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2383-6334(Online)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에 표현된 서구 전통복식의 혼성모방
Pastiche of Western Traditional Costume in Japanese Avant-Garde Fashion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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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복식은 디자이너와 착용자, 나아가서 문화 자체의 관념과 이상을 드러냄으로써 도덕에 관한 의식적이고 잠재의식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한편, 문화적 가치에서의 급속한 변화를 반영한다. 복식은 우리가 입고 벗을 수 있는 피부라 할 때, 20세기 전까지 복식은 고정된 시각적 가치체계에 의해 국한되었으며, 불완전함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인식되는 단순한 외피였다. 특히 19세기까지의 서구 복식은 복식과 몸 사이에서 조형 기능을 담당하는 내부구조인 속옷을 끌어들여 조형작업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어 단순한 내부와 외부의 경계로서의 피부의 역할에 의문이 제기되어, 몸의 표면으로서 뿐 아니라 내부 존재의 포장으로서 피부는 몸에 관한 복잡한 시각을 표상하게 되었다. 즉, 20세기를 경계로 하여 복식이 획일적인 조형으로 수렴된 이전 시대와는 달리 복식은 강력한 표현성을 갖게 되었다.
복식 디자인은 지난 30여 년간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디자이너들은 확고하게 자리 잡은 관습을 파괴하고 무엇이 미적이며 스타일리쉬한가에 대한 신념을 변화시키는 체제 전복적인 요소들을 패션 시스템에 도입하였다.1) 특히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유행하는 실루엣의 지배에 도전하고, 의복 구성의 방식을 혁신하고자 한다. 그들은 새로운 미학의 원리를 추구하기 위해 소재와 테크닉의 정형화된 사용을 거부하고, 테크놀로지와 소재를 탐구해왔다.
1) Diana Crane, The Transformation of the Avant-Garde: the New York Art World 1940-1985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p. 14.
1970년대부터 1980년대를 거치면서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 요지 야마모토(Yohji Yamamoto)는 세계 패션계의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고, 일본 패션은 패션의 관습에 도전하고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수용하는 능력으로 인정받고 있다.2) 일본패션 디자이너들의 성공은 다른 아시아의 디자이너들에게 길을 열었고, 일본이 주요한 문화집단으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 준 타카하시(Jun Takahashi), 히로아키 오히야(Hiroaki Ohya)3) 등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2) Yuniya Kawamura, The Japanese Revolution in Paris Fashion, (Oxford․New York: Berg, 2004), p. 131.
3) 준야 와타나베와 준 타카하시는 카와쿠보의 수제자이며, 히로아키 오히야는 미야케의 계열사에서 자신의 레이블을 전개하고 있다.
오늘날의 소비사회에서 디자이너들은 복식의 변형과 해체를 거친 후 재구성되는 다양한 복식미를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패션이라 일컫는 컬렉션에서는 특정 시대나 특정 문화의 복식의 특징을 차용하여 유희적으로 표현한 예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포스트모던 패션에서는 모더니즘의 통일성이나 형식성에 어긋나는 서로 양립되지 않거나 이질적인 파편들을 조합하는 절충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패션에서의 혼성모방(pastiche)의 전략으로 설명될 수 있다. 특히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과거의 서구복식이나 그 이미지를 차용, 복제하여 새롭게 조합하는 혼성모방을 사용하여 서구 패션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에게 서구 패션은 친숙한 유형의 의복에 대한 유희적 재해석의 대상이 된다. 주체가 사라져 독창적 또는 창조적 스타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포스트모더니즘 패션은 과거의 스타일이나 타문화의 스타일을 그 의미와 무관하게 차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변화하는 복식에 대한 미의식을 규명하고자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을 연구함에 있어 포스트모던 패션의 주요한 전략인 혼성모방에 주목하였다. 특히 그들이 서구 전통복식을 재해석하는 방식을 분석하여 패션에 나타난 비서구적인 관점과 미의식을 파악함으로써 서구 패션의 신화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미와 추의 관계를 전복시키는 새로운 미학을 구명(究明)하고자 했다. 본 연구에서는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과 혼성모방에 관한 이론적 배경을 근거로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 디자이너들이 서구적 의복관습(sartorial convention)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서의 혼성모방의 실례를 조사하고 분석하여, 현대 복식에 표현된 서구 전통복식의 혼성모방의 유형과 그 미적 태도를 고찰하였다. 의복 제작 방식을 혁신하거나 몸의 형태, 비율, 유행하는 실루엣에 대한 기존의 규범에 도전해온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업은 그 창조적인 사고방식의 탐구라는 측면에서 연구의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에 나타난 서구 전통복식의 혼성모방을 고찰하기 위하여 본 연구에서는 문헌 연구와 사례 연구를 병행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복식 자체의 조형성만을 관찰하기보다는 복식을 통해 맥락과 가치를 분석하고자, 첫째,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의 등장과 그 공통된 개념에 대해 알아보고, 복식에 나타나는 혼성모방에 대해 이론적 고찰을 행하였다. 둘째,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에 표현된 서구 전통복식의 혼성모방이 현대 복식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문헌 연구와 사례연구를 병행하였다. 연구의 범위로 설정한 시점은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에서 혼성모방의 전략이 집중적으로 나타난 1990년대부터 최근 2010년 컬렉션에 이르는 21세기 전환기를 중심으로 한 여성복 패션이며, 복식사를 통한 문헌 연구와 함께 패션 및 복식사 관련 서적, 오트 쿠튀르와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지와 패션 잡지에서 얻은 여성복 사진 자료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분석대상은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의 토대를 구축한 디자이너인 레이 카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이세이 미야케와 이들의 수 제자이거나 이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디자이너로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의 영역을 확대발전시킨 준야 와타나베, 준코 코시노(Junko Koshino), 요시키 히시누마(Yoshiki Hishinuma)로 선정하였다. 자료의 수집을 위해 1990년부터 2010년 컬렉션까지의 시기에 발표된 디자인 중 혼성모방의 전략이 사용된 사례를 추출하여, 디자이너 별로 레이 카와쿠보 89점, 준야 와타나베 75점, 요지 야마모토 72점, 이세이 미야케 31점, 준코 코시노 35점, 요시키 히시누마 34점을 토대로 분석하였다.
