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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6-0401(Print)
ISSN : 2383-6334(Online)
The Research Journal of the Costume Culture Vol.28 No.1 pp.114-130
DOI : https://doi.org/10.29049/rjcc.2020.28.1.114

The reception of women’s clothing from the 1950s to 1980s

Seungyeun Choi†
Research Professor, The Institute of Asian Culture, Mokpo National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chltmddus200@naver.com)
July 8, 2019 February 5, 2020 February 6, 2020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eal the cultural meaning behind modern experiences of diversity through the history of clothing in Korea. To this end, this study examines aspects that dictate clothing culture acceptance experienced and practiced by women by analyzing the case of the Naju rural area in Jeollanam-do from the 1950s to 1980s. Modern clothing was accepted later in the 20 century in this village, and the Satgolnai traditional textile tradition was an important factor after 1950s. In addition, the continuity of the rural five-day market is different from practices in the city. Limitations in access to media such as TV, films, and magazines, and the functional meaning of clothing in rural areas contributed to limitations for women to get the opportunity to access modern clothing items that were popular in the city. Unlike in the city, the event that inspired the transition to full-scale modern clothing in this village was the Saemaul Undong Movement of the 1970s. Additionally, Mombbe (labor cloth) wor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as continuously worn as daily clothes for Naju women even after the 1950s. Therefore, colonial modernity continued through clothing.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여성 의복 수용의 지역성
- 전라남도 나주 농촌 지역 사례를 중심으로 -

최 승 연†
목포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초록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NRF-2017S1A5B5A02024829

    I. Introduction

    6․25 전쟁 이후 한국 사회 근대 의복의 수용, 그리고 실천의 맥락이 한국 사회 전체에 동일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한국 의복 문화의 역동성을 단순화시키는 논의이다. 전쟁 이후 한국 의복 문화의 근대화에 관한 일반적인 연구 들은 서울 도시에 관한 연구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동일한 공동체라고 인식되 는 한국 사회도 근대 문화는 지역적으로 매우 다른 수용의 맥락들이 있었다. 또한 전쟁 이후 서구 문화의 영향은 일제 강점기 기간 식민지 경험 안에서 수용된 문화가 단절되고, 곧바로 서구 문화의 영향력만을 고려하는 분절적인 문화에 관한 인식도 재고되어야 한다. 특정 시대의 가치와 흐름은 그 당시 사람들의 삶과 실천에 영향을 주었지만 이것은 동일 한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고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의 적응과 조율 방식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었 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삶의 공간에서 이루어 진 근대적 경험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한국 사회와 문 화 그리고 근대성의 다층적인 모습을 이해하는데 중 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이 연구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회문화적 공간 안에 서 전개된 근대적 경험의 다양성과 다층성이 지닌 문화 적 함의를 밝히고자 한다. 한국의 근대화(modernization) 과정에서 주체들의 다양한 문화적 실천 양상의 의미 는 이미 다른 연구들에서도 언급되었다. 또한 근대성 (modernity)은 지역적으로 다양하게 전개되었으나 단 순히 전통적인 것에서 서구적인 문화로 이행한 것이 아닌, 전통성, 식민지성 등 그 이전의 시간 차원과 문 화 요소들이 상호작용(Lee, 2015)한 결과라는 인식도 필요하다.

    그동안 1950년대 이후 서울 도시 지역을 제외한 한 국 직물문화의 지역성에 관한 연구들은 전통 직물 생 산지로 알려진 나주, 안동, 한산, 보성, 곡성, 제주 등 을 대상으로 이 지역의 전통 직물 생산 현황을 기술하 는 형태의 민속학적 연구들이었다. 그러나 위 연구들 은 대부분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지역의 전통 직물 생산 방식을 재현하는 연구들이었으며, 개별 지역의 직물 문화를 과거의 전통으로 박제화시켜 다른 문화 적 요소와 상호 관련시키지 못하고 근․현대적 변화 역시 설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특히 이 연구들은 현재까지 박제화되어 지속된 과거 전통 직물 연구로 한정되어 서울과는 다른 지방의 근대적 변화와 역동 을 파악할 수 연구는 거의 없었다.

    따라서 도시와는 다른 농촌 지역의 고유한 사회문 화적 맥락 안에서 근대적 의복 수용의 경험과 실천에 관한 자료 수집 및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것은 한국 근대 의복 문화사의 역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의 미를 지닌다. 특히 한국의 농촌 지역 가운데 나주시, 곡성군, 보성군 등 전라남도의 많은 농촌 지역은 조선 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직물 생산 전통이 지속되었던 곳으로 한국 사회 근대적 의복 문화 수용의 지역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들이다. 이 연구는 한국 근대 의복 문화사의 다층성을 규명하고자 하는 문제 의식 안에서 농촌 지역 근대 의복 수용의 한 사례로 전라남도 농촌 지역들 가운데 일차적으로 나주시 지 역을 대상으로 하였다. 나주시는 조선시대부터 면화 재배와 면직물 생산을 지속하였고, 나주 샛골 나이라 는 이름으로 한산 모시, 곡성 돌실 나이와 더불어 전 통 직물 생산 지역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동안의 연구는 나주의 전통 직물 재현에 관한 연구만이 있었을 뿐, 지역의 고유한 사회 문화적 맥락 안에서 근대적 의복 수용의 경험과 실천 에 관한 연구는 전무하였다. 따라서 이 연구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나주시 사례를 통해 농촌 지역의 전통성, 식민지적 경험, 특수한 사회문화적인 맥락, 그리고 마 을 주체들의 현실적인 삶의 방식의 선택과 적응이라 는 관점 안에서 근대 여성 의복 수용과 실천의 지역성 의 문제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 연구를 기반으로 향후 전라남도 다른 농촌 지역들의 근대 의복 수용 양상에 관한 비교 연구가 지속될 것이다. 또한 나주시를 대상 으로 하는 이 연구의 결과는 전라남도 다른 농촌 지역 들에 대한 연구 결과와는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Ⅱ. Theoretical Background

