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rossref logo
Journal Search Engine
Search Advanced Search Adode Reader(link)
Download PDF Export Citaion korean bibliography PMC previewer
ISSN : 1226-0401(Print)
ISSN : 2383-6334(Online)
The Research Journal of the Costume Culture Vol.28 No.1 pp.62-75
DOI : https://doi.org/10.29049/rjcc.2020.28.1.62

Korean traditional textiles recorded in lists of goods for weddings in the early 20th century

Imsun Cho, Eun Jin Lee*
Lecturer, Dept. of Clothing & Textile,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Korea
*Professor, Dept. of Clothing & Textile,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Korea
Corresponding author (imjean@gnu.ac.kr)
January 31, 2020 February 20, 2020 February 21, 2020

Abstract


In this study, clothing items recorded in Nappyemulmok (納幣物目) and Ugwimulmok (于歸物目) in the early 20th century were examined. These clothing items were recorded on the lists of goods for wedding gifts from the 1910s to the 1930s. A large quantity of these lists were organized into eight categories by analyzing the fabrics of each item of clothing. Representative fabrics used for skirts and Jeogori (such as Myeongju, 明紬) were used widely. Jeoksam was mostly made with ramie fabric. Pants mostly used cotton such as Dangmok, Mumyung, and calico, with some use of silk. Gojaengi mostly used cotton such as Dangmok, Mumyung, and calico, with some use of ramie. Danui (單衣) used silk fabrics such Pparinseu, Myeongju, and Gyoju for decorative features that were revealed when rolled up. Naeui (內衣) is believed to be the closest underclothes to the body, and Mumyung was mostly used. Dangmok and calico were used for the Yodae (腰帶) and fabrics such as silk, Nobangju, and JuhangNa were used for outdoor use. This type of categorization is significant, as it can be used as academic evidence to verify and reproduce the clothing of the time by identifying fabrics, colors, and characteristics of certain items of clothing. Lastly, it is expected that the analysis of clothing will provide theoretical data in the same way that movies, dramas, and museum exhibitions feature modern traditional weddings.



20세기 초 혼례물목에 기록된 한복 소재

조 임 선, 이 은 진*
경상대학교 의류학과 강사
*경상대학교 의류학과 교수

초록


    Ministry of Education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NRF-2017S1A5A2A01026220

    I. Introduction

    20세기 초 전통혼례는 의혼(議婚), 납채(納采), 연길(涓吉), 납폐(納幣), 대례(大禮), 현구고례(見舅姑禮), 우귀(于歸)의 절차로 진행되었다(Lee, 1990). 혼례의 과정에서 신랑 측과 신부 측은 청혼서, 허혼서, 사주단자, 연길, 혼서지, 납폐물목과 우귀물목 등 여러 종류의 문서를 주고받았다. 두 집안에서 오가 는 물품의 목록, 즉 물목(物目)을 작성하였는데, 혼례 물목은 혼례 때 사용되거나 주고받은 모든 물품목록 을 의미한다(Cho & Lee, 2017). 다양한 혼례물목 중 에서도 의복과 소재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문 서는 납폐물목(納幣物目)과 우귀물목(于歸物目)이다.

    혼례물목에 기록된 물품을 분석해 보면 의복이나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혼인을 위해 준비 하는 물품 중 소재의 중요성은 현대의 결혼에서도 인사 의 의미로 신부가 시댁에 선물하는 혼수품을 ‘예로 보내 는 비단’이라는 의미를 지닌 ‘예단(禮緞)’이라는 용어 를 사용하고 있는 언어 습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혼례를 치르는 집안에 따라 형편의 차이는 있었겠 지만, 일생의 가장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인 혼례에 오고 간 물품에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최고의 소재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혼례물목을 살펴보면 시대에 따 라 기록된 소재의 명칭이 달라짐을 볼 때 해당 시기에 유행하는 소재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20세기 초 혼례물목에 관한 선행연구로는 혼례물 목의 물품과 수량을 나열식으로 서술한 연구(Kim, 1982), 혼례물목의 양식적인 특징과 소장 현황을 고찰 한 연구(Kim, 2011), 전라도의 혼례물품을 나열한 연 구(Jung, 1999) 등이 있다. 이처럼 지금까지 선행연구 는 문서의 형식적인 특징과 소장처를 고찰하거나, 전 체 혼례물품을 단순 나열식으로 서술하는데 그쳤다. 그 외 경남의 혼례문화와 혼례물목을 제한적으로 고 찰한 연구(Cho & Lee, 2017)가 있다.

    이에 본 연구는 한국 복식사의 관점에서 납폐물목 과 우귀물목에서 60% 이상의 비율을 차지하는 의복 과 그 소재에 초점을 두고자 하였다. 본 논문은 혼례 물목이 다수 확보된 1910년대부터 1930년대를 중심 으로, 경상도와 전라도의 납폐물목과 우귀물목을 연 구대상으로 하였다. 두 물목에 기록되어 있는 의복별 소재를 고찰함으로써 해당 시기에 유행하였던 한복 소재의 종류와 명칭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처럼 고 문서에 근거한 정량적인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향후 유사한 시기의 실증 복식 유물들과 비교 분석하면 한 국 근대 복식 문화를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Ⅱ. Background

    1. Traditional wedding culture of Nappyemulmok [納幣物目]

    납폐는 혼례 날짜가 결정된 후 정혼이 이루어진 증 표로서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예물을 보내는 절차 를 말하며, 납채(納采), 납징(納徵)이라고도 한다(Society for the Study of Living Etiquette [SSLE], 2003). 신부 용 혼수(婚需)와 예장(禮狀), 혼서지(婚書紙) 및 납폐 물목(納幣物目)을 작성하여 혼례식 전에 혼수함(婚需 函)에 넣어 보냈다(SSLE, 2003). 이때 물품이 많을 경 우 분실의 우려가 있어 물품의 목록을 문서로 작성하 였는데, 이를 납폐물목, 물목단자, 납폐단자라고 한다 (Cho & Lee, 2017).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보낸 납폐물목에 기록된 물품을 분류해 보면 의복류, 장신구류, 생활용품류, 화장품류, 가구류, 비용류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Cho & Lee, 2017). 경북 성주와 안동에서 1930년대 혼인 을 한 사람의 구술에 따르면 혼인을 허락받은 후 ‘날 받이’ 즉 택일이 정해지면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송복(送服)’이라 하여 결혼 생활에 필요한 혼례물품 을 보냈는데, 신부의 사철 옷감, 패물(비녀, 가락지), 이불감 또는 이부자리, 솜, 술편, 돈(침선가) 등이었다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KCIS], 1974). 경제력이 좋은 신랑 집에서는 물품을 운반하기 위해 소를 몇 마리씩 동원하였다(KCIS, 1974). 부산 에서는 납폐함을 ‘봉치’라고 하며, 시부모가 신부에게 예물을 보내는 것을 ‘멱설’이라고도 하였는데, 신부가 잔칫날 입을 치마․저고리 각 세 벌, 신부의 반지, 시 계, 이불감과 솜과 함께 혼수 비용으로 ‘조급돈’도 넣 어 보냈다(KCIS, 1972). 전남 광양에서는 사성을 보 낸 다음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물품을 보내는 것을 ‘짐 보내기’라고 하였는데(KCIS, 1969), 명주는 필 단 위로 보내기도 하였으며, 삼베, 쌀, 솜, 이불감 등은 좋 은 날을 받아 중매쟁이를 앞세워 삯군을 사서 보냈다 고 한다(KCIS, 1969). 전북 김제에서는 함에 금전지 를 단 검정색 비단 겹보에 쌓인 혼서지와 함께 신부의 원삼 일습과 삼작노리개, 청․홍 모본단, 호박단, 법단, 자미사 등을 넣은 사례도 있다(Jeon, 1999). 거문도는 택일 또는 날받이가 정해지면, 신랑 측에서 신부 측으로 신부의 패물, 이불감, 솜, 옷장, 경대 등 경제력이 허락 하는 한 많은 양의 혼례물품을 보냈다(KCIS, 1971).