Ⅱ. 이론적 배경
1.일본 아방가르드 패션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용어는 인습타파적인 미적 가치에 강하게 부응하며 대중문화와 중산계급의 라이프스타일을 거부하는 아티스트 집단을 의미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지배적인 사회적 가치 또는 기존의 예술적인 관습에 반대한다. 다이애나 크레인(Diana Crane)은 작품의 미적 개념에의 접근에 있어서 예술적인 관례를 재정의하거나, 새로운 예술적 도구와 테크닉을 사용하거나, 예술작품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대상의 범위를 포함한 예술적 대상의 본질을 재정의한다면, 아방가르드라고 여겨지는 예술 운동이라고 했다. 이상은 모두 미야케, 야마모토, 카와쿠보 등 일본 패션 디자이너의 스타일에 적용될 수 있다. 이들은 복식 제작의 관습을 버리고, 차별화되고 독특한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복식과 패션의 본질과 의미를 재정의하였다.4) 카와쿠보, 야마모토, 미야케는 자신들이 일본이라는 공통된 민족성에 의해 범주화되는 것을 거부하지만5), 그들은 개인적으로 또 집합적으로 현대 패션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으며,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추구라는 측면을 공유한다.
4) Diana Crane, op. cit., p. 14, 임은혁,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의 미학,” 복식 57권 1호 (2007), p. 54에서 재인용.
5) Louise Mitchell, The Cutting Edge, Fashion From Japan, (Sydney: Powerhouse Publishing, 2005), p. 15.
파리의 패션 시스템은 1980년경 이세이 미야케, 레이 카와쿠보, 요지 야마모토라는 일본 디자이너들이 출현하면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었다.6) 레이카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는 1981년 컬렉션에서 당시 대다수의 디자이너들이 선보였던 우아하게 장식된 예리한 테일러링의 몸을 드러내는 스타일과는 강한 대조를 이루는, 의도적으로 구멍 내고, 찢고, 단 처리를 하지 않은 비대칭의 오버사이즈의 검정색 복식 디자인을 발표하여 패션, 여성성, 아름다움에 관한 용인된 개념에 도전하였다. 이들은 복식과 몸에 대한 차별화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의복구성과 맞음새에 대한 숭엄한 기준에 도전하였다. 서구 유럽 패션에는 근본적으로 몸의 윤곽을 강조하기 위해 관례적으로 재단, 패딩, 정확한 테일러링 등의 복잡한 방식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들 일본 디자이너들은 몸의 윤곽선을 은폐하기 위해 전통적인 일본 복식의 소재를 두르고 감싸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들의 디자인은 기존의 패션산업의 지배구조에는 들어맞지 않았으며, 낡고 허름해 보이는 충격적인 이미지는 패션에 대한 서구적 개념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다.
6) Kaye Durland Spilker and Sharon Sadako Takeda, Breaking the Mode, (Milano: Skira, 2007), p. 15.
데이안 수직(Deyan Sudjic)7)은 1980년대에 일본패션은 소재, 재단, 이미지를 보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하였으며, 테일러링과 쿠튀르의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고 말 그대로 의복을 해체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보니 잉글리쉬(Bonnie English)8)는 미야케, 카와쿠보, 야마모토는 다수의 1990년대의 서구 디자이너들의 피상적이고, 퇴행적이고 과도한 디자인에 대한 의미 있는 대안을 제공하였다고 논의한 바 있다.『The New York Times』에서 패션 크리틱 버나딘 모리스(Bernardine Morris)9)는 이들은 기존의 의복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고 언급하였다. 이들은 몸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감추려고 한다고 하면서, 그 가변적인 형태와 과장된 비례로 인해 관습적인 용어로는 묘사되기 힘들다고 하였다.
7) Deyan Sudjic, “Japan Style”, in Excess: Fashion and the Underground in the 80s, eds. Maria Luisa Frisa and Stefano Tonchi, (Milano: Edizioni Charta, 2004).