    한국 사회 근대성에 관한 기존 연구들은 사회학, 여성학, 역사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 어졌다. 구체적으로 한국 문화의 근대적 경험에 관한 연구 중 가장 많은 연구들은 사회학과 철학분야로서 근대성의 개념(Chang, 2009; Hwang, 2016; Kim, 2007a; Yi, 2007; Yon, 2000), 근대성과 식민성의 관 계(Cho, 2007), 한국의 근대 정치 체제 안에서의 국가 권력, 담론과 근대성의 형성(Kang, 2012), 근대 도시 공간의 형성(Cho, 2015; Lee, 2014), 전통과 근대성 (Na, 2015), 근대성과 민족주의(Chung, 2006) 등 근대 성과 관련된 포괄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여성학 분야(Choi, 2016; Lee, 2000)에서는 근대성과 한국 여 성 젠더 형성에 관한 연구들이 있었다. 그 이외 문학 을 포함한 예술 분야에서도 문학과 예술 작품에 반영 된 한국 근대문화 형성 과정(Back, 2009; Lim, 2004) 과 근대적 문화 변용(Park, 2015)등의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다양한 연구들은 국가 권력과 구조 가 한국 사회 개인의 삶과 이들의 실천을 규정하는 방 식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연구들은 한국 근대성을 거시적인 시각에서 조망하는 분석의 이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장 중심적 자료들을 중 심으로 한국적 근대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역 동과 다양성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이후 한국 사회 의복 근 대성에 관한 분석들은 주로 서울이나 전체 한국 사회 를 대상으로 한복에서 양장으로의 의복 문화의 변화 양상(Jeong, 2019; Koh, 2001;Lee & Kang, 2006), 의 류소재의 변화(Lee & Hong, 2001), 근대적 소비 문화 와 의복(Kim, 2005; Kim, 2012; Park, 2011), 근대 젠 더 정치로서의 의복의 역할(Kim, 2007b), 근대적 표 상과 신여성의 패션(Kim, 2004; Yi, 2014), 그리고 미 디어의 근대성 재현과 패션의 역할(An & Yang, 2001; Choe, 2016; Eom, 2010)등의 연구들이 있었다.

    서울이 아닌 농촌 개별 마을들의 사례연구들을 통 해 마을 주체들의 다양한 실천의 양상에 관한 연구들 (Kang, 1999; Kim, 2006; Kim, 2008; Lee, 2015)은 민 속학적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위 연구들은 전 통 직물생산지로 알려진 지역들의 전통 직물 생산 방 식과 기술을 재현하는 문화재 보존 차원의 연구들로 집중되었다. 예를 들어 전라남도 지역은 나주 샛골 나 이(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2004; Sim, 2003; Sung, 1984)와 곡성 돌실 나이(Suk, 1969), 보성 삼베(Koh, 2004)를 중심으로 한 연구들은 전통 면직물 생산 과정과 보존 현황을 재현하는 연구 들이었다. 전라남도 이외의 지역으로는 안동, 한산 지역 들의 전통 직물 생산 과정과 현황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연구(Ku, 1985), 안동 삼베(Andong National University Museum [ANUM], 2002), 한산 모시(Kim & Cho, 2000; Sim, 2011)에 관한 연구들이 있었다.

    이 연구들 중 지방 의복 문화의 근대적 수용과 특 징에 관한 연구들은 전무하며, 근대성과 지역성의 문 제, 그리고 의복 수용의 문화적 함의에 관한 연구는 거의 부재하였다. 또한 방법론적인 면에서도 선행연 구들은 주로 통계자료와 문헌자료에 기초한 지역 현 황을 기술하는 연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위 연구들은 각 지역이 가진 특수한 사회문화적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개별 지역들에 대한 현지조사와 현지주민 들에 대한 면담을 기초로 하는 민족지적 자료 수집 방 법이 중요하다. 이는 지역 문화의 다양성과 특수성의 단서가 되는 미시적 해석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는 중 요한 연구 방법이 된다. 지역적 차원의 한국 의복의 근대적 전개 양상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과 현장조사 를 중심으로 지역적 특수성과 주체들의 다양한 실천 의 맥락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이 제기된다는 점에서 이 연구의 의미가 있다.

    Ⅲ. Methods

    1. Measurement & data collection

    연구 자료 수집을 위해 문헌조사(literature research method), 참여관찰과 공식적․비공식적인 심층면담 을 기초로 하는 인류학적인 현지조사(ethnographical research method)가 이루어졌다. 문헌조사는 나주 역 사, 문화와 관련된 군지, 역사서, 지역의 신문기사 등 을 검토하였다. 인류학적 현지조사는 2018년 11월 20 일부터 2018년 12월 4일까지 총 2회 실시하였다. 전 체 면담 대상자들에게 동일한 질문의 순서와 내용을 담은 공식적 면담 자료를 가지고 심층 면담을 진행하 였다. 이 과정에서 질문을 추가하는 비공식적인 심층 면담으로 자료가 수집되었다. 이 과정에서 면담 대상 자들이 거주지에 가지고 있는 사진첩 자료들을 볼 수 있었고 과거 일상복과 의례복에 관한 54개의 시각 자 료들을 제공받았다.

    나주시는 현재 12개 면(세지면, 왕곡면, 반남면, 공 산면, 동강면, 다시면, 문평면, 노안면, 금천면, 산포 면, 다도면, 봉황면)으로 구성된 지역이다. 연구를 위 한 조사는 일차적으로 12개 면 가운데 나주시 노안면, 세지면, 공산면, 반남면, 다시면의 5개 지역을 중심으 로 실시되었다. 1차 조사 지역으로 선정한 5개 지역들 은 나주시 서쪽 지역들이며, 나주 샛골 나이가 위치한 다시면 주변 마을들로 다시면과 함께 과거부터 전통 직물 생산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지역들이다. 그 결 과, 다시면에는 천염염색문화관 등 문화재 지정 장인 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반남면에는 국립나주박물관이 위치해 있을 만큼 나주시 전통문화에 있어 중요한 지 역들이다. 면담 대상자 선정은 마을 동사무소의 조력 을 받아 5개 마을(총 인구 15,278명, 2019년 작성기준) 주민들 중 선별되었다. 이 연구의 목적에 맞게 1940년 대부터 1980년 시기에 이 마을에 거주하였던 여성 주 민들 30명을 대상으로 하였다. 선정된 면담자들을 방 문하고 면담을 실시하기 전 면담에 관한 동의를 받고 조사를 실시하였다.

    2. Data analysis

    문헌조사와 인류학적 현지조사로 수집된 나주시 자료들은 연구 내용과 목적과 맞게 선별되었다. 특히 인류학적 현지조사 과정에서 수집된 전체 면담 내용 들을 분석하고, 연구내용과 관련된 일관된 경험을 진 술하는 면담 대상자들의 면담 내용을 선별하였다. 그 결과, 8명(Table 1)의 면담 내용을 본문의 내용에 제 시하였으며, 면담 대상자들의 인적사항은 연령 이외 에 이름은 익명 처리하고 주소는 전체를 표기하지 않 았다. 현지조사 과정에서 수집된 사진 자료들 가운데 연구 내용과 관련된 18개의 사진 자료를 선별하여 본 문에 제시하였다.

