈에서 철제 찰갑을 발굴함으로써 찰 갑에 대한 구조와 원형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 다. 이 철제 찰갑은 공반유물을 통해 시기는 9~10C로 편년되어 그간 공백으로 남아있었던 통일신라시대의 갑옷 연구에 중요한 유물자료이다.
고대 갑옷 재현 관련 선행연구로는 고구려 갑옷의 고증제작(Park, 2001)과 전시를 위한 한성 백제 시기 갑옷 재현 제작(Chae & Kim, 2017)에 대한 연구가 있 었다. 출토 유물을 토대로 한 갑옷 연구로는 다수의 판갑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고, 삼국시대 영남 지 역에서 출토된 찰갑에 대한 연구(Hwang, 2010;Kim, 2019)와 고구려 찰갑에 대한 연구(Lee, 2010)가 있었 으나, 출토 유물에 대한 고찰에 그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출토 상태를 중심으로 형태의 재현을 위한 구조와 특징을 파악한 후 통일신라시대 찰갑을 재현하고, 이를 문화콘텐츠로써 문화행사용 갑옷으로 활용하는데 연구목적을 두었다.
연구방법으로는 갑옷 관련 발굴보고서 및 서적을 토대로 한 문헌연구와 출토 유물을 실질적으로 분석 하여 프로토타이핑을 토대로 갑옷을 재현 및 문화콘 텐츠로 접목하는 실증적 방법을 사용하였고, 연구범 위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재매정에서 출토된 찰 갑을 중심으로 당시 군사복식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Ⅱ. Theoretical Background
1. Ancient Chalgap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세력을 경합하던 시대 의 갑옷은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고분벽화와 문헌 을 통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 시대의 갑옷은 보병 이 착용했던 판갑(板甲)과 기병이 주로 착용했던 찰갑 (札甲)으로 구분된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보면 찰갑 을 주로 착용하였는데 이는 고구려가 전투시 기마전 을 채택했기 때문이며, 신라와 가야 지방에서는 판갑 이 주로 출토되는데, 이것은 이 나라들이 아직 기마전 술을 주요 전술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5세기부터 고구려의 기마전술이 신라와 가야로 전파 되면서 찰갑이 주로 출토되고 있다(Song, 1989).
지금까지 신라 지역에서 출토된 찰갑 자료는 매우 적은 편이다. 갑옷은 대부분 철제품이기 때문에 부식 과 수착이 심하고 구조가 복잡하다는 자료의 특성으 로 인해 재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됨으로써 미보고의 예가 많다. 따라서 갑옷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찰갑은 출토 그 자체 또는 약간의 대표적인 소찰만 보고될 뿐 제작기법이나 세부적인 구조 재현이 이루어지지 않아 전체의 형태가 전혀 확인되지 않은 실정이다.
고대의 찰갑은 부위에 관계없이 비슷한 크기와 형 태로 소찰을 가공하고 가죽끈(革紐)으로 연결하여 제 작한 갑옷 형식(形式)으로, 인체의 다양한 곡률에 맞 게 부위에 따라 소찰의 형태에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 다. 소찰은 평면 형태에 따라서 장방형(長方形) 계열 과 한쪽 또는 양쪽의 단부(端部)가 둥글게 되어 있는 원두형(圓頭形) 계열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신갑(身 甲) 부분에 한정하면 단면형태가 편평한 평찰(平札)과 가운데에 꺾임이 있는 요찰(腰札)로 구분할 수 있다 (Song, 2010).
찰갑의 기술 계통은 연접기법과 착장방식을 통해 서 중국 중원계통과 북방계통으로 구분하고 있다. 여 기서 연접기법은 소찰혁결(小札革結)과 소찰수결(小 札垂結)로 나눌 수 있다. 소찰혁결은 철판 상호간에 가동성이 없는 것이고, 소찰수결은 상하로 가동성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특징으로 중국 중원지방의 한 족 갑옷은 소찰혁결로 연접하여 소위 어린갑(魚鱗甲) 으로 대표되고, 중국 동북 지방과 한반도 지역의 찰갑 은 북방계통의 소찰수결 형식을 취하고 있다(GNM, 2015).
