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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6-0401(Print)
ISSN : 2383-6334(Online)
The Research Journal of the Costume Culture Vol.19 No.1 pp.128-149
DOI :

이탈리아와 러시아 전위(Avant-Garde) 예술의상 디자인 연구
- 미래주의(Futurism)와 구성주의(Constructivism)를 중심으로 -

박윤정
숙명여자대학교 의류학과

A Study on the Costume Designs of Arts in the Italian & Russian Avant-Garde - Focused on Futurism and Constructivism -

Yoon Jeong Park
Dept. of Clothing and Textiles, Sookmyung Women's University

Abstract

This study dealing with the Italian futurist and Russian constructivist costume designs which aimed for new fashion design freed from the conventional meanings of fashion and explore the artistic purpose reflected within the designs expressed differently according to cultural and regional differences in order examine the early 20th century Avant-grade costume designs. The scope of this study is limited to the 1910s to the 1930s when the Italian futurism and the Russian constructivism were originated and were most active. This monograph focused on the works of the Italian futurists, Giacomo Balla who declared the ‘Manifesto delle moda minile futurista’, Fortunato Depero, and Thayaht who suggested a new direction for the futurist, and on the works of the Russian constructivists Alexander Rodchenko, Varvara Stepanova and Liubov Popova. As an one method of investigated, this paper is used materials of various sources to examine their features. Futurists costume designs expressed a radical conception of progress and their source of aesthetics was dynamism. The concept of 'power' which was the basis of the futurists was incorporated in the costumes while non-symmetrical cut-outs and bright and vivid colors completed the futurist costume designs. Moreover the Russian constructivists brought advances in the field of fabric and textile designs. What was particularly interesting about the Russian constructivist costumes was that the artists worked at the textile mills themselves, directly involved in the designs and manufacturing of fabric, developing an advancement in textile and a new understanding of costume. Furthermore, many Russian artists settled in Paris, actively participating in the fashion industry, and therefore, they have greatly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the early 20th century Avant-garde costume designs.

01(11)_논문 11.pdf1.61MB

Ⅰ. 서 론

“바우하우스 운동의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미래주의와 러시아 구성주의 예술가들은 의복에 대한 새로운 디자인 아이디어들을 창조해 내고 있다. 그들의 접근방식은 매우 급진적이며, 새로운 세대들을 위한 혁신적인 디자인들은 미래의 의상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1)라고 밝히면서, 프랑수아 셰르(François Scheer)는 20세기 초전위 예술 의상(Avant-garde clothing)의 출현을 공고히 하였다. 

1) Gerda Buxbaum, The 20th Century Icons of Fashion, (London: Prestel, 1999), p. 4. 

20세기 초 이탈리아 미래주의와 러시아 구성주의는 유럽의 예술 역사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한 아방가르드 물결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미래주의는 서 유럽을 중심으로 기존의 관습과 전통에서 벗어난 안티 패션디자인(Anti-Fashion Design)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러시아 구성주의는 동 유럽을 중심으로 이탈리아의 미래주의에 반대되는 디자인(Counter Design)을 전개하고 있었다. 결국 이 두 예술 사조들의 특징을 반영한 전위 예술 의상 디자인은 서로 경쟁이 아닌 경쟁 관계에 놓여졌고, 마침내 1925년 파리 ‘국제 장식 미술 산업 박람회’에서 미래주의 예술가들과 구성주의 예술가들은 ‘전위’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혁신적 실험 예술 의상 디자인들을 대중에게 알리게 된다. 당시 예술가들의 주요 관심사는 예술과 산업 사이에서 새로운 예술 의지를 가지고 개혁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기존의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것이 전위 예술가들의 목표였으며, 특히 개혁 의지가 뚜렷하였던 미래주의자들과 구성주의 자들은 순수한 예술의 한계를 뛰어 넘어 실제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특권적인 분야로 의상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양식적인 면에서는 그들만의 전위 예술을 주장하였으며, 의상 분야에서도 공식적인 유행 의상과는 일치하지 않는 반 유행적 경향을 따르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미래주의 예술의상은 새로운 진보의 개념을 의상에 표현하였으며, 그들의 궁극적인 미의 근원은 역동성(Dynamism)으로 미래주의자들의 기반인 힘에 관한 개념을 의복에 도입하여, 비대칭적 재단이나 밝고 강렬한 색상 등을 이용한 미래주의 예술의상 디자인을 완성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구성주의 예술가들의 의상디자인들은 텍스타일 디자인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러시아 전위 예술 의상 디자인의 특징은 구성주의자들이 섬유공장에서 직접 작업 공정에 참여함으로써 텍스타일의 발전과 의복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러시아 예술가들이 파리에 정착하여 패션 산업에 참여함으로써, 20세기 초 전위 예술 의상디자인의 발전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기존의 고전적인 의미의 패션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의상 디자인을 추구하고자 하였던, 이탈리아 미래주의(Futurism) 예술의상 디자인과 러시아 구성주의(Constructivism) 예술의상 디자인을 연구하여 문화와 지역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 이들의 예술적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20세기 초 전위 예술의상 디자인의 특징을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탈리아 미래주의와 러시아 구성주의가 시작되고 가장 활발히 진행되었던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범위를 한정시켜 고찰하고자 한다. 특히 미래주의 복식 선언문을 발표한 발라(Giacomo Balla)와 데페로(Fortunato Depero) 그리고 이탈리아 미래주의의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한 타이야트(Thayaht)뿐만 아니라 러시아 구성주의 예술의상을 발전시킨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 스테파노바(Varvara Stepanova) 그리고 포포바(Liubov Popova) 등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를 위하여 각종 문헌들을 이용하여 그 특징들을 고찰하였다. 

Ⅱ. 이탈리아와 러시아 전위(Avant-Garde)예술

20세기 초 구성주의(Constructivism)를 중심으로한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은 서구의 입체주의(Cubism)나 미래주의(Futurism)와 함께 정신적 연대감을 이루어 나갔다2). 이것은 당시까지 미술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파리나 베를린 등 서방세계와의 빈번한 교류와 함께, 전위예술 운동에 참여한 많은 작가들이 공통된 미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또, 산업 사회로 변화하려는 러시아 혁명 전후의 분위기는 미술 자체가 산업 현장과 정신적 연대감을 직결시킬 수 있는 운동으로 나타났으며, 프랑스의 입체주의, 이탈리아의 미래주의와 더불어 미술의 고전적 틀을 넘어 실험적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특히 러시아 전위 예술은 문화와 예술 전 장르를 통해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었다는 운동의 개념이 강하게 나타나, 오히려 실험적 태도보다 그 파급효과가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전위예술’이라는 의미는 모더니즘 이전의 고전적 형식의 의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의 추구를 의미한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원래 ‘전위(Vangaurd)’3)란 말로 지적, 기술적, 예술적 영역에 있어서의 혁신적이고 극단적이며 실험적인 집단이나 운동 또는 대담하게 자신의 현재를 앞서 가는 집단4)을 의미하는 공간적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5). 전쟁 용어로서 그 기원은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르네상스 시대부터 비로소 그 비유적인 의미를 갖추게 된다6). 아방가르드는 1920년대에 이르면서 과거의 거부와 새로움의 숭배를 미학적인 강령으로 규정하는 모든 새로운 유파를 지칭하는 포괄적인 하나의 예술적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7). 이러한 특징은 이탈리아 미래주의의 탄생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탈리아 미래주의가 근대 디자인 이론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것은 그 형태나 기술상의 방법들보다도 먼저 이념적인 성질이며, 정신적인 태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8). 미래주의 운동은 적대적인 비평가에 의해 이름이 붙여진 야수파나 입체파와 달리 스스로 그 자신의 명칭을 선택했으며, 문학적 형태로 자신의 이론적 근거를 밝힌 최초의 운동이었다9,10). 뿐만 아니라 미래주의라는 명칭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러시아 혁명 직후 러시아의 좌파 예술가들을 부르는 명칭으로 ‘미래주의 예술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아방가르드 예술을 모두 포괄하는 매우 느슨한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이탈리아 미래주의와는 구별되는 것이다11)

2) Camilla Gray, The Russian Experiment in Art 1863-1922, Revised and Enlarged by Marian Burleigh-Motley, (London: Thames & Hudson, 2000), p. 44.
3) The Encyclopedia Americana, Vol. 2. (USA: Grolier Inc., 1991), p. 854.
4) Grand Dictionaire Encyclopedique Larousse, Vol. 1. (Paris: Librairie Larousse, 1982), p. 889.
5) 노정심, “아방가르드 패션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4), p. 7.
6) Calinescu Matei, Five Faces of Modernity: Modernism, Avant-Garde, Kitsch, Decadence, Post Modernism, (Durhan, N.C: Duck University Press, 1987), p. 127.
7) Ibid., p. 148.
8) Reyner Banbam, Theory and Design in the First Machine Age, (Massachusetts: MIT Press, 1980), p. 136.
9) Norbert Lynton, The Story of Modern Art, (Oxford: Phaidon Press, 1994), p. 97.
10) 미래주의(Futurism)라는 그룹의 명칭은 미래주의의 창시자인 마리네티(F. T. Marinnetti)에 의해 명명된 것인데, 이것은 그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던 Dynamism, Electricity, Futurism 가운데 채택된 것이다.
11) 박윤정, “러시아 구성주의(Constructivism) 예술의상 연구,” 복식문화연구 18권 3호 (2010). p. 551. 