    Ⅳ. Results and Discussion

    1. The aspects of modern clothing acceptance in the city after the war

    현재까지 연구에서 1950년대 한국 의복 문화는 서 울 도시 지역을 기초로 다음과 같이 서술되었다. 전쟁 이후 1950년대 한국 의류 생산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 기술자들이 전수한 양장점과 양복점에서 맞춤옷, 그 리고 구호물자와 밀수품에 주로 의존하였다. 한편으 로 여성들의 사회진출 증가, 국민생활 간소화 운동, 신 생활 운동 영향으로 한복이 개량되고 양장화로 인해 한복과 양장이 혼용되는 양상(Lee & Kang, 2006)이 나타난다. 의복 소재는 나일론(nylon)의 빠른 보급으 로 한복과 양장 소재의 변화(Lee & Hong, 2001)가 나 타나고, 자유부인 영화와 같은 근대적인 매체를 통해 비로드(velvet) 소재가 유행하게 된다. 이 당시 신문에 각종 수입 옷감, 모자 등의 패션 용품과 화장품 광고 가 게재되기 시작하였고, 마카오(macao)복지와 비로 드 옷감 그리고 해외에서 유입된 구제품이 유행하였 다. 또한 미군정 시기라는 특수한 사회적 상황과 한국 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부대에서 나온 군복, 낙하산 옷감을 소재로 한 군복 스타일의 밀리터리 룩(military look)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 유행하였다(Koh, 2001).

    1960년대는 한복의 예복화가 진행되고 양장이 일 상복이 되는 양상이 빠르게 진행된다. 남성들 의복은 양장으로 전환이 해방 직후 급속하게 일반 대중에게 파급되었다. 반면, 여성복은 한복 착용이 1960년대까 지 매우 점진적으로 일상화되었다(Jeong, 2019). 의류 산업은 기존 양장점에서 기성복 산업으로 전환되는 시기로 노라노(미국식 양장), 앙드레김, 최경자(일본 식 양장) 등에 의해 양장이 기성복화 되고, 미국과 일 본식 양장이 한국 대중패션의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된 다. 패션이 도시의 중요 소비 품목이 되면서 서구의 패션 유행을 소개하는 잡지가 출간되고 패션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또한 외국 패션잡지, 대중 영화 에서 유행하는 머리 모양, 모자, 신발이 패션 아이템 으로 인기를 얻게 된다(Koh, 2001).

    1970년대에는 모든 계층의 남녀 일상복이 한복에 서 거의 양복, 양장으로 전환된 시대였다. 1970년대 후반에는 합성 섬유가 개발되어 한복감으로는 인조공 단, 코오롱 공단, 평상복에는 레이스(lace), 실크(silk) 등이 많이 선호되었다(Jeong, 2019). 혼례복의 경우 남성은 서양식 예복을 착용하였지만, 신부는 웨딩드 레스 대신 흰 치마․저고리에 면사포를 착용하는 경 우가 많았다. 1970년대에는 서구화의 영향으로 약혼 식을 하는 가정이 늘어났고, 신부는 한복을 착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의류 산업적으로는 개인 디자 이너와 대기업에 의한 의복산업의 기성복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기성복 시대가 전개되었다. 기성복 상설 할 인 매장이 확산되어 명동을 중심으로 하는 고가 의류 시장과 남대문, 동대문의 중저가 의류시장이 형성되 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미니스커트, 장발, 청바지, 생맥주, 통기타 문화가 유행하였다. 그러나 유신정권 에 의해 미니스커트 규제, 히피족의 방송 출연 금지, 매체에서 패션쇼 중개 금지, 남성들의 장발 단속 등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반발로 히피족, 집시 및 펑크 패 션,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문화가 유행하였다. 1980 년대는 미국의 글로벌 아웃소싱(global outsourcing)기 업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의복 산업화가 더욱 가 속화되었다. 한국에서는 88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무 대에 국가 정체성 강화를 위해 “한복”의 세계화가 국 가적으로 추진된다. 수입 자유화로 인한 명품 유행, 스포츠용품의 유행, 교복 자율화로 인한 청소년의 캐 주얼 브랜드도 유행하게 된 시기이다. 의류 산업적으 로는 국내패션디자이너들의 세계진출과 반대로 많은 해외 유명브랜드의 수입, 동대문 패션 타운의 활성화, 해외시장 개방으로 외국 대형 할인 유통점의 등장으로 인한 의류상품 판매 경로와 유통이 다원화(Koh, 2001) 된다. 이상으로 살펴 본 195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 까지의 상황은 한국 도시의 의복 산업화와 근대화의 내용이다.

    2. Regionality of reception of modern clothing: Cases of rural village in Naju, Jeollanam-do

    나주 샛골 나이에서 “샛골”이란 전라남도 나주군 (羅州郡) 다시면(多侍面) 신풍리(新豊里)의 샛골 지명 이고, “나이”란 길쌈이란 뜻으로 샛골의 무명길쌈을 말한다. 나주는 광복 이후 나주군내 3개면이 광산군으 로 이속되었다.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 일원을 통 합하여 금성시로 승격되었고, 1986년 나주시로 개칭 되었다. 나주군은 다른 13개면을 관할하였고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었다(Naju City Compilation Committee [NCCC], 2006). 현재 나주는 시내 읍내 지 역과 남평읍, 그리고 12개 면(세지면, 왕곡면, 반남면, 공산면, 동강면, 다시면, 문평면, 노안면, 금천면, 산포 면, 다도면, 봉황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사 마을 은 노안면, 세지면, 공산면, 반남면, 다시면이다. 나주 는 조선시대 태종 때부터 충청․전라․경상 삼도(三 道)에서 면업(綿業)이 활성화된 시기부터 면을 생산하 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직물 관련 공장들이 광주 지역 에 설립된 것과 비교하면 나주시는 농촌 지역이었지 만 전통 면화 생산을 중심으로 조선인이 운영하는 장 형원 조면 공장이 운영되었다. 전쟁 이후에도 면화 생산 지로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1969년 7월 국가무형문화 재 제 28호로 지정되었다(National Folk Museum, 1995). 따라서 나주는 과거 “샛골 나이”의 현재 소재 지인 다시면 이외에도 나주 전체가 중요한 전통 무명 길쌈 생산 지역으로 상징화되었다. 나주는 1950년대 이후 전통 만들기와 관광 홍보 차원에서 전통 무명길 쌈 관련 사업과 축제가 많았고, 나주 배와 함께 나주 샛골 나이라는 전통 면화 생산지로서의 상징적 이미 지를 만들어왔다. 나주시는 면화 생산지라는 중요성 이외에도 일제 강점기 전국적인 가마니 생산지로 유 명하였다. 가마니 생산은 1980년대까지 유명세를 이 어갔다(NCCC, 2006). 이와 같이 조선시대부터 전통 면화와 가마니 생산지로 중요성은 나주의 근대적 문 화 수용 양상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사실을 주목 할 필요가 있다.

