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2383-6334(Online)
DOI : https://doi.org/10.7741/rjcc.2013.21.1.031
여성 승마복의 남성복 아이템 도입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introduction of men’s items in women’s equestrian clothing
Abstract
Ⅰ. Introduction
인간은 과거에서부터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뛰고 싸우고 사냥해왔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행동의 표출이 스포츠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또한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동기에서 스포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 기원 전의 이집트 군대의 레슬링과 그리스의 단거리 경주(SBE, 1984)에 나타난 유물에서 찾아보면 나체로 경기를 하였고, 그 후 점차 일상복인 로인클로스(loincloth)를 착용하였으나, 경기를 위한 전문적인 스포츠웨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17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 사냥용, 승마복을 시작으로 구기용, 등산용의 의복이 각 스포츠에 맞게 착용되기 시작했으나 많은 발전은 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귀족여성들이 코르셋과 패티코트의 착용으로 활동이 불편한 의복을 입었으나, 산업혁명에 따른 생활환경의 변화와 루소의 계몽주의 영향으로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여성의 자아의식이 싹트고 자유와 해방을 원하게 되면서 여성 의복의 형태는 남성의복의 특징을 띠는 경향으로 변모하였다(Marilyn & Lois, 1988/1994). 그러나, 이미 제1차 세계대전보다 250여년 앞선 17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 여성용 승마복으로 바지를 착용하기 시작한 내용이 문헌에서 발견되고 있다. 선행연구에서 여성이 남성의 바지를 입게 된 것은 남녀평등을 기초한 여성해방의 이념적 측면보다는 승마와 자전거 등의 스포츠가 성행하게 된 것과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Kim, 2004). 승마복을 시작으로 남성 스포츠웨어의 형성이 17세기 후반 귀족 여성들의 승마복 착용에서 남성복적인 요소가 도입이 된 아이템은 무엇이며, 여성의 승마를 위해 변하게 된 승마장비 및 복식에 대해 증거자료를 찾고 연구하고자 한다.
현재 스포츠웨어에 관한 선행연구들은 현대 패션에 나타난 스포티룩의 미적 특성(Kim, 2003)을 고찰하거나, 액티브 스포츠웨어의 트렌드를 분석(Um & Kim, 2003; Ha, Lee & Park, 2006)하고 있으며, 기능성 스포츠웨어 디자인을 제안(Park, 2000)하는 등, 20세기 스포츠웨어에 관한 연구는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으나, 승마복에 관련된 연구는 국내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이에 본 연구는 17세기 후반 이후 문헌에 나타난 여성 승마복 분석을 통해 서양귀족의 스포츠였던 승마복이 현대 여성 패션의 스포츠 캐주얼화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다음 세 가지 연구문제를 토의하고자 한다.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 승마복에 도입된 남성복 아이템은 어떠한 것들인가?
둘째, 17세기 후반 이후부터 19세기까지 각 시기별 여성 승마복의 특징은 무엇이며, 남성복과 공통점은 무엇인가?
셋째, 여성의 승마를 위해 변하게 된 승마 장비와 복식은 어떠한 것들인가?
이러한 연구분석 과정을 통해 여성 승마복 발전이 현대 여성복의 스포츠 캐주얼화의 여러 원인 중 하나이고, 남성복 아이템 도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더욱 가속화되었음을 밝히는데 본 연구의 목적이 있다.
연구내용은 문헌에 나타난 17세기 후반 이후부터 19세기까지 여성 승마복을 고찰하고, 각 시기별 디자인 특징을 분석하여 그 변화, 발전과정을 다루었다.
연구방법으로는 복식사 서적, 사진과 회화 자료들을 선별하여 이를 내용 분석하였다. 연구분석에 사용된 사진 자료는 총 21점이었으며, 17세기 이전 2개, 17세기 자료 3개, 18세기 자료 10개, 19세기 자료 6개였다.
II. Background
1. History of equestrian
승마는 말을 타고 부린다는 뜻에서 마술(馬術)이라고도 한다. 영어에서 ‘마술’을 뜻하는 ‘이퀘스트리어니즘(equestrianism)’은 말을 뜻하는 라틴어 ‘에쿠스(equus)’, 기사를 뜻하는 ‘에쿠에스(eques)’에서 파생되었다. 승마는 스포츠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과 동물이 호흡을 맞추어 치르는 종목이며, 남자부와 여자부를 구분하지 않는 종목이다.
