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N : 2383-6334(Online)
현대 패션사진에 나타난 비실재적 특성
- 넬슨 굿맨의 ‘세계제작 방식’을 근거로 -
The Irrealistic Characteristics Represented in Modern Fashion Photographs - Based on Nelson Goodman's Ways of Worldmaking -
Abstract
- 01(13)_논문 13.pdf1.23MB
Ⅰ. 서 론
현대 패션사진은 단순 대상 재현의 수단 혹은 대중들에게 패션을 어필하는 상업적인 수단을 넘어서 이미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수용자는 패션사진을 바라보고, 기술하고, 해석하는데 있어 처음부터 존재했던 절대적인 토대로서의 세계가 아닌 상대적이고 다원적이며 옳은 버전(versions)이 구성한 세계를 제작하는 버전 의존적인 세계를 구성함으로써 패션사진 속 세계제작(worldmaking)에 참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중들은 해석 과정을 통해 패션사진 이미지에 대한 맥락적인 의미읽기를 시도하게 되었다. 본 연구자는 예술에 대한 인지주의적 관심을 기호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넬슨 굿맨(Nelson Goodman)의 관점에 주목하여 패션사진 이미지의 기호학적 접근을 통해 그것이 담지하는 해석성을 굿맨의 비실재론(irrealism)에서 설명하는 ‘세계제작 방식’1)을 근거로 조명하고자 한다.
1) N. Goodman, Ways of Worldmaking,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78).
굿맨의 인식론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언어 이외의 다른 기호로도 세계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에 주목한 것인데, 특히 예술이 과학과 더불어 세계제작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유일무구로 추구하는 ‘진리(truth)’보다는 그것을 포섭하는 ‘이해(understanding)’ 개념을 도입하여 ‘정서적인 것이 개입된(sensitized)’ 보다 넓은 의미의 인식으로서 예술을 바라봄을 의미한다. 여기서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우리가 버전을 만듦으로 인해 사실이 만들어지는 것을 뜻한다. 사실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원래의 세계에 대한 무익한 추구를 포기하는” 것이다.2) 이는 언어 이외의 다른 기호로서 패션사진의 이미지화가 가지는 담지체(擔持體) 기능을 인정하고, 그것의 의미읽기를 통한 세계제작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2) Ibid., p. 100.
패션사진에 관한 선행 연구로는 광고표현 기법에 따른 소비자들의 인식과 광고의 효과 연구를 위해 패션사진과 패션 일러스트의 비교(노윤선, 박민여, 2003), 페미니즘이 현대 패션사진에 미친 영향(신학동, 2004), 에디토리얼 패션사진에 나타난 성별에 따른 젠더 이미지(최나리, 2007),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에서의 패션사진 이미지 차용 기법(김순자, 2009), 에디토리얼 패션사진에 표현된 하이퍼리얼리티 표현(양숙희, 윤영, 2010) 등이 있다. 이러한 선행 연구들은 패션사진과 일러스트의 비교와 이미지의 특성, 패션사진에 미친 페미니즘, 마케팅적 접근, 그리고 하이퍼 리얼리티 표현 등으로 수행되었으며, 세부적으로 응용된 특징인 부분적 접근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이미지의 의미작용 연구와 거리가 먼 한계점이 있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넬슨 굿맨의 비실재론을 통한 패션사진의 의미작용의 전이적(轉移的) 구조를 살펴보고, 패션사진의 세계제작이 어떠한 방식으로 구성되는지에 대해 이론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 패션사진의 이미지에서 해석가능한 다양한 세계제작 방식이 넬슨 굿맨의 비실재론을 통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대한 실증적 고찰을 한다. 굿맨은 세계제작의 방식으로 조합과 해체, 변형, 강조, 삭제와 보충, 그리고 배열의 5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여기서 삭제와 보충의 방식은 우리가 세계를 제작할 때 기존 관념이나 친숙함으로 인한 습관과 고착을 일으키고 이는 패션사진을 조합과 해체, 변형, 강조, 배열하는 과정에서 수용자 각각이 내포하는 이전 세계들로 인해 다른 방식들과 함께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이론적 고찰로 살펴본 5가지 방식을 근거로 패션사진에 접목시켜 조합과 해체, 변형, 강조, 그리고 배열의 4가지 방식으로 고찰할 것이다.
선행 이론 연구 및 사진 자료 조사를 위해 패션사진에서 세계제작 방식을 통한 의미 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의 패션잡지 중 Vogue, Numero, W지와 패션 브랜드 Lanvin의 카탈로그 패션사진들을 수집하여 그 특성을 굿맨의 세계제작 방식으로 선별한다.
Ⅱ. 이론적 고찰
1.넬슨 굿맨의 비실재론
굿맨의 비실재론은 기존의 실재론과 관념론을 벗어난 상대주의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Platon),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등에게 실재는 불생, 불멸, 불변하는 것으로, 우리의 감각이 아닌 이성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라 여겨졌다. 그들에게 있어 “진정한 존재는 이데아로서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3)이며 “감각 가능한 사물들은 모두 실재인 이데아를 모사, 분유한 것에 지나지 않는 현상들”4)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칸트(Kant I.)는 외부 세계가 인간 주관의 선천적인 인식의 형식들에 따라 구성되며,5) 그러한 입장에서 인식 대상들이 객관적 타당성을 지닌다고 본다.6)
3) I. M. Crombie, An Examination of Plato's Doctrines,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63), p. 250.
4) Platon, Platonis Operas (Phaidon), ed. Burnet, J., (Oxford: Clarendon Press, 1967), 101c 2-5.
5) 즉, 순수직관의 형식인 시간과 공간, 순수오성개념인 범주. I. Kant, 순수이성 비판 (Kritik der Reimen Vernunft), 최재희 역 (서울: 박영사, 2001), B 37-58, B102-116.
6) 칸트는 버클리의 관념론은 외적 대상이 허위적이거나 불가능하다는 독단적인 관념론이라 비판하고, 자신의 철학에서는 이러한 독단적 관념론의 기초를 선험적 감성론을 통해 제거하였다고 말한다. 즉, 칸트는 공간을 물자체에 귀속된 성질로 보지 않고, 선천적인 직관의 형식으로 규정해줌으로써 대상을 불가해한 것으로 격하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Ibid., B 274.