    증보사례편람(四禮便覽)의 기록에 따르면, ‘폐(幣) 는 빛깔 있는 비단을 쓰는데, 빈부에 따라 적당하게 한다(Moon & Lee, 2014)’라고 기록되어 과도한 혼수 를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상당히 달 랐던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에서 분석한 납폐물목 중에서도 1915년 경 남 합천의 신랑 청주 한씨 집안에서 신부 함안 이씨 집안으로 보낸 <Fig. 1>의 납폐물목은 그 길이가 10m 가 넘었다. 납폐물목에 기록된 물품은 크게 의복류, 장신구류, 화장품류, 생활용품류, 가구류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이 납폐물목에서는 저고리 27종, 치마 24 종을 비롯하여 매우 다양한 의복과 직물이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부자리, 베개 등 각종 생활용품 을 장만하기 위해 옥양목과 당목은 ‘통’ 단위로 보냈 으며, 그 외 항라, 안동포, 도리사 등의 직물은 ‘필’ 단 위로 보냈다. 혼례물목에서는 물품, 의복, 옷감을 유 사한 것들을 묶어 기록하고, 그 순서에도 규칙성이 있 으며, 많게는 수백 건에 해당하는 다양한 물품이 기록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분석함으로써 의복, 소재의 종 류나 명칭, 소재 등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다.

    2. Traditional wedding culture of Ugwimulmok [于歸物目]

    우귀는 대례(大禮)를 치르고 신부가 처음으로 시집 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대개 친정에서 머문 후 따로 좋은 날을 받아 시댁으로 신행을 갔다(KCIS, 1974). 우귀 종류는 당일, 3일 우귀, 달묵이가 있으며, 해를 묵혀 우귀하는 것을 ‘묵신행’ 또는 ‘해묵이’라고 하는데, 1~3년 지난 후에 우귀를 하였다(KCIS, 1974). 우귀할 때 물품이 많을 경우 우귀물목(于歸物目)을 작 성하여 함께 보냈다.

    우귀물목에는 의복류, 화장품류, 생활용품류, 장신 구류, 가구류, 비용류, 식품류가 기록되어 있다. 우귀 물목에는 우귀 후 시부모님의 첫 상차림의 재료가 되 는 생계(生鷄), 생율, 대소, 백문어, 북어, 이당, 백미, 진미, 곡자, 건시, 대추 등 식품류가 기록되어 있는 것 이 납폐물목과의 큰 차이점이다.

    경남에서는 신부의 우귀 때 5~6명의 일행과 함께 신부의 살림살이와 예단함(禮單函)을 시댁으로 가져 갔다(KCIS, 1972). 예단함에는 시부모님의 저고리, 바 지, 시삼촌과 시형제의 저고리, 기타 친척들에게 선물 할 버선과 함께 팥고물 찰떡, 콩고물 찰떡, 사과, 배, 감의 삼실과, 청주 한 병에 소고기 육전을 넣었으며, 우귀 때에 담배, 담뱃대, 요, 베개, 침구를 가져가기도 하였다(KCIS, 1972). 안동에서는 시댁으로 우귀한 후 친정에서 가져온 곡식과 반찬으로 사당에 제를 올린 후, 시부모에게 상을 올렸다(KCIS, 1974). 우귀물목에 식품류인 곡식과 음식이 포함된 것은 조상과 시부모 에게 의식을 올리기 위한 재료로 보인다. 전북 김제에 서는 신랑 측에서 보냈던 원삼과 각종 옷감들은 신부 가 우귀할 때 지참하였으며, 신랑 집에서 보낸‘자개의 거리장’을 1년 후 신행 때 시댁으로 다시 옮기기도 하 였다(Jeon, 1999).

    본 연구에서 분석한 1938년 전남 구례 운조루의 3 녀의 우귀물목인 <Fig. 2>에는 의복류, 장신구류, 화장 품류, 생활용품류, 가구류, 비용류를 비롯하여 생율(生 栗), 생계(生鷄), 백태(白太), 제반(際飯) 미(米), 건시 (乾柿), 대소(大召), 이당(飴糖) 같은 식품류가 기록되 어 있다. 전라도의 경우, 경상도에 비해 혼례물목에 의 복의 명칭이 자세히 적혀 있지 않고 ‘상의 옷감 삼차’, ‘하의 이차’ 등과 같이 기록된 사례가 많은 것이 특징 이다. 견직물은 대개 의복 한 벌을 만드는데 소요되는 옷감량을 기준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옥양목과 공양 사와 같은 면직물은 ‘척’ 단위로 기록되어 있어 단위 를 기준으로 해당 옷감의 섬유소재를 추정할 수 있다.