8) Louise Mitchell, op. cit., p. 38.
9) Bernardien Morris, “The Japanese Challenge to French Fashion”, in The New York Times (March 1983), MLouise Mitchell, op. cit., p. 53에서 재인용.
헤겔(G. W. F. Hegel)은 “피부는 자연의 불완전함을 증명하는 일종의 덮개이다.”10)라고 언급한 바 있다. 서구 미학은 의복을 불완전함을 가리는 수단으로 인식하여, 의복은 몸의 불완전함을 감추기 위한 것이므로 의복에는 주름이나 구겨짐 같은 아주 작은 결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11) 이러한 견지에서 서구 패션은 의복을 통해 아름답고 완벽한 피부를 창조하는 것을 추구해왔다고 할 수 있다. 수세기동안, 서구 패션은 섹슈얼리티, 부와 지위의 표현을 미덕으로 하는 구조적인 테일러링의 맞음새를 고수해왔다. 이에 반해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구멍 나고 찢어지고 해지고 구겨지고 비틀린 외관은 단순히 찢어진 천 조각을 이어 붙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들의 디자인 미학은 아름다운 몸을 과시하기 위한 의복의 개념이나 불완전한 몸을 은폐하기 위한 아름다운 의복이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화려한 장치로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피부를 은폐하고자 하는 의복에 대한 관습적인 이미지를 파괴하는 것이다.
10) GWF Hegel, Vorteungen uber die Asthetik, trans. Hiroshi, Hasegawa (1996), p. 349, Louise Mitchell, op. cit., p. 23에서 재인용.
11) Louise Mitchell, op. cit., p. 23.
인간 몸의 자연 형태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차원의 소재를 사용한 삼차원의 형태의 형상화를 위한 해결책을 찾는 서구 의복관습의 드레스메이킹과는 반대로,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의 디자인은 몸을 뒤덮어 풍만한 가슴이나 가는 허리와 같은 몸의 자연스러운 비례를 은폐한다. 이들은 소재의 이차원적 본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소재로 몸을 감싼다. 그 결과, 여분의 소재는 드레이프를 만들어내는데 일본 디자이너들은 이 여분을 불필요하다고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의 공간으로 본다. 많은 경우 비대칭의 무정형으로 표현되는 이들의 디자인은 성, 연령, 체형의 경계를 무너뜨리는데, 이는 패션이 서구적 사고 밖의 개념으로부터 창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의 디자인은 포스트모더니스트 실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서양과 동양, 패션과 안티 패션, 모던과 안티 모던의 경계를 허무는 복식을 디자인하는 측면에서 포스트모던적인 해석의 시작을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일본 패션은 서구 패션의 허위적인 관습을 노출시켰다. 레이 카와쿠보는 패션 자체의 개념을 재정의하여 아름다움, 고상함, 완벽함의 개념을 거부했다. 카와쿠보는 성의 구별을 제거하고, 더 이상 감추거나 드러내는 데 기초하지 않는 몸과 의복과의 관계를 추구하여, 콤 데 갸르송(Comme des Garçons) 디자인은 의복이 몸에 맞게 재단되지 않고, 뒤집히거나, 재킷이 풀오버가 되고 스커트가 드레스가 되는 등 착용자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 야마모토는 오리가미의 종이 주름을 암시하는 삼차원적인 조각을 통해 의복을 완전히 몸의 형태에서 멀어지게 하기도 하였다. 한편, 미야케는 미세한 주름으로 몸의 움직임을 통해 예기치 않은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와 같이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에서 의복과 몸의 관계는 급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개념화되었고 실험적인 변형의 대상이 되었다.
2.혼성모방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자본주의 사회경제적 배경 하에서 성립하는 문화논리이다. 제임슨(Fredric Jameson)12)은 문화적 맥락을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구분하여 후기 자본주의를 포스트모더니즘에 적용하였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다국적 자본이 산업생산을 주도하고, 이 자본은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생산하며, 1980년대 이후 과거의 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점차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이행함으로써 다양한 제품과 그 제품의 끊임없는 교체가 특징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상품 이미지의 변경이 품종다양화의 요소가 되고 상품의 패션화가 촉진되었다. 즉, 후기 자본주의 시대 다국적 자본은 이윤을 위하여 가속적으로 이미지와 스타일을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갖게 되고, 이에 따라 패션에서 일원적인 문화 이미지가 약화되며 다원성이 적극 도입되었다.
12) 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st Capitalism, (London․New York: Verso, 1991), pp. 16-25.