1.이탈리아 미래주의(ItalianFuturism)

1)이탈리아 미래주의의 전개

1860년 전까지도 이탈리아에서는 산업혁명이 시작되지 않았다. 국내에는 자연자원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고, 기술인력 또한 부족했다. 화폐도 각 도시마다 달랐다. 이러한 불균형은 모든 공업시설이 밀라노와 토리노를 포함한 북부 이탈리아에서만 산업화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사회구조의 변화는 다음과 같은 현상을 가져왔다12). 첫째, 당시 귀족과 지식 계층의 사회적 기반을 철저히 변화시키게 되었다. 둘째, 기술을 도구로 하여 모든 사회구조를 파괴하려는 경향이 대두되었다. 셋째,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도시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당시 이탈리아 사회는 국가통일과 산업혁명이라는 사회구조의 전환으로 인해 상당한 갈등과 혼란이 뒤따랐으며, 결국 19세기 부흥 운동인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운동13)은 실패하게 되었고, 젊은 청년들은 새로운 이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들은 유럽의 선진국에 비해 이탈리아의 낙후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위치를 파악하여 새로운 이념에 의한 이탈리아의 영광을 재건시키려 하였다14). 르네상스 이후 침체되어 있었던 이탈리아의 미술을 부흥시키고자 하였던 당시 예술가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표현 방법을 부정하고 현대 산업사회에 부응한 새로운 미의 출현을 예고하는 미술운동으로, 이탈리아 최초의 전위예술 양식인 미래주의(Futurism)를 탄생시키게 된다. 조형적 이념으로는 기계의 미를 찬양하고 기계문명에서 오는 다이나미즘을 화면에 도입하여 이탈리아 예술계에 진취적인 미래의 미학을 제시하였다. 

12) 정인하, “전환기에 있어서 건축과 사회 이념간의 상호관계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7), pp. 26-27.
13)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이탈리아 국민들 사이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여 일어난 운동으로, 쥬세페 마찌니(Guiseppe Mazzini)가 리소르지멘토의 지도자로 나서게 되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14) 이러한 난국은 결국 파시즘의 대두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고, 드디어 뭇솔리니가 등장하게 되었다. 

미래주의의 새로운 이념적 방향은 마리네티(Fillippo Tommaso Marinetti)에 의해 시작되었다. 1909년 2월 20일 파리 일간지〈르 피가로(Le Figaro)〉에 ‘미래주의 선언’이라는 글을 실었다(그림 1). 이 선언에서 미래주의 미술운동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새로운 예술의 탄생을 전 유럽에 선포하게 되었다15). 선언문은 모두 11개의 문장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장은 위험, 에너지, 대담함 등을 찬미하고 있으며, 세 번째 문장은 휴식, 황홀함 그리고 꿈을 고무시키는 문학과 대비시켜서 운동과 활동을 추구하는 미래주의의 열정을 언급하고 있다. 네 번째 문장부터는 고요한 고전적 휴식의 명상보다는 시끄럽게 움직이는 다이나믹한 광경을 찬미하고, 자동차 운전의 역동적 경험과 속도를 찬양하고, 사회의 청소부로서 전쟁을 찬양하고 있다16). 열 번째 문장에서는 여성의 참정권을 통한 여권 신장론이나 자유의회주의와 기회주의, 공리주의 부분이 후에 추가되었다. 열한 번째 문장에서는 도시적이고 기계화된 미래주의의 생활환경을 신비화하고 있다. 여기서 기계주의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당시 유럽의 독일 작가들에 의해 표현된 공학적이고 정적인 측면과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17). 이러한 선언문을 통해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과거의 전통에 대한 부정적 시각들을 드러내고 있으며, 젊음, 기계, 운동 그리고 속도를 찬양하면서 조형적 다이나미즘을 강조하고 있다. 미래주의는 전통과 기술에 대한 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제정 말기 러시아의 전위 예술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또 기계와 스피드에 대한 현대인들의 감수성을 개발하는데 전진적인 역할을 하였다18)

<그림 1> Le Figaro: Futurism, 1909.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15) 박윤정, “복식에 표현된 미래주의 양식과 그 변화에 관한 연구,” 복식문화연구 6권 4호, (1998). p. 690.
16) 이것 때문에 후에 비평가들은 결코 미래주의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부 아드리아 지방의 이탈리아 주민들은 당시에 외국인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국가 통일 운동은 많은 이탈리아 애국자들에게는 그 당시에 아직도 진행 중이던 전쟁의 상태에 머물렀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미래주의 사상 중에 이러한 경향은 제 1차 세계대전의 개입 요구에 이르렀으며, 1918년 이후의 파시스트 등장에 대한 미래주의 참여로 유도하였다. 이용재, “이탈리아 미래주의가 현대 건축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3), p. 17에서 인용
17) Herschel Chipp, Theories of Modern Art, (California Berkeley: California University Press, 1984), pp. 292-293.
18) Umbro Apollonio, Futurist Manifestos, (London: Thames & Hudson, 1973), p. 51. 

2)이탈리아 미래주의 예술운동의 특징

미래주의가 지향하는 미학은 정치적으로 전쟁을 찬양하고, 사상적으로는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생의 약동’, ‘직관과 지속’의 개념과 니체의 ‘초인사상’, ‘힘의 의미’ 등에 깊은 영향을 받아 현대 과학의 특징인 기계가 지닌 다이나믹한 아름다움을 조형 예술의 모티브로 하고, 회화에 시간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다이나미즘(Dynamism)과 동시성(Simultaneity)을 보여주고 있으며, 소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특히 베르그송의 사상은 미래주의의 조형적 특성에 기본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 미래, 과거를 기억하고 종합하여 연상시킬 수 있는 기계장치에 의해 시간과 공간의 동시적인 종합이 이루어진다는 ‘지속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베르그송에 있어 지속이란 기억을 매체로 한 의식의 순수 내용으로 그 자체가 계속적인 변화이며, 필연을 제거한 자유를 속성으로 한다. 이러한 자유를 구현하기 위해 최고의 정신적 긴장을 필요로 하며, 의식은 과거와 현재를 통하여 끊임없이 미래로 향하는 것이다19). 이러한 사상에서 미래주의 화가들은 조형적 표현으로서 동시성과 우주의 유동 운동인 다이나미즘을 발견했던 것이다20)

19) 앙리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정한택 역 (서울: 박영사, 1980), p. 21.
20) 양취경, “20세기 초 예술의상에 관한 연구” (대구효성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7), p. 72. 

(1)반 전통주의

미래주의자들은 기존의 질서에 대한 강한 대립과, 전통 미술운동에 반기를 들면서 새로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미래주의에 입각하여 예술 세계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하자’고 외치면서 자신들의 야심 찬 계획아래 예술 분야에 속하는 의상을 포함시켰다. 이들은 일상생활의 다른 모든 영역처럼 의상 역시 근본적으로 현대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이 말하는 현대성은 패션의 상대적인 현대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주의자들의 모더니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마다 바뀌는 그러한 유행 의상의 변화을 겪지 않는 ‘영속성’을 지닌 절대적 모더니티를 의미한다. 즉, 미래주의자들은 패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패션을 완전히 없애고자 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래주의자들은 결코 패션에 등장하지 않을 독특한 의상들을 제안한 것이었다21). 발라(Giacomo Balla)는 의상을 디자인 한 최초의 미래주의 예술가이다. 뒤셀도르프에서 뢰벤슈타인 궁정의 실내 장식을 맡았던 발라는 전통적인 남성용 테일러드 재킷(Tailored Jacket)의 형태를 완전히 무시한 새로운 의상디자인을 제시하였다. 칼라와 대칭으로 접혀진 리버스(Revers)를 없애고, 재킷을 커다란 삼각형으로 디자인하였다. 남성복 재킷의 형태는 의상의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조차도 관심을 갖지 못했던 분야였는데, 미래주의자들은 신사복 분야에서 숙녀복에서와 달리 새로운 형태의 다이나믹한 디자인을 제시했던 것이다. 리포벳스키(Lipovetsky)는 “신사복은 중립적이고, 어둡고 엄격한 모습으로서 시민 계급의 검소함과 노동을 확인시켜준다.”22) 따라서 신사복은 숙녀복에서와 같은 과감함은 금지된 것이었다. 하지만 미래주의자들은 기존의 지배질서와 시민 사회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상징으로서의 신사복을 통해 새로운 스캔들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것은 명백히 미래주의의 입지를 부각시키려는 전략적인 결정으로 여겨졌다. 

21) Ibid., pp. 81-82.
22) Gilles Lipovetsky, The Empire of Fashion: Dressing Modern Democracy,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 p. 106. 