    1950년대 이후 나주 농촌 지역 의류 수급과 소비의 상황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과 유통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도시 지역과는 다른 사회적 환 경이 지속된다. 즉 전라남도 농촌 지역 경제는 공통적 으로 일제 강점기 목포를 중심으로 면화에 대한 식민 지 정책(Choi, 2013)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전쟁 이후에도 전라남도 농촌 경제 영역에서 여전히 전통 직물 생산이 논농사와 밭농사와 함께 중요한 의 미였다. 조사지 다시면 인근 노안면, 세지면, 공산면, 반남면 지역들은 나주 샛골 나이 지역의 주변 지역들 이다. 그러나 면담자 3명은 1950년대 이후에도 나주 가 조선시대부터 샛골 나이 면직물 생산지로 유명했 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또한 1950년대 이 후에도 전통 직물을 생산하는 점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인근 주변 마을에서 생산된 면 역시 나주 샛골 나이의 명성을 함께 공유하고 5일 시 장 상인들에게 좋은 직물로 판매되었다. 다음 기술을 통해 1950년대 당시 전통 직물 생산이 지속되고 있었 던 마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열일곱 살(1943년) 혼인할 때는 친정마을과 시댁 인 나주시 노안면 마을에서 사람들이 모두 명(면) 전통 길쌈을 하고 있었고, 모두 명 그리고 삼베나 모시로도 한복 해 입었제. 한복 치마는 껌은 물 염색하고 저고리는 그대로 흰색으로 입었어.” (A 면담자, 93세, 나주시 노안면)

    “친정은 나주시 다도면 봉소태 인디 혼인하기 전 40년대 후반에 친정동네는 모두 한복을 입었제, 시집을 열아홉 살 때(1948년) 했는디 시집와서 시댁동네 사람들 본께 친정동네랑 똑같이 동네 사람들 다 한복 입고 있었제. 명은 이 동네가 하 도 유명해서 모든 집에서 하고 삼베는 다하고, 모 시는 허는 집 있고 안 하는 집도 있고 그랬어”. (B면담자, 90세, 나주시 세지면)

    “친정 동네는 전쟁 끝나고도 길쌈했고 혼인을 열 아홉 살(1952년) 때 했고, 혼례식은 친정에서 옛 날 한복 입고 전통혼례로 했어. 시집오니까 나주 시 세지면 동네는 명(면)같은 길쌈을 계속해서 이 거 가지고 옷(한복)도 해 입고 시장에 내다 팔기 도 하고, 그때는 나주가 길쌈으로 유명해서 나주 시 동네들이 더 많이 했어. 근디 길쌈은 힘든 께 전두환 대통령 때는 이미 그만두었고.” (C면담자, 86세, 나주시 세지면)

    위의 면담 내용을 종합하면 1950년대 나주 마을들 은 전통시기, 일제 강점기 시기와 마찬가지로 여성들 은 논농사와 밭농사 이외 전통적인 면, 삼베, 견을 생 산하였다. 또한 대부분 일상적 의복은 전통 한복이었 다. 혼례와 같은 의례 영역에서 전통적인 혼례 방식과 전통 혼례복의 형태가 유지되고 있었다. 물론 1950년 대 이후 대부분 전라남도 농촌 지역들은 일제 강점기 부터 식민지 정책으로 중요한 전통 길쌈 생산을 지속 하고 있었다(Choi, 2013).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전라 남도의 다른 지역들에서 전통 면화 생산을 지속한 것 은 전통시기부터 이루어졌던 논농사와 밭농사 이외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농지와 기술 관습이 지속되 는 문제였다. 나주시도 유사한 상황이었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 나주 “샛골 나이” 명성이 부여하는 상징 적인 의미가 마을의 전통을 강화하고 지속하는 중요 한 매개로 작용하고 있었다.

    1960년대는 여전히 전통적인 길쌈이 농사와 더불 어 중요한 생업이었다. 현지조사 과정 중 2명의 면담자 들 집에서 수집된 사진(Fig. 3 and 4)들을 통해 1960 년대에도 전통 방식으로 의복을 만들어 입었던 1950 년대의 상황과 달라진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면담 자들의 기술에서도 그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D면담 자는 강원도 강릉이 친정으로 혼인(21살, 양양군 현북 면 포매리) 후 양양군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 1965년 나주시 노안면으로 이주하였다. 면담자들은 그 당시 마을 상황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마을 이사 왔을 때가 65년도 인디 그 때 마을 사 람들 모두 한복 입고 그 때 길쌈 모시를 많이 했 고, 이 마을에서는 특히 나주가 명(면) 유명해 가 꼬 명을 더 많이 했제. 근디 박정희 대통령 때 한 참 지나서 시장에 기성복 나올 때부터 옷 사다 입 었은께 길쌈 안 한 때 가 1987년대쯤이여” (D면 담자, 82세, 나주시 노안면)

    E면담자(80세, 나주시 공산면)는 나주시 공산면에 서 출생하였으며, 21세(1960년)에 같은 마을인 공산면 에 거주하는 남성과 결혼하였다. 결혼 전 친정 동네에 서는 전쟁 후에도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에서 씨앗이 로 목화씨를 빼고, 베틀로 베를 짜고, 치마는 검은색 물, 저고리는 연두색 물들이고, 이불 포는 가운데는 남색염색, 가장자리는 흰색 혹은 붉은색 염색해서 이 불해서 덮었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1960년대 마을 주 민들의 의복 생산과 착용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수집된 1960년대 사진 자료들 중 결혼식을 포함한 의례에서 전통 한복을 착용한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 여성들의 일상복과 의례 복은 거의 한복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남성들의 일상복과 의례복은 서구식의 양복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동일한 시기 한국 의복사 연구들에 제시 된 사진들에는 한복 차림 여성들과 함께 서구식 양장 과 그 당시 유행 중인 의복을 입은 도시 여성들이 있 다. 따라서 1960년대 나주 여성들의 모습은 동일한 시 기 도시와 농촌이라는 다른 공간에서 근대의 경험이 이와 같이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한국 의복사에 관한 기존 연구(Lee & Kang, 2006)는 양장이 일상복화 되고, 한복은 예복, 특수복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한복은 시대 에 뒤떨어진 것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1970년대 이 마 을에서는 전통 직물 생산이 지속되고 있었다. 또한 여 성들은 여전히 외출복과 의례복으로 한복을 착용하였 다는 점을 사진(Fig. 5)을 통해 알 수 있다. 1980년대 나주는 전통 직물 생산이 점차 사라지고, 일상복으로 한복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한복은 여성들의 외출복 으로 여전히 착용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1980년대 서 울 상황과 다른 양상이 전개되었다.