따라서 패션에서 어떤 규칙도 없이 어느 시대의 어떤 스타일이 복합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이 표출되었다. 이런 현상은 패션에서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하였는데, 이는 1980년대 초반의 불확실하고 어떠한 정의도 내리기 힘든 패션을 이상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스타일로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미지만을 따온 것에 불과했다. 포스트모던 패션의 개념은 모더니즘 시대의 통일 원칙이나 형식의 틀에 맞추어지지 않는 아이러니한 효과나 서로 양립되지 않거나 이질적인 파편들을 ‘가볍게’ 조합하는 브리콜라주(bricolage) 기법을 사용하거나, 이미 공인된 포스트모더니즘의 다른 징후들과 유추시켜 구성된다. 과거 복식은 스스로의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것과는 달리, 오늘날의 패션은 오직 전후 맥락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포스트모던적이라고 할 수 있다.13)
13) Elizabeth Wilson, “These New Components of the Spectacle: Fashion and Postmodernism”, in Postmodernism and Society, eds. Roy Boyne and Ali Rattansi (New York: McMillan, 1990), pp. 219-221.
제임슨14)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과거 급진적인 미적 비판의 한 가지 주요 양식이었던 패러디(parody)가 불가능해지고, 대신 혼성모방(pastiche)이 성행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스타일상의 고유성, 특이성, 개별성이라는 모더니즘의 토양에서는 원본을 조롱하는 모방을 만들어낼 수 있으나, 고정된 스타일이 아닌 스타일의 이질성만 있을뿐 원본 자체가 사라진 현재의 상황에서는 패러디는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기 자본주의의 삶에서는 필연적으로 파편화되고 역사성을 무시한 절충주의가 범람하게 된다.
14) Fredric Jameson, op. cit., pp. 16-25.
자신만의 특이한 스타일을 발전시킬 필요를 갖지않게 됨에 따라 포스트모더니즘 패션에는 특별한 깊이가 없으며, 독자적인 내적 견해가 요구되지 않게된다.15) 이는 제임슨이 주장하는 “주체의 죽음(the disappearance of individual subject)”16)과 맥락을 같이한다. 주체의 죽음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꺼내어 조합하는 혼성모방으로 이어지게 된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는 현실자체가 이미지, 환영, 허구 등으로 존재하게 되면서 철저히 상품화되는 사회로, 혼성모방은 이런 사회의 모습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현상이다.17)
15) 정현숙, 정흥숙, “포스트모던 패션에 표현된 페미니즘 연구,” 복식 35호 (1997), p. 242.
16) Fredric Jameson, op. cit., pp. 6-16.
17) 양학미,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패션에 나타난 혼성모방”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9), p. 18.
패션에서도 이러한 독보적인 저자(author), 즉 디자이너의 위치는 해체되었고, 하이패션이 과거의 복식이나 타 문화의 영역으로부터 그 이미지를 차용․복제하여 새롭게 조합하면서 더 이상 패션의 경향을 하이패션이 주도적으로 이끌지 않게 되었으며, 현대의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주위를 둘러보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혼성모방은 어떤 원칙이나 개념 없이 과거의 모든 스타일을 자기 입맛에 맞게 짜 맞추기도 하고 끼워 넣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과거라는 시간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시간이며, 거대한 역사적인 줄기 속에서의 어느 한 시점인 과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된 이미지 가운데 어느 한 조각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도 단지 실재하지 않는 이미지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게 되며, 이는 타문화에서의 이미지의 차용에도 적용된다. 뚜렷한 기준이나 확실한 중심이 없어진 포스트모더니즘 패션에서는 원본을 가진 패러디가 가능할 수 없게 되므로 그 대신 혼성모방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18)『The Face』지는 “오늘날 패션은 ‘룩’도 아니고 ‘스타일’도 아닌 무질서에 빠져든 혼돈 상태이며, 마치 정신병원에 와 있는 것과 같다.”19)라고 혼성모방의 패션경향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18) 임은혁, “몸의 왜곡을 통한 혼성모방,” 한국의류학회지 33권 4호 (2009), p. 513.
19) Caroline Evans and Minna Thornton, Women & Fashion: a New Look, (London: Quartet Books, 1989), p. 59.
현대복식에서 포스트모더니즘 패션 경향을 주도하는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 컬렉션에서는 특정한 시대나 문화의 복식의 특징을 혼성모방하여 유희적으로 표현한 예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혼성모방은 주요한 모티브가 되어 디자이너들은 점차 과거에서 영감을 찾게 되는데, 이는 스타일뿐 아니라 자신의 컬렉션에 즉각적으로 인식 가능한 매력을 부여하게 된다.
Ⅲ.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에 표현된 서구 전통복식의 혼성모방
전통적인 쿠튀르에서의 과장된 엉덩이와 가슴, 그리고 최대한으로 축소된 허리라는 이상화된 형태의 극단적인 비례는 눈속임의 기술과 테일러의 솜씨로 가능한 것이다. 스티칭(stitching), 패딩(padding), 증기다리미와 스트레칭(stretching) 등의 소재에 대한 조작을 통해 몸의 실제를 반영하지 않는 의복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과 찰스 제임스(Charles James)의 건축적인 볼 가운(ball gown)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수 야드의 호스헤어(horsehair), 크리놀린(crinoline), 망사, 튤(tulle)로 구성되는 장식적인 하부구조가 요구된다. 이러한 요소는 완성된 표면 밑의 감추어진 구조를 형성한다.20) 찰스 제임스의 가운과 쟝 데세(Jean Dessès), 길버트 에이드리안(Gilbert Adrian), 그리고 영국의 라샤세(Lachasse Ltd.)의 테일러드 수트는 쿠튀르의 평가 기준인 능수능란한 테일러링의 완벽한 예이다.