B.C. 200년경 말은 중앙아시아의 거친 유목민족들에 의해서 운송수단으로 사용되었고, B.C. 8~7세기에 스키타이인에 의해 말이 그리스에 소개되어 오락용 승마문화가 급속히 발전되었다. B.C. 4세기에 그리스의 역사가인 크세노폰은 승마를 소개하는 글을 썼는데, 그의 이론 대부분이 아직까지도 거의 그대로 쓰여진다. 그는 부드러운 재갈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고, 조련 시 무력사용을 반대했다 아테네 . 파르테논의 프리즈는 그리스인들이 안장 없이 말을 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승마장비들은 유라시아의 스텝 지대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전해졌으며, 그리스로부터 전해온 것은 아니다. 그리스는 승마의 역사에서 중요한 시발점이 되는데, 그리스에서 귀족들의 운동으로 본격적인 승마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고대의 승마는 무술의 하나였으며, 마상에서 창, 궁, 검을 쓰는 재주를 말하였다. 로마시대 기병들의 활약이 커지며 마술이 크게 발달하였고, 16세기에 접어들어 인본주의 예술의 부흥과 함께 마술도 각광을 받았다. 당시 로마나 나폴리에 승마교습소가 생겼으며, 이때부터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 마술관리소가 확산 발전되었다. 이렇듯, 유럽에서 꾸준히 발전해 오던 승마는 근대에 와서 1780년 경마가 시작되면서 스포츠화 되었다.
근대 이후로 승마인의 안전을 위해 마종(馬種)을 개량하고, 안장을 제도와 법률로 만들어 정하고, 마술과 조련법의 체계화 등이 이루어지면서 승마의 스포츠적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1900년에 근대올림픽종목으로 승마가 채택되면서 이전의 경마 위주의 경기에서 단일장애물뛰어넘기, 고장애뛰어넘기가 시작되었고, 1912년 제5회 대회 때부터는 순마술과 종합마술이 추가되었으며, 5종 경기 중에 마술도 포함시키게 되었다. 1912년 11월 국제마술연맹(Federation Equestre Internationale, FEI)이 창설되면서부터 단일장애물뛰어넘기, 고장애뛰어넘기, 순마술, 종합마술, 마술의 다섯 개 분야가 합해져서 현대의 승마 스포츠가 완성되었다. 이로써, 승마의 스포츠분야 활약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한국은 1952년에 국제마술연맹에 가입하여 본격적으로 국제대회에 승마회원국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2. The women's equestrian costumes due to their necessity on history
승마복은 사람들이 말을 타면서 발생할 수 있는 자연재해와 낙마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이를 승마복을 입기 시작한 기원으로 보고 있다. 승마바지는 고대 페르시아 지역에서 처음 입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아시아 유목민들이 착용하면서 브리치즈(breeches)라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브리치즈가 유럽 전체에서 통용되는 승마복의 기준이 되었으므로 승마복의 원류는 아시아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승마에 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남성들은 이동수단, 전쟁, 운송, 스포츠와 여가활동을 위해 승마를 시작하였고, 여성들은 이동수단과 여가활동을 위해서 승마를 시작하게 되었다. 남성들은 바지 착용으로 마상에서 활동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여성들은 정면자세로 말을 타기 시작하였으나, 스커트 착용으로 승마의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아 측면 자세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측면자세에 적합한 안장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낙마 등의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면서 바지 착용이 시작되었고, 정면자세용 안장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남성복의 아이템이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Fig. 1> 은 초서(Chaucer)의 <캔터버리 이야기(Canterbury Tales) 에 나오는 베스의 아내가 치마를 걷어 올린 말을 타고 기마자세를 취한 모습이다. 넓은 챙의 모자, 안장, 채찍 등을 지니고 혼자 말을 타고 가는 15세기의 여인을 묘사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동승자용 뒷자리에 타거나 말안장의 측면에 따로 장착된 자리에 앉았음을 알 수 있다.
