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Introduction
스키타이인은 기원전 8세기에서 2세기까지 흑해 연안 지역부터 남 시베리아 지역 까지 광활한 유라시아 초원지대에 살았던 이란계 유목종족이다. 구체적으로는 여러 종족군이 있으나, 초원지대에 살았던 비슷한 생활방 식 때문에 이 종족들 사이에서는 비슷한 문화가 형성 되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스키타이 복식이다. 스 키타이의 각 종족군 하나하나는 삶의 방식과 관습, 언 어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이들이 착용한 의복은 그 형태가 거의 유사하여 헤로도투스는 이를 ‘스키타이식’이라고 명명하며 광활한 지역에 살았던 여러 유목 종족군들의 문화적 유사성을 설명하고 있 다(Parzinger, 2004). 헤로도투스가 설명하는 문화적 유사성이 여러 종족군으로 구성된 스키타이계 종족들 의 머리형태와 수염에는 나타나지 않는가를 구명하기 위해 스키타이인의 머리형태와 수염을 분석하려고 한 다. 머리형태와 수염은 복식의 한 파트로 이에 대한 연구는 복식 문화를 폭 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사료된다.
스키타이 복식 연구는 ‘한국 고대 복식의 스키타이 복식 유래설’과 관련되어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테마 이며, 요즘 학자들 사이에서 찬반이 갈리고 있다. 이 견해는 1947년 이여성의 『조선복식고』에서 주장된 이 래 복식학계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통례로 받아들여 지고 있었으나, 요즘 한국 고대 역사에 대한 활발한 발굴과 연구로 한국의 고대 역사가 새롭게 조명되면 서 한국 고대 복식에 대한 폭 넓은 연구도 이루어지 며, 위 견해에 대한 반대 견해(Park, 2002, 2004)도 제 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스키타이 복 식 연구를 위해서는 심층 있는 자료의 폭 넓은 분석이 필요한데, 본 연구는 이를 위해 좀 더 구체적인 자료 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고대에서 머리형태와 수염은 종족에 따라 달라지 며, 종족 안에서도 신분, 계급, 성별에 의해 달라지는 사회적 산물이므로 머리형태에 대한 연구는 그 종족 의 문화와 종족군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대 여러 종족들에서 머리털에 대한 의미는 현세 의 삶 또는 내세의 삶과 연결되는 많은 신비로운 의식 을 통하여 부여되고 있었다. 스키타이인들도 머리털 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머리털 을 조심스레 보존하여 상투 제물로 무덤에 수장시키 게 했으며, 또 타인의 머리털을 간직하기도 했다. 심 지어는 적들의 두피를 벗겨 허리에 차고 다니기도 하 였는데, 이런 스키타이인들의 관습은 저 세상의 권력 으로부터 영혼을 보호한다고 믿는 그들의 우주관의 산물이었다(Rolle, 1991). 머리털에 대한 스키타이인 들의 이런 의식은 머리형태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되기에 스키타이인의 머리형태에 대한 연구는 스 키타이인들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본 연구는 고대 사회에서 머리형태와 수염이 종족 군에 의해 달라진다는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스키타 이인들의 머리형태와 수염을 분석하여 스키타이인들 의 문화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 고, 더 나아가서는 이 연구를 토대로 주변의 다른 종 족의 머리형태와 수염을 연구하고 비교 분석하여 스 키타이인들의 종족군의 정체를 밝히려는 연구에 이용 하고, 궁극적으로는 한국 고대 복식과 스키타이 복식 과의 관계 연구에 폭 넓은 기초 자료로 이용하기 위함 이다.