    Ⅲ. Methods

    본 연구는 문헌 자료 조사, 물목 원문 조사, 자료 분석의 과정을 통해 진행되었다. 첫째, 구례 운조루 (求禮 雲鳥樓), 고문서집성(古文書集成), 물목․보부상 물, 홍천읍 송화선 보부상 물목, ‘전통혼속(傳統婚俗) 에서의 납징례(納徵禮)에 대하여’, ‘구례 운조루 혼례 의 절차 및 의미에 대한 고찰’, 고문서, 박물관도록, 보고서, 선행연구 등의 문헌 자료를 분석하여 지금까 지 알려진 혼례물목을 파악하였다. 파악된 혼례물목 중 작성된 연대와 지역, 보내는 집안 및 받는 집안이 밝혀진 것을 선별하였다. 둘째, 경상대학교 고문헌 도 서관, 구례 운조루, 전주 최씨 집안, 호남기록문화유 산 등 소장기관이나 집안에 혼례물목의 실견 신청을 하여 물목의 원문을 조사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본 논문의 연구대상으로 선정 된 혼례물목은 <Table 1>과 같이 모두 21점이다. 이중 경상도 지역의 혼례물목은 13점, 전라도 지역의 혼례 물목은 8점이다. 1910년대는 청주 한씨(Cheongju Hanssi, 1915), 하순봉(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AKS], 2002a), 진성이씨(Kim, 1982), 전남 보성 개인소장(Honam Culture Heritage [HCH], 1910s)의 납폐물목 4건과 함 안 이씨(Haman Issi, 1915), 미도민속관(Park & Jung, 2007a)의 우귀물목 2건이 사용되었다. 1920년대는 경 주 소정이씨(AKS, 2002b), 장보고 소장(Park & Jung, 2007a), 류증교(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1988), 류증효(Jung, 1999)의 납폐물목 4건과 경고재(Park & Jung, 2007b), 경북 성주 성산이씨(Park & Jung, 2007a), 운조루 1녀(Jung, 1999), 전북 개인소장(HCH, 1920s) 의 우귀물목 4건이 사용되었다. 1930년대는 하순보(AKS, 2002a), 오천 정씨(Kim, 1982), 최은석(Goseong Jeonju Choessi, 1938), 집현전 소장(Park & Jung, 2007a)의 납폐물목 4건과 운조루 2녀(Jung, 1999), 운조루 3녀 (Jung, 1999)의 우귀물목 2건, 혼례물목의 일부 의복 류 부분만 전해지고 있어 물목의 특징을 파악할 수 없 는 전북 고창 1건(HCH, 1934)이 사용되었다.

    연구대상으로 선정된 21점의 혼례물목 원문을 조 사, 분석하여 기록된 모든 물품과 수량을 엑셀(Excel) 프로그램에 입력하여 데이터베이스화 하였다. 입력된 물품은 의복류, 화장품류, 가구류, 장신구류, 생활용품 류, 비용류, 식품류로 분류하였다. 본 연구의 대상이 된 의복류는 저고리, 치마, 적삼, 바지, 고쟁이, 단의, 내의, 요대의 여덟 가지로 분류하였다. 10년을 단위로 각 의복별 소재와 수량을 분석하여 소재별 그래프와 직물별 빈도를 그래프로 나타내었다.

    본 연구에서 분석의 대상이 된 납폐물목과 우귀물 목에는 물품의 명칭과 함께 당시 마련했던 수량이 기 록되어 있다. 그러나 의복에 사용된 소재에 따라 수량 을 표기하는 단위가 달라 수량을 기준으로 비중을 완 전하게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소재의 기록 건수를 기준으로 빈도를 고찰하였다. 또한 소재별 빈도 분석은 각 직물의 중복 빈도를 합산 사용하였다.

    Ⅳ. Analysis of Hanbok Materials by Clothing Type

    1. Jeogori

    본 논문의 연구대상 혼례물목에서 의복류의 기록 순서를 분석해 보면 대개 저고리, 치마, 적삼, 속옷(단 의, 바지, 고쟁이, 요대, 내의), 옷감 순서이다. 대부분 혼례물목의 기록 순서를 통해서 보면 겉옷부터 속옷 순서로, 저고리는 의복류 중에서도 가장 먼저 기록되 어 있다. 연구대상 혼례물목에 저고리는 저고리’, ‘져 구리’, ‘상의’, ‘겹져고리’로 표기되었다. 수량은 적게는 1점에서 많게는 1죽, 즉 10점까지도 기록되어 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을 단위로 저고 리의 섬유소재를 비교한 것이다. 연구대상 혼례물목 에 기록된 저고리의 소재는 총 326건이다(Fig. 3). 1910년대 저고리의 소재는 109건이었다. 견직물 98건 (91%), 면직물 9건(8%), 가죽, 울나사 각 1건(각 0.5%)로, 견직물이 월등하게 많았다. 1920년대 저고 리의 소재는 81건이다. 견직물 70건(87%), 면직물, 마 직물 각 5건(각 6%), 교직 1건(1%)으로, 1910년대와 마찬가지로 견직물이 월등하게 많았다. 1930년대 저 고리의 소재는 136건이다. 견직물 121건(89%), 면직 물 12건(9%), 세루 1건(0.7%)과 소재명이 없는 춘절, 추절 소재 각 1건(1.3%)으로 이 역시 견직물이 월등 하게 많았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혼례를 위하여 준비한 저고리의 소재로 견직물이 87% 에서 91%로 월등하게 많이 사용 되었음을 알 수 있 다. 마직물은 1910년대 혼례물목에서는 저고리의 소 재로 기록되어 있지 않았으나, 1920년대는 5건(6%) 이 기록되어 있다. 면직물은 1910년대에는 9건(8%), 1920년대에는 5건(6%), 1930년대에 12건(9%)을 차지 하였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저고리 소재의 명칭별 누적 빈도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910년대 저고리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명주(26 건), 모본단(9건), 고사(8건), 화부단, 옥양목(각 5건), 회련주, 숙고사, 자미사(각 4건), 분주, 토주, 관사(각 3건), 영초, 호박단, 리단, 법단(각 2건), 색명주, 노방 주, 곡생초, 숙수, 갑증, 왜증, 문갑사, 무문관사, 조문 관사, 진주사, 란사, 중사, 별단사, 항라, 영초단, 양단, 송화단, 수단, 미술단, 영포단, 모포단, 삼승, 세목, 옥 당목, 당목, 가죽, 울나사(각 1건)가 기록되어 있다.

    1920년대 저고리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명주 (25건), 양단(9건), 노방주, 모본단, 법단, 백저(각 3 건), 화생주, 개겨주, 백문사, 옥양목(각 2건), 백명주, 수주, 문갑사, 관사, 숙고사, 서양사, 도색사, 은색사, 자색단, 초록단, 진홍단, 양문단, 대화단, 운문단, 운화 단, 미화단, 송잠단, 하찌문선단, 한단, 총화단, 하부 단, 수화단, 옥당목, 당목, 산저, 당저, 기타 교직(각 1 건)이 기록되어 있다.