<Fig. 1> Canterbury Tales From. the Ellesmere manuscript of Chaucer's Canterbury Tales. (1407). Huntington Library
최초의 곁안장(여성용 안장, sidesaddle)은 16세기경 헨리 2세의 아내 캐서린 드 매디치(Catherine de Medici)가 고안하였다. 이는 불편하고 힘든 자세로 승마를 해야 했던 문제점을 한 단계 개선한 것이다. 일반 남성용 안장은 측면으로 앉아있는 자세 자체가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여성이 다리를 벌리고 말을 탄 자세는 큰 엉덩이를 가진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 곁안장은 안장고리부분이 안장의 왼쪽으로 옮겨져 있어서 말을 탄 사람의 오른쪽 다리를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Alexander, 1985).
<Fig. 2> 는 17세기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안장으로 여성 측면자세 전용으로 설계된 것이다. 등과 받침대가 있는 의자로 남성용 안장처럼 높은 안장머리와 안장꼬리도 있다. 이 안장은 말의 양쪽 모두에서 사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으며, 앉은 상태에서 말의 머리 부분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고삐를 쥘 수 있게 만들어졌다 . 이 안장은 다리를 단단히 고정시켜 줄 수 있고, 말에 탔을 때 치마단이 완벽한 수평이 되면서 외관상의 아름다움까지 갖출 수 있는 곁안장용 스커트가 필요하게 되었다(Alexander, 1985). 이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앞치마 형태로 발전되었다. 뒤가 트여져 있고, 치마단에 무게 중심을 주면서 말을 탈 때는 땅으로 곧게 뻗는 모양이 되고, 말에서 내리면 다시 속바지 위를 덮는다.
<Fig. 2> Sidesaddle From. Hermés Collection, Paris.
클로드 드뤼에(Claude Deruet, 1588 1662)의 작품인 <Fig. 3> 에서 측면자세의 위험성을 볼 수 있다. 17세기 후반 승마전용 의복이 나오기 전까지는 평상시의 의복으로 말에 올랐기 때문에 로레인 백작부인(Duke de Lorraine)이 사냥에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의복을 입고 매사냥을 즐기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당시 여성들은 치마 안에 화려한 구두와 스타킹, 그리고 리본으로 장식한 가터벨트를 입었다.
<Fig. 3> Duke de Lorraine From. Claude Deruet (1588 1662). Musée de Chartres
III. The Developmental History of Women's Equestrian Costumes
1. The creation of women's equestrian costumes in the late 17th century
승마는 상류계급 여성들이 가장 일찍이 즐겼던 여가활동 가운데 하나였다. 17세기 후반 교외에서 승마, 산책, 여행을 위해 여성들이 착용했던 승마복은 남성용 코트를 모방한 코트와 크라바트(cravat), 패티코트(petticoat)와 함께 부풀린 스커트, 머리에는 가발과 삼각모(tricom hat)를 착용하였다(Diana, 2000/2004). 승마가 남자들 간의 인기 있는 스포츠로 유행되었고, 이것이 보급되어 여자들도 승마를 즐기게 되면서 바지를 착용하게 된 것이다(Chung, 2002).
1666년 6월 12일자 사무엘 페피(Samuel Pepys)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나는 숙녀들이 코트와 치마가 달린 더블릿(doublet)을 걸치고 말을 타고 가는 것을 보았는데, 남자인 나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남성용 코트 속으로 패티코트(petticoat)가 끌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그들이 여자들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이는 심리적이고 실용적인 이유에서 남성복에 매료되던 17세기의 여성들은 승마를 통해 남성복의 일부를 착용하게 된 것이다(Alexander, 1985).
<Fig. 2> 의 17세기 여성 측면자세 전용 안장은 다리를 단단히 고정시켜 줄 수 있고, 말에 탔을 때 치마단이 수평이 되면서 외관상의 아름다움까지 갖출 수 있는 곁안장용 스커트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앞치마 형태로 발전되었다. 이는 스커트는 뒤가 트여져 있고, 말에서 내리면 다시 속바지 위를 덮는 형태이다.
<Fig. 4> 에서 볼 수 있듯이 상류계급 여성은 남성보다 작은 말을 타고 화려한 곁안장 위에서 슬래시 장식이 있는 반소매에 부풀리는 인공미를 없앤 로브를 입고 승마를 즐겼다.