    따라서 나주 마을들에서 여성들의 외출복과 의례복 의 변화 과정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복이 라고 하는 틀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이에 반해 1960년 대부터 남성복은 이미 양복화 되어 이와 같은 양상은 198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1960년대 서울의 여성 의 복은 한복 개량화와 일부 양장화 양상이 전개되었지 만 남성의 일상복은 전면적으로 양장으로 전환(Lee & Kang, 2006)되었다. 나주 농촌 지역 남성복은 서울과 동일하게 이미 1960년대부터 한복에서 양장으로 전 환되었다는 점은 농촌 지역 남성들의 근대 의복의 수 용 양상은 동일한 시기와 공간에서 생활하던 여성들 의 상황과는 달랐다는 점을 제시한다. 이는 근대성과 젠더 관계에 관한 연구들에서 언급되듯이, 한국 사회 에서 여성의 근대적 문화의 수용은 가부장제 질서라 는 전통적인 요소가 가정과 사회에서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성들의 근대문 화 수용은 주체의 갈등, 조정, 기존 질서로의 순응을 통해 전통성의 회귀로 마무리되었다. 도시 공간에서 전통적 가치가 남성과 여성의 근대문화 경험의 차이 를 가져왔듯이, 도시 지역보다 전통적인 가치가 견고 한 농촌 지역 여성들의 근대문화 수용은 보다 보수적, 전통 회귀적인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The modern continuation of five-day market of Naju city

    전통시대부터 농촌 지역 5일 시장은 중요한 물류 유통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으며, 19세기부터 세지 면의 동창장, 반남면의 도마장, 공산면의 남창장, 다 시면의 서창장, 나주 읍내장, 남평 읍내장, 다도면의 대초장이 형성되었다(Ko, 1997). 전라남도 구례군의 사례(Choi, 2013)처럼 전통적으로 전라남도에 5일 시 장과 베전이 존재하였지만, 일제 강점기 이후에도 근 대적인 유통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황은 나주도 동 일하였다(NCCC, 2006).

    1950년대에 정기시장, 1960년대 이후 점차 폐시되 는 시장들이 증가한다. 1970년대 많은 5일 시장들이 사라지는 대신 나주읍에 상설 시장이, 1970년대 후반 에는 슈퍼마켓이 등장한다(Yoon, 2011). <Table 2>와 같이 1960~70년대 나주읍에 상설 시장이 1개, 5일 정 기 시장이 12개, 그리고 슈퍼마켓이 2개 지역에 1개씩 정도이었다(NCCC, 2006). 1980년 나주 정기 시장의 역할은 나주시 자체에서 생산된 물건과 광주에서 물 건들을 들여와 판매하는 것(Hong, 1984)이었다. 2000 년대에 비로소 시장 인근에 마트 같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판매점 형태가 등장한다.

    이와 같은 정기 시장은 농촌의 물류 유통과 새로운 물품이 유입되는 창구 기능을 하였다. 전통시기부터 1980년대 전통 직물 생산이 사라지는 시점까지 일제 강점기의 일시적인 직물 공판제 판매 방식(Choi, 2013)을 제외하면 나주의 각 마을 읍, 면에서 생산된 직물들은 거의 대부분 5일 시장 베전에서 판매되었 다.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농촌 지역 5일 시장에 나타 난 근대적인 의복 형태는 몸빼와 나일론으로 만든 일 상복과 노동복용의 티셔츠, 신발, 농사일 할 때 사용 하는 모자 등이었다. 도시화 과정에 근대적 유통 체계 확립이 필수적이며, 도시 지역은 1950년대 이후 근대 적인 유통 체계가 자리 잡았고, 1970~80년대 기성복 시대에 맞는 백화점, 의류 할인점과 의류 전문점 등이 확산되었다. 이에 반해 나주 농촌 지역 사람들이 1950 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나주 5일 시장을 통해 구매할 수 있는 의복들은 농촌의 일상복과 논과 밭일 을 할 때 입는 몸빼와 티셔츠와 같은 제한된 물품들이 었다. 의류 용품의 구매 역시 도시에 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5일 시장 안에서 제한된 항목들만 선택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나주 여성들은 도시 거주 여성들이 접할 수 있는 근대적인 의복을 구매할 여지가 많지 않 았다.

    4. The regionality of modern media acceptance

    근대사회, 자본과 소비의 상호 관계를 매개하는 것 으로 근대적 매체의 중요성(Kim, 2013; Kwon, 1994) 은 이미 많은 연구들에서 언급되었다. 1950년대 이후 한국이 서구적 근대 문화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미군 부대의 영향력 이외에 영화, TV, 잡지와 같은 근대적 매체의 영향력(Kim, 2014)은 중요했다. 그러나 도시 와는 다른 근대적 매체 환경을 지닌 농촌 지역에서 근 대 문화 수용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예를 들 어, 1960년대에 농촌사회는 이미 도시에서 일반화된 라디오, 신문 등의 영향(Koh, 2006)을 받지 못했다. <Table 3>과 같이 나주시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부 터 조선중앙일보, 광주민보, 호남신문들의 나주지국 이 있었다. 따라서 나주에 근대적 언론 매체가 전무하 였다고는 할 수 없다. 1950년대 이후 나주에 전남일보, 경향신문, 광주신보, 전남매일신문 등 중앙과 지방의 신문 지국이 있었고, 나주 마을주민들은 이들 매체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신문들은 서울과 광주 지역의 일반적인 사회, 정치, 경제에 관한 신문 기사의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의복과 패션은 패 션잡지와 여성지의 영향이 중요한 것을 고려하면 나주 농촌 지역 근대 의복 수용에 영향을 주는 잡지들은 구 조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또한 라디오는 1945년 6월 부터 나주읍(279명)과 영상포읍(179명)에 보급되었고, 1972년에 더욱 증가(Gwangju Broadcasting Bureau, 1992)하였다. 그러나 의복 문화의 경우에는 TV, 영화, 패션 잡지와 같은 시각 매체의 영향이 중요한 점과 비 교하면 나주의 근대 의복 문화의 유입과 라디오 매체 의 상관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렇다면 의복 유행에 영향을 주는 TV와 영화(Yang, 2008) 보급률이 1950 년대 나주에서 수용된 상황을 살펴보면, 먼저 TV 보 급률은 농촌지역에서는 1970년대 중후반쯤 보편화되 었다. 특히 1960, 1970년대 유신정권은 매체를 활용 해 국가 정책을 홍보하고자 했지만, 농촌지역에서는 이 시기에도 TV 수상기 보급률이 낮았다. 따라서 도 시지역 TV 매체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들의 영향력이 매우 큰 시기에 농촌은 이런 도시 지역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1970년대부터 농촌 지역에 TV 수상기를 보내는 ‘텔레비전 효자 캠페인’ 운동이 전개되고, 이후 새마 을 TV라는 것이 만들어져 농촌 지역에 보급됨으로써 농촌 지역에 TV 매체가 수용되었다. 그러나 당시 TV 는 농촌 지역의 경제적인 수준에 의해 차별화되어 소 유되는 근대적 품목 중의 하나였다. 주말 TV는 한국 의 도시와 서구의 새로운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동네 주민들은 TV가 있는 집에 모여서 함께 시청하기도 하였다. 나 주의 경우도 1972년 TV 수상기 보급 현황이 606대 (전남 총 21,043대)(The Ministry of Agriculture and Forestry, 1972)에 머물고 있었다.