그러나 굿맨은 인간의 버전 구성이 인식 구성과 독립될 수 없는 버전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실재론과 상반되며, 실재가 관념이 아닌 언어나 이미지와 같은 보다 구체적이고 상징적인 기호로 이루어진 버전을 통해 구성된다고 주장함으로써 관념론과 상반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상징체계를 통해 구성되는 의미론적인 세계는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절대적 논리에 의해서가 아닌 사회 속에서 통용되는 상징적인 기호 체계를 통해 이전 버전에 의존하여 해석됨으로써 세계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는 칸트가 정신의 구조를 통해 대상과 세계의 구조를 규명했다면 굿맨은 상징체계의 구조를 통해 세계를 새롭게 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굿맨이 언급하는 버전은 언어, 수, 그림, 음향, 그리고 그 밖의 매체에서의 모든 상징들로 구성된 세계7)이다. 버전은 세계를 반영하고 표상하는데 여기서 표상은 처음부터 존재했거나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표상하는 사람의 믿음, 해석, 관습, 이론, 경험 등이 투영되어 기호로 재생산되는 다수적(多數的) 개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음악회나 미술전시회를 관람한 후 문을 나서고 맞이하는 세계는 우리가 그 문을 들어서기 전의 세계와는 다른 인식 기능에 참여하게 되는 세계이다. 다시 말해, 특정한 대상에 대해 이전에는 간과했던 청각적이거나 시각적인 감정과 정서를 감지하며, 예술의 이해로 들어 서는 것이다. 이렇게 정서와 인식은 상호 의존적으로서 이해 없는 감정은 맹목이며 감정 없는 이해는 공허하다.8)
7) N. Goodman, op. cit., p. 94.
8) N. Goodman, Of Mind and Other Matters, (Cambridge: Harvard Univ. Press, 1984), p. 8.
2.세계제작 방식
굿맨의 비실재론은 세계가 제작되는 방식을 5가지로 나누어 제시하는데, 사물을 조직하는 방식으로서의 조합과 해체(composition and decomposition), 기존의 것을 뛰어넘어 과장하고 왜곡시키는 변형(deformation), 맥락성에 따른 인식의 차이를 통한강조(weighting), 우리가 만드는 세계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배제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삭제와 보충(deletion and supplementation), 다양한 종류의 지각과 인식을 통해 적절히 분류하고 정돈하는 배열(ordering)로 분류할 수 있다.9)
9) N. Goodman, Ways of Worldmaking,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78), pp. 16-17.
1)조합과 해체
굿맨의 비실재론은 세계가 버전 독립적인 것이라는 이론을 거부한다. 버전 독립적인 세계의 부정은 어떤 버전을 기술되지도 묘사되지도 그리고 지각되지도 않은 세계와 비교함으로써 시험할 수 없는 것10)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기술-버전-을 벗어나서 ‘세계 그 자체’에 도달하는 방식이 주어져 있지 않음을 뜻한다.11) 즉, 우리가 세계에 관해서 말하는 모든 것은 이미 우리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계이며, 그것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버전일 뿐이다. 이에 대해 굿맨은 “세계는 우리가 모순되어 보이는 진술들의 의심스러운 특성을 평가하기만 하면 사라지며”12), 우리에게 기술되지 않는 버전 독립적인 세계는 접근할 수도, 탐구할 수도 없고, 기능하지 않는 “공허한”, “잃어버려도 좋은 세계”13)라고 언급하였다. 다시 말해서 굿맨의 ‘양파 껍질 벗기기’14)과 같이 중립적으로 기술된 버전은 우리에게 직접 주어질 수 없으며, 따라서 비교대상으로서의 원본 버전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10) Ibid., p. 4.
11) 노양진, “굿맨의 세계 만들기,” 哲學硏究 68권 (1998), pp. 149-150.
12) N. Goodman and Catherin Z. Elgin, “Interpretation and Identity: Can the Work Survive the World,” eds., N. Goodman and Catherin Z. Elgin, Reconceptions in Philosophy and Other Arts and Sciences, (London: Routledge, 1988), p. 49.
13) N. Goodman, Ways of Worldmaking, (Hackett Publishing Co., 1978), p. 6.
14) “양파를 끝까지 벗겨 보면 핵심은 공허한 어떤 것,” Ibid., p. 118.
이는 주어진 상징에 대한 의미읽기의 측면에서 본다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버전 독립적인 세계, 다시 말해서 하나의 방식으로 규정된 해석성의 부재를 의미한다. 지각될 수도 기술될 수도 없는 실체로서의 “고유세계(the World)”15)에 우리는 접근할 수 없으므로 세계에 대한 기술이 세계 자체와 비교되는 것은 물론 그것에 대한 객관성을 따지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대신 굿맨은 세계가 우리에게 어떠한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고, 우리 세계의 편의나 규약(convention) 상의 문제이며, 객관적인 사실에 관한 결정사항인 것은 아님16)을 강조하며, 많은 상이한 세계-버전들이 단일 기초로 환원되는 것에 대한 어떤 요구나 가정 없이 각기 독립된 관심사로서 중요함17)을 언급한다.
15) 사람들의 고유 음식인 어느 하나의 음식이란 없으며 마찬가지로 세계가 있는 고유 방식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세계를 기술하는 하나의 방식은 없다. N. Goodman, Problems and Projects, (The Bobbs-Merrill Co., Inc, 1972), p. 31.
16) N. Goodman, Ways of Worldmaking,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78), p. 119.
17) Ibid., pp. 4-5.
어떤 대상에 대한 기술은 그것에 대한 우리의 모든 지식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된 언어를 통해 구현된다. 따라서 이러한 기술은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 범주를 벗어나서는 불가능하다. 이는 대상에 대한 수용자의 해석성이 그 대상에 대한 ‘앎’과 그것을 기술하는 ‘선택된 어휘(vocabulary)’를 통해 각기 다르게 세계를 제작하는 것이다.18)
18) 황유경, “굿맨의 세계 제작과 진리 이론 소고,” 美學 12권 1호 (1987), pp. 168-169
우리는 특정 대상에 대한 지시(denote), 예시(exemplify), 지칭(reference) 등의 상징화 과정을 통해 세계제작에 참여한다. 예를 들어 에스키모인에게 ‘눈(snow)’은 사모아인이나 뉴잉글랜드인의 세계에서와 달리 다른 사물들의 합성물19)일 것이고, 물리학자들에게 책상은 분자들의 합성물이며, 애니메이터들에게 특정 씬(scene)은 수많은 정지된 이미지들의 합성물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계제작 방식에서의 조합과 해체는 부분으로부터 전체로 나아가는, 혹은 전체로부터 부분으로 분류되는, 구성과 분해의 작업이다. 즉, 세계는 사건들을 동일한 종으로 구성하거나 다른 종으로 분해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상이하게 제작되는 것이다.