스키타이인은 우리나라 고대 종족과는 뿌리가 다 른 종족이나, 스키타이인의 전개형 착수의와 폭이 좁 은 바지의 형제는 한국 고대 의복의 원형이라는 견해 가 복식학계에서 통설로 받아들여져 있는 상황이다. 복식의 형제와 요소는 종족에 의해 결정되는 요인이 다. 서로 다른 종족이 비슷한 형제의 의복을 착용했다 고 그 하나를 다른 하나의 원류로 볼 수 있는지에 대 한 답을 얻기 위하여 스키타이 종족군의 문화적 특성 및 복식 스타일을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스키타이인의 머리형태와 수염의 분석을 시도하였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스키타이 머리형태와 수염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머리형태와 수염에 대한 연구는 복식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이 루어진 스키타이 복식에 대한 선행 연구를 조사하였 는데, 스키타이 관모와 장신구를 주로 분석한 Kim (1992, 1994, 1999, 2000a, 2000b, 2002, 2003, 2004, 2006, 2007, 2008)의 연구가 있었다. 스키타이 의복에 대한 연구로는 Yi-Chang(2015, 2016a, 2016b)의 연구 가 있었는데, 이 연구들은 스키타인을 흑해 북쪽 스키 타이인, 페르시아 왕조에 묘사된 스키타이인 그리고 알타이 파지리크 스키타이인으로 나누어 의복의 유형 을 분석하였다. 이외에도 스키타이 복식의 한 요소인 선(襈)을 분석한 Park(1992)의 연구 등이 있었다. 국 내의 선행연구는 스키타이인의 장신구와 의복에 관한 연구만 진행되어 스키타이인의 복식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머리형태는 복식의 한 부분이고, 앞 에서도 언급했듯이 종족에 따라 달라지는 특성이 있 으므로 스키타이인의 머리형태에 대한 본 연구는 스 키타이의 복식 문화를 폭 넓게 이해하는데 기초자료 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국외의 선행연구로는 스키타 이 머리형태와 수염에 대한 Rolle(1991)의 연구가 조 사 되었는데, Rolle(1991)는 스키타이 머리형태가 언 급된 고대 문헌을 인용하며 스키타이 쿠르간에서 발 굴된 유물에 묘사된 형상들을 분석하여 머리형태를 재현하였다.
연구방법으로는 문헌연구와 유물분석을 병행하였 다. 스키타이인들은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그들의 언 어로 자신들의 발자취를 남겨놓지 않았고, 스키타이 인들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 스키타이 연구는 대부 분 유물 분석에 의존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흑해 지역 스키타이인들의 쿠르간 중에서 스키타이 문화를 잘 대변해주는 대표적 쿠르간 8개(Kul-Oba, Solocha, Certomlyk, Tolstaja Mogila, Gajmanova Mogila, Perederijewa Mogila, Aksjutency, Castye)를 선정하여 그곳에서 발굴된 유물 중 스키타이인 형상이 묘사되 어 머리형태와 수염모양을 관찰할 수 있는 유물 13개 를 분석하였다. 유물 사진은 1차적으로 유물의 전체 사진을 1개씩 제시하고, 설명에 따라 이해를 높이기 위해 머리형태와 수염 모양의 디테일 사진을 제시하 였다. 유물 분석을 위한 자료는 연구자가 연구를 위해 방문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에레 미타쥐(Eremitage) 박물관에서 직접 촬영한 자료와 에 레미타쥐 박물관에서 담당자들이 촬영한 화보들을 수 집하였고, 또 유럽에서 전시되었던 전시 카탈로그에 서 해당 유물을 선별하여 비교 분석하였다. 러시아 상 트페테르부르크 에레미타쥐 박물관은 스키타이 유물 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이 곳에서 수집한 직접자료들은 스키타이 연구에 확실한 실증적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연구범위는 흑해 북쪽지역 스키타이인들의 남자 머리형태와 수염모양의 분석에 한정하였다. 광활한 지역에 살며 언어와 문화적인 유사성을 보였던 스키 타이인들이지만 지역적으로는 영위했던 삶의 방식과 관습들은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적 배경과 특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스키타이인들 을 지역별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1차 적 연구로는 흑해 북쪽 지역 스키타이인들의 머리형 태를 분석하고, 2차적으로 중앙아시아와 알타이 파지 리크 스키타이인들의 머리형태를 분석하여 두 지역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려고 하는데, 본 연구는 이를 위한 1차적 연구이다. 지금까지는 흑해 지역 스키타이인들 에 대한 발굴이 제일 많이 이루어져 있어 흑해 지역 스키타이인들의 연구는 스키타이 연구에 종합적인 큰 틀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연구의 범위를 남자 머리형 태와 수염으로 한정한 이유는, 본 연구를 ‘고대 한국 복식의 스키타이 복식 유래설’을 밝히려는데 기초자 료로 사용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한국 고대 복식의 원 형인 바지 저고리를 착용한 남자 스키타이인으로 분 석의 범위를 한정하였다.