    TV에 이어 사실상 대중의 유행을 이끌어내는 강한 파급력을 지닌 것이 영화이다. 특히 한국에서 1950년 대 이후 도시 근대 의복 수용에 영화가 미친 영향력은 이미 많은 연구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1950년대 한국 에서 근대적인 의복 소재와 스타일로 유행하였던 벨 벳 등은 그 당시 상영되었던 “자유부인” 영화의 여주 인공이 영화에서 착용하였던 것들이었다. 또한 그 이 후에도 한국에서 유행하였던 패션 아이템들은 그 시 대에 상영되었던 국내․외 영화 속 여주인공들의 의 상 그리고 TV 드라마 주인공들의 의상이 한국 의복 문화 수용의 근대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 쟁 이후 한국 지방의 영화와 극장 문화를 통해 지역성 과 근대성에 관해 연구한 Wee(2013, 2016, 2017)는 한국에서 영화를 통해 서구적인 근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수용하였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러나 영화 의 수용 방식에도 사회문화적 맥락의 차이에 의해 지 역성이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 천, 광주, 군산, 목포 등 개별 도시 지역이 갖는 사회 문화적 특성으로 인해 서울과는 다른 영화의 장르들 이 유행하였으며, 장르 수용 방식에도 기존의 지역적 인 관습들에 의해 수용 양상이 다름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부터 지방의 영화 상영에 변사, 창 극, 춤, 곡예와 같은 독특한 요소가 결합되어 있었는 데, 이와 같은 특성이 한국 전쟁 이후에도 지방의 영 화 문화 안에 지속되고 있었다. 물론 Wee의 연구는 농촌 지역 영화 문화에 관한 연구는 아니지만, 영화를 통해 한국 근대문화 수용에 지역성이 내재하며, 또한 이 지역성은 해당 지역이 전통 시기부터 지녀온 관습 적인 사회문화적 환경과 밀접한 상호관계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연구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나주 최초의 영화 상영관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마부찌 농장의 누에고치 창고에서 유래한 나주극장으 로 알려져 있다. 이 당시 나주극장은 활동사진을 방영 하던 극장으로 영화배급사에서 변사가 파견되어 영화 를 상영하였다. 이 극장은 1990년대까지 유지된 이후 문을 닫았다. 전쟁 후 1953년에 나주극장 이외 다른 극장이 세워지는데, 나주 천변에 위치한 중앙극장이 었으며 1980년대까지 영화를 상영하였다. 영산포 극 장도 해방 후 세워졌다가 1980년대에 문을 닫았다. 이 와 같이 나주 농촌 지역에서도 1950년대 이후 근대문 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영화극장이 존재하 였지만, 이와 같은 영화극장들은 주로 서울지역에서 유행하는 영화와는 다른 지방 사람들이 선호하는 국 내영화들이 상영되었다. 또한 영화 관람에는 일제 강 점기부터 이어져 온 한복을 입고 이루어지는 창극, 춤, 서커스 공연 같은 전통적인 극예술 요소가 많이 개입되어 있었다.

    5. The Saemaul movement as a signal of rural modernity

    1970년 박정희 대통령 시대 새마을 운동에 관한 기 존의 분석(Park & Han, 1999)은 새마을 운동은 국가 유신체제 유지를 위해 국가 권력을 동원하여 농민들 의 삶을 근대적으로 규율화한 정치적 도구로 파악한 다. 또한 새마을 운동은 정치적 목적의 농촌 근대화 과정이었다(Koh, 2006). 그러나 현지의 면담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농민들이 인식하고 수용하는 새마을 운 동의 의미는 국가가 의도하였던 정치적인 의미와는 달랐다. 이들에게 새마을 운동은 농촌 전통의 개선과 개량을 통해 경제적 향상을 도모하여 총체적 삶의 질 을 높인다고 하는 경제적 측면의 가치가 크게 부각되 었다. 새마을 운동은 통일벼와 같은 쌀 품종 개량을 통해 소득증대를 창출하였고, 농촌 마을 주민들에게 전통적인 것은 모두 불편하고 힘들고 낙후된 것이라 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새마을 운동은 의복 영역에서 는 그 이전까지 나주 샛골 나이의 전통을 유지한다는 자부심으로 지속했던 전통 길쌈, 그리고 한복 등의 전 통을 이제는 힘들고 돈이 안 되고 버려야 되는 낡은 것으로 인식하게 했다. 나주를 포함한 전라남도 지역 전통 길쌈과 의복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면서 거의 대 부분의 전라남도 농촌 지역들에서 전통적인 길쌈을 그만 두거나 가정에서 길쌈에 사용했던 베틀을 포함 한 전통적인 제사, 제직 도구들을 모두 고물상에게 팔 거나 태워버리게 된 계기는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 운 동이었다. 즉 전통 길쌈과 의복이 일제 강점기 식민지 적 근대를 경험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 안에 는 여전히 전통적 요소가 지속되는 근대적 변형이었 다. 그러나 한국 농촌의 전통성이 큰 변화는 1950년대 이후가 아닌 1970년대 농촌 새마을 운동이 그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면담자들은 1970년대 이 후 시장에 이미 기성품으로 나와 있는 옷을 사다 입었 다고 했다. 농촌의 현장에서 새마을 운동의 의미는 “전통적인 것을 버리기”였다. 이와 같은 마을 주민들 의 인식은 다음의 면담 내용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새마을 운동하면서 통일벼 들 어오고 좀 잘살게 되었제. 그러면서 길쌈 그만두 게 되고, 농사일도 많아진께 베 짜고 옷 만들고 징글징글 헌께, 먹고 살만해진께 다 그만둬 브렀 제. 베틀은 다들 땔감으로 하든가 고물상한데 줘 브렀제, 그 때 고물상들이 마을 돌아다니면서 다 사갔어. 전두환 대통령 때부터는 길쌈 아예 안 했 어. 길쌈 한 참 할 때는 길쌈해서 좋은 거는 시장 에 팔기도 하고, 나머지는 한복해 입기도 하고 했 는디 베 안 짜고 부터는 그냥 입는 몸빼 같은 것 은 시장에서 사다가 입고 편하제”. (F면담자, 90 세, 나주시 세지면)