2. Jaemaejeong armor
1) Jaemaejeong armor as a cultural archetype
재매정은 신라 전성기에 금입택(金入宅, 통일신라 시대 서울 경주에 있던 귀족들의 저택) 35채 중 하나 인 재매정택에 소재한 우물로 알려지며, 재매정택은 김유신 집안의 종택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물과 관련 하여 삼국사기 김유신전에 기사가 전해진다. 645년 1 월에는 백제 대군이 매리포성(買利浦城)을 공격하자 상주장군(上州將軍)으로 임명된 김유신은 집에 들르 지 않고 바로 출정하여 백제군을 쫓아내었다. 3월에 돌아와 선덕여왕에게 복명(復命)하자마자 미처 집으 로 돌아가기도 전에 백제군이 공격한다는 전갈을 받 고 즉시 출정하였고, 이 때 집안 사람들이 모두 문 밖 으로 나와 김유신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김유신은 지 나가면서도 들르지 않고 지나갔다가 50보 쯤 가서 말 을 멈추고 사람을 시켜 집에 마실 물을 떠오게 하여 물을 마시고는 자신의 집에 물이 예전 맛 그대로라며 말하고 전장으로 떠났다. 이러한 이야기는 단순히 물 맛을 거론한 것이 아니라, 충성심을 앞세워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하는 내용이다(SCHRI, 2016).
이상의 김유신의 스토리는 무형의 문화원형으로서 재매정에서 출토된 갑옷이라는 유형의 문화원형과 연 결하여 인물과 사건, 시공간 등 그 시대의 문화적 상 상력이 결합된 문화콘텐츠로서 활용가치가 매우 높아 질 것이다. 여기에 유형의 갑옷이 시각적으로 형상화 한다면 대중에게 문화콘텐츠로서의 소비가치가 더 높 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2) Structure and characteristics of Jaemaejeong armor
재매정 갑옷은 북방계통의 소찰수결 형식의 찰갑 으로 703매의 소찰이 <Fig. 1>과 같은 형태로 출토되 었다.
이하의 내용은 본 연구자가 재매정 갑옷 재현 과제 의 자문위원으로서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소속 연구진 들과 과제를 진행하면서 논의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기술한 것이다.
출토 당시의 상태를 보면 펼쳐진 형태의 신갑(身甲, 상반신을 보호하는 갑옷)과 말려있는 상태의 상갑(裳 甲, 허리 아래 치마형태의 갑옷)이 있다. 상갑 아래쪽 으로 좌우에 상박갑(上膊甲, 팔의 상박부를 보호하는 갑옷)이 깔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갑옷 구조를 재현하는데 있어서도 참고하였다. 따라서 재매정 갑 옷은 신갑과 상갑, 상박갑 등의 부위로 구성되고, 각 각이 분리되어 매납이 가능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 며, 각 부위가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구조와 매수를 갖추고 있는 찰갑 1령으로 볼 수 있다.
갑옷의 구조를 자세히 보면 먼저 신갑이 7단 이상 확인되며, 각 단의 매수는 적어도 25매로 구성되어 있 다. 삼국시대 찰갑의 신갑은 허리 윗부분의 동찰(胴 札)과 허리부분의 요찰(腰札), 그리고 요찰 아래의 상 찰(裳札)로 이루어지며, 전반적으로 전개형의 동환식 (胴丸式)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재매정 갑옷은 신갑 과 상갑이 따로 분리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신갑은 전․후를 따로 제작하여 입는 양당식(裲襠式) 형태를 띤다.