연구내용은 스키타이인의 머리형태와 수염을 유형 별로 정리하고, 유물에 묘사된 형상들의 머리형태를 신분별, 지역별, 시기별로 분류하여 분석하였고, 그 특징들을 따로 정리하였다. 유물 분석에 있어서는 신 분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유물에 묘사된 에피소드 를 신분별로 설명하며 분석하였다.
본 연구에서 사용한 머리형태라는 단어는 머리의 생 물학적 형태가 아닌 헤어스타일을 의미함을 밝혀둔다.
Ⅱ. Historical Background
스키타이인은 유라시아 지역에 살았던 이란계 유 목종족으로 여러 종족군이 있다. 이중 흑해 북쪽지 역에 살았던 스키타이인들은 기원전 8세기경 볼가 (Wolga)강 하류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흑해 북쪽 지 역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Schmockel, 1982; as cited in Yi-Chang, 2015). 기원전 7세기경 소아시아에 살고 있던 그리스인들은 흑해 북쪽 지역으로 이주하 여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스키타이인들을 만나면서 정 치적․문화적으로 큰 변동을 겪었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인들은 스키타이인들 에게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7~8세기 그 리스 시인인 헤시오드(Hesiod)가 그리스의 역사책에 스키타이인을 ‘말 젖을 짜는 사람들(mare milker, Stutenmelker)’로 언급하면서 스키타이인은 역사에 최 초로 등장한다. 그 후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 BC Ca. 484~425)가 그의 역사 서 IV에서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 다리우스 대왕 의 스키타이 정벌을 서술하면서 스키타이인들의 영 토와 그들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as cited in Parzinger, 2007).
흑해 북쪽 지역에 정착했던 스키타이인들의 몇몇 그룹은 그들보다 먼저 흑해 지역을 거쳐 소아시아로 이주했던 킴메르(Cimmerian)인을 쫓아 카프카스 산 맥(the Caucasian)을 넘어 소아시아 지역으로 이주하 여 정착하여 살았다. 이 당시 스키타이인들의 영향력 은 팔레스티나와 이집트까지 미쳤다. 소아시아의 스 키타이인들은 아시리아의 역사책에 언급되었으며, 우 라르투(Urartu) 지역의 유적에 의하여 그들의 발자취 는 알려지고 있다(Nagel, 1982; Parzinger, 2007).
기원전 7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소아시아에서 발 흥한 신흥세력인 메디아에 밀려 스키타이인들은 그들 의 고향인 흑해 북쪽 지역으로 되돌아가 제 2의 흑해 시대를 열었다. 기원전 600년경 흑해로 돌아간 스키타 이인들은 농사를 지으며 정착했고, 이곳에 이미 살고 있던 그리스인들과 활발한 무역을 전개하며, 스키타이- 그리스 문화를 창출하였다(Yi-Chang, 2015). 기원전 5세기 초, 약 438/437년에 크림(Crim)반도를 중심으로 보스포 제국(Bosporan kingdom)을 설립하기도 하며, 흑해 북쪽으로 다시 이주한 스키타이인들은 정치적 문화적으로 성숙기를 마련하였고, 기원전 4세기 중반 에 전성기를 이루었다(Dally, 2007). 흑해 북쪽 지역의 쿠르간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조성된 것들이다(Fig. 1).