    1930년대 저고리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명주 (42건), 모본단, 양단(각 10건), 법단(7건), 옥양목, 빠 린스(각 6건), 교주(5건), 노방주, 자미사, 수단, 색명 주(각 3건), 고사, 국사, 진사, 교학단, 포도단, 당목, 세목(각 2건), 토주, 두양주, 은조사, 숙고사, 진주사, 왜사, 진경당사, 진풍국사, 앵화사, 진밀홍사, 순인, 항 라, 화문단, 호박단, 연륙단, 행단, 은어단, 화류단, 진 영월영단, 옥당목, 삼승, 세루, 소재명이 기록되지 않 은 춘절과 추절 옷감(각 1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공통적으로 견직물 중에서도 명주가 저고리의 소재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저고리의 소 재로 노방주, 숙고사, 자미사, 갑사, 관사, 진주사, 항 라, 모본단, 양단, 운문단처럼 현재까지도 전해져오는 주(紬), 사(紗), 단(緞) 종류의 전통 견직물이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한편, 1910년대 혼례물목 중 미도민속관 소장 1916 년 우귀물목에서는 ‘본색 까죽 져고리 image-1.gif일’, 1915년 청주 한씨 납폐물목에는 ‘옥색 울나사 상의 image-1.gif일’의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드물게나마 가죽이나 모 직으로 저고리를 만들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20년대에는 양단, 모본단, 대화단, 운문단, 운화 단, 법단, 한단, 수화단 등 겨울용 옷감인 단(緞) 종류 가 17종이나 기록되어 있는 특징이다. 또 1920년대에 는 1910년대의 혼례물목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던 백저, 당저, 산저 등 마직물도 저고리의 소재로 기록 되어 있다.

    1930년대에는 진경당사, 진풍국사, 앵화사, 진밀홍 사 등의 새로운 사의 명칭과 교학단, 연륙단, 은어단, 화류단, 진영월영단, 화류단 등 새로운 명칭이 다수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는 직물의 생산이 가내 수공업에서 공장제로 전환되면서 생산된 지역이나 업 체명, 상품명 등을 붙인 다양한 명칭이 등장했기 때문 인 것으로 보인다.

    2. Skirt

    치마는 대부분의 혼례물목에서 저고리 다음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치마’, ‘티마’, ‘하의’, ‘쳐마’로 표기 되었다. 수량은 1점에서 많게는 1죽까지 장만하였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치마의 섬유소재를 비교한 것이다. 연구대상 혼례물목에 기 록된 치마의 소재는 총 303건이다(Fig. 4).

    1910년대 혼례물목에 기록된 치마의 소재는 100건 이다. 면직물 32건(32%), 견직물 27건(27%), 마직물 25건(25%), 교직물 5건(5%), 모직물 1건(1%) 라우사, 인견, 오빠루, 비릿볏도, 노바루, 뽀뿌라, 삿갓, 후릿도, 셧기, 양수 각 1건(각 1%)로, 면직물이 가장 많았다.

    1920년대 치마의 소재는 85건이다. 마직물 28건 (33%), 견직물 27건(32%), 면직물 26건(31%), 교직물 2건(3%), 모직물, 벨숙수 각 1건(1%)으로 마직물과 견직물, 면직물이 비슷한 빈도로 기록되어 있다.

    1930년대 치마의 소재는 118건이다. 견직물 54건 (46%), 면직물 23건(19%), 마직물 20건(17%), 모직물 6건(5%), 인조견 4건(3.4%), 인조세루 2건(1.7%), 백 색사, 회색사, 능직, 이릉, 사릉, 소릉직, 소천류, 인견 빠린스, 뽀뿌라 각 1건(각 0.88%)으로, 견직물이 가장 많았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혼례를 위하여 준비한 치마의 소재로 1910년대에는 면직물이 가장 많았으며, 1920 년대는 마직물과 견직물, 면직물이 유사하게 기록되 어 있고, 1930년대에는 견직물이 가장 많았다. 이는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모두 견직물을 월등하게 많이 사용하였던 저고리 소재와는 다른 양상이다. 한 편, 모직물은 저고리로는 울나사가 단 1건만 기록되 어 있으나, 치마의 소재로는 1920년대에 세루 1건, 1930년대 순모바리빠 1건, 순모메린스 1건, 세루 4건 이 기록되어 치마는 저고리에 비해 모직물을 사용하 는 사례가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치마 소 재의 명칭별 누적 빈도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910 년대 치마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모시(12건), 당 목(11건), 명주(7건), 옥양목(6건), 문포, 무명(각 4건), 항라, 모시항라, 서양사, 삼승(각 3건), 주란사, 나단, 반주, 뉴똥, 보이루, 빠린스(각 2건), 생명주, 토주, 초 주, 금고아주, 숙고사, 셋까루, 수단, 화부단, 함박단, 도리사, 춘포, 아롱주, 계추리, 남저, 당포, 안동포, 마 포, 목보이류, 광목, 세목, 뵈, 울나사, 라우사, 인견, 오빠루, 노바루, 비릿볏도, 뽀뿌라, 삿갓, 후릿도, 셧 기, 양수(각 1건)가 기록되어 있다.

    1920년대 치마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모시, 명주(각 8건), 옥양목(6건), 무명, 마포, 나단(각 5건), 당 목, 서양사, 세목(각 4건), 산저(3건), 노방주, 숙수, 모 본단, 청목, 문포(각 2건), 백쌍주, 실능주, 벨숙수, 능 견, 능직, 백은사, 당항라, 모시항라, 운문단, 보우단, 화부단, 춘포, 세루, 지지미, 백목, 저포, 당저, 두양저, 흑화포, 갈포, 만포, 당포, 교직(각 1건)가 기록되어 있다.

    1930년대 치마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명주(8 건), 옥양목, 당목(각 7건), 모시(6건), 능직( 5건), 세 루, 갈포, 양단, 인조견(각 4건), 본견, 숙고사, 세목, 산저, 세저(각 3건), 마포, 나단, 모본단, 능견, 화부단, 중저, 조셋도, 진국화단, 우단, 항라, 진사, 인조세루 (각 2건), 생명주, 노방주, 교주, 숙수, 능지기, 이릉, 사릉, 소릉직, 진성국사, 진옥화법사, 진운국사, 백색 사, 회색사, 화문단, 개량단, 진불벽단, 미현단, 순모바 리빠, 순모메린스, 무명, 와사단, 목세루, 삼승, 중목, 소천류, 옥광포, 보이루, 빠린스, 인견빠린스, 뽀뿌라 (각 1건)가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치마 소재로는 모시, 명주, 당목, 옥양목, 무명, 모시항 라 등 마직물과 면직물, 견직물을 다양하게 애용하였 음을 알 수 있다. 또 치마의 소재는 경․위사의 섬유 소재가 다른 교직물, 인견직물 등 저고리에 비해 다채 로운 소재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910년대에는 오빠루, 보이루, 빠린스, 비릿볏도, 뽀 뿌라, 후릿도, 1920년대에는 세루, 지지미, 1930년대 에는 보이루, 메린스, 빠린스, 순모바리빠, 뽀뿌라 등 전통소재의 범위에서 벗어난 신소재가 대거 사용된 것이 특징이다.