신라 왕릉의 석인상을 보면 신갑만 착장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Fig. 2>의 원성왕(재위 785~798)릉 석인상을 보면 큰 소매자락 때문에 측면을 확인할 수 는 없으나, 상반신의 전․후판이 분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어깨에는 굵은 띠를 연결하여 앞․뒤를 교구로 고정하였다. 허리 아래는 엉덩이를 감싸 앞으 로 오는 모습이다. <Fig. 3>의 흥덕왕(재위 826~836) 릉 석인상에서는 허리띠를 기준으로 위와 아래의 소 찰 연결방식이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상․ 하의가 분리되어 있어 따로 착장하고, 굵은 허리띠로 그 위를 묶은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흥덕왕릉과 원성 왕릉 석인상의 신갑 최상단을 보면 곡선적인 형태로 등 중심 부분이 높고 양쪽 겨드랑이 부분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재매정 갑옷에서 도 확인할 수 있는데, 신갑의 소찰이 가장자리에서 안 쪽으로 들어올수록 소찰의 길이가 길어지는 것을 확 인할 수 있다. 이는 길이가 다른 소찰을 사용해 최상 단을 곡선적으로 마감하여 몸의 형태에 맞춰서 방호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갑은 좌우상박갑 위쪽에 둥글게 말린 형태로 출 토되었다. 육안, X-ray, CT 자료를 종합하여 파악 후 총 8단으로, 가장 잘 남아 있는 단에서 매수를 확인한 결과, 각단 51매로 확인되었다. 소찰의 길이와 폭으로 보았을 때 성인 남자의 허리 전체를 감을 수 없는 규 격이다. 석인상 자료를 통해 신갑과 상갑이 별도인 것 으로 판단하였지만, 소매 때문에 앞과 옆은 확인할 수 없었다. 동시기의 중국 당대의 자료를 보면, 명광갑의 경우 착장시 상갑이 허리 뒤쪽부터 감싸오는 형태를 확인할 수 있으며, 앞쪽은 연결되지 않고 벌어져 있 다. 이에 착안하여 재매정 갑옷의 상갑은 신갑을 입은 후 그 위로 엉덩이 쪽을 감싸 앞쪽에서 여미는 방식으 로 보았다. 출토된 소찰의 매수로는 허리부터 엉덩이 약간 밑으로 내려오는 정도이다. 앞부분이 막혀 있지 않아 잘 벌어지기 때문에 움직임은 용이하고 상갑이 벌어지더라도 안쪽에서 신갑이 내려와서 몸의 앞쪽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방호적인 측면에서도 효율적으 로 볼 수 있다. 신갑과 상갑을 착장하면 석인상에서 보이는 갑옷과 유사한 형태가 된다.
좌우상박갑은 형태를 유지하고 출토되었는데, 4단 으로 이루어져 있다. 1단은 길이가 조금 짧고 횡결공 이 소찰 중위에 2공 1조로 좌우에 배치된 소찰이다. 2․3․4단은 1단에 비해 길이가 길고 횡결이 상․하 에 2열로 배치된 소찰로 각 단 최소 13매 이상 구성되 었다. 상박갑은 찰갑의 구조에서 복원하기 어려운 부 위 중 하나로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출토되는 신갑과 상갑에 비해 상박갑은 흩어져서 출토되는 경우가 많 고, 연결방식을 추정할 수 있는 부위가 잘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구조와 착장방식이 밝혀지지 않았다. 재 매정 갑옷의 상박갑에서는 착장은 좌우상박갑이 흉부 상박갑과 함께 연결되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흉부상박갑은 상갑의 앞쪽에서 말려진 채로 출토 되었다. 46매가 출토되었고, 주변에서 수습된 소찰을 포함하면 90매 가량 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착장자 의 목과 어깨 주위를 둥글게 감싸며 보호해주는 장비 로 좌우상박갑과 연결되어 전체 상박갑의 형태를 완 성되는 형태로 보여진다. 이러한 내용은 <Table 1>로 정리하였다.
이상에서 본 재매정 갑옷의 구조적인 특징은 일반 적인 출토 갑옷에서 보이는 목을 방어하는 경갑(頸甲) 과 허리부분의 요찰이 없고, 상박갑은 좌우상박갑의 소찰과 흉부를 보호하는 소찰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상갑의 둘레가 짧고 뒤쪽만 가려지는 형태로 서 이를 토대로 재매정 갑옷을 재현하고자 하였다.
Ⅲ. Reproduction and Utilization of Armor Culture Archetype
본 연구에서는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의 연구진을 중 심으로 갑옷 전문 자문위원 및 검토위원이 모여 총 3 차례의 자문회의와 2차례의 검토회의를 거친 후 다음 과 같은 순서로 재매정 갑옷에 대한 원형 재현에 착수 하였다.