<Fig. 4> Lady & gentleman on horseback From. Aelbert Cuyp. (1660~1665).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Fig. 5> <사냥복을 입은 여인(Dame en habit de chasse, 1676) 이라는 삽화에서 여성용 사냥복에서 보듯이 남성적인 선과 특징을 접목시켰음을 알 수 있다. 코트, 모자, 장식 등 상반신의 모든 요소에서 당시에 유행하던 남성복의 아이템 그대로 살리고 있으며, 하반신은 여성복의 기본인 스커트로 여성성을 보여주며 남성복 유행을 따랐다.
<Fig. 5> Dame en habit de chasse From. artist unknown. (1676). Musée de la Vénerie
2. The settlement of women's equestrian costumes in the 18th century
1730년 이후 신사들이 승마와 다른 운동을 할 때, 평상시에 편안한 의복으로 입기 시작한 프록이 1770년 이후는 모든 경우에 널리 입혀졌다(Kim et al., 2010).
18세기 영국의 승마복인 라이딩 코트(riding coat)에서 유래된 르댕고트(redingote)는 프랑스에 들어와 유행한 것으로 여성들이 입었다. 이는 더블 브레스트와 이중칼라 그리고 짧은 케이프가 달려 있는 코트로 승마 시에 비바람을 막기 위해 입는 일종의 오버코트였다. 18세기 이후 여성 승마복은 남성복 형태를 기본으로 하여 딱딱하게 테일러드된 라이딩 코트를 로브 위에 착용하였다. 르댕고트는 이전 시대의 여성적인 분위기의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대조적인 복장으로 원래 남성의 실용복이었던 것이 여성복으로 도입된 것이다(Chae & Kim, 2003). 현재의 브리치즈(breeches) 또는 조드퍼즈(jodpurs)라고 부르는 승마용 바지에 셔츠, 재킷, 부츠라는 기본형의 구색은 18세기 말 남성용으로서도 완성에 이르렀다(Alexander, 1985).
따라서 승마 시 남성은 프록코트와 테일코트를 입고, 여성은 르댕고트를 입었으며, 여성 스포츠웨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것은 승마복으로서 18세기를 거쳐 19세기에도 남성복에서 유래된 승마복을 착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Lee & Lee, 2007).
<Fig. 6> 1704년의 보르고뉴(bourgogne) 공작부인의 초상화와 <Fig. 7> <기마수렵의 출발(Départ pour la Chasse à Courre)>에서 남성 승마복의 프록코트의 영향을 받은 여성복이 유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의 승마는 예술의 일종으로 각광을 받았고, 승마복은 품위 있는 귀족층의 소유물로 간주되었다 (Diana, 2004).
<Fig. 6> La Duchesse de Bourgogne From. Pierre Gobert. (1704). Musée de Versailles
<Fig. 7> Départ pour la Chasse àCourre From. artist unknown. (ca.1700). Photograph Roger-Viollet
1716년에 기술된 스펙테이터(The Spectator)에는 젊은 여성 기수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푸른색의 낙타털로 장식하고 은색실로 수놓은 상의와 조끼를 걸치고, 다만 같은 색상과 장식으로 꾸며진 치마가 있기에 여성임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은색 둘레장식과 활기찬 깃털장식으로 꾸며진 모자를 예쁘게 치켜세우고, 풍만한 곱슬머리가 어깨까지 적당히 내려와 자줏빛 리본으로 묶여져 있는데, 마치 쾌활한 풍류남의 모습과 같았다.”
그러나 18세기에 말을 탔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스타일을 따랐던 것은 아니다. 1737년의 카를르 반루(Carle van Loo)의 작품인 <Fig. 8><사냥 중 휴식(Halte de Chasse)>을 보면 귀족들의 사냥터에서 여성들은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루이 15세(Louis XV)가 사슴사냥 장소로 즐겨 찾았던 콩피에뉴(Compiègne)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의 가운데 서 있는 왕은 화려한 붉은 아비 아 라 프랑세즈를 입었고, 퐁파드르 부인은 우아한 꽃 장식이 있는 로브 아 라 프랑세즈(robe à la française)를 입고 앉아 있다. 그녀의 의복에 보이는 남성적인 스타일은 짧은 재킷과 자보로 이는 그녀가 사냥에 참가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Fig. 8> Halte de Chasse From. Carle van Loo. (1737). Musée de Louvre
그녀의 주위에는 궁정사냥의 일행임을 증명하는 붉은색과 은색의 장식을 갖춘 푸른색의 아비를 입은 남자들이 서 있다. 루이 15세는 궁중 사냥 모든 참가자들에게 똑같은 유니폼을 입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퐁파드르 . 부인의 사유재산 목록에서 실크로 만든 판타롱이 여러 벌 기록되어 있는데, 승마할 때 추위를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Alexander, 1985).