    3. Jeoksam

    본 논문의 연구대상 혼례물목에 적삼은 ‘적삼’, ‘겹 적삼’, ‘깨기적삼’으로 표기되었으며, 진주와 고성 지 역의 혼례물목에는 ‘홋상의’로 기록되어 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적삼의 섬유소재를 비교한 것이다. 연구대상 혼례물목에 기 록된 적삼의 소재는 총 120건이다(Fig. 5). 1910년대 혼례물목에 기록된 적삼의 소재는 55건이다. 마직물 23건(42%), 면직물, 견직물 16건(29%)으로, 마직물이 가장 많았다. 1920년대 적삼의 소재는 30건이다. 마직 물, 견직물 각 12건(40%), 면직물 6건(20%)으로, 견직 물이 가장 많았다. 1930년대 적삼의 소재는 35건이다. 마직물 15건(42%), 견직물, 면직물 각 10건(29%)으 로, 마직물이 가장 많았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적삼의 소재로는 1910년대부 터 1930년대까지 마직물의 비율이 40% 이상을 차지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혼례용 적삼의 경우, ‘한평 생을 시원하게 살라’ 또는 ‘앞일이 시원하라’는 의미 로 계절에 관계없이 모시나 베로 장만하였던(KCIS, 1986) 풍습과 관계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적삼의 소재로는 견직물, 면직물, 마직물 이외의 신소재는 사 용되지 않았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적삼 소 재의 명칭별 누적 빈도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910 년대 적삼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모시, 당목, 은 조사(각 5건), 생명주(4건), 무명(3건), 노방주, 당항라, 세목, 옥양목, 옥당목, 도리마, 안동포, 갈포, 영천포, 남저(각 2건), 항라, 계추리, 광목, 삼승, 세모시, 중모 시, 생저, 백저, 반저, 저포, 광포, 마포, 문포(각 1건) 이었다. 1920년대 적삼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모 시(4건), 생삼팔주, 백쌍주, 백은사, 당항라, 당목, 옥 양목, 갈포, 문포(각 2건), 명주, 백명주, 쌍문초, 승단 사, 무명, 서양사, 도리마, 저포, 북접포, 백모시(각 1 건)이었다. 1930년대 적삼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옥양목(5건), 모시, 당목(각 3건), 당항라, 생명주, 갈 포, 안동포(각 2건), 팔매주, 곱생초, 은조사, 관사, 생 삼팔진사, 항라, 무명, 세목, 계추리, 영천포, 광포, 문 포, 세저, 산저, 생저, 남저(각 1건)이었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적삼의 가장 보편적인 소재는 마직물 중에서도 모시 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무명, 세목, 당목, 옥양목, 옥당 목 등의 면직물도 적삼의 소재로 활용하였다. 견직물 의 경우, 주로 쌍문초, 은조사, 당항라와 같이 비교적 얇고 비침이 있는 소재가 적삼의 소재로 사용되었는 데, 이는 속옷 적삼이 아닌 여름철 겉옷용 적삼 소재 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4. Pants

    본 논문의 연구대상 혼례물목에 기록된 바지는 기 록 위치로 보아 겉옷이 아닌 속바지로 추정된다. 속바 지는 여성이 속속곳과 단속곳 사이에 껴입었던 것으 로, 밑이 트여 있으며, 겹으로 만들거나 솜을 넣거나 누 벼 봄, 가을, 겨울에 착용하였다. 혼례물목에는 ‘바지’, ‘겹바지’, ‘핫[솜]바지’, ‘누비바지’가 기록되어 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바지의 섬유소재를 비교한 것이다. 연구대상 혼례물목에 기 록된 바지는 총 118건이다(Fig. 6). 1910년대 혼례물 목에 기록된 바지의 소재는 41건이다. 면직물 25건 (61%), 견직물 10건(24%), 마직물 4건(10%), 기타(반 주) 2건(5%)으로, 면직물이 가장 많았다. 1920년대 바 지의 소재는 26건이다. 면직물 15건(57%), 견직물 9 건(35%), 마직물, 기타(세루) 각 1건(4%)으로, 1910년 대와 마찬가지로 면직물이 가장 많았다. 1930년대 바 지의 소재는 51건이다. 견직물 23건(45%), 면직물 18 건(35%), 인조견 6건(12%), 기타(반주 2건, 금춘사 1 건) 3건(6%), 마직물 1건(2%)으로 견직물이 가장 많 았다. 그러나 1910년대와 1920년대는 견직물의 비율 이 낮고 면직물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191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바지 소재로는 면직물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반면, 바지의 소재로 기록된 마직물의 빈도 는 미미하였다. 견직물의 경우 1910년대부터 1930년 대로 갈수록 기록빈도가 높아진 것이 특징이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바지 소 재의 명칭별 누적 빈도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910 년대 바지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당목(9건), 무 명, 명주(각 5건), 옥양목(4건), 반주, 모시, 세목, 항라, 노방주(각 2건), 생주, 옥당목, 광목, 목세루, 삼승, 서 양사, 반저, 계추리(각 1건)이었다. 1920년대 바지 소 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명주, 옥양목, 당목, 서양목 (각 3건), 능주, 세목(각 2건), 쌍주, 진주사, 안사, 항 라, 면사, 주란사, 모시항라, 세루, 삼승, 무명(각 1건) 이었다. 1930년대 바지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명 주(11건), 옥양목(8건), 인조견(6건), 당목(5건), 세목, 무명, 반주, 노방주, 교주(각 2건), 소천주, 부사견, 문 사, 무문관사, 자미사, 왜사, 당항라, 숙사단, 세저, 금 춘사, 서양사(각 1건)이었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1910년대는 당목, 1920년대는 명주, 옥양목, 당목, 서양목, 1930년대는 명주, 옥양목 과 함께 인조견이 애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30년대에는 바지의 소재로 부사견과 대구지역에서 만 생산한 교직물의 일종인 금춘사도 사용되었다.