1. Jaemaejeong armor prototype
갑옷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기에 앞서 <Fig. 1>의 출 토 당시의 상태를 토대로 먼저 <Fig. 4>와 <Fig. 5>처 럼 출토 상태의 소찰에 대한 모식도 작업 후 소찰을 분류하였다. 그리고 펼쳐진 상태의 신갑과 말려있는 상갑, 분리되어 있는 상갑갑의 소찰 모식도를 하드보 드지에 복사한 후 재단하여 소찰 수량 및 중첩양상을 확인하여 찰갑 구조를 파악하였다.
찰갑을 구성하는 소찰의 투공은 <Fig. 6>과 같이 수 결공(垂結孔), 횡결공(橫結孔), 고정공(固定孔)으로 나 뉜다. 수결공은 상하 연결을 위한 투공으로 소찰의 중 심부에 세로로 길게 배치된다. 횡결공은 좌우를 연결 하기 위한 투공으로, 2공(孔)1조(組)를 기본으로 구성 된다. 고정공은 소찰 하단에 갑옷 가장자리를 마감하 는 복륜(覆輪)하는데 주로 사용된다.
재매정 갑옷의 경우, 이러한 소찰들을 연결하는 기 법으로 <Fig. 7>과 같이 바깥에서부터 안으로 접히는 외중식과 안쪽에서 바깥으로 접히는 내중식을 사용하 였다. 이 기법들 중 외중식은 신갑과 상갑에, 내중식 은 상박갑에 적용하였고, 두 기법 모두 인체의 움직임 을 고려하여 수결법을 적용하였다. 일반적으로 기존 의 외중식은 수결법, 내중식은 혁결법이라는 통념을 벗어난 것으로, 복원 근거는 출토상태와 소찰의 투공 배치에 따른 것이다. 소찰의 하단에 세로로 2개의 투 공이 배치되어 있어 상하를 연결하는 투공이 되는데, 기존에 알려진 수결법으로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외 중식으로 연결하려면 소찰 하단에 있는 수결공으로 수결을 해야 하는데 그 길이가 너무 길고, 형태상으로 도 적합하지 않았다. 내중식으로 혁결을 하면 소찰이 고정되어 어깨와 상박의 곡률을 맞출 수 없고, 혁결을 하기 위한 투공배치도 맞지 않았다. 내중식으로 수결 을 하면 1단은 어깨에 맞는 곡률을 만들면서 위치하 고, 2․3․4단은 상박의 형태에 맞는 곡률을 만들면 서 착장이 가능하다. 바깥으로 수결하면 끈의 제약으 로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것에 한계가 있지만, 안쪽 으로 수결하면 각 단이 신체의 곡률에 맞게 말리며, 아랫단으로 내려올수록 몸쪽으로 붙기 때문이다. 이 러한 방식으로 <Fig. 8>의 소찰 모식도대로 포맥스 재 단한 각 부분별 소찰들을 연결하여 <Fig. 9>와 같이 프로토타입을 제작해 봄으로써 연결방법의 적합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박갑의 형태가 내중식으로 파악 할 수 있는 자료로는 복천동 10․11호, 임당 G5호, 동 래 수안동 출토 찰갑 등이 있다.
흉부상박갑도 좌우상박갑과 같은 내중식으로 수결 하여 연결하였으며, 좌우상박갑과 떨어져서 출토되었 기 때문에 각각을 분리할 수 있는 탈부착식으로 재현 하였다. 형태는 목부터 팔까지 다 보호할 수 있고 신 갑을 입은 후에 착장하는 구조이다. 말려서 출토되었 고 양쪽 끝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밈이 있 는 형태로 판단하였다. 여밈의 방향은 어느 쪽인지 정 확하게 알 수 없으나 투구가 추가될 가능성을 고려해 프로토타입에서 뒤쪽으로 배치하였다.