19) N. Goodman, Ways of Worldmaking,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78), pp. 7-9.
2)변형
‘세계 그 자체’에 도달할 방식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버전 독립적인 세계의 부재를 의미한다. 기술되지 않고 묘사되지 않으며 지각되지 않은 독립된 세계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제작하고 제시하는 세계는 다른 언어나 기호 체계에 의해 알려진 세계에 의존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세계 제작은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다른 세계들로부터 시작되고 제작은 재(再)제작인 것이다.20) 칸트에게 개념 없는 직관이 눈먼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굿맨에게 버전을 구성하는 술어, 그림, 부호 등의 형식 없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21) 어떤 것에도 영향 받지 않은 순수한 눈은 결국 어떤 것도 보지 못하며, 버전 없이 형성된 세계는 가능하지도 인식되지도 못한다.
20) Ibid., p. 6.
21) 굿맨은 “술어, 그림, 부호, 도식은 적용 없이도 살아남지만 내용은 이 형식들이 없다면 사라지고 만다”고 말한다. Ibid., p. 6.
따라서 강조와 액센트, 술어, 그림, 부호와 이들의 강구점, 배열의 차이에 따라,22) “하나의 세계로 구축되는”23), 조직화의 차이에 따라 지극히 다양한 버전들이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24), “이미 제작되어 있는 세계들”로부터 다시 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대상은 수용자가 그것에 대한 지식, 경험, 습관, 그리고 역사성 등을 통한 자의적 해석에 따라 ‘이전에 만들어진’ 해석을 벗어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담지체로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22) Ibid., p. 14.
23) Ibid., p. 14.
24) Ibid., p. 42.
어떤 세계를 제작하는 것은 습관의 고착에 의해 이미 존재했던 세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새로운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결단과 기술을 통해 변형시키는 것이다. 굿맨은 세계의 발견이 다양한 버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세계는 발견되는 만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25) 따라서 세계제작 방식에서의 변형은 관찰되고 경험된 것을 새롭게 보충하여 과장하고 왜곡시킴으로써 수용자를 세계제작에 동참시킨다.
25) N. Goodman, Of Mind and Other Matter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 p . 22.
3)강조
세계제작에 있어 버전이란 항목들을 배열하고, 주어진 것들을 분류하고, 범주화하는 상징들의 네트워크이다. 범주의 다양화를 통해 버전은 사물들을 다양하게 형성한다. 우리는 필요나 목적에 따라 여러 상이한 버전들을 만들고 그것들만이 있는 것처럼, 혹은 그것들에 관련된 다수의 세계들과 더불어 살아간다. 굿맨에게 있어서 규약적 특성을 지닌 기호체계의 다양함과 가변성은 다양한 사회들 간에 상이한 전통, 문화, 습관에 따라 다르게 구성되는 세계 제작의 다수성과 진리의 상대성을 인식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26) 말하자면 “맥락(context)에 따라 단일주의자나 다수주의자, 니힐리스트(nihilist)”27)로 다르게 인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26) 황유경, op. cit., pp. 163-164.
27) N. Goodman, Of Mind and Other Matter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 p. 33.
선택된 버전의 옳고 그름은 버전 독립적 실재와의 비교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많은 인식 자원들 중에서 최선의 선택으로 설정된다. 따라서 선택된 인식 자원에 대해 옳은 것으로 간주된 버전은 어느 순간 그른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이때 이전에 만들어진 세계는 허물어지고 보다 옳다고 인식되는 새로운 버전에 의해 세계가 재구성된다. 여기서 옳은 버전은 실재와의 일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버전들과 다양한 인식 자원들, 버전 의존적 세계들, 버전이 쓰여지는 맥락과 담화를 고려한 결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세계구성시 버전 독립적 실재를 고려할 필요 없이 옳음(rightness)을 통해 버전을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세계에 대한 기술과 묘사는 수용자의 특정 관점에 따라 세계를 해석하고 규정하는 버전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이는 실재와 가장 근접하게 표상하는 사진조차도 사진작가의 관점에 따라 다른 구조를 갖는 버전을 형성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28) 이에 대해 굿맨은 표상 그 자체를 대상에 대한 모사(imitation)로 설명될 수 없다고 본다.29) 우리가 어떤 대상을 표상할 때 그것에 대한 지식과 정서적 인식을 통한 이해의 관점으로 대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는 곰브리치(E. H. Gombrich)가 언급한 대로 우리의 눈이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 요구와 편견에 의해 조절되어서 선택하고, 거부하고, 조직하며, 구별하고, 연합하고, 분류하며, 건설하는 것30)을 의미한다.
28) N. Goodman, “The Way the World Is,” Problems and Projects (Indianapolis, New York: Bobbs-Merrill Company, 1972), p. 25.
29) N. Goodman, Language of Art,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76), pp. 3-5.
30) Ibid., pp. 7-8.
따라서 우리의 지각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조건형성에 따라 해석하고 새롭게 구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수용자에 따라 제각기 상이하면서도 다양한 버전들을 구성한다. 따라서 동일한 대상일지라도 서로 다른 수용자가 어떤 면에 초점을 맞추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세계를 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대상을 재현하기 위해 하나의 그림은 그것을 나타내고, 지칭하고 지시하는 하나의 기호이다.31) 지시는 대상과의 유사성을 벗어나 해석자의 관점을 내포한 재현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인물에 대한 신체적 혹은 상징적인 모티브를 통해 제작하는 캐리커쳐나, 또은 유명인이나 정치인 등을 그들과 유사한 이미지로 표현하는 동물 그림을 통한 알레고리적인 것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그림도 술어와 마찬가지로 맥락성에 따라서 대상에 다르게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제작의 다수성은 하나의 대상에 대해 각각의 수용자가 가지는 상이한 인식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실현된다.
31) 굿맨에 있어 “지칭”(reference)은 매우 일반적이며 프리미티브한 용어로서 모든 종류들의 기호화를 포함하며 모든 경우들의 “나타냄”(stand for)을 포함한다. “지시”(denotation)는 “예시”(expression)과 더불어 지칭의 기본 하위 개념으로서 다소 보다 넓게 하나의 단어나 그림이나 그 밖의 부호를 사물에 적용시키기 위해 사용된다. 황유경, op. cit., pp. 177-178, 재인용, N. Goodman, Of Mind and Other Matter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 p. 55.