    5. Gojaengi

    고쟁이는 전술한 속바지처럼 밑이 트여 있으며, 속 속곳과 단속곳 사이에 입었던 속옷이나 여름용으로 홑으로 만든 것이 다른 점이다. 지역에 따라 ‘고장이’, ‘고장의’, ‘고장주의’라고도 하였다(KCIS, 1986). 본 논문의 연구대상 혼례물목에는 ‘고장이’, ‘고의’로 표 기된 사례가 가장 많았으며, ‘단고의’로도 기록되어 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고쟁이 의 섬유소재를 비교한 것이다. 연구대상 혼례물목에 기록된 고쟁이 소재는 총 75건이다(Fig. 7). 1910년대 혼례물목에 기록된 고쟁이의 소재는 24건이다. 면직 물 13건(54%), 마직물 11건(46%)으로, 마직물이 많았 다. 1920년대 고쟁이의 소재는 22건이다. 면직물 12 건(55%), 마직물 10건(45%)으로, 마직물이 많았다. 1930년대 고쟁이의 소재는 29건이다. 면직물 16건 (55%), 마직물 12건(42%), 기타 1건(3%, 인조견직물) 으로, 면직물이 높게 나타났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고쟁이 직물은 면직물과 마직물이 유사한 비율로 사 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고쟁이 소재의 명칭별 누적 빈도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910년대 고쟁이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당목(6 건), 무명, 옥양목, 마포, 모시, 계추리(각 2건), 광목, 본목, 세목, 모시항라, 남저, 우포, 북포, 문포(각 1건) 로, 당목의 기록빈도가 가장 높았다. 1920년대 고쟁이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무명, 옥양목, 당목, 광목, 모시(각 2건), 옥당목, 서양목, 세목, 삼승, 광당포, 광 포, 생갈포, 북접포, 만포, 안동포, 마포, 도리마(각 1 건)이었다. 1930년대 고쟁이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 면 옥양목(6건), 당목(4건), 모시(3건), 무명(2건), 세 목, 도리마, 안동포, 생갈포, 광포, 광당포, 계추리, 세 마포, 산저, 세저, 중저, 남저, 춘사, 인조견(각 1건)으 로 옥양목이 가장 많았다.

    이상에서 고찰한 결과,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 지 고쟁이 옷감으로는 옥양목, 당목, 모시가 꾸준히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6. Danui

    본 논문의 연구대상 혼례물목에 기록된 단의는 단 속곳이다. 경남 진주와 사천 지역에서는 단속곳을 ‘단 의’ 또는 ‘다네’(KCIS, 1986), 경북 안동에서는 ‘단의’ 라고 불렀다(KCIS, 1986). 경북과 전남에서도 동일한 명칭으로 불렀다(Lee, 1990). 일부 경남 지방에서는 ‘다네치마(단의치마)’라고도 하였으며, 전북과 강원 지역에서는 단중우(단중의)라고 하였다(Lee, 1990). 본 논문의 연구대상 혼례물목에는 ‘단의’, ‘다네’, ‘단 속곳’, ‘단니의’, ‘단중의’ 등의 표기가 나타났다. 단의 는 1940년대까지의 혼례물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단의의 섬유소재를 비교한 것이다. 연구대상 혼례물목에 기 록된 단의의 소재는 총 101건이다(Fig. 8). 1910년대 혼례물목에 기록된 단의의 소재는 21건이다. 견직물 8건(38%), 마직물 5건(24%), 면직물, 기타 4건(19%; 인조견직물, 인견 줄문, 인견 숙수, 디초수문 각 1건) 으로 견직물이 높았다. 1920년대 단의의 소재는 25건 이다. 면직물 12건(50%), 마직물 7건(26%), 견직물 6 건(24%)으로, 면직물이 높았다. 1930년대 단의의 소 재는 55건이다. 견직물 22건(40%), 면직물 13건(23%), 기타 12건(22%; 인조견(3건), 춘추, 하절, 교직(각 2 건), 도리사, 인견 민베루, 오색 쳑(각 1건)), 마직물 8 건(15%)으로 견직물이 많았다. 1930년대 단의 옷감은 55건이다. 견직물 22건(40%), 면직물 13건(23%), 기타 12건(22%), 마직물 8건(15%)으로 견직물이 많았다. 기타 직물은 인조견(3건), 춘추, 하절, 교직(각 2건), 인견 민베루, 도리사, 오색 쳑(각 1건)이 사용되었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1910년대와 1930년대는 견직 물의 비율이 높았으나, 1920년대는 면직물의 비율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여름용 옷감으로 보이는 마직물 은 비율은 15~25%이지만 꾸준하게 사용되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단의 소 재의 명칭별 누적 빈도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910 년대 단의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빠린스(3건), 모시항라, 모시, 명주(각 2건), 노방주, 조셋도, 보이 루, 옥당목, 당목, 세목, 목항라, 백갈포, 인조견직물, 인견 줄문, 인견 숙수, 디초수문(각 1건)이었다. 1920 년대 단의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옥양목(5건), 당목(3건), 모시, 세모시, 서양사(각 2건), 생주, 생삼 팔주, 노방주, 줄능주, 안사, 모시항라, 진주단, 무명, 삼승, 두양저, 문포(각 1건)이었다. 1930년대 단의 소 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명주, 교주(각 5건), 옥양목, 모시(각 4건) , 노방주, 인조견(각 3건), 당목, 무명, 남 저, 춘추, 하절, 교직(각 2건), 소천주, 숙고사, 불난사, 자미사, 합단, 하부단, 순인, 빠린스, 조셋도, 지리면, 동양저, 산저, 생저, 세저, 계추리, 옥만포, 인견 민베 루, 도리사, 오색 쳑(각 1건)이었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단의 소재로 모시가 30년 동안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 다. 1910년대의 빠린스와 1930년대 명주의 빈도가 높 아서 견직물이 많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7. Naeui

    본 논문의 연구대상 혼례물목에 기록된 내의는 속 옷의 일종으로 추정된다. 내의의 기록 위치를 살펴보 면, 단의, 바지, 고쟁이, 요대, 내의 순서로, 속옷류 중 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신체와 가 장 가까운 속옷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내의의 소재를 비교한 것이다. 연구대상 혼례물목에 기록된 내의의 소재는 총 28건이다(Fig. 9). 1910년대 혼례물 목에 기록된 내의의 소재는 11건으로 면직물 6건(55%), 마직물 5건(45%)으로 면직물과 마직물을 애용하였다. 1920년대 내의의 소재는 4건으로 마직물 3건(75%), 면직물 1건(25%)이었다. 1930년대 내의의 소재는 13 건으로 면직물 8건(62%), 마직물 5건(38%)이었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내의 소재로 면직물과 마직물이 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내의 소 재의 명칭별 누적 빈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910년 대 내의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무명(4건), 마포(3 건), 반포(2건), 광목, 본목(각 1건)이었다. 1920년대 내의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무명, 남포, 만포, 반 포 각 1건으로 나타났다. 1930년대 내의 소재의 명칭 을 분석해 보면 무명(3건), 당목(2건), 광목, 세목, 옥 당목, 남저, 반포, 사천포, 세마포, 마포(각 1건)으로 나타났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내의 소재로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무명이 가장 많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 다. 그 외 마포, 반포, 세마포 등 마직물이 사용되었다.