재매정 갑옷은 투구와 경갑이 출토되지 않았다. 4~5C 대에 출토되는 나팔모양의 높은 경갑(頸甲)은 6C 대에는 점차 작아지는데, 통일신라시대가 되면 경 갑 대신 투구와 상박갑으로 목 주위의 무장을 겸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대(唐代)의 벽화를 보면 투구의 수미부 가리개가 어깨까지 내려와서 목 전체를 감싸 고 있어 경갑이 필요 없는 구조인 것을 확인할 수 있 다. 재매정에서는 투구가 출토되지 않았으나, 동궁과 월지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투구와 함께 다수의 소찰이 출토되었기 때문에, 투구의 수미부 가리개가 어깨까 지의 방어가 가능한 형태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삼국시대 상박갑과 부속갑인 나팔모양의 경갑은 각각 의 착장 방식과 서로간의 연결 방식이 명확하게 밝혀 지지 않고 있다. 경갑을 찰갑에 고정을 해야 하는데 그 흔적이 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매정 갑옷의 상박갑에서 보면 목 주변으로 가슴과 등까지 소찰이 돌아가며 배치되기 때문에 유사한 형태가 삼국시대 찰갑에서 출토된다면 이 부분에 경갑과의 고정 장치 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갑 하단부에는 석인상의 갑옷 하단부처럼 복륜 을 하였다. 소재는 소찰의 움직임을 고려한다면 철 소 재가 아닌 유기질이었을 것으로 판단하여 직물에 두 꺼운 심을 대어 투공을 통해 바느질로 부착하였다.
2. Reproduction of Jaemaejeong armor
본 연구에서는 갑옷 자문회의와 검토회의를 거쳐 완성한 프로타입을 토대로 실제 갑옷으로 재현하였 다. 먼저 갑옷구조 확인을 통해 부분별로 확정한 소찰 들을 <Fig. 10>과 같이 1.2mm 두께의 철판을 레이저 커팅하여 여유 분량 포함 신갑 소찰 500개, 좌우상박 갑 소찰 150개, 흉부상박갑 소찰 200개, 상갑 소찰 500개를 제작하였다.
레이저 커팅한 소찰은 커팅 과정에서 오일이 묻어 헝겊으로 닦아낸 후 <Fig. 11>과 같이 옷칠 과정을 거 쳤다. 옻은 전통 열경화형 옻칠 암주합색을 사용하였 으며, 옻의 경화 속도가 낮아 전기오븐을 이용하여 사 전 테스트를 거쳐 130도에서 30분 가열한 후 48시간 동안 상온 건조하였다. 소찰에 칠해진 옻의 컬러를 진 한 암주합색으로 만들기 위해 이 과정을 3회 반복하 였다.
옻칠한 소찰이 완전 건조되면 프로토타입에 적용 했던 연결기법을 <Fig. 12>처럼 신갑과 상갑은 외중식 을, 상박갑은 내중식을 적용하였다. 두 기법 모두 인 체의 움직임을 고려하여 수결법을 적용하여 5mm 폭 의 소가죽 끈으로 상하 수결 및 좌우 혁결하였다.
찰갑의 부분별 구조로 먼저 신갑의 경우 7단 25매 만 출토되었으나, 인체를 보호하기에 부족한 매수라 서 소찰의 유실을 고려하여 앞면 7단과 뒷면 5단으로 늘였다. 신갑의 몸통 부분은 신라왕릉 석인상 자료와 방어효과를 위해 옆구리 부분을 가릴 수 있도록 ‘凸’ 자 형태로, 신갑의 상단부는 신라왕릉 석인상 및 출토 소찰을 통해 완만한 ‘∩’형태로 재현하였다.
상박갑의 경우, 좌우상박갑은 직사각 형태로 4단을 흉부상박갑은 1열 2단으로 재현하여 상박갑이 좌우 어깨와 목 아래 가슴 일부까지 보호하는 형태로 재현 하였다. 상박갑의 매듭은 경갑 유무에 따라 위치를 결 정하지만, 재매정 갑옷에서는 경갑이 확인되지 않아 방어기능을 고려하여 뒤쪽에 배치하였다.