4)삭제와 보충
버전으로 구성된 세계는 우리에게 주어진 반영된 세계이기보다는 다양하게 범주화되고 조직화되어 구성된 세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굿맨은 세계에 대해 동등하게 참이면서 상충된 버전들이 존재하며, 버전들 사이의 이러한 불일치는 다원적인 세계를 인정하는데서 해소된다고 생각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세계는 맥락에 따라 여러 상충된 버전들을 통해 존재하며, 사회, 전통, 문화, 습관 등에 따른 규약적인 성격의 기호 체계가 지니는 다양성과 가변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굿맨에 따르면 이는 세계가 참이냐 옳음이냐의 문제가 결국 특정한 가설을 투사하고 고착화시키는 ‘습관(habit)’32), ‘고착(entrenchment)’33), ‘친숙함(familiarity)’34)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32) N. Goodman, Of Mind and Other Matter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 p. 38; N. Goodman, Language of Art,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76), p. 38; N. Goodman, Ways of Worldmaking,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78), p. 128.
33) N. Goodman, Of Mind and Other Matter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 p. 38.
34) Ibid., p. 127.
우리는 일상에서 기존의 습득된 관념이나 친숙함에 의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또한 우리가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목적에 방해되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배제함으로써 선택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이는 굿맨에게 있어서 옳은 재현이 “모사나 일루전(illusion), 정보에 의존되어 있지 않으며”35), “주어진 특정 시기에 하나의 문화나 사람에 대해 표준이 되는 재현 체계”36)에 의해 규정되는 친숙함이나 습관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제작할 세계에 부합하지 않는 조건들은 삭제하고 필요한 것을 취합함으로써 세계제작에 참여하는 것이다.
35) N. Goodman, Language of Art,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76), p. 38, 34-39 참고.
36) Ibid., p. 37.
5)배열
세계들이란 옳은 버전들의 세계이다. 세계의 다수성이란 다수의 버전들로 구성되어 수많은 방식들로 제작된 세계들을 말한다. 따라서 굿맨에게 있어서 세계제작은 옳은 버전을 통해서만 구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세계제작을 위해서 선택되는 옳음의 기준일 것이다. 굿맨은 이에 대해 ‘적합(fit)’37)의 문제, 가장 일반적으로는 ‘실제(practice)와의 적합의 문제’38)로 설명한다. 이는 우리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참되거나 옳은 버전들이 주어지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옳지만, 참이 거짓과 구별되지 않는다거나 기성 세계와의 대응으로서 참이나 옳음을 증명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37) N. Goodman, Ways of Worldmaking,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78), p. 110.
38) Ibid., p. 138.
어떠한 대상에 대한 상징은 그것의 직접적 지시(denotation)에 의해서만 지칭되는 것이 아니라, 예시나 은유 또는 표현-디자인, 그림, 어법, 리듬-의 옳음을 위한 대상과의 맞음, 즉, 적합(fit)을 통해 제시될 수 있다.39) 왜냐하면 기호는 언어이든지 아니든지 지시에 의해서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상징간의 동일하거나 상이한 지칭적 단계들로 구성되어 상징체계를 보다 농밀하게 다짐으로써 해석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굿맨은 ‘진술이 그것과 맞는 세계에 대해 참이고, 기술 또는 재현이 그것과 맞는 세계에 대해서 옳다면 기수적이고 표상적인 옳음의 개념을 진리에 포섭시키기 보다는 진리를 그것들과 함께 맞음의 옳음(rightness of fit)이라는 일반적 개념으로 포함시키는 것’40)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옳은 세계는 어떠한 도덕적인 잣대로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의 ‘관련성’, ‘효과’, ‘유용성’ 등으로 구성되는 것이다.41)
39) 노양진, op. cit., pp. 152-153.
40) Ibid., p. 132.
41) N. Goodman and Catherin Z. Elgin, op. cit., pp. 155-157.
이처럼 굿맨에게 옳음과 적합의 문제는 급진적으로 향하는 상대주의에 명백한 제약을 제시한다. 타당한 귀납 논증이면서도 참된 전제들로부터 거짓된 결론을 낳기도 한다는 논리로 인용되는 사례42)에서 보듯이 귀납의 타당성을 위해서는 문장들 사이의 형식적인 관계들 외에 “옳은 범주화”(right categorization)43)가 요청된다. 따라서 우리는 대상에 대한 다양한 종류의 지각과 인식으로 인한 배열을 통해 의미읽기를 시도한다. 예를 들어 색을 빛의 물리적 강도에 따라 배열하면 직선 형태의 명도 배열이 되고, 파장에 따라 배열하면 원 형태의 색상배열이 된다.44) 이와 마찬가지로 그림은 그것을 접하는 수용자의 시간적·공간적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재배열되어 상징적인 기호를 생산한다. 즉, 우리는 주어진 대상이나 사건들을 어떻게 지각하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옳음의 범주에서 그것들을 분류화하고 조직화하여 새롭게 배열함으로써 세계를 제작하는 것이다.
42) N. Goodman, Fact, Fiction, Forecast,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77), pp. 72-81.
43) N. Goodman, Ways of Worldmaking,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78), p. 127; N. Goodman, Of Mind and Other Matter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84), p. 37.
44) N. Goodman, Ways of Worldmaking, (Indianapolis: Hackett Publishing Co., 1978), p. 13.