20) Kaye Durland Spilker and Sharon Sadako Takeda, Breaking the Mode, (Milano: Skira, 2007), p. 16.
한편, 이러한 기준을 내면화하고 수정해온 고티에(Jean Paul Gaultier), 카와쿠보, 맥퀸(Alexander Mc-Queen), 갈리아노(John Galliano) 등은 실루엣을 변경하거나 관습적인 의미에서의 우아하고 호화로운 외관에 적합한 소재를 거부하는 등의 방식으로 현대적인 시각에서 테일러링의 규준에 도전하였다. 특히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인의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고 단정치 못한 양상은 쿠튀르의 전통적인 드레스메이킹 공식에 익숙한 패션계에 충격을 주었다.
본 장에서는 앞서 이루어진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과 혼성모방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서구 의복관습의 차용과 재문맥화(recontextualization)21)를 추구하는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에 나타난 서구 전통복식의 혼성모방의 표현특성과 미적 태도를 고찰한다.
21) Louise Mitchell, op. cit., p. 36.
1.표현특성
1)과거와 현재의 재조합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서구의 역사적 자료를 분석·분해하여 재창조한 독특한 배열로 옛것과 새것의 형태의 재조합을 만들어낸다. 예를들어, 준야 와타나베나 레이 카와쿠보, 요지 야마모토 등의 디자이너들은 서구 시대복식의 구조를 분해하여 현대적인 요소와 함께 재배열하였다.
와타나베는 종종 과거의 복식을 참고하여 디자인한다. 1998년 F/W 컬렉션의 철사로 팽팽하게 늘어난 울 스커트는 엉덩이 부분이 강조된 18세기의 파니에(pannier) 스커트를 연상케 하는 동시에 20세기 구성주의의 추상성 또한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와타나베는 2000년 F/W 콤 데 갸르송 컬렉션에서 17세기의 러프 칼라를 혼성모방하여 풍성한 벌집 모양의 얇은 폴리에스테르 오건디(organdy) 소재를 겹쳐 표현하여 소재의 특성과 매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었다. 이 디자인에서는 칼라 안에 착용자의 머리가 잠김으로써 머리와 목과 어깨의 전통적인 관계는 일소되었다(그림 1). 2003년 컬렉션에서 와타나베는 후프 스커트와 셔츠 드레스에서 19세기 후반의 버슬을 인용하였는데, 등이 파인 여름 드레스에 배낭을 결합하여 창의적인 방식으로 혼성모방을 보여주었다(그림 2). 한편,〈그림 3〉의 재킷은 19세기 남성의 컷어웨이(cutaway) 코트를 모델로 한 것이나, 그 소매가 거꾸로 달린 형태를 띠고있다. 버튼으로 마무리된 커프스는 의복의 소매, 그리고 암홀은 손목에 배치되어, 1850년대에 유행했던 파고다 형의 소매를 닮았다. 와타나베는 이 재킷을 18세기 남성복을 연상케 하는 브리치스(breeches)와 조합하여 과거 유행 복식의 혼성모방을 창조하였다.
<그림 1> Junya Watanabe, Comme des Garçcons, 2000F/W.
<그림 2> Junya Watanabe, Comme des Garçons, 2003 S/S.
<그림 3> Junya Watanabe, Comme des Garçons, 2006 S/S.
야마모토, 와타나베, 카와쿠보는 서구 디자이너들의 이전 컬렉션을 반복하여 차용한다. 예를 들어 그 자체가 벨 에포크(Belle Epoque, 1895~1914년경)의 재유행인 뉴 룩(New Look)으로부터 역사적인 패션을 차용하지만, 빈티지 의복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1950년대 쿠튀르를 변색시킨다. 야마모토 버전의 뉴 룩은 안감과 패딩, 검정색과 흰색의 울 펠트로 구성되었다.
요지 야마모토는「Hoop」드레스에서 건축적으로 구성된 19세기의 케이지 크리놀린(cage crinoline)을 지지했던 하부구조를 직접적으로 인용하여, 시대복식의 실루엣을 모던한 맥락으로 해석하였다(그림 4).22) 나아가 1999년 S/S 웨딩 컬렉션에서 야마모토는 서구복식의 볼륨, 구조, 변형에 대해 탐구하였다. 과거 서구복식에서 사용되었던 고래수염 대신에 드레스, 재킷, 코트와 스커트의 밑단에 플라스틱고리를 삽입하여 착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파도치는 조각적 형태를 만들었다. 이 컬렉션의 주요 디자인인 웨딩 드레스는 단순한 바디스와 긴 후프 스커트로 구성되었는데, 런웨이에서 모델은 스커트에 삽입된 지퍼를 열어 스커트 속에 숨겨진 액세서리를 꺼내어 착용하여 앙상블을 완성하였고(그림 5), 같은 컬렉션에서 야마모토는 검정색의 공기주입식 웨딩드레스를 선보여 크리놀린 실루엣의 혼성모방을 극대화하였다(그림 6). 비슷한 맥락에서 준야 와타나베는 스포티한 패딩점퍼와 같은 소재와 구성으로 케이지 크리놀린을 재구성하였다(그림 7).