상갑은 중첩이 심한 반원 형태로 출토되었는데, 분 석과정에서 전체 8단 확인하였다. 실제 재현 갑옷에 서는 신라왕릉 석인상과 같은 형태로 파악하여 1단에 서 8단으로 갈수록 단수가 줄어드는 사다리꼴 형태에 서 동일 매수 직사각형의 8단 55매로 수정하여 재현 하였다. 완성된 재매정 갑옷은 <Fig. 13>과 같다.
<Fig. 14>는 신갑 소찰에서 하단부 고정공과 횡결 공의 틈으로 바느질 공간을 두어 실크 소재에 두꺼운 심을 안에 대고 바느질하여 복륜(覆輪)한 샘플의 겉면 과 속면으로서, 갑옷 하단부 직선 형태의 복륜은 가능 하나, 측면의 경우 층간 분리되어 있어 각각의 소찰을 복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복륜을 하더라도 실질 적인 복륜의 기능은 상실한다.
그리고 완성된 갑옷을 토대로 일러스트화한 갑옷 의 착장 방법 및 순서는 <Fig. 15>처럼 먼저 신갑을 착용한 후 허리에 상갑을 착용한다. 다음으로 상박갑 의 경우 흉부상박갑을 먼저 착용한 후 좌우상박갑을 연결하여 착용한다. 마지막으로 신갑을 몸에 단단히 밀착시키기 위해 허리에 대(帶)를 맨다.
3. Utilization of armor culture archetypes as cultural contents
본 연구에서는 통일신라시대 갑옷으로 고증 재현 한 재매정 갑옷을 근거로 경주시 고취대의 퍼레이드 갑옷에 적합하도록 세부 디자인 수정 및 보완 후 경량 화 방법을 모색하여 신라 고취대의 의장대 장군복식 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고취대는 두드리는 타악기 와 부는 관악기로 구성된 악대를 뜻하며, 현대의 군악 대라 할 수 있는데 각종 국제행사와 퍼레이드, 국악연 주 부분에서도 활약을 펼치며 경주만의 독특하고 새 로운 관광 문화콘텐츠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를 위 해 고대 갑옷 관련 전문가 및 L 테마파크 공연기획자, 경주시 예술단으로 구성된 자문회의를 거쳐 다음과 같이 신라 고취대 공연복식을 디자인 및 프로토타입 으로 개발하였다.
먼저 완성된 형태의 갑옷이 되려면 함께 출토되지 않은 투구와 그 외 팔을 보호하는 비갑(臂甲)과 정강 이 부분을 보호하는 경갑(脛甲), 가슴을 보호하는 명 광개(明光鎧), 사타구니 부분을 보호하는 골미(鶻尾) 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투구의 경우는 동궁과 월지에서 출토된 <Fig. 16> 의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청동제 투구와 소찰을 활용하였다. 투구의 형태는 좌우로 분리 제작되어 접 합한 형태로서 현재의 헬멧과 비슷하다. 투구의 상부 에는 반구형의 작은 주(冑)가 세워서 접합한 형태를 보인다. 투구의 하단 가장자리에는 다량의 투공이 있 어 소찰이 매달린 흔적으로 추정된다.
명광개와 골미는 <Fig. 17>의 성덕왕릉 십이지신상 (닭)에서 디자인을 도출하였고, 비갑과 경갑은 공연복 식의 특성상 장식성을 높이기 위해 통일신라시대와 시기적으로 비슷하고 복식문화뿐만 아니라, 갑옷문화 역시 교류가 활발했을 것으로 판단하여 <Fig. 18>의 당대 돈황 석굴 갑옷에서 디자인을 차용하였다.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Fig. 19>와 같이 고취대 갑 옷을 일러스트를 활용하여 디자인하였다. 그리고 최 종적으로 <Fig. 20>과 같이 퍼레이드 공연용 갑옷을 제작하였으며, 무게의 경량화를 위해 재현 갑옷에 활 용되었던 소찰보다 얇은 0.6mm 두께로 가장자리에 곡면을 두어 외관상 두꺼워 보이나, 무게는 절반으로 줄였다. 명광개의 경우, 가슴의 곡면과 원형 부조를 만들기 위해 15mm 두께의 알루미늄판을 레이저 절삭 하여 형태를 완성하였다.