Ⅲ. 현대 패션사진에 나타난 세계제작 방식
굿맨은 비실재론의 근거로 설명하는 세계제작 방식을 조합과 해체, 변형, 강조, 삭제와 보충, 그리고 배열의 5가지 방식으로 제시한다. 여기서 우리가 세계를 제작할 때 나타나는 삭제와 보충의 방식은 전술한 바와 같이 기존 관념이나 친숙함으로 인한 습관과 고착을 일으키고, 이는 현대 패션사진에서 수용자가 사진을 조합과 해체, 변형, 강조, 배열하는 과정에서 수용자 각각이 내포하는 이전 세계로 인해 다른 방식들과 함께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현대 패션사진에 나타나는 세계제작 방식을 조합과 해체, 강조, 변형 그리고 배열의 4가지 방식으로 분류하여 각각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1.조합과 해체
현대 패션사진에서 조합과 해체 방식을 통한 세계제작은 패션사진의 이미지 속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구성하고 분해하여 이루어진다. 한편으로는 전체를 부분으로 쪼개고, 종을 하위 종으로 분류하고, 복잡한 것을 요소로 분석하고, 구별하는 분해 작업과, 다른 한편으로는 부분으로부터 전체를 이끌어내고, 구성 요소와 하위 종으로부터 상위 종을 이끌어내는 조합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방식은 사진작가가 대상의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촬영하고, 수용자는 그러한 사진들을 접했을 때 사진 속 대상의 시간적 변화에 따른 움직임을 인식하여 사진 속 세계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림 1~3〉은 대상의 시간의 경과에 따른 동작이나 상태 변화를 연속적으로 촬영하여 보는 이로하여금 사진 속 세계를 인지하도록 유도한다.〈그림 1〉은 친구나 혹은 애인과 함께 재미난 표정 변화나 애정표현 동작을 마치 셀프 카메라를 찍듯이 연속적으로 촬영하여 파노라마 형식으로 나타내고 있다. 각각의 사진은 개별적으로 해체하였을 때 대상의 표정과 동작 상태를 포착하여 단편적인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한편, 연속된 사진으로 조합하였을 때에는 대상의 상태 변화에 따른 상황적 요소를 통해 세계제작이 이루어진다. 인물들의 동작 상태는 신체 이동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으며, 패션 소품을 활용하여 사진 속에서 작은 움직임을 보다 극대화시키고 있다. 프레임이 큰 짙은 색 선글래스를 착용하다가 벗는 행위, 인물의 얼굴이 점점 부각되면서 중절모 형태를 점점 드러내고 재킷의 코사지가 화면 아래쪽으로 이동되는 장면, 명도대비가 뚜렷한 스트라이프 무늬와 기하학적 무늬의 상의가 인물의 동작 상태에 따라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장면은 인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부각시키고 있다.〈그림 2〉는 두 사진을 조합하였을때 두 인물의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데, 검정색 의상을 착용한 인물은 다른 인물의 탈의한 상반신에 감겨있는 비닐랩의 한 자락을 잡고 있다. 착장한 인물은 탈의한 인물과 마찬가지로 동일 신체 부위인 자신의 팔에 비닐랩을 감고 있다. 두 인물 모두 짙은 메이크업에 짧은 헤어스타일로 성별을 모호하게 하는데, 이들에게 비닐랩은 그것의 본래 기능과 상관없는 신체 장식으로 기능하고 있다. 지저분한 벽돌 벽의 배경과 인물들의 기이한 행위는 착장한 인물의 현대적인 의상과 화려한 액세서리 장식이 무색할 만큼 원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그림 3〉은 제시된 사진을 조합하게 되면 한 여성이 그네에 타고 있는 여성을 밀어주는 연속적인 동작을 제시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두 인물이 보여주는 세계를 인지하도록 유발하고 있다. 두 인물이 착용한 플라워 패턴의 빈티지풍 원피스와 보닛은 전원 풍경을 유도한다. 그네를 밀어주며 함께 즐기는 사진 속 인물들의 모습은 흑백사진이 주는 정서적 효과를 통해 관찰자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끼고 전원 속에서 경험한 자신만의 추억을 통해 세계 제작에 동참하게 한다.
<그림 1> Steven Meisel, “So Young, So Cool”, Vogue Italia, 09. 11.
<그림 2> Steven Meisel, “ALL TOMORROW’S PARTIES”, Vogue Italia, 09. 06.
<그림 3> Steven Meisel, “Country Style”, Vogue Italia, 08. 02.
이와 같이 대상의 부분적인 동작 상태를 보여주는 여러 사진들의 연속적인 이미지들은 수용자에게 전체적인 사진 속의 세계를 재구성하게 한다. 이러한 단일 장면들의 조합은 다양한 이미지를 결합한 동작들로 연상되어진다. 여기서 수용자는 자신의 세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사진 장면을 스스로 배제하고 삭제하여 시간 경과에 따른 동작이나 상태 변화를 연속적으로 그려내며 사진 속 세계를 재구성한다.
2.변형
현대 패션사진에서 나타나는 세계제작의 변형 방식은 다시 제작(remaking) 혹은 변화다. 우리는 이미지를 담아낼 때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또는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위해 관찰된 것을 뛰어넘어 보충하고 과장하고 왜곡시키는 변형을 통해 훌륭히 세계제작에 참여한다. 이것이 패션사진이 기호를 통해 세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패션사진에 나타나는 세계제작 방식은 기술적 요소를 결합시켜 합성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림 4~8〉은 사진작가가 한 장 또는 두 장 이상의 사진에 기술적 요소를 도입하여 변형시켜 다면적인 시각성을 부여함으로써 관찰자의 의미작용을 유도한다.〈그림 4〉는 도발적인 포즈를 취하며 당당한 시선으로 관찰자를 응시하는 인물을 나타낸다. 인물의 모습을 180° 반전시켜서 얼굴을 보다 부각시킴으로써 표정에서 나타나는 강렬한 인상이 강조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주름지는 네크라인과 슬리브를 통해 그리스 인의 이오닉 키톤을 연상시키는 파스텔 톤의 드레스는 글레디에이터 샌들과 매치되었고, 빛의 노출을 극대화시킨 비현실적인 이미지 연출은 오로라와 같은 인위적인 효과를 통해 아우라를 내뿜는 강렬한 분위기를 표현하며, 신화 속에 등장하는 여신과 같은 환상 속의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기술적 효과를 통해 수용자는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환타지적 요소를 발견하게 되고, 이러한 기술적 요소는 관찰자의 개별적 접근방식을 통해 변형 의미작용을 불러일으킨다.〈그림 5〉는 사진 속 인물과 그림 배경을 합성하여 마치 실제의 인물처럼 그려진 그림 혹은 어색한 구조로 표현된 사진의 이중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배경에서의 기하학적인 패턴 그리고 붉은 색과 푸른색의 색상 대비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테이블처럼 긴장감을 유발하고, 테이블 위의 화분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다.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단정한 순백색의 드레스는 인물의 얼굴과 팔에 과장되게 묘사된 명암을 보다 강화시키며 사진이 마치 그림인 것처럼 관찰자에게 눈속임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의 사실적인 이미지와 회화의 추상적인 이미지를 혼용시킴으로써 수용자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요소를 변형시켜 세계를 제작하게 된다.〈그림 6〉은 깨어진 거울 속에 비친 인물의 모습을 나타낸다. 불에 검게 그을린 자국과 금이 간 거울은 갈색 톤으로 표현된 사진 분위기와 어우러져 수용자로 하여금 인물의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연상하게 한다. 