스키타이인들의 문화적 배경은 다음과 같다. 스키 타이인들은 목초지를 따라 그들의 삶의 양식이 되고 아울러 부의 척도가 되는 가축을 먹이며 주기적으로 <Fig. 1> Distribution of royal burial of the Black Sea region. From Menghin, Parzinger, Nagler, & Nawroth. (2007). p. 236. 이동하는 삶을 살았던 유목종족이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유목 종족들을 만나면 자기 씨족을 보호해야 되었기 때문에 스키타이 사회는 무장화된 사회였고, 기사, 전사들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신분이었다 (Parzinger, 2004). 지역에 따라 산림 초원 지대와 강 을 따라 기름진 땅에서는 곡물을 재배하며 농경생활 을 영위한 종족들도 있었다. 스키타이의 쿠르간은 스 키타이의 지배계급들의 부를 과시하며 삶의 모습을 전하고 있는데, 특징적인 것은 옷 위에 붙였던 수많은 금장식 조각이다(Alekseev, 2007). 얇은 금 장식조각 들은 형상적인 묘사가 특징인데, 그 중의 대부분은 동 물양식의 형상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동물과 같이 살 았던 스키타이인들이 만들어 내었던 형상적 특징이 다. 그리스 문화와 접촉한 후로는 그리스의 모티브나 그리스 신화의 형상들도 나타나고 있어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는 스키타이 지배계급의 오더를 받아 그리스의 장인들이 만든 장식조각으로 설명된다(Alekseev, 2007; Boardman, 1993; Parzinger, 2007). 활, 칼, 칼집뿐 아니라 아울러 착용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 목걸이, 팔찌, 가슴장식 등도 발굴되어 그들의 삶을 짐작케 하고 있다. 이동 생활을 하며 마차에서 생활하거나 천막을 치며 살았 던 스키타이인들은 그리스 문화와 접촉한 후에 그리 스 식의 신전을 모방하여 짖기 시작하면서 농경생활 로 전환한 흔적들이 스키타이 신전에서 관찰되고 있 다(Parzinger, 2004).
Ⅲ. Results and Discussion
1. Analysis of hairstyle of the Scythians
1) Classification of type of hairstyle
(1) Straight hair
생머리는 머리를 자연스럽게 길러 내려뜨린 모양 으로 길이는 단발 길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길이, 등 뒤까지 내려오는 길이 등이 있으며, 앞머리가 이마를 덮는 스타일과 덮지 않는 스타일로 구분된다.
① A style with no bangs
앞머리가 이마를 덮지 않는 스타일은 전체적으로 머리가 자연스럽게 뒤로 젖혀져 길게 내려뜨려진 형 인데, 앞머리가 앞이마 위에서 약간 솟아 올려진 형태 로 앞이마를 가리지 않는 스타일이다. 이는 앞머리가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나타나는 형태라고 생각되는데, 그 구체적인 형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Long straight hair
긴 머리 형태는 등 뒤까지 내려오는 형태로 왕, 왕 족, 일반전사,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인 등 모든 신분 에서 나타나고 있다. 왕, 왕족에서 나타나는 형태는 흑해지역 쿠르간의 유물 중 기원전 4세기 후반의 쿨- 오바(Kul-Oba) 제기(祭器) 항아리(Fig. 2)와 기원전 4 세기의 카스테(Chastye) 제기(Fig. 3), 역시 기원전 4 세기로 편년되는 프레데리제바 모길라(Prederijewa Mogila) 헬멧(Fig. 4) 등에서 관찰된다.
쿨-오바 제기 항아리에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Herodotus)가 설명하는 스키타 이인의 기원에 대한 신화(헤로도투스 역사서 IV, 9~10), 스키타이의 왕 헤라클레(Heracle)의 막내아들 스키트스(Scythes)가 아버지의 활줄을 묶는 장면과 그 옆에 스키트스의 두 형들이 치료받는 장면이 묘사되 어 있다(Aleceyev, 2012; Simpson & Pankova, 2017). 헤로도투스는, 스키타이 왕족에서는 아버지의 활을 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가 적합한 왕의 계승자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어(Grenet, 2012) 아버지의 활을 묶는 스키트스가 왕위 계승자임을 암시하는 장면이 다. 여기에서 왕위 계승자와 그의 형인 일반 왕족은 모두 등 뒤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를 하고 있으며, 앞머리는 앞이마 위에 약간 솟아 올라있는 형태이다 (Parzinger, 2004; Fig. 5).