    8. Yodae

    요대는 저고리를 입기 전 맨살에 겨드랑이 밑으로 바짝 치켜올려서 가슴을 눌러 졸라매어 착용한 의복 이었다(Yu & Kim, 1988). 요대는 길이가 170~180cm 에 너비는 5~7cm 정도이며, 면직물이나 견직물로 만 들어 일할 때나 외출 시에 착용하였다(Yu & Kim, 1988). 겨울은 솜을 두어 누벼서 입으면 방한용으로 추위를 막기 위해 착용하였다(KCIS, 1986). 혼례물목 에 요대는 홋요대, 겹요대, 핫요대, 누비요대가 기록 되어 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요대의 소재를 비교한 것이다. 연구대상 혼례물목에 기록된 요대의 소재는 총 35건이다(Fig. 10). 1910년대 혼례 물목에 기록된 요대의 소재는 21건이다. 면직물 18건 (85%), 마직물 2건(10%), 견직물 1건(5%)으로, 면직 물이 월등하게 많았다. 1920년대 요대의 소재는 10건 이다. 면직물 4건(40%), 견직물, 마직물 각 3건(30%) 이었다. 1930년대 요대의 소재는 4건이다. 면직물, 마 직물 각 2건(50%) 이었다. 이처럼 1910년대보다 1930년대로

    이처럼 1910년대보다 1930년대로 갈수록 분석대 상의 직물이 감소하고 있는 것은 1930년대 후반 혼례 물목에서 요대의 기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요대의 소재로는 면직물이 1910년대 85%로 월등히 높았으 며, 1920년대 40%로 높은 편이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요대 소 재의 명칭별 누적 빈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910년 대 요대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당목, 옥양목(각 5건), 무명(3건), 모시, 본목(각 2건), 삼승, 면사, 서양 사, 명주(각 1건)으로 나타났다. 1920년대 요대 소재 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모시(2건), 명주, 노방주, 주항 라, 무명, 당목, 옥양목, 서양사, 저포(각 1건)이었다. 1930년대 요대 소재의 명칭을 분석해 보면 당목, 옥양 목, 안동포, 남저가 각 1건이었다.

    이상의 결과를 통해 1910년대와 1920년대에는 옥 양목, 당목, 무명 같은 면직물이 가장 많았으며, 모시 도 애용되었다. 1920년대에는 명주, 노방주, 주항라, 노방주 등 견직물이 요대의 소재로 사용되었는데, 이 는 외출용 요대에 사용된 사례로 생각된다.

    Ⅴ. Conclusion

    본 연구는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전라도와 경상도의 혼례 과정에서 발행된 총 21점의 납폐물목 과 우귀물목을 연구대상으로 하여, 혼례물목에 기록 된 여덟 가지 의복류의 소재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저고리의 소재는 총 326건이 기록되어 있다. 저고리 소재로는 191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견직물 의 비율이 87~91%로 월등히 높았다. 견직물 중에서 도 명주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노방주, 숙고사, 자미사, 갑사, 관사, 진주사, 항라, 모본단, 양단, 운문 단 등 현대까지도 계승되고 있는 주(紬), 사(紗), 단 (緞) 종류의 견직물이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그 외 1915년과 1916년의 물목을 통해 당시 울나사, 가죽 같은 모직물과 가죽 소재도 매우 드물게나마 저고리 소재로 사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30년대에 는 생산된 지역이나 업체명, 상품명으로 추정되는 새 로운 사와 단 종류의 명칭들이 대거 저고리 옷감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즈음 의류 소재가 다채로워졌으며, 유행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 치마의 소재는 총 303건이 기록되어 있다. 치 마 소재로는 1910년대에는 면직물이, 1930년대에는 견직물이 가장 많았으며, 1920년대에는 마직물과 견 직물, 면직물이 유사하게 나타났다. 이는 1910년대부 터 1930년대까지 모두 견직물이 월등히 우세하였던 저고리 소재의 경향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한편, 모직 물은 저고리로는 울나사가 단 1건만 기록되어 있으 나, 치마의 소재로는 1920년대에 세루 1건, 1930년대 순모바리빠 1건, 순모메린스 1건, 세루 4건이 기록되 어 치마는 저고리에 비해 모직물을 사용하는 사례가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치마의 소재로는 교직 물, 인견직물 등 저고리에 비해 다채로운 소재를 사용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미 1910년대부터 오빠루, 보이 루, 빠린스, 비릿볏도, 뽀뿌라, 후릿도, 세루, 지지미, 메린스 등 신소재가 치마에 대거 사용된 것이 특징이 었다.

    셋째, 적삼의 소재는 총 120건이 기록되어 있다. 적 삼 소재로는 마직물의 비율이 40~42% 이상을 차지하 였다. 적삼 소재로는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모 두 모시, 저마류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당목, 옥 양목, 은조사 등이 애용되었다. 이는 혼례 이후의 삶 이 시원하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혼례용 적삼을 계절에 관계없이 모시나 베로 장만하였던 풍습과 관 계된 것으로 생각된다. 적삼 옷감으로 은조사, 당항 라, 쌍문초 등 얇고 비침이 있는 견직물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속옷용 적삼이 아닌 여름철 겉옷용 적삼 소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넷째, 바지의 소재는 총 118건이 기록되어 있다. 연 구대상 혼례물목에서 바지는 여성용 속바지로 추정된 다. 바지의 소재로는 면직물의 비율이 35~61% 이상 을 차지하였다. 바지의 옷감으로는 명주, 당목, 무명, 옥양목이 애용되었으며, 반주, 금춘사와 같은 교직물 과 인조견직물도 사용되었다.

    다섯째, 고쟁이의 소재는 총 75건이 기록되어 있 다. 연구대상 혼례물목에서 고쟁이는 여름용 속바지로 추정된다. 고쟁이의 소재는 면직물의 비율이 54~55% 이상을 차지하였다. 고쟁이 소재로 애용된 옷감은 무 명, 당목, 옥양목 같은 면직물과 모시였다.

    여섯째, 단의의 소재는 총 101건이 기록되어 있다. 연구대상 혼례물목에서 단의는 단속곳이다. 단의의 소재는 견직물이 1910년대에 38%, 1930년대에 40% 로 빈도가 높았다. 이처럼 견직물의 기록빈도가 높은 것은 단의는 대개 치마 바로 아래에 입어 밖으로 노출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의 의 소재는 견직물인 빠린스, 명주, 교주가 애용된 것 으로 나타났으며, 옥양목과 모시도 사용되었다.