부츠는 승마, 사냥, 여행, 군대용으로 신었고, 무릎을 덮는 형과 무릎 아래로 접는 부분이 있는 조키 부츠(jockey boots)가 있었다. <Fig. 9>의 남성복은 트리콘 해트(tricorn hat)에 자보(jabot), 앞자락이 휘어진 베스트를 입고, 하의에는 브리치즈를 입고 조키 브츠를 신었다. 여성은 남성 베스트의 트리밍과 같은 것을 장식했고, 털 장식을 한 모자에 남성의 프록에서 보여지는 재킷을 입고 활동하기 쉬운 로브에 부츠를 신었다. 1770년대 이후 여성들도 승마나 스포츠용으로 부츠를 신었다(Sin, 2005).
<Fig. 9> Mr & Mrs Thomas Coltman From. Joseph Wright (1770 1772). National Gallery, London
<Fig. 10>은 조지 스터브스(George Stubbs)가 그린코닝스비(Coningsby) 백작부인의 초상화로, 부인은 리치몬드(Richmond) 공작의 굿우드(Goodwood) 가문에서 전해지는 전통 사냥복을 입고 있다. 흰색술로 장식한 커다란 챙의 검은 비버(beaver) 해트를 쓰고, 검은 크라바트(cravat), 금장단추와 프로깅(fro-ggings, 기다란 나무 단추와 고리로 이뤄진 장식용 외투 단추)로 장식된 푸른색 코트와 조끼, 긴 치마로 구성된 승마복을 입었다. 이 양식은 영국에서 장애물 넘기를 하기 이전 시대의 전형적인 사냥복장이다.
<Fig. 10> Coningsby From. George Stubbs (1724 1806). Yale Center for British Art, New Haven
<Fig. 11>은 1770년 베르사이유에 도착한 어린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승마에 대한 애착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말을 타고 긴 산책을 즐기기도 했고, 왕실에서 주최하는 사슴이나 멧돼지 사냥에 따라 나서기도 했다. 당시에 여성들에게 일반적으로 권장되었던 방식대로 두 다리를 한쪽으로 모아 걸터앉아 말을 타기도 했지만, 남자들처럼 두 다리를 양쪽으로 나누어 내리고 앉아 말을 타는 일이 많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퀼로트를 입고 손에는 채찍을 쥔 채 격렬하게 말을 몰고 있으며, 그 뒤로는 사냥개들이 뒤따르고 있는데, 왕비를 이런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은 당시로써는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안장을 덮고 있는 표범 가죽은 이국적이고 장식적인 느낌을 부여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같은 귀족 여성들은 그녀의 의상에 어울리는 구두를 신었는데, 남성의 구두와 같은 모양이었다. 초기의 스티러프(stirrups, 말 안장 양쪽에 달린 등자)들 중에는 발에 꼭 맞는 신발모양을 닮은 박스 형태도 있었지만 1786년 이후에 하프 부츠가 사용되었다.
<Fig. 11> Portrait équestre de la reine Marie-Antoinette From. Louis-Auguste Brun (1783). Musée de Versailles
<Fig. 12>의 1779년 레이디 워슬리(Lady Worsley)는 남편의 군복을 모방한 승마복을 입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당시 많은 영국 여성들이 남성 군복과 비슷한 승마의상을 입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남성복의 큰 변화가 시작되었고, 여성들의 승마 스타일은 프랑스식에서 영국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영국 신사들은 영국의 잦은 기후변화에 적합한 승마 의상을 입기 시작했고, 심지어 일하거나 궁중에서조차 이 의상을 입었다. 이 간결하고 단순하게 재단된 의상은 이후의 남성복과 여성복 스타일 모두에 영향을 주었다.