쿨오바 제기가 발굴된 쿨오바 지역은 앞에서 설명 한 보스포 제국의 중심지였다. 쿨오바 쿠르간은 기원 전 약 330년경에 조성된 쿠르간으로 이곳의 발굴품에 서는 스키타이적 그리스적 요소가 혼합되어 나타나고 있는데(Dally, 2007), 쿨오바 제기의 제작기법이나 문 양들은 그리스적 요소인 반면, 여기에 묘사된 형상들 은 머리 모양과 복장에서 전형적인 스키타이인이다.
쿨오바 제기에 묘사된 것과 같은 주제의 신화가 흑해 북쪽 연안지방이 아닌 흑해 북쪽 내륙지방의 카스테(Chastye) 제기에도 묘사되어 있다. 헤라클레스 (Heracles)와 타르기타오스(Targitaos)에 대한 신화인데 (헤로도투스 역사서 4장 8~10), 앞에서 설명한 스키타 이의 관습대로 아버지는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아버 지의 활을 다루는 세 아들을 시험한다. 위의 두 아들은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고 막내가 시험에 통과하여 막 내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장면이다(Alekseev, 2012; Firsov & Zuravlev, 2007). 여기에 묘사된 왕과 막내 아들을 포함한 세 아들은 모두 등 뒤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앞머리는 앞이마 위에서 솟아오른 형태(Fig. 6)로 쿨오바의 왕과 왕족의 머리형태와 같은 스타일 이다.
쿨오바 제기와 카스테 제기에 같은 내용의 전설이 묘사되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카스테는 내륙지방 돈(Don)강의 상류지역에 위치한 곳(Simpson & Panlova, 2017)이고, 쿨오바는 크림반도(Crimean peninsula) 오른쪽에 위치하여 거리적으로는 멀리 떨 어져 있으나, 두 지역이 같은 신화를 공유했다는 사실 은 이 두 지역에 살았던 종족이 같은 종족임을 말해주 는 요소라 할 수 있으며, 같은 종족이라는 사실이 머 리형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왕과 왕족들의 머리형태는 프레데리제바 모길라 헬멧에 묘사된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확인된다. 이 헬멧에는 스키타이인들이 소아시아에서의 생활을 마 치고 흑해 지역으로 귀환하여 흑해 지역에 남아있던 스키타이인과 소아시아에서 돌아온 스키타이인들이 싸우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Seipel, 2009), 나이든 족 장이나 젊은 스키타이인은 모두 등 뒤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앞머리는 솟아 올려져 있는 형태로 앞의 두 제기에서 살펴본 왕족들의 머리형태와 같은 형태 이다. 여기에 묘사된 젊은 스키타이인(Fig. 7)은 화려한 장식선의 옷을 착용하고 있어 스키타이의 젊은 족장 으로 확인되고 있는데(Yi-Chang, 2015), 카스테 제기 막내아들의 머리처럼 긴 머리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 므로 스키타이 왕족들의 머리 길이는 나이에 따라 달 라지지 않고 신분에 의해 결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긴 머리 형태는 왕과 왕족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전사에서도 관찰된다. 기원전 4세기 초 로 편년되는 솔로차 쿠르간의 옷 장식 플라그(plaque) 의 전사의 형상(Fig. 8 and 9)과 내륙 지방 악스주텐시 (Aksjutency) 쿠르간의 옷 장식 플라그에 묘사된 전사 의 형상(Fig. 10)은 앞에서 살펴본 왕과 왕족의 머리 형태와 같이 등 뒤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형태를 하고 있다. 스키타이 사회에서 전사는 일반적으로 평민계