거울의 깨어진 금으로 인해 인물의 부분적인 모습만 볼 수 있는 수용자는 갇힌 공간 속에서 고통으로 일그러진 인물의 표정을 통해 사진 속의 세계를 제작하게 된다. 또한 깨진 거울을 통해 해체된 대상의 이미지는 대상이 처해진 위험한 상황에 대한 수용자의 상상을 극대화시킴으로써 과장된 세계제작을 유도하고, 갈색 톤으로 변형된 사진 이미지는 상황적 요소를 뒷받침하는 장치로 작용하게 된다.〈그림 7〉은 자연과 어우러져 편안한 포즈를 취하는 인물을 나타낸다. 그러나 챙이 넓은 검정색 모자, 주름진 러플이 수없이 레이어드되어 인물의 머리와 목을 감싸고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스카프와 깔끔하게 재단된 베스트는 모두 인물에게 자연스럽게 조화되지 않는다. 또한 인물 뒤로 보이는 폭포는 인물에 비해 지나치게 작고 그 절벽을 등 뒤로 기대며 누워있는 인물이 지나치게 크게 보이는 구도는 인물의 목을 감싸는 장식만큼이나 과도하고 어색해 보인다. 마치 사진속 인물에 의해 제작된 인공물처럼 한없이 작아 보이는 폭포는 인물 주위를 둘러싼 안개로 인해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인물에게 유일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물과 폭포의 이미지로 표현되어 안락함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답하는 듯하다.〈그림 8〉은 사진 속 인물과 보이지 않는 대상의 그림자를 결합함으로써 상징적 요소를 이용한 세계제작 방식을 보여준다. 순백의 드레스를 착용하고 있는 인물 앞에 탐욕스런 이빨을 드러내는 짐승의 그림자는 인물을 위태로워 보이게 하고, 인물의 등 뒤로 오버랩 되는 검은 박쥐의 날개는 순백의 고결한 인물의 겉모습 뒤에 숨겨진 악의 근원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높은 직사각형의 단상 위로 축 늘어진 채 누워있는 인물의 모습은 사진 속의 타이포그래피와 어우러져 수용자로 하여금 인물의 공간적 위치를 감지하게 하고 있다. 흑백의 사진구조는 인물과 그림자의 이미지를 보다 강하게 대비시켜서 수용자가 사진 속 이미지에 보다 강하게 몰입하게 하는 효과를 부여함으로써 관찰자가 새롭게 세계제작에 참여하게 한다.
<그림 4> Steven Meisel, Vogue Italia, 09. 04.
<그림 5> Steven Meisel, “poetic”, Vogue Italia, 06. 06.
<그림 6> Michael Thompson, numero, 09. 01.
<그림 7> Michael Thompson, W, “heatstroke”, 05. 05.
<그림 8> Michael Thompson, W, “Zone”, 06. 03.
이와 같이 수용자는 변형된 이미지를 통해서 습관의 고착에 의해 이미 존재하는 세계를 다시 제작하고 또 새롭게 변화시킨다. 작가는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위한 결단과 기술적 요소를 사진에 도입함으로써 관찰자로 하여금 다양한 세계제작으로 유도한다.
3.강조
현대 패션사진은 강조의 방식을 통한 세계제작으로 동일한 대상에 대한 이미지에서 그것을 선택하는 이가 무엇을 강조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의 이미지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작가는 대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선택하여 이를 수용자가 보다 잘 인식할 수 있도록 담아내고 수용자는 이를 자신이 인지하는 지식적, 경험적, 사회적, 문화적 체계 등을 통해 선별적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어떻게 이미지를 보는지에 대한 우리의 요구와 편견이 개입되어 이루어지므로 주어진 상황과 배경에 따라 맥락적으로 작용함으로써 다양한 세계를 제작하게 된다. 따라서 이미지를 접하는 수용자 간의 그러한 의미읽기의 차이는 주어진 대상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 각자가 세계를 만드는 방식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림 9~13〉은 특정한 사건에 대한 사진작가의 선택과 배제에 따라 서로 다른 강조의 방식을 나타내며, 이를 통해 수용자가 다양한 세계제작에 동참하도록 한다.〈그림 9〉는 영화의 한 장면과 유사한, 마치 두 인물이 무엇인가를 피하기 위해 상체를 뒤로 젖히는 동작을 보여주는데, 주변의 물체는 흩날리듯 공중에 위치하고 있다. 긴박한 상황에 따른 대상의 동작을 순간 포착함으로써 사진 속에서 인물을 강조하는데, 이는 신체에 밀착되는 짧은 미니드레스와 높은 하이힐을 신고 파티장으로 향할 것같은 인물들의 의상과 달리 긴박하고 액티브한 운동감을 요구하는 인물들의 상황적 부조화를 극대화한다. 네크라인과 슬리브를 감싸는 플라운스는 인물의 동작 상태에 따라 운동감을 강조시키고 있다. 또한 흑백의 상반되는 의복 색상, 벽면과 바닥이 보여주는 흰색과 갈색의 색상대비는 사선으로 구분지어 나타내는 공간구도와 함께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발시킨다.〈그림 10〉은 네 명의 인물들이 둘러 모여 손을 맞잡고 빙빙 도는 모습을 나타내는데, 이들을 지켜보는 다른 두 인물들은 의자에 앉아 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동적인 장면을 나타내는 인물들을 향해 문이 활짝 열려 있고, 그 문 뒤에 정적인 인물들이 자리 잡아 이들을 바라본다. 서로 손을 맞잡은 인물들이 보여주는 동작의 순간성은 의자에 앉아있는 인물들의 정적인 상황과 함께 사진의 좌우로 대조되는 상태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동적인 인물들을 향해 열린 문과 정적인 인물들 뒤로 검은 그림자로 닫힌 문의 창살을 대조시킴으로써 인물들의 운동감을 강조한다. 여기서 사진작가는 이들의 모습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구도를 취하며 인물들을 지켜보는 제 3의 시선을 암시함으로써 이미지에 대한 세계제작을 일으킨다.〈그림 11〉은 퍼(fur)로 장식된 검정색 의상에 붉은 색 머리 그리고 화려한 골드 색상의 구두를 착용한 인물이 사진 속에서 강하게 시선을 끌고 있다. 주변의 다른 인물들은 머리부터 다리까지 온 몸을 순백의 의상으로 감싸고 물속으로 뛰어들고 있다. 인물들 주위에는 산소마스크와 산소통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물속에 몸을 반쯤 담근 가운데의 인물은 바닥에 있는 산소마스크를 움켜쥐고 있다. 인간의 모태인 어머니의 자궁 속을 암시하는 물속을 향해 뛰어드는 인물들과 인간 생존의 필수불가결한 산소를 공급하는 산소통과 산소마스크, 그리고 그런 그들을 등 뒤로 외면한 채 편히 앉아 있는 화려한 의상의 인물 구도는 동적인 인물들과 정적인 인물의 대조적인 상태와 착용한 의복에 따른 색상 대조를 통해 관찰자의 다양하고 상이한 의미작용을 일으킨다.〈그림 12〉는 고결한 성녀를 연상시키는 순백 의상의 인물들과 나체를 한 채로 그들을 바라보는 인물의 모습이다. 순백의상의 인물이 들고 있는 장난감을 향해 나체의 인물이 손을 뻗은 채 바라보고, 그들 뒤로 또 다른 순백 의상의 인물이 나체 인물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도덕적인 관념으로 보자면, 나체의 여성은 수치심을 유발하는 비이성적인 모습으로 보이고 순백 의상의 여성은 나체의 인물을 보살피는 성녀로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순백 의상의 인물들의 시선, 그 인물에게서 무엇인가를 애타게 갈구하듯 바라보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손을 내뻗는 인물, 그리고 그 뒤에서 나체 인물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는 순백 의상의 인물의 구도에서는 순백 의상의 거짓된 성녀 이미지에 가려진 어떠한 폭력성마저 느껴지게 한다. 이는 이미지가 표현하는 내러티브적 요소를 통해 대조적인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그림 13〉은 인물들의 활기찬 율동감을 담아내고 있다. 인물들의 움직임에 따른 의상의 주름짐과 머리카락의 상태는 열정적인 동작을 인식하게 한다. 흰색 배경과 대조되는 강한 원색의 의상들은 수용자로 하여금 인물들의 움직임을 보다 격렬하게 인지하게 하며 대상을 강조하고 있다.