<Fig. 12> Lady Worsley From. Joshua Reynolds. (1779). Eeal of Harewood Collection
영국 스포츠 복식사를 저술한 알란 맨스필드(Alan Mansfield)는 “1780년대와 1790년대의 일부 여성들은 군용 유니폼 양식을 모방하였다. 당시 영국 해군의 군청색과 제상들의 흰색을 차용하였는데, 이는 40년 전 유행했던 베드포드 공작부인의 승마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1785년경 업무복과 승마복이 새롭게 선보이면서 변화가 생겼다. 몸에 꽉 끼는 보디스에 옷깃이 달려 있고, 이중, 삼중의 케이프는 마부(馬夫)의 의복과 비슷했다. 스커트처럼 긴 코트에 단추가 끝까지 달려 있는데, 맨 아랫단추가 풀어져 있고, 그 사이로 속옷이 살짝 보였다.” 18세기 승마복이 군사복과 상호연관성이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Phillis & Alan, 1996).
<Fig. 13> 1787년판 갤러리 드 모드(Galerie des Modes)에서 당시의 프랑스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여성 승마복의 형태를 취하면서 “독일양식으로(in a German style)”이라고 적혀 있다. 이전 시대까지 여자의상에 끼쳤던 남성적 스타일의 영향은 여성의 승마복에만 제한되어 왔으나, 이 르댕고트가운은 남성복에서 유래된 것으로 오버드레스 또는 코트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고 세기 , 19 초 제정기의 것은 날씬한 외투로 오늘날 여자 코트의 원류가 된다. 르댕고트 가운은 넓은 라펠이 있고, 허리를 가늘게 강조한 코트 드레스로 속에는 흰 란제리 칼라가 있는 슈미즈를 입었다. 르댕고트 가운은 실용적인 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실크보다 주로 울로 만들었다(Chung, 2002).
<Fig. 13> Galerie des Modes From. Galerie des Modes. (1787).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779년판의 <Fig. 14>는 영국 신사복의 스타일을 프랑스식으로 재해석한 의상으로 허리선과 보디스(bodice)의 위치, 슬리브의 모양, 바지의 스타일이 현대의 여성패션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Fig. 14> Galerie des Modes From. Galerie des Modes. (1779).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Fig. 15>의 광택 있는 검정색 실크해트(silk hat)는 1797년 런던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며 예외적으로 승마경기를 참관할 때 여성도 이 모자를 써야 했다(Cho, Koo & Geum, 1995). 일반적으로 크라바트에 턴 다운 된 칼라의 프록코트를 평상복으로 입었으며, 승마 시에도 입었다.
<Fig. 15> Hambletonian, Rubbing Down From. George Stubbs (1799). Mount Stewart House, Co. Down, Northern Ireland
3. The conversion of women's equestrian costumes into sports wear in the 19th century
19세기 여성 승마복의 길이가 남성복 스타일처럼 길어지고 점차 볼륨감이 줄어들었다. 영국 재단사업이 발전하고 양질의 옷감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여성 승마복은 조지 브라이언 브루멜 시대의 우아함을 보였다. 브루멜은 영국 신사복풍의 큰 유행이 되었던 스타일로 마치 자로 잰 듯 깔끔한 옷감마무리, 밝은 색상과 어두운 색상을 교차하는 스타일을 완성시키며, 남성복과 여성복 모두의 표준이 되었다. 19세기 전반에 걸쳐 그의 스타일은 특히 남녀 승마복식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Alexander, 1985).
<Fig. 16>은 스코티쉬(Scottish) 신사풍의 의상을 입은 조지 할리 드럼몬드(George Harley Drummond)의 초상화로 당시 브루멜 스타일을 보여준다.
<Fig. 16> George Harly Drummond From. Henry Raeburn. (1808). The Metropolian Museum of Art
19세기 여성들은 남성 의복에서 유래된 승마복을 계속 착용했지만, 주로 승마를 할 경우에 한해서였다. <Fig. 17> 1850년에 양재사보다는 재단사가 만든 여성용 곁 안장 승마복의 상의는 남성의 슈트를 모방했지만, 하의는 풍성하고 긴 스커트를 입었다(Alexander, 1985).