(2)진보와 개혁

새로움은 인간의 진보주의적 충동을 바탕으로 한것으로 본질적으로 새로운 조형질서를 추구하는 것이며,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개혁의 욕구이다. 1914년 5월 20일 발라는 최초의〈미래주의 남성복 선언문〉에서 전통적인 의상은 상복과 같이 색이 바랬거나 어두운 색상의 줄무늬나 바둑무늬 그리고 좌우가 똑같은 대칭적인 디자인과 쓸데없는 단추 등을 비난했으며, 빳빳한 칼라(Collar)와 커프스 등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대신 미래주의 의상은 역동적이며 비대칭적이고, 경쾌하고 단순하며 편안하고 위생적이어야 하며, 동적이고, 활동적이며 무엇보다도 변화가 가능한 옷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의상의 변화 가능성은 변화를 가져다주는 액세서리의 사용이나 압착단추를 이용하여 원하는 곳에 각기 다른 폭과 두께의 다양한 색상의 소재를 부착할 수 있도록 변화시켰다. 자신의 의상에 색상과 형태의 변화를 주려 하였던 발라는 ‘미래주의의 취지대로 활력적인 예술품을 발명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옷을 입는 사람이 직접 자기 손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작품을 발명했다’23)고 할 수 있다. 변화를 가져다주는 액세서리 덕분에 옷을 입는 사람은 그 옷의 단순함을 억지로 참아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누구든 자신이 원하면 옷을 변화시켜, 수시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의상은 존재의 정당성이 결여된 유행 의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패션이 더 이상 변화를 통제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 책임은 옷의 소유자에게 넘겨진다. 그는 미학적인 차원에 관여하여 독창성을 지닌 예술가와 함께 일할 수 있게 된다. 예술가가 표시해둔 경계선 안에서 관중들은 자신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으므로 의상은 일종의 걸려 있는 작품이 되는 것 이다. 계속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는 발라와 함께 포르투나토 데페로(Fortunato Depero)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기계적인 응용과 깜짝 놀라게 만들기, 사람들의 눈속임’24) 등을 이용하여 변화를 줄 수 있는 의상을 디자인하였다. 패션의 변덕으로부터 벗어나 옷의 소유자가 자신의 기분과 날씨 등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데페로는 미래주의자들이 표방하고 있는 전위성을 과거의 모든 표준과의 단절, 기계기술의 적극적 도입, 행동주의 그리고 새로운 사고의 출현이라는 관점에서 이전의 예술과 구분 지었다. 그는 당시 극장에서 음악에 따라 춤을 추는 어릿광대에서 영감을 얻어 움직이는 오브제 즉, 꼭두각시처럼 관절 마디로 이어진 춤추는 여인(Danseuse Articulée)을 전시하였다(그림 2). 이것은 깜짝 놀랄 만큼 요란하게 움직이는 효과를 내는 구조물로서 미래주의의 키네틱 한 예술의 최고의 해설자로 데페로를 평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동력 소음파(Moto-Bruitsme)의 이론가로서 발라와 함께 조형적 의상(Costumes Plastiques)을 연구하였으며25), 그의 조형적 발레(Ballets Plastiques) 의상 디자인은 시각적 역동성을 기계적으로 재해석한 전위적인 조형예술이었다.

<그림 2> Danseuse Articulee: 1912, F. Depero.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23) Giovanni Lista, Futurism and Photography, (London: Merrell Publishers, 2003), p. 70.
24) Ibid., p. 203.
25) Giovanni Lista, Le Futurisme, (Paris: L' Amateur, 2001), p. 32. 

(3)역동성

미래주의자들의 기반인 ‘힘’에 관한 개념은 그들의 예술에서 끊임없이 창조되는 힘과 역동성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현대 문명을 창조해가는 기계의 미로 소음, 동력, 모험 등 기계의 속도감을 찬양하여 전통적 심미관을 거부하고, 다이나미즘을 새로운 미의 세계로 인정한 것이다. 산업 사회의 급속한 발달은 전기, 전차, 전화, 비행기, 가솔린, 엔진, 영화, 엘리베이터,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들을 발명하여 기계 문명의 풍요를 가져왔다. 특히 발라는 그 당시 과학 기술의 진보로 인한 사진 기술의 발달을 이용하여 회화적으로 사진에서와 같은 효과를 표현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이것은 미학적인 목적보다는 과학적인 목적에서 이룩되었다26). 그의 작품〈달리는 개의 다이나미즘〉(그림 3)은 사진 연구에 영향을 받은 가장 대표적인 그림으로 몇 개의 영상을 동일화면에 그려 대상의 움직임을 표현하였다. 그는 사물의 운동성을 떠나 대조적인 색조와 색채의 광학적인 역동성과 부동성을 표현하려는 방향으로 나가는데, 이는 1960년대 옵 아트(Op Art)의 선구자가 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27). 리얼리티를 빛과 색채로 분해하여 안개와 같이 파열하듯 사물은 그 자체가 분할되지 않고 전체 내에서 파악되며, ‘유동(Flux)’의 개념과 ‘힘의 선(Lines of Force)’을 나타내는 다이나미즘이 있다. 이들의 다이나미즘은 첫째, 미래주의자들이 신속하게 움직이는 대상의 지각을 포착하려는 의도는 본질적으로 대상을 분해하여 논리적 방법으로 재구성하려는 분석적 입체주의의 반투명적 각 면에 의존한 것이다. 그들은 행동을 윤곽의 연속으로써 ‘역동성’을 강조하며 빠르기로써 변화를 표현하여 화면 속에서 동적인 느낌을 표현한다. 또 동시성에 의한 조형 방식은 빠르게 움직이는 다이나미즘을 분석에 적용하여, 대상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망막에 비쳐지는 이미지의 지속성으로 하여금 대상의 움직임을 여러 개의 상으로 변화시켜 마치 형태가 진동하는 것 같아 보인다. 사진작가 쥴 에디엔 머레이(Jules Etienne Maray)는 운동을 분해시킨 연속촬영법(Chronophoto Graphic)으로 사진을 제작하였으며 이것은 발라를 비롯하여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28). 둘째, 다이나미즘으로써 힘의 선이 조각에서 유사하게 적용되어 발전한 것이 역형(Force-Forms)이다. 특히 보치오니(Umberto Boccioni)의 대표작〈공간에서 연속되는 하나의 형태〉(그림 4)는 인간의 역동적인 모습을 강하게 보여준다. 보치오니는 형태나 윤곽을 파괴하고 공간 속에서 역동적인 연속성을 창조하며, 형태를 환경 속에 융합시켰으며, 신체의 내부에서 발산된 힘으로 이른바 절대적 운동과 상대적 운동이 통합된 동시적 표현을 하였다. 이 작품으로 다이나미즘의 표현에 주력했던 그의 노력이 거의 정점에 이르게 되었으며, 힘과 선의 역형이야말로 미래주의 예술의 가장 근본이 되는 다이나미즘이라 할 수 있다. 

<그림 3> Dynamism of a Dog on a Leash, 1912, G. Balla. .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그림 4> Unique Form of Continuity in Space, 1913, U. Boccioni.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26) Maly Gerhardus, Cubism and Futurism, (Oxford: Phaidon Press, 1979), p. 81.
27) Nikos Stangos, Concept of Modern Art, (New York: Thames & Hudson, 1994), p. 152.
28) Jean Clay, From Impressionism to Modern Art, (New York: Chartwell Book INC, 1978), p. 302. 

2.러시아 구성주의(RussiaConstructivism)

1)러시아 구성주의의 전개

산업 사회로 변화하던 러시아 혁명 전후의 분위기는 미술 전체가 산업 현장과 정신적 연대감을 직결시킬 수 있는 운동으로 변화하였으며, 프랑스의 입체주의, 이탈리아의 미래주의와 더불어 미술의 고전적 틀을 넘어 실험적 분위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러시아 예술가들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의 태동기를 1863년으로 잡는다29). 카밀라 그레이(Camilla Gray), 드미트리 사라비아노프(Dmitri Sarabianov), 발렌틴 마르카데(Valentine Marcadé) 등 러시아 미술사를 정리한 미술가들의 공통된 관점은 이 시기에 새로운 러시아의 전위적인 실험예술이 싹트기 시작하였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30).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은 유럽에서 일어난 여러 시각 예술운동과 더불어 전통적인 예술의 표현방식에 대한 강력한 도전으로 예술의 미적 감각과 역사에 대한 의식, 표현, 소재, 공간 등을 새롭게 변화시킨 전환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물이 바로 ‘러시아 구성주의’이다. 구성주의는 20세기 초 급격한 산업사회로의 전환기에 러시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아방가르드 미술운동으로 사회적 변혁과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에 예술의 본질과 인간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 독특한 양식을 지닌 가장 실험적인 미술운동이었다. 초기의 구성주의는 새로운 과학기술이 예술가들에게 조형적 영감을 제공해준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 운동이 활발히 전개될 수 있었던 배경은 다른 미술사조들과 뚜렷한 연관성을 가지면서도 그들만의 고유한 독창성을 가진데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철학의 보편 구조와 형식미술을 다양화시킨 촉매제의 역할을 하였으며, 그들의 기본 정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미학적 개념의 재정립과 새로운 역사와 만나는 ‘예술의 순수성’에 맞추어져 있었다31).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구성주의는 추상예술을 하나의 독자적 장르미술로 정착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29) Serge Fauchereau, Moscow 1900-1930, (New York: Rizzoli, 1986), p. 47.
30) Camilla Gray, op. cit., pp. 8-9.
31) Emmanuel Martineau, Malevich et la Philosophie, (Paris: Lausanne, 1977), p. 45 