<그림 9> Steven Meisel, “Fast-forward campaign for Lanvin S/S 2010”
<그림 10> Steven Meisel, “Country Style”, Vogue Italia, 08. 02.
<그림 11> Steven Meisel, “Air Supply”, Vogue Italia, 09. 11.
<그림 12> Steven Meisel, “Country Style”, Vogue Italia, 08. 02.
<그림 13> Steven Meisel, Vogue Italia, 09. 03.
이와 같이 수용자는 하나의 대상에 대한 이미지나 사건을 나타내는 한 장면을 접했을 때 그것을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습관, 경험, 믿음, 문화, 그리고 이론적 체계에 따라 다양하고 상이하게 의미읽기를 시도하게 된다. 이는 수용자가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는 관점에 따라, 그것을 접하고 경험하는 맥락성에 따라 또다시 새롭고 개별적으로 세계제작을 하는 것이다.
4.배열
패션사진에서 배열의 방식을 통한 세계제작은 다양한 종류의 배열이 수용자 개개인의 지각과 인식을 근거로 적절하게 분류되고 정돈되며 해석되어 이루어진다. 따라서 배열을 통한 수용자의 세계제작 방식에서 하나의 방식, 유일한 배열, 유일한 측정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수용자는 일관된 주제성을 가지고 제시된 여러 사진들을 각각의 지각과 인식을 통해 ‘옳은 범주화’를 시도하며 시간적·공간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재배열한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사건의 장면들을 분류화하고 조직화하여 여러 방식으로 배열함으로써 세계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림 14, 15〉는 동일한 주제성을 가지고 각기 다른 장면들을 나타냄으로써 관찰자로 하여금 이미지들의 배열을 통한 세계제작을 일으킨다. 다음의 패션사진들은 연구자의 자의적인 배열로 제시되었다. 따라서 수용자의 각기 다른 조건화에 따라 상이한 배열이 이루어짐으로써 서로 다른 의미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다양한 세계제작이 가능하다.〈그림 14〉는 파티에 초대받은 인물들이 같은 공간에서 취하는 각기 다른 모습들을 나타내고 있다. 사물들은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고 테이블 위로 쓰러지거나 바닥에 흩어져 누워있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이성적인 태도와 고상함은 찾아볼 수 없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 톤의 분위기에 흰색, 검정색, 붉은색, 노란색의 원색적인 색상대비는 관찰자를 불편하게 한다. 무기력한 표정과 태도, 테이블 위로 올라가 누워 있거나 발을 올려놓는 인물, 의자를 베개 삼아 바닥에 엎드린 인물들의 태도에서 파티는 그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서로 각기 다른 것들에만 몰두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그들의 화려한 겉치장 뒤에 숨겨진 군중 속의 외로움과 고뇌를 보여주는 듯하다. 여기서〈그림 14〉를 다음의 번호 순으로 배열하여 의미작용한다면, 사교를 위해 모인 인물들이 서로 존중하고 화합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모임의 취지를 무시하고 과도하게 흐트러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어낼 수 있다. 이는 ⓺번 사진에서 모임이 끝난 후 주선자가 홀로 남아 있고, 검정색 수트를 착용한 인물이 정리를 위해 막 들어서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그림 14〉를 다음의 번호 순으로 배열하여 의미작용한다면, 모임을 위해 일찌감치 도착했지만 아무도 도착하지 않아서 홀로 기다리던 중 일행 한 명이 막 도착하는 것으로 읽어낼 수 있다. 다른 일행을 기다리다가 모임의 분위기는 계속해서 지루해지고 뒤늦게 식사를 시작하지만 이미 분위기를 망친 모임은 다시는 참석하고 싶지 않는 저급한 행태로 변질된다. 사진에서 보여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인물을 표현하는 의복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남성성을 나타내는 턱시도를 착용한 인물은 ⓹번에서 다른 여성과 스킨쉽을 나타내지만 짙은 메이크업과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보여지는 매니큐어, 완전히 밀착하여 빗어 넘긴 머리카락으로 여성성을 드러냄으로써 성의 구별을 모호하게 한다.〈그림 15〉는 장례식으로 보이는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인물들이 슬픔으로 몸을 가누지 못한채 집단적으로 묘를 부여잡고 엎드려 있거나, 다른 인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누워서 묘비에 매달리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슬픔과 처절함보다는 과장됨마저 느껴진다. 여기서〈그림 15〉를 다음의 번호 순으로 배열하여 의미작용한다면, 지인을 떠나 보내는 장례식 날 인물들은 묘지로 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부축을 받으며 묘지에 도착하고 장례를 마쳤지만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다가 때마침 비가 내리고 결국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뜬다. 한편〈그림 15〉를 다음의 번호 순으로 배열하여 의미작용한다면, 슬픔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부축을 받으며 한 여성이 도착하고 지인들이 하나 둘 도착하며 슬퍼한다. 시간이지나 참석한 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도 여성은 자리를 떠나지 않으려 한다. 남은 이들이 모두 떠난뒤 여성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리무진을 타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냉담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흑백 사진의 명암 대비 요소를 통해 인물들의 검정색 상복이 더욱 두드러지고, 각각의 사진 속에 담긴 인물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통한 극적인 장면들은〈그림 15〉의 윗줄 맨 왼쪽 사진에서 고조화되고 있다. 무덤 위에 엎드린 인물 옆에 한 인물이 무덤을 머리맡에 베고 누워 있다. 얼굴에 검정색 베일을 쓰고 눈을 감은 채 가슴 위로 가지런히 모은 두 손에는 조화가 쥐어져 있다. 죽은 이를 연상시키는 이 인물의 모습은 무덤 위에 엎드린 인물들과 대조되어 산 자와 죽은 자를 모호하게 하여 관찰자로 하여금 의구심이 들게 함으로써 서로 다른 세계제작에 참여하게 한다.