    일곱째, 내의의 소재는 총 28건이 기록되어 있다. 연구대상 혼례물목에서 내의의 기록 위치를 통해 볼 때 신체와 가장 근접하게 착용하였던 속옷으로 추정 된다. 내의의 소재로는 면직물과 마직물 외의 직물은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어 섬유소재 면에서도 신체 바로 닿는 속옷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의의 소재는 무명이 가장 많이 기록되어 있으며, 마포, 당 목도 애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여덟째, 요대의 소재는 총 35건이 기록되어 있다. 연구대상 혼례물목을 분석해 보면 요대는 1930년대 후반 이후에서는 기록을 찾을 수 없어 그 이후에는 착 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요대의 소재로는 면직물 이 1910년대 85%로 월등히 높았으며, 1920년대 40% 로 높은 편이었다. 요대는 옥양목, 당목, 무명 같은 면 직물과 모시가 애용되었으며, 명주, 노방주, 주항라 등 견직물은 외출용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본 연구에 고찰한 각 의복별 소재의 명칭은 향후 한국 전통복식 유물에서 해당 시기 유물에 사용된 소 재명을 찾는데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시대에 따른 소재의 변화 경향은 해당 시기에 유행 하였던 한복 소재로써 영화와 드라마, 박물관 전시 등 에서 인물의 의상을 고증 재현하는데 이론적인 근거 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Figure

    RJCC-28-1-62_F1.gif

    The Nappyemulmok(納幣物目) of the Han family in Cheong ju From Cheongju Hanssi. (1915).

    RJCC-28-1-62_F2.gif

    Unjoru third daughter of Ugwisoipjepumgi(于歸所入諸品記) From Jung. (1999). p.62

    RJCC-28-1-62_F3.gif

    Textile materials of Jeogori in the 1910s to 1930s

    RJCC-28-1-62_F4.gif

    Textile materials of skirt in the 1910s to 1930s

    RJCC-28-1-62_F5.gif

    Textile materials of Jeoksam in the 1910s to 1930s

    RJCC-28-1-62_F6.gif

    Textile materials of pants in the 1910s to 1930s

    RJCC-28-1-62_F7.gif

    Textile materials of Gojaengi in the 1910s to 1930s

    RJCC-28-1-62_F8.gif

    Textile materials of Danui in the 1910s to 1930s

    RJCC-28-1-62_F9.gif

    Textile materials of Naeui in the 1910s to 1930s

    RJCC-28-1-62_F10.gif

    Textile materials of Yodae in the 1910s to 1930s

    Table

    The lists of goods for wedding in Gyeongsang and Jeolla province between 1910s and 1930s

    Reference

    1. Cheongju Hanssi. (1915). 納幣物目 [Nappyemulmok].
    2. Cho, I. S. , & Lee, E. J. (2017). Wedding culture & lists of wedding gifts from the Gyungnam area in the 20th century. The Research Journal of the Costume Culture 25(2), 159-174. .
    3. Goseong Jeonju Choessi. (1938). 納幣物目 [Nappyemulmok].
    4. Haman Issi. (1915). 于歸物目 [Ugwimulmok].
    5. Honam Culture Heritage. (1910s). Boseong, Jeonnam the lists of goods for wedding. Retrieved February 2, 2016, from http://www.memoryhonam.co.kr/sub09/sub02_detail.php?seq=266
    6. Honam Culture Heritage. (1920s). Gochang Jeonbuk the lists of goods for wedding. Retrieved February 2, 2016, from ttp://www.memoryhonam.co.kr/sub09/sub02_detail.php?seq=233
    7. Honam Culture Heritage. (1934). Gochang Jeonbuk the lists of goods for wedding. Retrieved February 2, 2016, from http://www.memoryhonam.co.kr/sub09/sub02_detail.php?seq=282
    8. Jeon, J. H. (1999). 전주(전라도 지역) 혼례복식 [Jeonju (Jeondo region) traditional wedding ceremony].Korea Royal Costume Research Institute, 1, 21-40.
    9. Jung, J. S. (1999). On the process and meanings of marriage - Focused on iteratures of marriage from 1920 to 1940 at Woonjorhu in Kurye -. Korean Journal of Folk Studies, 6, 1-74.
    10. Kim, J. N. (2011). A study on folk custom concerning the traditional wedding ceremony based on old documentary, wedding - catalogs of goods. The Review of Korean Cultural Studies, (38), 361-389.
    11. Kim, J. T. (1982). 傳統婚俗에서의 納徵禮에 대하여 [On nuptial presenting in traditional wedding]. Journal of the Women’s Problems Research Institute,11, 17-29.
    12.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1969). 韓國 民俗綜合調査報告書(全羅南道 編) [Korean Folkore Comprehensive Investigation Report(Jeollanam-do)]. Seoul: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13.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1971). 韓國 民俗綜合調査報告書(全羅北道 編) [Korean Folkore Comprehensive Investigation Report(Jeollabuk-do)]. Seoul: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14.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1972). 韓國 民俗綜合調査報告書(慶尙南道) [Korean Folkore Comprehensive Investigation Report(Gyeongsangnam-do)]. Seoul: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15.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1974). 韓國 民俗綜合調査報告書(慶尙北 編) [Korean Folkore Comprehensive Investigation Report(Gyeongsangbuk-do)]. Seoul: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16. Korean Culture and Information Service. (1986). 韓國 民俗綜合調査報告書(衣生活篇) [Korean Folkore Comprehensive Investigation Report(A life of righteousness)]. Seoul: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17. Lee, J. W. (1990). A study on everyday wear of Korean common woman with folklore. Family and Environment Research, 28(4), 15-30.
    18. Moon, O. P. , & Lee, C. G. (2014). 增補四禮便覽 [Jeungbosaryepyeollam]. Seoul: The academy Korean Studies.
    19. National Folk Museum of Korea. (1988). 求禮 雲鳥樓 [Gurye Unjoru]. Seoul: Author.
    20. Park, J. Y. , & Jung, J. Y. (2007a). 물목․보부상 물 목 [Mulmok․Bobusang Mulmok]. Chungnam Asan: Chinese translation and literature institute & Midominsokgwan.
    21. Park, J. Y. , & Jung, J. Y. (2007b) 홍천읍 송화선 보 부상 물목 [Hongcheon-eup Songhwaseon Bobusang Mulmok]. Chungnam Asan: Chinese Translation and Literature Institute & Daegubang.
    22. Society for the Study of Living Etiquette. (2003). 冠 婚喪祭 [Guan Yu Sang-je]. Seoul: Maeil.
    23.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2002a). 古文書集成 四十七券 [Gomunseojipseong]. Seoul: Author.
    24.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2002b). 古文書集 成 六十二券 [Gomunseojipseong]. Seoul: Author.
    25. Yu H, G. , & Kim. M. J. (1988). The history of Korean dress culture. Seoul: Gyomunsa.

    Append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