    “시집오니 시댁 마을인 나주시 반남면에서는 사람 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있었고, 면, 삼베, 명주 길 쌈을 하고 있었고, 이걸로 잘 된 것은 시장에 팔 고 나머지는 집에서 베 짜서 한복해 입고 그랬제. 명베 6.8.9새 짜서 치마는 검정색 해 입고 저고리 는 연두색 물들여서 입었는데 염색물은 시장에서 염료 집에서 사다 들이기도 하고, 염색물 장사가 마을마다 다니면서 팔기도 했어. 삼베 여름옷은 별도 염색 안하고 치자염색을 한 그대로 사용하 고, 반남면은 논농사, 밭농사를 주로 했고 길쌈도 박정희 때 마을 사람들 다 그만 두었제. 반남면은 길쌈보다 가마니가 돈이 되어 가마니를 많이 짰 었는 디 그 가마니도 박정희 때부터 그만 되었 어.” (G면담자, 89세, 나주시 반남면)

    새마을 운동을 기점으로 전통적인 베틀은 하루아 침에 모두 태워지거나 고물상에 판매되었다. 고물상 에 판매된 베틀은 다시 일본인 미술 수집상들에 의해 일본이나 해외 지역으로 팔려나갔다. 따라서 농촌 지 역에서 전통 의복에서 근대적 의복으로 전면적인 전 환은 1970년대쯤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 여성들이 서 구식 양장의 착용과 소비가 영화, TV, 잡지와 같은 매 체의 영향, 서구 문화의 동경, 혹은 서구식의 멋내기 와 같은 패션에 대한 욕구와 이에 대한 실천이라는 측 면이 중요하였다면 농촌 여성들에게는 이것과는 다른 의미의 농촌 의복 근대가 인식되고 수용되었다. 결국 의복 영역에서도 농민들은 전통은 힘들고 돈이 안 되 어 가난하고 버려야 할 옛것이라는 집단적 인식을 갖 게 하였다. 따라서 이들에게 서구식 의복은 더 편리 함, 깨끗함, 돈이 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도시 의복의 서구화가 지닌 인식 그리고 사회문화적 맥락과는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다.

    6. Remains of colonial modernis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몸빼는 제 2차 대전 중 일본에서 부인들의 방공복 이나 작업복으로 착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 한국에 전래된 노동복이다. 1940년대 한국 도시지역에서 2차 세계대전이 격화되면서 여학생들도 전투복 차림으로 몸빼 착용이 강요되었다. 여름에는 블라우스에 몸빼, 겨울에는 자켓(jacket)과 몸빼를 입었고, 학생들의 몸 빼 착용 거부 운동도 있었다(Park, 1998). 일제 강점기 도시 지역에서 착용한 몸빼는 같은 시기 농촌지역에 도 강제로 보급되었다. 일제 강점기 농촌 지역에 보급 된 몸빼는 여성들은 한복 혹은 치마를 입는 것이 관례 라고 인식되는 전통적인 농촌사회의 가치 안에서 처 음부터 쉽게 수용된 것은 아니었다. 즉 전통적인 유교 적 가치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 앞에서 한복 치마가 아닌 남성의 바지와 같은 형태인 몸빼 차림으로 나선 다는 것은 전통적인 가치와 충돌하는 것이었다. 도시 지역에서도 몸빼에 대한 저항이 있었지만, 이것은 식 민지 권력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이라면 초기 일제 강 점기 농촌 지역에서 몸빼에 대한 거부감은 한국의 전 통적인 유교적 이념에 반하는 것으로서의 저항감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혼인을 19세, 1952년에 했어. 친정동네는 전쟁 끝 나고도 길쌈했고, 혼례식은 친정에서 옛날 한복 입고 전통혼례로 했음 시집오니 나주시 세지면 동네는 면 같은 길쌈을 계속해서 이거 같고 옷도 해 입고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길쌈은 전두환 대통령 때 그만 두었고 옷은 만들어 입는 게 징글 징글헝께 시장에서 몸빼랑 사다 입고” (H면담자, 86세, 나주시 세지면)

    몸빼가 초기 농촌사회에 유입될 때 이와 같은 일본 에 의한 강요 그리고 전통적인 인식과의 갈등의 문제 에도 불구하고 점차 농사일과 일상 속에서 기능성과 편리함을 주는 의복으로서 수용되었다. 몸빼착용은 전라남도 농촌 지역에서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위의 면담 내용과 같이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시기 전통 길쌈과 한복이 사라지게 된 시점 이후에도 오히 려 한복은 입지 않게 되었지만 몸빼는 지속적으로 착 용하였다. 이에 반해 도시 지역에서는 일제 강점기 이 후 서구적인 근대의 상징으로서 양장 바지가 보편화 되었고, 일반 가정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몸빼는 거의 착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1950년대 이후 도시와 농촌 지역의 몸빼 일상화 양상이 다르게 전개되었다. 결국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 몸빼는 농촌 여성들의 일 상복의 영역에서 고착되어 여전히 실천되고 있는 식 민지적 근대의 지속인 것이다.

    Ⅴ. Conclusion

    한국의 근대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항, 일제 강 점기의 식민지 경험, 그리고 전쟁 이후 국가 주도의 근대화 추진이라는 거시적인 흐름을 파악해야만 한 다. 동시에 다양한 지역과 주체들의 근대적 인식과 실 천이 만들어내는 다양성과 역동을 고려해야 한다. 이 연구는 전라남도 나주 농촌 마을 사례를 통해 근대 여 성 의복 수용과 실천의 지역성의 문제를 파악해 보았 다. 살펴본 바와 같이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 이후 한국 사회 의복의 근대성에 관한 분석들은 주로 서울 이나 일반적인 한국 사회를 대상으로 한복에서 양장 으로의 의복이나 소재의 변화 양상, 근대적 소비문화 와 의복의 역할 그리고 근대적 여성성 등의 연구들만 이 있었을 뿐이다. 또한 서울이 아닌 지방의 개별 마 을들에 대한 사례 연구들은 곡성 돌실 나이, 보성 삼 베, 안동 삼베, 한산 모시 등 전통 면직물 생산 과정을 재현하는 연구들로만 한정되어 있었다.