급에 속하는 일반 전사와 지배계급에 속하는 전사귀족 (warrior nobility)으로 구분되며, 전사귀족들의 부와 화려한 삶은 이들의 거대한 무덤과 거기에서 발굴된 유물인 금, 은, 보석류와 무기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Parzinger, 2004). <Fig. 10>의 전사는 선 장식이 뚜렷 한 웃옷을 착용하고 있고, 허리에는 사각형의 조각이 이어진 허리띠를 착용하고 있다. 이는 가죽으로 만든 띠가 아닌 금이나 은 혹은 철판 조각을 사각으로 만들 어 이은 것으로 흔히 지배계급들이 착용했던 허리띠 를 연상케 한다. 왼손에는 리튼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 는 왕홀(scepter) 혹은 전투용 도끼를 들고 있는데, 이 는 실제 싸움용 도끼가 아닌 신분을 상징하는 상징물 이다(Firsov & Zuravlev, 2007). 이 전사가 착용한 웃 옷, 허리띠 또 들고 있는 부속물에서 이 전사는 일반 전사가 아닌 전사귀족임을 알 수 있다. 전사귀족이 왕 족과 유사한 길이의 머리형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사귀족이 왕족처럼 인정받는 신분이었음을 외모에 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스키타이의 호전적인 사회(Parzinger, 2007)의 특징적 요소로 전 사들의 사회적 지위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반면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는 기원전 4세기 중엽으로 편년되는 쿨오바의 기사 형상(Fig. 11)과 체르 톰릭(Certomlyk) 쿠르간 암포라(Amphora)에 묘사된 생 업에 종사하는 일반 스키타이인들(Fig. 12)에서 관찰되 어 신분에 의해 머리의 길이는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체르톰릭 쿠르간의 스키타이인의 앞머리 형태는 몇 가닥의 머리를 말아 고정시킨 형태로(Fig. 13) 이 는 앞에서 서술한 솟아오른 앞머리 형태의 구체적인 형태로 추측된다. 이상에서 자연스럽게 기른 긴 생머 리의 형태가 길이는 신분에 의해 차이가 나타나나, 스 키타이인들의 모든 계층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머리 형태임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스키타이인들이 머리털을 존귀하게 여기는 관습에서 나온 특징으로 사료된다.
Bobbed hair
단발형 머리형태는 솔로차(Solocha) 금 빗(Fig. 14 and 15)의 왕족과 솔로차 제기(Fig. 16 and 17)의 전사 그리고 앞에서 살펴본 체르톰릭 암포라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스키타이인에서 관찰된다. 솔로차의 금 빗 에는 스키타이의 신화, 스키타이 왕 아리아파이테스 (Ariapeithes)의 세 아들들에 대한 싸움이 묘사되어 있 다. 중앙의 말 탄 인물이 옥타마사데스(Octamasades) 이고, 그 뒤에 서 있는 형상이 아마도 옥타마사데스의 형으로 추정되는 오리쿠스(Oricus)이며, 그 앞에서 대적 하는 인물이 옥타마사데스의 또 다른 형제 스킬라스 (Scylas)인데, 옥타마사데스는 왕이 되기 위해 그의 형 제 스킬라스를 죽인다는 스키타이의 신화를 묘사한 것이다(Alekseev, 2007; Alekseev, 2012). 이 장면에서 는 세 왕족의 머리형태가 관찰된다. 그 중 오리쿠스의 머리는 단발형태의 생머리이며, 그의 앞머리는 이마 를 덮지 않고 이마 위에서 약간 솟아 올려져 있는 형 태인데(Fig. 18), 이는 앞에서 살펴본 체르톰릭 암포라 스키타이인의 앞머리처럼 말아 올려 고정시킨 형태로 추측된다. 이런 단발형의 생머리는 솔로차 쿠르간의 젊은 전사(Fig. 19)와 체르톰릭 쿠르간 암포라에서 생 업에 종사하는 일반 스키타이인들(Fig. 12 and 20)에 서도 관찰되고 있어 단발형의 생머리는 왕족만의 머 리형태가 아니고 앞에서 살펴본 긴 머리의 경우와 같 이 왕족, 전사, 일반 스키타이인 등 모든 신분에서 나 타나는 머리형태임이 확인되었다.