22) Kaye Durland Spilker and Sharon Sadako Takeda, op. cit., p. 161.
<그림 4> Yohji Yamamoto, 1990F/W.
<그림 5> Yohji Yamamoto, 1999S/S.
<그림 6> Yohji Yamamoto, 1999S/S.
<그림 7> Junya Watanabe, 2009F/W.
한편, 카와쿠보는 브로케이드 코트와 칵테일 드레스에 비치는 소재의 인셋(inset)을 끼워 넣어 몸을 드러나게 하고, 의복을 지탱하는 하부구조가 없음을 드러내 보였다(그림 8). 카와쿠보의 칵테일 드레스와 이브닝 가운은 종종 비대칭으로 구성되고 분해되어 의도적으로 삐딱하게 재조합된 외관을 띤다. 카와쿠보는 1950년대 스타일의 실크 슬립(slip)을 반으로 잘라 다른 슬립에 부착한 후 몸에 둘러묶는 식으로 표현했다. 19세기 말에는 이상적인 S자 곡선의 실루엣을 구현하기 위해 단단한 코르셋과 수 야드의 소재가 필요했던데 비해, 카와쿠보는 바디스의 앞쪽에 볼륨을 만들어내기 위해 빳빳한 합성 소재를 사용하였고, 버슬 효과를 위해 망사소재의 기다란 천을 두르고 묶었다. 이는 탈의미화와 탈상징화를 통해 원래의 버슬의 미적가치에서 의도적으로 멀어진 혼성모방이라 볼 수 있다.
<그림 8> Rei Kawakubo, Comme des Garçons, 1990F/W.
2)속옷의 겉옷화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역사적 자료를 분해하여 재창조하면서 사회적 관습을 탐구의 주제로 삼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속옷에 대한 사회의 양면성과 환상을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 아방가드르 패션에서는 서구복식을 시대적으로 혼성모방함에 있어, 특정한 의복 아이템의 은폐를 강요하는 사회적 금기를 무시하는 속옷의 겉옷화 전략이 종종 나타난다.
19세기까지 서구 복식은 복식과 몸 사이의 조형기능을 담당하는 내부 구조인 속옷을 통해 조형을 이룩했다. 서구복식의 혼성모방에 있어 몸의 형태화의 기능을 통해 이상미에 근접하도록 하는 기능을 담당했던 속옷이 겉으로 드러내는 전략이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속옷의 겉옷화는 복식 요소의 원래의 위치에 대한 기대에 어긋나게 하는 위치의 전환과 사용목적과 기능이 뚜렷한 아이템이나 디테일을 다른 용도로 전환시키는 기능의 전환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으로, 이미 지각하고 있는 경험적 이미지를 뒤엎어 평소에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사물의 이면을 드러내 양면적 기능을 강조한다.
속옷이 겉옷으로 전환되어 혼성화되는데 사용되는 대표적인 아이템으로 코르셋을 들 수 있다. 코르셋은 늘 속옷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패션의 역사를 통해 코르셋의 디자인은 바디스의 구조와 형태에 영향을 미치거나 그 영향을 받아왔다. 18세기의 복식은 코르셋의 선을 따랐으며, 19세기 후반의 아워글래스의 바디스는 꽉 죄는 코르셋의 구조를 모방한 것이다. 코르셋은 중세부터 복식의 한 요소였다. 금속, 가죽, 나무, 린넨, 실크, 고무줄 등의 다양한 소재로 구성된 이 토르소 위의 골조는 철사, 쇠막대, 고래 뼈, 그리고 나중에는 경량의 플라스틱 등으로 보강되었다.23) 20세기 초반의 건축적인 속옷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부가적인 구조와 구조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의복의 실루엣을 확대하고 몸의 형태를 변화시킨다. 그 결과는 시대복식의 창의적인 왜곡으로 표현된다. 현대 복식에서 재문맥화된 코르셋은 모순된 몸에 대한 공포와 욕망을 창의적으로 그리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카와쿠보와 와타나베, 야마모토 등의 디자이너들은 합리성과 남성성을 상징하는 테일러드 수트 위에 코르셋을 병치시켜, 코르셋을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유선택의 의복으로서의 여성의 대담한 섹슈얼리티의 상징으로 사용한다(그림 9, 10).
23) Kaye Durland Spilker and Sharon Sadako Takeda, op, cit., p. 170.
<그림 9> Rei Kawakubo, Comme des Garçons, 2006 F/W.
<그림 10> Yohji Yamamoto, 2010 S/S.