구성주의라는 명칭은 1920년 이후 비평가들에 의해 명명된 것인데, 그 이전에는 오늘날의 디자이너와 비슷한 개념인 ‘예술가-구성가(Artist-Constructor)’ 또는 ‘구성주의자들의 그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구성주의는 미술에서 추상적인 양식을 의미하는 것도 미술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도 아니다. 작가가 기계 생산, 건축, 엔지니어링, 인쇄, 사진 매체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됨으로 사회의 물질적, 지적요구를 고양시키는데 공헌할 수 있다는 확신의 표현이 구성주의의 핵심이다32). 구성주의는 조형 예술의 전통적 장르를 넘어 혁명 사회를 위한 보다 넓은 영역으로까지 나아갔던 광범위하고 실천적인 미술운동이었다. 구성주의는 1920년대 초에 러시아 미술계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 용어는 간(A. Gan), 로드첸코(A. Rodchenko), 스테파노바(V. Stepanova), 요간슨(K. Ioganson), 메드네츠기(K. K. Medunetskii), 스텐베르크 형제(V. A. Stenberg, G. A. Stenberg)가 미술·문화연구소 내에 1921년 3월 창립한 ‘최초의 구성주의 노동집단(The First Working Group of Constructivists)’에서 등장하였으며, 처음 지면에 나타난 것은 1922년 ‘시인의 카페(kafe Poitov)’에서 개최된 전시회〈The Constructivists: K. K. Medunetskii, V. A. Stenberg, G. A. Stenberg〉의 카탈로그에서였다33). 이 전시는 산업적인 강조점을 가진 실제의 재료로 제작된 공간 구조물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성물이 제작된 사상은 카탈로그에 인쇄된 다음과 같은 선언문에서 밝혀진다. 즉, “모든 예술가들은 지금 공장으로 가야 한다. 그곳은 생활의 실제 몸체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그리고 “이 길을 구성주의라고 부른다.”34) 따라서 구성주의라는 용어는 대량 생산과 산업을 통해 미술과 생활을 합병한다는 사상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통적인 예술의 개념대신 예술 활동의 실천적 결과물인 유효성, 효용성을 목적으로 사회주의 사회에서 특수하게 형성된 것이다. 러시아 구성주의 미술운동이 다른 미술운동과 구별되는 독특한 점은 이것이 혁명의 과정에서 태어나 사회주의 혁명 이념 및 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사회주의 혁명 사회의 미술 이념은 예술을 부르주아의 전유물에서 프로레타리아 계급에게 보급하자는, 미술의 민중화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예술작가들은 엔지니어와 같이 새로운 사회를 위하여 생산품을 제작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여겼으며, 기능적인 것과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을 제작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의상디자인 또한 과거의 수공예적이고 민속적인 수준에서 탈피하여 새롭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추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 구성주의 예술작품의 기본적인 특징은 역동성과 기하학적인 형태의 추구이며, 이러한 특징들은 생산성과 직접 결부되어 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35)

32) Aaron Scarf, Constructivism: Concepts of Modern Art, ed. by Nikos Stangos (London: Thames and Hudson, 1981), p. 160.
33) Christina Lodder, Russian Constructivism,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83), pp. 2-3.
34) Ibid., p. 2.
35) 제라르 듀로조이 편저, 박준원 감수, 현대미술사전, (서울: 도서출판 아르떼, 1994), p. 62. 

2)러시아 구성주의 예술운동의 특징

구성주의의 예술활동은 미학적 아방가르드와 정신적 아방가르드가 합쳐지는 새로운 역사적 실험운동이었다. 러시아 구성주의의 창시자인 타를린(V. Tatlin)은 혁명 이념인 ‘예술의 사회화’를 가장 열정적으로 수행한 예술가이다. 그는 1913년부터 철, 나무, 유리와 같은 여러 가지 산업 재료의 조합물로 작은 규모의 추상 작업을 해나가면서, 전통적인 1차원의 회화 대신 물질을 직접 화면에 쌓아올림으로써 콜라쥬 개념을 확장시킨 3차원의 구성물을 새로운 미술의 개념으로 제시하였다. 타를린이 구성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것은 그가 1913년 구성주의의 조형언어의 형성을 알리는 구조물을 처음으로 제작하였으며, 혁명 후에는 1919년〈제 3인터내셔널 기념탑〉(그림 5)을 만들어 구성주의의 전개에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36). 러시아 구성주의 조형언어는 3차원의 물질적 조합으로〈제 3 인터내셔널 기념탑〉과 같이 실제로 재료를 쌓아올려, 3차원의 구성물을 제작함으로써, 관습적인 유화에 대항해 다양한 실체와 물질을 응용한 콜라쥬를 통해 미술 작품의 제작에 새로운 개념의 혁명을 가져왔다. 따라서 타를린의 작품들은 유기적이며 비계획적인(unschematic) 구조물로서 재료의 고유한 성질, 상호관계, 표면 질감의 성질 등을 일관되게 연구하여, 재료 그 자체의 특성과 공간의 적극적인 상호관계를 맺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타를린의 가장 직접적인 후계자는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이다. 로드첸코 구성의 특징은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의 지속적인 탐구에 있다. 로드첸코는 유클리드적인 직선의 기하학으로부터 유래된 형태를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로드첸코의 구성은 엄격한 기하학적인 형태의 탐구로 자, 컴퍼스 등 과학적인 도구를 통해, 양식적 견해나 주제의 요소가 전혀 없는 단지 선의 조형적 가능성 만을 탐구한 선의 공간 구성을 추구하였다. 이후 공간에 매달린 육각형, 타원형, 삼각형 등의 3차원의 구조물들을 통해 기하학적 공간구성을 완성하게 됨으로써 구성주의 이론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타를린과 로드첸코는 구성주의의 대표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작가이며, 이들의 작품들은 구성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스테파노바(Varvara Stepanova)와 포포바(Liubov Popova)는 구성주의자들의 특징은 공유하나, 본질적으로 2차원의 매체에서 주로 작업하면서 구성주의 의상디자인에 미친 영향이 컸다. 러시아 구성주의 작가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여류 화가로 알려진 스테파노바와 포포바는 직물과 의상디자인 분야에 직접 참여하였다. 스테파노바는 절대주의 작가인 말레비치의 영향으로 단순한 색채와 장식적인 면 분할로 인체를 표현하게 된다. 그녀는 2차원의 매체를 넘어 완전한 3차원의 구성물의 영역으로 가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구성주의작가들의 작품에서 3차원의 작업에 의해 형식적 어휘의 대부분이 제공된 것은 사실이나 공간의 형태와 처리 분야에서는 그 준비과정으로 스테파노바의 2차원적 탐구는 매우 중요한 역할 수행 과정이었던 것이다. 포포바는 포토몽타쥬 기법과 기계적이고 입체적인 디자인으로 작품에서 평면을 세 가지 구성요소인 색, 볼륨, 직선으로 창조하였다. 볼륨은 면의 교차와 공간에서의 구도를 재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색과 면 사이의 불일치를 통해 캔버스의 표면에 긴장과 다이나미즘을 불러일으키며, 이러한 화면의 긴장과 리듬을 자신의 직물 디자인 패턴에 그대로 전개하게 된다. 

<그림 5> Monument to the IIIrd International, 1920, V. Tatlin.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36) 현수미, “러시아 구성주의의 전개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5), p. 26. 

<표 1> 미래주의와 구성주의 예술 운동의 특징37) 임영방, 현대미술의 이해,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0), p. 91.38) Emmanuel Martineau, op, cit., p. 61.

Ⅲ. 이탈리아 미래주의 예술의상 디자인

미래주의자들은 새로운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의상으로 또 다른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였다. ‘미래주의에 입각하여 우주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하자’는 미래주의자들의 구호는 예술 분야에 속하는 의상을 빼놓을 수 없었으며, 미래주의 예술의상은 무엇보다도 ‘용기를 강화시키는’ 공격성과 신체의 유연성을 고조시키는 ‘활동성’ 그리고 ‘모험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역동성을 바탕으로 디자인되었다39).

39) 양취경, op. cit., pp. 86-87. 

1.자코모 발라(GiacomoBalla)