<Fig. 17> Les Modes Parisiennes From. Les Modes. Parisienne. (1857)
<Fig. 19> 1870년대 경에는 승마복에 남성적인 테일러 재킷으로 매니시 스타일을 여성들이 입었으며, 남성의 상징인 실크해트를 씀으로써 자웅일체의 복식미를 도입하였다. 또한 당시 남성의 것과 유사한 높은 실크해트를 착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수모자와 밀짚모자도 착용하였다(Fig. 18). 몸에 잘 맞게 재단된 어두운 색의 울 재킷에 길게 늘어뜨린 스커트로 구성되어, 여성 복식에 남성성을 도입한 예가 되었다.
<Fig. 19> Horsewoman in the Bois de Boulogn From. Pierre Auguste Renir. (1873). Hamburgur Kunsthalle, Hamburg, Germany
<Fig. 18> Journal des Demoiselles From. Journal des Demoiselles. (1871)
<Fig. 20>의 1880년대 무렵에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스커트 아래에 길고 곧은 어두운 색상의 바지를 입었다. <Fig. 21>에서 보이듯이 1890년 무렵 상의는 남성 스타일에 더욱 가까워졌다. 엉덩이 길이의 재킷은 오픈칼라와 속에 입은 셔츠와 크라바트를 드러내는 칼라가 특징이었고, 보울러해트와 실크해트는 남성의 것과 똑같았고, 베일까지 쓰게 되었다(Cho, 1995). 영국에서 생겨난 새로운 스타일의 승마복은 조드퍼즈 위에 발목까지 오는 프록코트를 입게 되었다. 승마를 할 때 두 다리를 한쪽으로 모아 앉기보다는 두 다리를 벌리고 올라타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물의를 일으켰다. 다리를 벌리고 걸터앉아 말을 타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 후까지도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전문 재단사가 남성의 반바지 스타일로 만든 옷은 1900년 이후에 여성들이 더욱 자주 착용했다. 승마복의 발전은 다른 상황에서는 완전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던 다양한 형태의 바지들을 포함하여 상류계급 여성들이 남성복의 아이템을 어느 정도 차용하였는지 나타내준다(Diana, 2000/2004).
<Fig. 20> Amazone en drap From. La Mode Illustrée. (1886)
<Fig. 21> Amazones From. La Mode Illustrée. (1893)
실제로 말을 타야 하기 때문에 요구되는 실용적인 이유와 승마가 여성 스포츠로 여겨짐에 따른 변화이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성향으로 승마복에서 긴 소매와 치마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스(Elisabeth of Austria, 1837 1898)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승마복을 입은 19세기의 여성 기수로 손꼽힌다. 비엔나 거리나 활보하는 일상적인 승마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 여성은 국제적 규모로 여행과 승마를 즐겼다. 그녀는 이미 16벌의 승마복을 가졌음에도 여행 중 새로 또 여러 벌 구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최신 유행의 군청색 의상을 선호했다고 한다. 이 패션 여정을 시작했던 1880년 이전이나 이후로도 여성승마복이 이토록 우아한 적이 없었고, 승마가 여성사회에 이처럼 인기를 끈 적도 없었다(“The Imperial Style”, 1980).
당시 여성들이 승마복을 종종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 강풍이 불 때마다 스커트가 공중에서 펄럭거렸다. 19세기에 유행하던 각종 작은 핀, 끈 등의 장신구들도 위험해서 개선되어야 했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말에서 떨어지면서 치마 끝단에 매달린 채 큰 부상을 입는 일이었다. 여성들이 어떤 자세로 승마를 하더라도 커다란 치마를 입고 말에 앉은 채 균형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고, 안전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특히 곁안장의 경우, 안장에 올랐을 때 오른쪽 허벅지를 고정할 수 있도록 충분한 폭의 치마가 필요했다. 1855년부터는 큰 치마 오른쪽으로 작은 주머니를 달아 임시방편으로 삼았지만, 19세기 되어서야 오른쪽 무릎을 위해 특수 제작한 의상이 나오면서 치마의 볼륨감이 줄어들 수 있었다. 1875년에 소개된 이 안전치마(safety-skirt)는 안장에 앉아 있는 동안 치마 뒤를 절개하여 젖혀 입고, 말에서 내리면 다시 치마로 고쳐 입을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Diana, 2000/2004). 이후로도 이러한 안전과 편안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감각적인 스타일을 찾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여성들이 남성들처럼 승마바지와 부츠를 입게 되었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여전히 스커트를 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1879년의 Cassell’s Family Magazine에서 당시의 이 스커트가 너무 복잡해서 집에서 스스로 지어 입을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었으나, 1893년 The Delineator에서 집에서 지을 수 있는 자세한 패턴본이 소개되었다(Alexander, 1985).