속옷의 겉옷화에 있어, 코르셋 외에도 브래지어가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카와쿠보는 2001년과 2008년 컬렉션에서 테일러드 재킷 위에 벨벳 브래지어를 위치시켰다.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쟝 폴 고티에, 티에리 뮈글러(Thierry Mugler) 등의 디자인에서의 코르셋의 에로틱한 작용과는 달리, 카와쿠보의 브래지어는 그 에로틱한 매력이 박탈되어 보철장치처럼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 방어적으로 나타난다.24) 이는 미에 관한 규범적인 기준에 도전하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확장된 시각언어를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카와쿠보는 의도적으로 인습의 금기사항을 재현함으로써 미를 추구하는데, 가슴이 성적자극의 초점이 되었던 1950년대의 브라 형태를 차용하여 겉옷의 소재로 제작하였다. 카와쿠보가 일반적으로 자신의 컬렉션에서 노골적인 내러티브의 표현을 거부하는데 비해, 외투 위의 브래지어는 불가피하게 젠더 이슈를 제기한다(그림 11, 12). 2006년 컬렉션에서 카와쿠보는 여성용 란제리를 셔츠나 남성용 수트와 뒤섞거나 그 위에 제시하여 속옷의 겉옷화의 전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그림 13).
24) Linda Dresner, Susanne Hilberry and Marsha Miro (eds.), ReFusing Fashion: Rei Kawakubo, (Detroit: Museum of Contemporary Art Detroit, 2008), p. 34.
<그림 11> Rei Kawakubo, Comme des Garçons, 2008 F/W.
<그림 12> Rei Kawakubo, Comme des Garçons, 2001 F/W.
<그림 13> Rei Kawakubo, Comme des Garçons, 2006 F/W.
이와 같이 서구 전통복식의 혼성모방에는 속옷의 겉옷화 전략이 종종 사용되어 전에는 감추어졌던 의복 내부의 구성 디테일이 완성된 의복의 부분으로 노출되기도 한다.
2.미적 태도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 디자이너들은 특정한 시대나 특정한 문화의 복식의 특징을 혼성모방하여 유희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혼성모방에 내재된 미적태도는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의 해체와 미의식의 전환으로 요약할 수 있다.
1)기표와 기의의 해체
복식사를 통해 파팅게일로부터 뉴 룩에 이르기까지 몸 부위를 과장하는 예는 무수히 많으며, 이러한 예들은 이상미에 도달하기 위해 과장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에 나타나는 서구전통 복식의 기표는 역사적 의상에 대한 혼성모방의 방식으로 이상미에 대한 인식을 해체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즉, 19세기까지의 전통적인 서구복식에서는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여성미의 상징과 의미를 재현하기 위해 속옷에 의해 복식과 몸 사이의 조형작업이 이루어진 반면,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에서는 서구복식에서 전통적인 기표와 기의가 의도적이고 명백한 방식으로 해체됨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서구 전통복식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인 이상적인 몸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체형을 보정하는 파운데이션을 현대적인 요소와 결합하거나 겉옷으로 표면화함으로써, 전통적인 맥락에서의 기의와 기표의 불일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혼성모방을 통해 서구복식의 전통적인 테일러링, 재단, 의복구성의 논리와 테크닉에 의문을 제기하고 미의 이상을 해체함으로써, 근본적으로는 서구 의복의 전통적인 구조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파괴하고 있다. 복식 요소간의 고정된 관계에 따라 결정된 체계를 만드는 것을 부정하고 서구 의복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여 전통적 의복구성의 단정함에서 오는 미를 해체하면서, 서구적 전통 복식미에 대한 기대를 어긋나게 하여 유희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즉, 복식의 규범을 파괴하고 기대와 예상을 깸으로써 기능의 명확성 대신 탈기능성을 제시하여 유희성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서구 전통복식의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디자이너의 상상에 따라 해체하고 조립하거나, 일부를 분리하여 이질적인 복식요소와 결합시키거나, 위치를 이동시킨다. 따라서 이러한 디자인에서는 전통적인 디자인의 원리가 해체되면서 통일성과 전체성이 감소되고 기존의 복식구조와의 대립에 의한 예상치 못한 놀라움이 제공된다.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에 나타나는 서구복식의 혼성모방은 탈의미화와 탈상징화를 통해 원래의 미적가치에서 멀어짐으로써 유희성, 모호성, 은유성을 제시하면서, 서구적 의복관습의 전통적인 기표와 기의를 해체한다. 이는 특정한 복식의 형태가 가지는 전통적인 의미의 연관성을 의도적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함으로써 전통적인 복식에서의 기표와 기의의 관계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2)미의식의 전환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에 나타난 서구복식의 혼성모방의 미적 태도는 몸에 대한 이상미에 대한 미적 인식이 전환으로 풀이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패션에서 실험적인 일본 디자이너들이 전통적인 서구복식에 대한 기괴한 혼성모방을 창조하여 단순한 유희나 왜곡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는 새롭게 혼성모방된 스타일을 창조한 것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 패션에서의 모순된 몸에 대한 공포와 욕망을 창의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복식에서 한 시대의 보편적인 표현양식이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이 다른 시대에 재현될 경우에 이는 하나의 특수한 디자인으로서 별개의 개념으로 인식된다. 인간의 몸의 형태가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므로 복식이 특정한 스타일을 반복하는 것은 불가피하며, 과거 스타일의 재출현은 전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맥락에서 등장하므로 완전히 새로운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25) 가슴, 허리, 엉덩이의 전통적인 구분의 사이즈와 배치로 이루어지는 여성의 몸의 비례는 유행하는 실루엣을 창조하고 정의하는 근거가 되었고, 이는 패션의 역사를 통해 양극을 오갔다. 버슬, 파니에, 케이지 크리놀린과 같은 부가적인 구조가 몸의 부분을 극대화했고, 코르셋은 인위적으로 몸의 윤곽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소재와 구성의 개념을 바탕으로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서구복식의 전통적 요소의 혼성모방을 통해 몸의 대칭성을 추구하는 수량적 규칙과 같은 전통적인 몸 이미지의 압제에 도전하거나 이를 조롱하고 있다.