발라는 의상을 디자인 한 최초의 미래주의 예술가이다. 그는 1912년부터 의상을 디자인하였으며, 그의 디자인은 당시 유행 패션과는 단절을 보여주는 형태였다. 칼라와 대칭으로 접혀 있는 리버스(revers)를 없애고, 전체적으로 다이나믹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재킷과 바지에 지그재그의 선과 다양한 색채를 넣어 전통적인 재킷과 완전히 다른 디자인을 하였다. 발라의 첫 목표가 신사복 분야였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40). 이 분야는 의상의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조차도 관심을 갖지 못했던 분야였는데, 미래주의자들은 신사복 분야에서는 숙녀복에서와는 달리 합리성의 표본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리포벳스키(Lipovetsky)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신사복은 중립적이며, 어둡고, 엄격한 모습으로서 시민 계급의 검소함과 경의와 노동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영역에서의 과감한 변화는 금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발라는 1914년 5월 20일 최초의 미래주의 패션 선언서인 ‘미래주의 남성복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문에서 발라는 과거의 전통적인 남성복은 전통에 대한 애착으로 무거운 소재와 지루한 디자인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발라는 전통적인 남성복을 우울함만 안겨다 줄 뿐이므로 이런 옷은 과감하게 벗어던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대신, 미래주의 의상은 역동적이고, 비대칭적이며 경쾌하고 단순하며, 편안하고 위생적이며, 무엇보다도 변화가 가능한 옷이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자신의 의상에 색상과 형태의 변화를 주려 했던 발라는 미래주의의 취지대로 활력적인 예술품을 발명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옷을 입는 사람이 직접 자기 손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작품을 발명한 것이다41). 변화를 주는 패션은 옷을 착용하는 사람이 그 옷의 단순함을 억지로 참아야 할 필요가 없이 ‘누구든 원하면 옷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수시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의상은 존재의 정당성이 결여된 유행 의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42). 이러한 남성복은 비대칭적이며 역동성을 주는 형태의 재창조라 할 수 있는데, 절단을 강조한 다양한 형태의 의상에서 가변성과 비대칭성을 엿볼 수 있다(그림 6). 다음의 의상디자인은 발라가 디자인한 미래주의 의상디자인이다. 여기에서는 좌, 우 재킷의 디자인에 나타난 비대칭성과 무늬와 색상에서의 다이나미즘을 느낄 수 있다. 바지는 원통형으로 끝단이 없이 흘러내리는 형태인데, 역동적 패턴으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그림 7). 발라의 의상디자인에서는 미래주의자들의 기반인 힘에 관한 개념들이 그의 예술의상에서 끊임없이 창조하는 힘과 역동성의 기준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역동성은 발라가 디자인한 여성용 원피스 디자인(그림 8)이나 남성복 디자인(그림 9, 10)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끼는 모직에 자수로 장식된 디자인이다. 외형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강한 원색의 대조와 그리고 역동적인 패턴에서 미래주의 회화의 전형을 느낄 수 있으며,〈그림 9〉에 나타난 남성복 디자인은 노란색과 푸른색 그리고 지그재그선의 강렬한 역동성으로 전통적인 남성복 슈트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발라의 의상은 색의 완전한 재장조로 모든 어두운 색과 19세기적 중간색과 중간 톤의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며, 이러한 형과 색의 재창조는 자연히 직물디자인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절단을 강조한 그의 의상디자인에서처럼 사선의 비대칭적인 사용은 가변성과 마찬가지로 옷을 입는 사람의 창조성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였고, 실용성과 기능성 또한 강하게 보여주었다. 

<그림 6> Futurist Clothing, 1914, G. Balla.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그림 7> Fabric Design, 1913, G. Balla.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그림 8> Woman's Clothing, 1929, G. Balla.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그림 9> Man's Clothing, 1918, G. Balla.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그림 10> Man's Clothing, 1918, G. Balla.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40) Maurizio Fagiolo, Balla the Futurist, (New York: Rizzoli, 1987), p. 43.
41) Giavanni Lista, op. cit., p. 70.
42) Pontus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pp. 322-323. 

<표 2> 발라 (Giacomo Balla)의 미래주의 재킷 디자인(Jacket Design)

<표 2> 계속

2.포르투나토 데페로(FortunatoDepero)

데페로는 1892년 3월 30일 트렌토(Trient) 지방의 폰도(Fondo)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회화, 조각, 그림에 대한 열정을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상징주의적 표현방식으로 접근하였고, 상징적인 그의 표현 방식은 다른 미래주의 예술가들과 구분되는 특징이기고 하다. 특히 자코모 발라가 그에게 많은 후원을 하였다. 발라와 데페로는 1915년부터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에서 함께 작업을 하였다. 여기서 데페로는 무대장치와 무대의상을 연출하였고, 적극적으로 의상을 디자인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의상에 나타난 역동적이고, 기계적인 이미지들은 그의 회화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특히 그의 회화 작품은 ‘모던 의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좀 더 일상적인 현대 남성복과 여성복의 이미지를 통해 미래주의 복식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데페로가 디자인한 무대의상은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의상으로 넓은 공간 전체에 기하학적인 패턴에 강렬한 색채로 표현된 기계적인 이미지의 여성들을 볼 수 있다. 무대에 대한 그의 관심은 1915년 로마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 5월에 열린 그의 개인전에서는〈조형적인 복합체들〉,〈자유시 테이블〉이란 주제로 미미스마지아(Mimismagia) 발레의 ‘조형적 무대의상’ 디자인을 전시하였다(그림 11~13). 이것은 다양한 조형적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의 손짓과 묘기스러운 춤에 의해 표현된 감동이라 평하여졌는데, 실제로 이 무대에 등장한 의상들은 조형적인 다이나미즘의 화려함으로 표현되어 있다. 즉, 가벼운 반투명 직물로 만들어진 의상들이 추상적인 조형물인 발레리나의 손발을 가는 철사 뼈대로 만들어 연결하여 움직임이 있는 변화를 추구하며, 여기에 서로 다른 색의 다양한 빛들이 변화무쌍한 디자인을 보여주었다43,44). 1920년대 후반 미래주의 남성복을 위한 데페로의 사상은 좀 더 뚜렷해지는데, 그의 모던한 관심은 남성복 베스트 디자인으로 연결된다(그림 14~16). 1924년에 디자인한 웨이스트 코트는 로베르타나(Rovertana)에서 소개된 그의 베스트 디자인에는 아쌍블라쥬기법45)을 이용해 반짝반짝 빛나는 기하학적인 패턴을 디자인하였다. 데페로는 추상적 리듬을 받아들여 화려한 색채와 두드러진 형태를 강조함으로써 자기 회화의 동화적이면서 생기 넘치는 상상력을 반영하고 있다. 그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상징적인 표현방식은 당시 미래주의 작가들과도 구별되고, 입체와 환경, 동작, 기계주의적인 다이나미즘 등을 조화시킨 예술가였다. 

<그림 11> Costume for Mimismagia, 1916, F. Depero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그림 12> Costume for Mimismagia, 1916, F. Depero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그림 13> Costume for Mimismagia, 1916, F. Depero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그림 14> Waist Coat Design, 1924, F. Depero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그림 15> Waist Coat Design, 1924, F. Depero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그림 16> Waist Coat Design, 1924, F. Depero 출처: P. Hulten, Futurism & Futurisms, (London: Thames & Hudson, 1987)

43) Stern Rudu, Gegen den strrich, (lausanne: Benteli, 1992), p. 132.
44) Enrico Crispolti, It Futurismo e la Moda, (Millano: Marsilo, 1998), p. 132.
45) 아쌍블라쥬(Assemblage): 수집하는 것 또는 집합이나 조합 등을 의미하는데, 미술에서는 2차원이나 3차원을 막론하고 기성제품을 수집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콜라주와 구별하기 위하여 뒤 뷔페가 사용하였고, 1961년〈아쌍블라쥬 미술전〉으로 일반화 되었다. 

3.에르네스토 타이야트(ErnestoThayaht)

당시 유미주의와 정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 타이야트는 1918년부터 1919년 사이에 이미 겉옷으로 입는 오버롤 형태의 튜타(Overall-Tuta)를 디자인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존재하였던 작업복 형태가 아니라 단순하고 실용적인 모던의상으로 특히 한가지 색조로 된 봄옷이었다. 이 의상은 한 폭의 천으로 되어 있으며, 허리부분에 간단한 벨트를 매도록 되어 있었다. 또한 이 옷은 셔츠를 입지 않고도 정장을 입을 수 있으며, 크고 실용적인 주머니가 여러 개 달려 있었다(그림 17~19). 타이야트는 모던 의상이 갖추어야 할 단순화와 실용성이라는 자신의 기준안에서 1926년 아주 필수적인 라인만으로 구성된 재킷과 바지가 결합된 오버롤을 만들어 냄으로써 유명해졌다46). 이 옷은 한 부분으로 된 종합의상으로 어디든지 입고 다닐 수 있는 의상이다. 타이야트가 여러 가지 변종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튜타에는 한 가지 종류 밖에 없었다. 튜타의 착용원리는 편안함과 단순함 그리고 위생이었다. 정장의 모든 장식 요소는 포기되었고, 색상은 단색이어야 했다. 왜냐하면 튜타는 무엇보다도 실용적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과 여성이 다 함께 입을 수 있는 혼성용 의상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열악한 성인 여성의 옷장에 들어있는 여러 잡동사니들을 대신할 수 있는 스커트가 달린 여성용 튜타였다(그림 20, 21). 크리스폴티는 튜타를 전 후 시대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고 묘사했으며, 이 튜타의 경제성은 원료 부족과 값비싼 전통적인 의상에 대한 저항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47). 1932년 타이야트는 자신의 동생인 미래주의 화가 루게로 미하엘레스(Ruggero Michahelles)와 함께 신사복 혁신 선언문에 서명했다. 위생적인 이유에서 타이야트는 편안함과 실용성이라는 기준에 의해 의상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완전히 장식으로만 쓰이거나 신체를 구속하는 것은, 자유로운 혈액 순환 또는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므로 배척되어야 하며, ‘앵글로 색슨족과 청교도, 북방민족과 반 지중해적인 성격을 보이는 재단’에 기초한 의상들도 사라져야 한다. 대신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의상들로 남성과 여성복들이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새로운 의상 디자인들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면, 소매가 없는 아래 위가 붙은 옷인 토라코, 짧은 소매가 달린 웃옷 코르산테(Corsante), 구식의 속옷을 대신할 허벅지까지 오는 내의 페모랄리(Femorali) 등이다. 타이야트는 매우 급진적인 사고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비오네(Madeleine Vionnet)를 위한 모델을 디자인하게 된다. 