<그림 14> Miles Aldridge, “Close-up”, Vogue, 2010. 03.
<그림 15> Steven Meisel, “Silence”, Vogue, 08. 08.
이와 같이 수용자는 다양한 위치와 관점에서 대상을 나타내는 패션사진들을 접했을 때 서로 다른 지각과 인식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배열한다. 이러한 방식은 특정한 규범이나 논리로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수용자가 각기 다르게 해석하는 방식으로서 세계제작을 일으키는 것이다. 또한 이는 개인이 가지는 옳음의 기준으로 고려되어 대상과의 효과와 유용성을 보다 극대화하여 의미 작용한다.
본 연구는 이상과 같이 현대 패션사진에 나타나는 세계제작 방식을 조합과 해체, 변형, 강조 그리고 배열의 4가지 방식으로 고찰하였다. 각각의 사진들에 대한 본 연구자의 의미 읽기는 자의적인 것이고, 또한 사진들을 접하는 개개인의 수용자들은 각기 다른 의미작용이 가능하다. 이는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인한 해석성이 이미지를 접하는 수용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용자가 지니는 일련의 조건 형성에 따른 관점에 따라 보다 폭넓은 해석이 가능함으로써 세계제작에 동참하는 것이다.
Ⅳ. 결 론
오늘날의 현대 패션사진은 과거의 대상 재현이나 단순한 상업적 수단으로서가 아닌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수행하는 소통의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패션사진의 이미지로 수용자가 구성하는 세계가 개개인의 관점을 통해 버전 의존적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식은 관찰자의 해석적 층위가 각기 다르게 구성되어 다양한 버전이 제작됨으로써 세계제작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따라서 맥락적인 해석성이 가능한 패션사진은 이제 더 이상 고정적이고 작가주의적인 해석이 아닌 무한한 의미읽기가 가능한 담지체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본 연구자는 현대 패션사진을 통해 생산되는 세계가 이미지의 외면적 표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들이 구성하는 다양한 세계의 측면으로 인지하여 이를 넬슨 굿맨의 비실재론이 언급하는 세계제작 방식을 통해 조명하고자 하였다.
굿맨은 논리 실증주의의 유일하고 객관적인 세계에 대한 절대적 진리의 추구를 거부하고, ‘우리가 만드는 다수의 세계’라는 생각을 통해 다원주의적 세계관을 제시한다. 이와 같은 세계관은 우리가 세계를 제작하는 5가지 방식을 통해 구성되는데, 첫째, 특정한 사건들을 동일하게 구성하거나 서로 다르게 분해하는 방식을 통한 조합과 해체, 둘째, 수용자가 관찰하고 경험하는 것들을 새롭게 과장·왜곡시킴으로써 이미 존재하던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식인 변형, 셋째, 하나의 사건이나 대상에 대해 수용자가 가지는 인식의 차이를 통해 서로 다르게 특징짓는 강조, 넷째, 대상을 접할 때 수용자가 지니는 습관의 고착이나 친숙함으로 인해 그것에 대한 상징이 선택되고 배제됨으로써 선별적으로 이루어지는 삭제와 보충,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용자가 접하는 대상을 맥락적인 일련의 조건화에 따라 인식하고 우리가 구분 짓는 옳음의 범주로서 분류․조직함으로써 배열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고찰된 굿맨의 세계제작 방식을 현대 패션사진에서 나타나는 세계제작 방식으로 접목시켜 연구한 결과, 본 연구자는 삭제와 보충의 방식이 대상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수용자가 지니는 이전 세계에 대한 친숙함으로 인해 다른 방식과 함께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현대 패션사진에서 나타나는 세계제작 방식을 조합과 해체, 변형, 강조, 그리고 배열의 4가지 방식으로 분류하였다.
첫째, 조합과 해체의 방식은 인물이나 대상이 시간적 경과에 따른 움직임이나 상태 변화를 나타낼 때 각각의 사진들을 구성하고 분해함으로써 의미작용을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둘째, 변형의 방식은 사진에 기술적 요소를 도입하여 변형시킴으로써 다면적 시각성을 통한 의미읽기를 나타낸다. 셋째, 강조의 방식은 작가가 대상이나 사건의 특정한 장면을 선택과 배제를 통해 강조하고, 이를 접하는 수용자의 일련화된 조건 형성에 따라 선별적으로 해석되는 것으로 나타낸다. 넷째, 배열의 방식은 수용자가 시도하는 옳음의 범주화를 통해 사진을 다양하게 배열하여 해석함으로써 세계제작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한 패션사진에서의 실증적 고찰은 수용자 개개인의 맥락적인 지각과 인식을 통해 다양하고 폭넓은 패션사진의 의미읽기가 가능함으로써 그에 따른 세계제작 또한 개개인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성을 이루는 것으로 고찰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흐름 속에 위치한 현대 사회는 포화된 이미지 속에서 단일하고 고정적인 해석이 아닌 다원적이고 맥락적인 해석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굿맨이 제시하는 단일한 기준의 부재는 진리 개념의 포기가 아닌 보다 건설적인 철학적 논의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세계제작 방식을 통한 패션사진의 해석 또한 고정된 이미지에 대한 살아있는 해석성의 부여로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 수용자들은 우리가 접근한 세계가 날 것 그대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버전 구성을 통해 해석하고 창조하는 ‘세계제작’에 동참하는 것으로써 우리가 직면한 세계에 대한 보다 넓은 이해와 해석에 도달하는데 기여할 것이라 사료된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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