문화콘텐츠로서의 재현 갑옷은 출토된 갑옷 고증 을 토대로 공연에 적합한 착복의 간소화 및 경량화가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퍼레이드 공연 관 계자의 시착(試着) 후 의견으로는 재현 갑옷의 주요 구성물인 신갑과 상갑은 무게 중심이 분산되어 있어 착용에 무리가 없으나, 상박갑과 투구는 경량화가 필 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여기에 퍼레이드를 위한 재현 갑옷은 고증을 바탕으로 관람객들에 시각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보다 드라마틱한 디자인도 필요하다. 그러나 지나칠 경우 국적불명의 갑옷이 양산될 수 있 으므로 경계해야 할 것이다.
Ⅳ. Conclusion
본 연구는 경주 재매정 유적 출토 갑옷 재현 사업 에 갑옷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고증을 통해 직접 갑옷을 재현하고, 이를 토대로 공연용 갑옷으로 제작 하여 도출한 결과물이다. 통일신라시대 갑옷을 고증 하여 재현한 재매정 갑옷은 경주의 문화콘텐츠로 홍 보하기 위한 신라 고취대 갑옷이라는 문화상품과 연 결하여 문화콘텐츠로서 갑옷의 활용가치를 제시하고 자 하였다.
재매정 갑옷은 출토 당시 신갑과 상갑, 상박갑으로 구성된 찰갑으로서, 삼국시대의 찰갑과 달리 신갑과 상갑이 따로 분리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고, 신갑은 전․후를 따로 제작하여 입는 양당식 형태가 특징적 이다. 특히 목을 보호하는 경갑이 출토되지 않은 점을 볼 때, 상박갑의 경우 상박 좌우를 보호하는 부분과 흉부를 보호하는 부분으로 분리되어 출토됨으로써 출 토되지 않았던 투구의 수미부 가리개가 어깨까지 방 어가 가능한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 리고 찰갑의 경우, 외중식의 수결기법이 주로 사용되 지만, 재매정 갑옷의 상박갑은 내중식의 수결기법이 사용되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이는 소찰들이 인 체에 밀착되도록 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재현된 재매정 갑옷을 토대로 경주시 고취대의 퍼 레이드 갑옷으로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공연복식의 특성상 디자이너의 상상력과 시대적 고증작업이 수반 되었다. 재매정 갑옷이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출토되 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고 퍼레이드를 관람하 는 관객들의 시선을 이끌 수 있도록 투구와 명광개, 골미와 같은 부속 갑옷이 요구되었고, 그에 따른 형태 적 변형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고대 갑옷을 현대적 문 화콘텐츠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조건이 수반되어야 하며, 이는 전통복식 문화원 형에도 적용됨을 파악할 수 있었다.
첫째, 학문 간의 경계를 넘어선 융합이 필요하다. 갑옷이라는 문화유산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학문연구가 아닌 다양한 시점의 접근방식으 로 복식과 공학 등 학제간 연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고대 갑옷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전제가 되어 야 한다. 스토리텔링이 결합된 갑옷은 스토리를 통해 소비자나 체험자에게 보다 적극적 접근을 가능케 할 것이다.
이러한 전제조건을 바탕으로 고대 갑옷을 현대적 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 시대가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디지털 시대로 접어듦에 따라 문화기술(culture technology)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기술은 디지 털기술의 접목으로 그동안 불가능했던 시각적 이미지 를 창조해내고, 콘텐츠의 생산성을 상상을 초월할 정 도로 높게 끌어올려 장르전환을 가능케 하였고, 테크 놀로지를 기반으로 인체공학, 3D 테크놀로지, 신소재 공학 등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고, 이를 기반으로 창의 력을 발휘하여 콘텐츠를 생성하고 있다.
끝으로 한국 고대 갑옷이 앞서 언급하였던 전제를 기반으로 하여 문화기술을 매개로 고대 갑옷이라는 문화원형으로서 사극, 영화, 애니메이션, 온라인게임, 박물관 등 현대 문화산업 전반에 적용하여 다양한 문 화콘텐츠 형태로 폭넓게 활용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