<그림 17> Tuta Clothing, 1919, E. Thayaht. 출처: G. Buxbaum, The 20th Century Icons of Fashion, (London: Prestel, 1999)

<그림 18> Tuta Pattern, 1919, E. Thayaht. 출처: G. Buxbaum, The 20th Century Icons of Fashion, (London: Prestel, 1999)

<그림 19> Tuta Design, 1919, E. Thayaht. 출처: G. Buxbaum, The 20th Century Icons of Fashion, (London: Prestel, 1999)

<그림 20> Man & Woman's Tuta, 1919, E. Thayaht. 출처: G. Buxbaum, The 20th Century Icons of Fashion, (London: Prestel, 1999)

<그림 21> Woman'sTuta, 1919,E. Thayaht.출처: G. Buxbaum, The 20th Century Icons of Fashion, (London: Prestel, 1999)

46) Enrico Crispolti, op. cit., p. 216.
47) Ibid., p. 131. 

Ⅳ. 러시아 구성주의 예술의상 디자인

러시아 혁명 이전의 의상 디자이너들과 구성주의 예술가들에 의해 새로운 의복에 대한 미학 이념 및 표현 방식들이 정립되었다. 10월 혁명은 수 세기에 걸쳐 러시아에 존재해온 의복의 계급 차이를 없애고 노동자들을 위한 대중적인 의상의 제작이라는 개념을 도입시켰다. 즉, 혁명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특수 계층이 아닌 일반 대중을 위한 새로운 의상 디자인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회적 명분을 제공해 주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의복의 대량 생산에 관한 계획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구성주의 예술의상 디자인은 당시의 패션 경향과 외형적인 형태의 유사성은 나타나지만, 의상을 제작하는 기본 이념은 ‘대량 생산이 가능한 그리고 사회 계급에 상관없이 누구나 착용 가능한 의상을 창작해 내는 것’이었다. 즉, 대중을 위해 의복을 제작하고 텍스타일 디자인을 의상디자인과 연계시켜, 사회주의 이념에 적합한 스타일을 창조하고자 했던 것이 러시아 구성주의 예술 의상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 구성주의 예술 의상디자인은 「LEF」48) 잡지를 중심으로 모여든 포포바와 스테파노바 그리고 로드첸코와 같은 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모두 화가나, 그래픽 아티스트 그리고 건축가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하였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 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로 인하여 그 이전에 작업실에서 이루어지던 예술은 사회적인 의미를 잃었다고 믿었으며, 진실한 혁명적 예술가로서 자신의 재능과 지식을 새로운 의상을 창조하는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그 결과, 1920년대 초반에 나타난 독특한 예술 현상인 새로운 유형의 의상 디자인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48) LEF(Left Front of Art): 좌익예술전선의 약자이다. 1923년부터 1925년 사이에 시인 마야코브스키(V. Mayakovskii)의 책임편집에 의해 소비에트 국립출판사에서 출판된 예술종합잡지를 말한다. 고도의 선동예술과 생활건설로서의 예술을 목표로 내걸고 시 외에 평론, 소설, 사진, 건축, 디자인 등 예술의 모든 장르에 걸쳐 아방가르드 예술을 전개하였다. 7호 이후 명칭이 ‘신 레프(Novyi Lef)’로 변경되었다. 

1.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Rodchenko)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구성주의 예술의 기여는 알렉산드로 로드첸코에 의해 이루어졌다.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그는「LEF」지의 편집위원직을 맡았고, 동시에 작업복을 실용화하는 디자인 프로젝트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다49). 의상 디자인분야에 나타난 로드첸코의 작품들은 주로 무대의 상과 작업복 분야에서 이루어졌으며, 의상 디자인은 로드첸코가 구성주의자로서 했던 여러 예술분야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부분으로 남아 있다. 특히 그는 완전한 합리성과 단순성을 강조한 다수의 작업복들을 디자인하였다. 그의 작업복에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트리밍이 양쪽 팔과 스텐드 칼라 부분에 덧대어져 있으며, 작업복의 특징에 맞게 어깨와 허리 그리고 조여진 바지 밑단에 많은 플리츠를 넣어 활동하기 편하도록 디자인해 주었다(그림 22). 로드첸코의 의상디자인은 모두 상의와 하의가 연결되어 있는 오버롤 스타일이나 전체적인 디자인의 스케치에서는 슈트와 같은 느낌을 주며, 스텐드 칼라에 각진 어깨, 발목에 플리츠가 들어간 바지를 기하학적인 선으로 연결하여 3차원적인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그림 23). 또한 그의 작업복 디자인은 작업의 효율성을 고려하여, 상의와 하의의 폭을 넓게 하고 여러 개의 직선적인 포켓을 달았다50). 로드첸코는 그의 재능을 의상 디자인을 비롯하여 여러 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보여주었는데, 특히 회화와 사진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의상디자인에도 포토 몽타쥬 기법을 응용하였다. 1925년 로드첸코는 마야코브스키의 코미디극인「빈대(The Bedbug)」의 무대와 의상디자인을 담당하였다. 그의 무대의상 디자인은 단순화된 형태와 기하학적인 면 분할로 구성되어 있다. 로드첸코는 그의 의상디자인에 기능성과 전위성을 모두 표현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열망은 큐비즘 회화에서 보이는 ‘쉽게 인식 가능한 요소들’과 ‘분명한 기하학적 설계원리’들을 기본으로 재단과 디자인에 응용하였다. 

<그림 22> Working Clothes Design, 1922, A. Rodchenko 출처:M. Tupitsyn, Rodchenko & Popova, (London: Tate Modern, 2009)

<그림 23> Working Clothes Design, 1922, A. Rodchenko 출처:M. Tupitsyn, Rodchenko & Popova, (London: Tate Modern, 2009)

49) 조윤경, “1920년대 소비에트 구성주의 패션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6), p. 75.
50) John Milner, Rodchenko Design, (UK: Antique Collectors' Club Ltd. 2009), p. 68. 

2.바바라 스테파노바(VarvaraStepanova)

구성주의자들은 공장으로 들어가 직접 대량 생산을 시도하였지만, 모든 구성주의자들이 실제로 공장에서 작업한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 타를린, 스테파노바, 포포바 만이 실제로 특수한 공장에서 작업하였으며, 미술가-구성가로서의 역할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의상디자인의 과정을 현존하는 산업의 틀 안에서 다시 생각한 것은 스테파노바였다. 그녀는 실제 작업에 참가해 직물과 의상디자인을 지배하는 원리를 확고하게 연결시켰으며, 의상디자인이 단순한 응용미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성주의의 원리에 의거한 디자인이 되도록 하였다51). 즉, 의상의 재료가 사용되는 방식뿐 아니라, 재료가 의도하는 정확한 목적과 관계 지움으로 직물디자인을 합리화 했던 것이다52). 그녀는 텍스타일 디자인이 의상디자인과 연계되어 디자인되길 원하였다. 1923년「Pravda」지는 산업의 생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예술가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하였고, 구성주의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인 스테파노바는 즉시 모스크바의 ‘제일 면직물 공장(The First Cotton-Printing Factory)’에 자리를 잡아 이러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였다53). 이들은 경영자 계급에게 새로운 프로젝트와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였으며, 창조적인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제일 면직물 공장의 5가지 생산 강령54,55)의 원칙에서 볼 수 있듯이, 제안된 행동 계획의 원칙들은 생산의 모든 구체적인 부분에도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포괄적이다. 이러한 포괄적인 태도로 모든 산업 분야에 참가하고자 한 것이 바로 구성주의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스테파노바와 포포바는 소비에트 디자이너사상 처음으로 직물과 의상디자인을 함께 시도하였다. 특히 스테파노바는 ‘의류에서 문양과 직물로’ 라는 기사에서 ‘우리는 직물 제작과 의상 제작 사이에 나타난 연속성의 부재(不在)가 의복 생산의 질적 향상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직물 산업은 이제 질적 향상과 표준화를 위해 보다 효율적인 토대를 구성하고,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많은 디자인을 스스로 구축해야 한다.’56)고 주장하였다. 그녀는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며 이론과 방법을 형태화하는 한편, 명료하고 고도로 채색된 기하학적 형태들이 본질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다. 스테파노바의 직물디자인은 좀 더 기하학적이고 상징적이며 은유와 리듬을 강조하였다. 그녀의 초기 작품은 삼각형, 사각형, 원과 장방형과 같은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들이 서로 혼합되어 있었다(그림 24). 그러나 이 후 디자인은 더욱 복잡해졌고, 표면에 여러겹으로 겹쳐진 부분과 패턴의 깊이, 치수와 비율의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스테파노바의 작품에 나타난 특징들은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고 직선과 곡선이 혼합되어 부드러운 느낌을 나타내며, 다양한 선을 이용하여 운동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모든 구성주의자들처럼, 스테파노바는 예술과 디자인의 연속성에 반대하였고, 구 의상의 형태 대신에 새로운 형태를 제안하였다. 스테파노바는 의상을 기능에 따라 작업을 위한 생산 의상과 휴식을 위한 스포츠 의상으로 나누었다57). 그러나 스테파노바는 의상의 미적 요소의 존재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미는 기능에 형태가 완전히 들어맞을때 부산물로 생겨나는 것이었고, 의상의 아름다움이란 명확성, 단순성, 기능성, 선의 절약과 부분끼리의 상호의존 그리고 상호기능의 완벽한 조화에서 나오는 것이었다58,59) . 즉, 작업복(Prozodezhda: Working Clothing), 운동복(Sportodezhda: Sports Clothing), 특수복(Spetzodezhda: Special Clothing)의 세 가지 형태를 ‘오늘날의 의상’ 이라 칭하였다60). 여기서 Prozodezhda는 노동자 계급을 위한 작업복을 말하고, Spetzodezhda는 의사나 소방수와 같은 특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의상을 뜻하며, Sportodezhda는 운동시 착용할 수 있는 의복들을 의미하였다(그림 25). 스테파노바는 디자인의 원칙들을 명확한 형태로 표현하였고, 이를 재단 시스템에 적용하여 실용성과 기능성이 결합된 새로운 기준으로 의상 구성 단계에 대한 윤곽을 설정하였다. “오늘날 의상을 관리하는 두 가지 기본적인 원칙은 실용성과 편의성이다. 이 중 한 가지 측면만을 충족시키는 유형의 의상은 없다. 그러나 의상 디자인으로서는 완벽하지 않으나 특별한 기능을 지닌 특수한 의상은 제작될 수 있고 또한 반드시 생산되어야 한다. 스포츠 유니폼은 쉽게 착용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아이템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운동선수와 그 집단이 다른 집단과 구별되도록 다양한 색상이 활용되어져야만 한다.”61) 스테파노바는 장식과 모양을 강조하고 신체의 움직임을 무시한 채 미적 효과만을 강조해 의상을 만들던 혁명 전 패션의 개념을 완전히 거부하고 의상디자인의 첫 번째 우선 순위로 옷이 수행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춘 의상디자인 개념을 내놓는다(그림 26). 현대성과 기능주의의 본질적인 표현으로 대중을 위해 디자인된 옷은 공예의 생산체계로부터 대량 생산 체제로 변화되어 갔다. 구성주의자들의 새로운 의상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로 ‘스포츠 유니폼’에 중점을 두었는데, 이것은 신체 단련이 혁명 후 10년간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면서 기인된 것이다. 그녀의 혁신적인 프로그램 안에서 스테파노바는 의복 제작 과정의 자세한 부분들을 인식시키려 하였으며, 그 속에서 의복의 기능성과 목적성을 강조하여, 구성과 테일러링 및 재단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하였다(그림 27). 그녀의 주장에 따라 구성주의자들은 작업복을 위한 실용적이며 다양한 포켓과 지퍼 등이 달린 편안한 작업복 바지인 오버롤을 디자인하였다. 뿐만 아니라 모든 장식적인 디자인들은 ‘전문적인 기능을 위한 편안함과 실용성’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스테파노바는 당시 그녀의 이상에 따라 스포츠 유니폼을 디자인하였는데, 이것은 모두 굵은 사선과 원색의 대비로 역동적이며 간결한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림 24> Design for Sports Clothes: Sportodezhda, 1923, V. Stepanova 출처:W. Chadwick, Women, Art, and Society, (London: Thames & Hudson, 2007)