    전라남도는 조선시대부터 근대시기까지 전통 직물 생산지로서의 중요성이 있는 지역이며 특히 나주시는 샛골 나이 면직물 생산 전통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그 러나 나주시의 경우에도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나주 샛골 나이(Sim, 2003; Sung, 1984) 생산방식 재현 에 관한 연구들만이 이루어졌을 뿐, 나주시를 포함한 전라남도 지방의 근대적 의복 문화 수용과 특징에 관 한 연구들은 거의 전무하였다. 따라서 한국 농촌 근대 화의 경험 안에서 지역사회가 지닌 특수성을 기반으 로 근대성과 지역성의 문제, 그리고 사람들의 의생활 과 관련된 지역적 실천의 문화적 함의에 관한 연구는 거의 부재하였다. 또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도 기존 전라남도 지역 직물업에 관한 선행연구들은 주로 통 계자료와 문헌자료에 기초한 지역현황을 기술하는 연 구들로 각 지역들의 특수한 사회문화적 상황을 파악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개별 지역들에 대한 현지조사와 현지주민 면담에 기초한 민족지적 자료 수집 방법은 해당 지역 문화의 다양성과 특수성의 단서가 되는 미시적인 자 료들을 수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따라서 지 역적 차원의 한국 의복의 근대적 전개 양상의 한 사례 로 전라남도 나주시를 대상으로 민족지적 현지조사를 통해 지역적 특수성과 주체들의 다양한 실천의 맥락 에서 근대적 의복 수용의 지역성을 밝혀낸 본 연구의 의미가 있다.

    나주 마을의 사례를 통해 나주 샛골 나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직물 생산지로서의 자부심이 만들어낸 전통 성을 지속시키는 힘, 농촌 여성들의 의복 착용에 영향 을 주는 유교적 전통의 윤리, 5일 시장 체제의 농촌의 유통 체계, 근대적 매체의 수용성과 새마을 운동 등의 요소를 이 마을 여성들의 근대적 의복의 수용 과정에 작용하는 요소로서 이해해 보고자 하였다. 이 연구에 서 살펴본 나주 농촌 마을 여성들의 근대적 의복의 수 용과정에서 파악된 시기적, 내용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50년대 이후 1970년대 후반까지 나주 는 전라남도 다른 농촌 지역들과 유사하게 전통 면의 재배와 직조와 같은 전통 길쌈을 지속하였다. 특히 나 주는 조선시대부터 나주 샛골 나이 면 생산지의 유명 세가 지속되면서 이것이 나주의 전통임을 자랑스러워 했다. 이로 인한 경제적인 이익도 공유하면서 전통적 인 길쌈을 지속하는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 마 을 남성과 여성의 의복 착용에 있어서도 1950년대에 는 남, 여 모두 일상복과 의례복 모두 한복을 착용하 였으며, 1960년대부터는 남성과 여성 복식에서 전통 한복과 근대적 양복의 구분이 명확히 드러나기 시작 했다. 남성들은 외출복과 의례복에서 거의 양복으로 전환되었다면 여성들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논과 밭에서 일을 하거나 일상복을 제외한 외출복과 의례복에 영역에서는 여전히 한복을 착용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도시 지역 근대 의복 수용이 남성 과 여성에게 다르게 나타난 점이 나주의 사례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나주 여성들의 의복 수 용 과정은 도시와는 다른 차이점도 파악되었다. 즉 도 시 남성들에게 근대를 상징하는 양복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심리적으로도 큰 갈등 없이 수용되었다면 여성들에게는 전통적 가부장적 이념과 근대적 가치와 의 갈등, 조정, 순응 등의 적응과 조율 과정 속에서 양 장으로 점진적인 이행이었다. 이것은 도시 지역보다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가부장적 이념이 더욱 공고화 되어 있는 농촌 문화의 특징이 여성들의 의복 수용 과 정에도 반영된 것으로 파악된다.

    조선시대부터 1950년대 이후 지속되어 온 5일 시 장 중심의 나주 유통 체계 역시 마을 여성들이 서구식 의복을 선택하는 기회와 선택의 항목을 제한하는 요 소로 작용하였다. 또한 나주 서구 의복 수용의 역할로 서 근대적 매체의 역할이 중요하였다. 나주의 TV 보 급은 1970년대에 비로소 보편화되었고, 영화 역시도 지역성이라는 한계 안에서 농촌 지역 여성들에게 영 향을 주었다. 또한 1970년대 이후 새마을 운동은 나주 마을주민들에게는 전통적인 것을 버리고 소위 편리하 고 깨끗하고 더 좋은 근대적인 것으로의 이행을 의미 했다. 이것을 계기로 전통 길쌈은 이 마을에서 사라졌 고, 의복의 근대적 변화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복에 서 양장으로 빠르게 변화하였다. 또한 일제 강점기 노 동복으로서 강제로 유입된 몸빼는 농촌 지역에서 초 기 갈등의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부터 근대의 상징으로 보편화된 양장 바지가 아닌 농촌 여 성들의 일상복으로 몸빼가 착용되게 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이것은 나주 마을 여성들의 일상영역에 서 고착되어 현재까지 실천되고 있는 식민지적 근대 의 지속으로 파악되었다.

    나주 마을의 이와 같은 상황은 서울과 같은 도시 지역에서 1950년대 여성 한복 개량과 서구식 양장의 등장, 1960년대 한복의 예복화와 양장의 일상복화, 1970년대에는 모든 계층의 남녀 일상복이 한복에서 거의 완전히 양복, 양장으로 전환되고, 1980년대는 의 복 산업화가 정착되는 과정과 비교할 때 의복 수용 양 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나주 마을 여성들에 게 근대는 서구화로서 분명하게 인식되고 수용된 것 이 아닌 마을의 전통성을 유지하는 명분, 경제적인 이 익이라는 틀 안에서 인식되고 실천되어 조율과 선택, 폐기, 유지되어 온 것으로 파악되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소위 근대적 의복 수용 과정은 전통 성, 식민성, 서구적인 것이 복합적으로 내재하는 과정 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한국 의복 문화의 근 대적 역동성과 다층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 은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서 경험된 주체들의 근대적 인식과 실천에 관한 현장 중심의 사례들이 더욱 많이 연구되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이 연구를 기반으로 향 후 전라남도 다른 농촌 지역들의 근대 의복 수용 양상 에 관한 비교 연구가 지속될 것이며 나주시를 대상으 로 한 이 연구의 결과는 전라남도 다른 농촌 지역들에 대한 연구 결과와는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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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ju province map From Dusan Encyclopedia. (2019).

    https://ter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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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ln making at Naju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From Naju City Compilation Committee.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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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othes of the Naju village residents in the 1960s

    From photographs taken by the research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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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othes of the Naju village residents in the 1960s

    From photographs taken by the research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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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othes of the Naju village residents in the 1970s

    From photographs taken by the research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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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othes of the Naju village residents in the 1980s

    From photographs taken by the research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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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ju central theater From Naju County Compilation Committee. (1980).

    Table

    Interviewers quoted in this study

    Naju’s five-day market in the 1960s and 1970s

    The newspaper of Naju from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o the 197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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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end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