상의의 코르셋과 하의의 패티코트와 버슬(bustle)을 착용하여 실루엣을 유지하고, 기능적으로는 척추를 고정하였다. 무릎까지 오는 속바지인 드라우저(drawers)는 19세기 중반의 남자바지처럼 점차 발목까지 이어지는 바지로 바뀌었고, 겉바지인 브리치즈(breeches)는 남성복처럼 무릎 선이 되었다(Alexander, 1985).
IV. Conclusion
남성복의 테일러드슈트가 상류계급 여성의 승마복에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18세기 후반부터는 여성들도 이것을 승마 시 착용하기 시작하였고, 드레스에도 이 스포티모드가 적용되면서 기능적인 의생활로 옮겨지기 시작하였다. 18세기 영국에서 도입했던 르댕고트의 착용은 여성의복에 테일러링이 나타나기 시작한 기원이 되었으며, 여성의복의 테일러드 슈트 시대로 넘어가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고, 바지와 함께 남성복식에서 빌려온 스포츠웨어 중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승마복은 몸에 잘 맞게 재단된 어두운 색의 울 재킷에 길게 늘어뜨린 스커트로 구성되며, 여성복의 남성복 아이템을 도입한 예가 되었다.
여성은 승마 시 측면자세 뿐만 아니라, 정면자세로도 말을 타야 했기에 곁안장이 나오게 되었고, 이에 곁안장용 스커트가 나오게 되었다. 승마 시에 뒤가 트여 있어 활동하기 편하고, 내릴 때에는 속바지가 가려져 앞치마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17세기 후반 승마는 상류계급 여성에 가장 일찍 즐겼던 여가활동 중 하나로, 교외에서 승마, 산책, 여행을 위해 남성용 코트를 모방한 코트와 크라바트, 삼각모, 장신 등 상반신의 모든 요소에서 당시에 유행하던 남성복의 아이템을 그대로 살리고 있으며, 남성복 유행을 따랐다.
18세기 이후 여성 승마복은 남성복 형태를 기본으로 하여 테일러드된 몸에 꼭 끼는 르댕고트를 로브 위에 착용했으며, 퐁파드르 부인 사유재산의 실크 판타롱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퀼로트를 입고 말에 올라 있는 것으로 보아, 여성 상류계급이 바지착용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광택 있는 실크해트도 18세기 후반부터 등장하여 승마경기를 참관할 때 여성도 실크 해트를 써야 했다.
19세기 여성 승마복의 길이가 남성복 스타일처럼 길어지고 점차 볼륨감이 줄어들면서 재킷도 짧고 좁아졌다. 상의의 코르셋과 하의의 패티코트와 버슬을 착용하여 실루엣을 유지하고, 기능적으로는 척추를 고정하였다. 무릎까지 오는 속바지인 드라우저는 19세기 중반의 남자바지처럼 점차 발목까지 이어지는 바지로 바뀌었고 겉바지인 브리치즈는 남성복처럼 무릎 선이 되었다.
본 논문은 승마복을 중심으로 여성복에 남성복 아이템과 요소들이 도입된 과정과 내용을 연구한 것으로써, 국내에서 아직 연구가 미비한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친 여성 승마복에 도입된 남성복의 요인과 디자인 변천과정을 분석하여 현대 여성 스포츠웨어의 발달에 승마복이 중요한 요인임을 밝힌다. 승마복은 학술적인 연구가 거의 진행되고 있지 않아, 도판과 문헌상의 증거자료를 가지고 연구를 하였으나, 문헌 위주의 자료가 많고, 실제 도판에서는 바지 위에 스커트를 덧입어 착용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승마로 제한을 두어 여성 승마복 위주로 연구하였으나, 후속 연구로는 말 위에서의 스포츠인 경마, 사냥, 폴로 등의 복식과도 차이를 연구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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