<그림 25> Design for Sports Clothes: Sportodezhda, 1923, V. Stepanova 출처:W. Chadwick, Women, Art, and Society, (London: Thames & Hudson, 2007)

<그림 26> Design for Sports Clothes: Sportodezhda, 1923, V. Stepanova 출처:W. Chadwick, Women, Art, and Society, (London: Thames & Hudson, 2007)

<그림 27> Design for Sports Clothes: Sportodezhda, 1923, V. Stepanova 출처:W. Chadwick, Women, Art, and Society, (London: Thames & Hudson, 2007)

51) John Milner op. cit., p. 147.
52) Whitney Chadwick, Women, Art, And Society, (London: Thames and Hudson, 2007), pp. 258-259.
53) Christina Lodder, op. cit., p. 146.
54) 제일 면직물 공장의 5가지 생산 강령: 1. 예술가는 산업 생산에 참여하기 위하여 예술분과에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디자인을 취급하거나, 생산을 위한 모델을 제작하거나, 생산에 관한 계획을 세우는 일 등에 관한 권한을 가져야 하며, 작품에 예술적인면을 감독하거나 그 목표에 부응하도록 작업해야 한다. 2. 채색 과정을 관찰하기 위해 화학 공정에 참여해야 한다. 3. 볼록 염색(block-printed)직물을 위한 디자인을 생산하여야 한다. 4. 봉제작업장, 패션 아틀리에 및 패션 잡지와 서로 연계되어야 한다. 5. 생산 공장의 정보와 잡지 및 신문의 광고에 밀접하게 접근하여야 한다.
55) Tatiana Strizhenova, Soviet Costume & Textile. 1917-1945, (Paris: Flammarion, 1991), p. 136.
56) Peter Noever, Rodchenko & Stepanova: The Future is Our Only Goal, (Munich: Prestel, 1991), p. 193.
57) Christina Lodder, op. cit., p. 149.
58) Ibid., pp. 149-151.
59) Whitney Chadwick, op. cit., p. 259.
60) Alexander Lavrentiev, Stepanova, (Massachusettes: MIT Press, 1988), p. 79.
61) 조윤경, op. cit., p. 64. 

3.리우포브 포포바(LiubovPopova)

1923년 포포바는 “The Dress of Today is the Industrial Dress”에서 ‘의상을 도구가 아닌 기능’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녀는 ‘한 때 미적 감각의 심리적 표현이었던 패션이 이제는 노동과 사회생활에 적합한 의상으로 대체되어야 하며, 이런 형태의 의상들은 기능성을 강조한 것으로, 실제 생활에서는 예술작품으로서의 충분한 가치나 특징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62). 따라서 포포바는 직물산업을 전통적인 회화로 변용시키는 도전으로 여겼으며, 공장에서 행해지는 자신들의 작업이 그들의 새로운 사회를 위해 유용하게 이용되길 원했다. 그녀는 직접 대량 생산을 위한 제품을 디자인하는 예술가로서 제일 면직물 공장에서 일했으며, ‘예술을 생산 속으로’라는 이념을 실제 자신의 작품 활동에 적용하여, 완벽하게 생산 공정에 참여한 구성주의자였다. 포포바는 단순히 전시회나 박물관에 전시되기 위한 예술활동에 반대하였으며, 순수 예술의 미학적 세계가 주는 기쁨보다 직물디자인에 더욱 큰 매력을 느꼈다. 그녀는 전통적인 식물과 꽃무늬를 기하학적인 형태의 새로운 디자인으로 대체하는 것을 구성주의 원칙에 따라 의복의 생산을 합리화하는 본질적 측면이라 여겼다63). 이에 따라 그들이 생산한 직물디자인은 유클리드 기하학 형태의 딱딱한 조합을 보인다. 예술 형태의 엄격한 절약으로 나타나는 이런 디자인은 흰색이나 검정색의 한 두 가지 제한된 색채와 형태를 지니고 있다. 포포바는 패턴의 이동, 리듬의 교란 등을 도입하여 단순한 실체를 반복, 상호전개해서 복잡한 직물디자인의 패턴도 생산해냈다(그림 28). 이런 디자인들은 구조의 색과 서로 침투하는 면의 탐구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런 요소들은 그의 건축적 공간구성의 예술적 탐구에서 이끌어낸 것이다. 의상의 문제를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하려는 포포바의 의도는 그녀의 직물에 미리 복사된 기하학적인 패턴을 의상디자인에 직접 이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 결과,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의상들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은 생산의상을 위한 엄격한 기준을 실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식적인 우아함이 다소 눈에 띈다. 이런 정해진 목표에서의 이탈은 구성주의 사상을 실행으로 옮기는 변화의 시기아래 그 사상이 어떻게 가감되었는가 하는 변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의상디자인들은 실제의 산업생산조건 내에서 직물디자인과 의상디자인을 통합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포포바는 소비에트 러시아 역사에서 전혀 새로운 직물 디자인을 소개하였고, 그들의 디자인은 ‘최초의 소비에트 패션’이라 알려졌다. 대체로 동시대에 많은 기하학적직물과 장식이 폴 푸와레(Paul Poiret), 에르떼(Erte)나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ey)와 같은 디자이너들에 의해 표현되었다. 이 두 가지 사이의 차이점은 프랑스 디자이너들의 작품은 대중성이 결여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소수의 엘리트 계층을 위한 디자인이었으며, 당시 유행 사조인 아르데코(Art Deco) 스타일을 표방한 것이었다. 그러나 포포바는 소수의 엘리트들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의 기호를 충족시키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표현한 기하학적 스타일은 이미 구식이 되어 버린 식물이나 꽃과 같은 전통적인 모티브를 대신하며, 당시의 경제 상황에 적합한 대량 생산을 위해 디자인된 것이다. 그러나 포포바는 그녀의 화가로서의 경력을 의상디자인에 적용시켰으며, 평면적 속성의 다양하고 기하학적인 모티브를 기본으로 한 직물디자인을 제시하였다. 즉, 단순하며 간결하며, 쉽게 대량 생산이 가능한 작품들을 디자인하였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기하학적인 형태와 리듬을 느낄 수 있도록 색의 병치혼합을 통해 2차원적인 장식의 개념을 새롭게 표현하였다. 포포바의 직물디자인은 기하학적인 선이 혼합되고 색채의 대비가 뚜렷하며, 여러겹의 격자무늬 선들은 귀족스럽고 풍부한 상상력과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그림 28). 기하학적인 회화의 기본 요소들을 직물디자인으로 전환시키는 동안에, 포포바는 구성적, 명료함을 강조하였고, 이전에 강조되던 장식을 디자인에서 제외시켰다. 당시에 이러한 작품들은 원, 지그재그 선, 비연속적인 부채꼴 등의 다양한 기하학적 선들과 형태들의 혼합으로 기하학적인 추상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그녀의 초기 직물 디자인에서는 스트라이프와 체크무늬 등 규칙적이고 직선적인 디자인이 많았으며, 점차 여러 디자인으로 발전되면서 선과 색상의 전환에서 비롯되는 리듬감을 더욱 복합적으로 표현하였다(그림 29). 포포바의 기하학적 직물디자인은 직물 디자인에서 밝고 우아하며 가벼운 구성의 리듬과 중간 색조가 많이 사용되었으며, 전체적으로 구성적인 부분이 많다. 그녀는 자신의 최종 목표를 직물디자인에 두었다. 포포바는 1917년 말레비치와 함께 절대주의 회화에 참여했었으며, 그녀의 혁신적인 기술을 실용적인 방법으로 적용시키려 하였으며, 순수회화를 활용한 디자인을 많이 하였다. 그녀의 이러한 경험은 직조와 직물에 대한 인식을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포포바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직물로 가벼운 여성용 드레스를 만드는 데 더욱 관심을 가졌다64). 그녀의 의상디지인은 다른 구성주의 디자인에 비해 율동감과 리듬감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드레스들은 구성주의적 스타일과 다르게 패셔너블하며 프로레타리안이 대상이 아닌 부르주아를 대상으로 하며,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다.〈그림 29〉에서 보여지듯이 그녀의 디자인은 대부분 허리아래 낮게 걸친 로우 웨이스트 형태의 원피스 드레스에 가벼운 플리츠나 개더가 잡힌 형태였다. 칼라나 네크라인은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큰 패턴이 의상의 표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녀는 헐렁하게 잡힌 플리츠와 길고 하늘거리는 원피스로 구성된 디자인을 가장 선호하였으며, 직물의 무늬가 드레스 위에 적절하게 배치되는 것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그림 30). 그녀의 의상은 조각적, 건축적 현상이기보다는 공간적 건축적이었다65). 그녀는 드레스의 구성상 특징과 장식의 연결에 있어 비율과 크기의 균형을 맞추고 인체와 전체가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였고, 형태 그리고 색상, 재질 및 움직임과 형을 구성하는 요소들과의 상호 연관성을 중시하였다(그림 31)66). 뿐만 아니라 포포바는 옷감의 잔여분을 모아 단색의 의상에 부분적으로 스트라이프와 같은 패턴을 삽입하기도 하였다(그림 32). 이렇듯 패턴이 있는 직물과 무직의 혼합은 포포바 만의 독특한 디자인 형태이다(그림 31, 32)67). 포포바의 디자인을 분석해 보면 기하학적인 배열과 흑백의 사용, 가벼운 그래픽효과 등 모든 현상들이 직물과 의상디자인 두 분야에서 구성주의의 미학적 이념들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그림 28> Fabric Design, 1923-24, L. Popova 출처: M. Tupitsyn, Rodchenko & Popova, (London: Tate Modern, 2009)