25) 임은혁, op. cit., p. 517.
서구 전통복식이 이상적인 인체미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억압의 매체로 작용한다고 전제할 때, 이러한 복식의 형태는 전통적인 아름다움의 개념을 거부하는 것으로, 복식에 대한 전통적인 기호의 해체는 여성성에 대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 담론에 의한 이상적인 복식 개념을 해체하는 형태구성은 이상화된 몸에 대한 양식의 거부인 동시에, 여성의 몸을 해방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복식에서는 인체의 비례와 구조보다는 디자이너의 조형의지가 중시되는데, 혼성모방의 전략은 포스트모던 패션에서 고정관념을 해체하기 위해 전통적인 복식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는 경우에 자주 등장한다.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디자인은 서구복식의 혼성모방을 통해 복식의 구조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 개념에서 이탈하고, 서구의 전통적인 복식의 형태구성 방식을 초월한 디자인을 통해 서구 중심의 획일적인 미의식을 붕괴시키면서 이상미를 해체하고 새로운 미를 창조한다.
Ⅳ. 논의 및 결론
일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서구의 전통복식을 분해하여 현대적인 요소와 함께 독특하게 배열하여 과거와 현재의 형태의 재조합을 만들어낸다. 또한 이들은 역사적 자료를 분해하면서 속옷을 겉옷화하여 재창조하고 속옷에 대한 사회의 양면성과 환상에 대한 사회적 관습에 대한 실험을 한다. 이러한 서구복식의 시대적 혼성모방을 통해 현대 복식에서 재문맥화된 디자인은 평소에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서구적 의복관습의 이면을 드러내고 이에 주목하게 한다.
이러한 패션의 구성, 소재, 형태, 개념에 대한 접근에서의 역동적인 변화로 복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가능해졌다. 1980년대 패션에서 급진적으로 비쳐졌던 복식 스타일이 이제는 흔한 방식이 되었다. 현대의 디자이너들이 끊임없이 파괴하고자 하는 패션의 규범적 개념을 재해석하고 때로는 거부하면서, 관습적인 경계는 무너지고 디자이너와 착용자에게 요구되는 미학의 수준은 높아졌다.
앞서 고찰한 바와 같이 21세기 전환기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을 때,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에서는 서구 전통복식의 특징을 혼성모방하여 유희적으로 표현한 예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서구 역사 복식을 차용하는 방식을 통하여 복식의 전통적인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를 추구하고, 몸의 이상미에 대한 미적 인식의 전환을 의도한 것이다. 대량 생산되는 의복의 대상이 되는 규격화된 틀로부터 벗어나 전통적인 복식에서의 이상미에서 이탈하여 더 이상 서구 복식의 상징성은 추구되지 않게 되며, 혼성모방을 통한 탈의미화와 탈상징화에 의해 원래의 미적가치에서 멀어져 복식에서 전통적인 기표와 기의가 해체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은 복식의 전통, 관습 또는 구조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했으며, 서구사회의 규범에 도전하여 복식의 관습뿐 아니라 패션의 본질과 미의 개념을 재정의하였다. 이들은 패션에서의 아방가르드 미학을 추구하여 미와 추의관계를 전복시켰으며, 때로는 매력적이지 않은 것에 미적인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는 미학을 정립하였고, 나아가 복식과 패션에 관한 기존의 규제와 규범을 전복시키기 위해 새로운 디자인 체계를 고안하였다. 파리 패션의 규준에서는 주변부로 인식되었던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은 이제는 준코 코시노, 준야 와타나베, 요시키 히시누마 등의 일본 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벨기에 출신의 디자이너인 마르탱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 등의 젊은 디자이너들에 의해 추종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 살펴본 대부분의 디자인들은 도발적인 과장을 통해 디자이너의 미적 개념을 투사하며, 일상적이고 기능적이고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요건에서 해방되어, 시장성보다는 순수하게 미적이고 개념적인 형태를 취한다. 이러한 맥락의 패션은 직접적인 상업성과 연관이 적고 때로는 난해한 개념을 강조하나, 부분적으로는 현대 패션의 표현적인 본질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아방가르드 패션 디자이너들은 서구 신화의 관습과 전통적인 의미를 회피하거나 문법을 파괴하여 격식을 차린 복장에서의 관습적인 우아함의 개념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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