<그림 29> Dress Design, 1923-24, L. Popova 출처: M. Tupitsyn, Rodchenko & Popova, (London: Tate Modern, 2009)

<그림 30> Dress Design, 1923-24, L. Popova 출처: M. Tupitsyn, Rodchenko & Popova, (London: Tate Modern, 2009)

<그림 31> Dress Design, 1923-24, L. Popova 출처: M. Tupitsyn, Rodchenko & Popova, (London: Tate Modern, 2009)

<그림 32> Dress Design, 1923-24, L. Popova 출처: M. Tupitsyn, Rodchenko & Popova, (London: Tate Modern, 2009)

62) 조윤경, op. cit., p. 260.
63) Christina Lodder, op. cit., p. 151.
64) Margarita Tupitsyn, Rodchenko & Popova: Defining Constructivism, (London: Tate Publisher, 2009), pp. 150-153.
65) Dmitri Vladimirovich, Popova, (New York: Harry N. Abrams, 1990), p. 301.
66) Ibid., p. 370.
67) 조윤경, op. cit., pp. 65-68 

<표 3> 미래주의와 구성주의 예술의상 디자인의 특징

Ⅴ. 결 론

미래주의 예술의상 디자인은 새로운 진보의 개념을 의상에 표현하였으며, 그들의 궁극적인 미의 근원은 역동성(Dynamism)으로 미래주의자들의 기반인 힘에 관한 개념을 의복에 도입하여, 비대칭적 재단이나 밝고 강렬한 색상 등을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의상 디자인을 완성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구성주의 예술가들의 예술의상 디자인들은 텍스타일 디자인의 발전을 가져오게 된다. 러시아 전위 예술 의상의 특징은 구성주의자들이 직접섬유공장에서 작업 공정에 참여함으로써 텍스타일의 발전과 의복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발전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러시아 예술가들이 파리에 정착하여 패션 산업에 참여함으로써, 20세기 초 전위 예술 의상디자인의 발전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먼저 미래주의 예술의상 디자인의 특징은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미래주의자들에게 의상이란 정적인 개념이 제거된 예술적 대상과 같은 존재로, 의복 착용시 움직임이 있으며, 적극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오르피즘(Orphisme) 미학에 영향을 주었다. 둘째, 신사복에 있어 발라는 시각적 교차점을 이용한 좌우대칭을 폐지하고, 생기 있고 역학적인 남성복 디자인을 제시하였고, 1913년부터는 의복의 기하학적이고 공간적인 분할로 지극히 창의적인 시각적 패턴을 창조하였다. 셋째, 자동 연속촬영법의 영향인 망막상의 잔상작용으로 인한 리드미컬하고 점진적인 반복의 다이나미즘은 민첩성을 나타내었다.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조형성을 강조하는 인체와 관계된 조형 창작의상으로 옵 아트(Optical Art)와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선구자로서 예술사적 의의를 가진다. 넷째, 미래주의 예술가들은 의상에 있어 가변성을 강조하였다. 재킷, 코트, 바지, 셔츠, 타이 구두에 관한 관점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실제와 가상의 운동을 가속화하는 의상기계(Clothing M achines)를 창조하는 것에 있었다. 다섯째, 미래주의 예술가들의 의상에 대한 관심은 재단법과 색채에 있어 표현기법의 다양성을 강조하였다. 의상이 유행에 따라 생성되고 소멸되는 ‘신속한 본질(Fast Substance)’을 인정하였으며, 빠른 사회 변화와 미적 기준의 반영을 가능케 하였다. 이러한 미래주의적 경향은 미래주의 복식 선언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기존의 관습에 따르지 않는 안티 패션디자인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구성주의 예술의상 디자인에 대하여 살펴보면 1920년대 소비에트 의상은 구성주의 회화의 특징인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형태, 역동성과 운동감을 그대로 공유하였다. 이러한 회화의 특징이 의상디자인에서는 기하학적인 형태와 건축적 이미지의 사용, 신체의 왜곡과 변형으로 표현되었으며, 직물 디자인에서는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역동성이 나타났다. 이러한 구성주의 예술의상 디자인의 특징은 첫째, 대중성을 들 수 있다. 산업과 예술의 결합으로, 사회적 이념을 대중들에게 선동하고자 표출하였던 이념은 더 이상 의상이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을 위해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대중적인 의상으로 스테파노바와 포포바는 이러한 대중을 위한 의상디자인을 하였다. 둘째, 공간성이다. 기하학적 형태와 구조의 결합으로 새로운 형태의 공간 조형성을 이룬다. 공간 효과는 각진 어깨와 구조로 어깨를 강조한 T자형의 실루엣이나 소매를 과장한 X자형 실루엣을 이룬다. 셋째는 구조성이다. 원, 삼각형, 사각형과 같은 도형의 기하학적 특징들을 변형시켜 형태와 공간의 조형성을 구조적이며 입체적인 형태로 표현하였다. 특히 로드첸코의 작업복인 Prozodezhda(Working Clothing)의 형태는 기하학적인 모티브를 평면적 구조의 형태로 변화시켰으며, 직선적인 형태의 포켓을 반복하거나, 규칙적으로 휘어지거나 접히는 선에서 구조적인 스타일을 볼 수 있다. 넷째, 색채 대비효과이다. 구성주의자들은 기하학적 형태와 색채 대비의 조화를 통해서만 완전한 형태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색채는 형과의 조화와 대비적인 관계로 이루어지며, 주제나 내용에 따라 단순화된 색채의 함축성을 통해 잠재된 공간을 실체화 시킨다. 다섯째는 역동성이다. 공간 내에서 물체의 동작에 따라 움직이는 비대칭적 질서를 표현한다. 포포바의 의상디자인에 나타난 역동성은 비대칭적인 실루엣과 비대칭적인 레이어드, 비대칭적인 디테일을 통해 역동적인 리듬감을 나타낸다. 1925년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은 파리에서 열린 ‘국제장식미술산업박람회’에서 다른 유럽 국가들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만나게 되었다. 러시아 구성주의 예술가들은 역기서 텍스타일 디자인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탈리아 예술가들은 자국에서 많은 활동을 한 반면, 수많은 러시아 망명자들은 파리에 정착하여 패션 산업을 발전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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