솔로차 쿠르간과 체르톰릭 쿠르간이 발굴된 지역 은 드네프르 강 어귀로 이 지역은 앞에서 설명한 소아 시아에서 이주한 그리스인들이 정착했던 그리스의 식 민지역이었다. 이곳에서 그리스인들은 스키타이인들 과 섞이며 그레코-스키타이 문화를 만들어냈던 곳이 었다. 이런 문화적 요소는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에서 확인되고 있는데, 이 중 한 요소가 솔로차 금 빗 중앙 에 묘사된 왕족 옥타마사데스의 그리스 헬멧이다. 이 런 문화적 맥락에서 금 빗에 묘사된 스키타이인들의 형상도 그리스인들의 짧은 머리의 영향을 받아 긴 머 리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스키타이인들의 머리 길 이는 단발머리 형태로 짧아졌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에서는 노예와 운동선수들이 짧 은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짧은 머리 는 자유인의 상징이 되었고 크게 유행했었다(Koch- Mertens, 2000). 이 현상이 그리스 문화가 스키타이에 유입이 되면서 스키타이 머리형태에도 영향을 준 것 으로 추측된다.
Straight hair with bangs
앞머리가 이마를 덮는 스타일은 앞머리가 가지런 히 앞으로 내려와 이마를 덮으며 말려들어간 형태이 다. 길이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형태와 등 뒤까지 내려 오는 긴 형태가 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는 기원 전 4세기 후반으로 편년되는 흑해 북쪽 가즈마노바 모길라(Gajmanova Mogila) 제기에 묘사된 나이든 족 장들(Charriere, 1971; Fig. 21 and 22)에서 확인된다. 그리고 긴 머리는 의형제 맹세를 서약하는 의식을 묘 사한 쿨오바의 장식조각(Fig. 23 and 24)에서 관찰된 다. 이 장식조각은 스키타이 사회에서 자주 행해지던 혈맹의식을 묘사한 것이다((Dally, 2007) 스키타이 사 회는 피를 나눈 혈연관계가 중요시되는 사회였기 때 문에 피를 나누는 의식이 자주 행해지곤 하였다고 헤 로도투스는 전하고 있다(Parzinger, 2004). 두 스키타 이인은 리튼(Rhyton)을 붙잡고 있는데, 리튼은 동물 의 머리나 혹은 동물의 뼈로 만든 잔(Charriere, 1971) 으로 유목민족들이 사용하던 도구였다. 앞에서 살펴 본 전사귀족인 지배계급에서도 관찰되었는데, 일반적 으로 지배계층에서 사용하던 도구로 알려져 있다. 긴 머리 형태는 기원전 4세기 중엽으로 편년되는 흑해 북쪽 톨스타자 모길라(Tostaja Mogila) 쿠르간에서 발 굴된 가슴장식(Pectoral)에 부조된 양 젖을 짜고 있는 젊은 스키타이인(Fig. 25 and 26)에서도 확인되어 이 머리형태 또한 신분에 구별 없이 또 연령에 관계없이 나타났던 스타일로 추정된다.
이상의 설명을 <Table 1>에서 정리하였다.
(2) Braided hair
땋은 머리형은 머리 위에서부터 머리 전체를 몇 가 닥씩 땋아 내려뜨린 머리형태로 기원전 4세기 중반 톨스타자 모길라 가슴장식(Fig. 27)에서 중앙에서 옷 을 꿰매는 남자(Seipel, 2009; Fig. 28 and 29)와 암포 라를 들고 있는 생업에 종사하는 젊은 스키타이인 (Fig. 30 and 31)에서 관찰된다.
이 가슴장식은 스키타이인들의 우주에 대한 상상 의 세계를 묘사한 것이다. 지구 내부의 세계, 별과 우 주의 세계,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진 세계 등 세 영역 으로 구분되어 표현하였는데, 스키타이인이 동물을 다루는 맨 윗부분의 장면은 인간과 동물이 어우러진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여기에 묘사된 동물들은 인간 이 키우는 가축을 묘사하여 스키타이인이 동물과 더 불어 사는 세계를 표현한 장면이다. 구체적으로는 봄 의 축제를 준비하는 스키타이인들의 삶의 모습을 실 증적으로 묘사한 장면이다(Seipel, 2009). 중앙에서 머 리띠를 맨 왕 혹은 족장의 파트너로 옷을 손질하고 있 는 남자는 얼굴 형태가 나이든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 다. 그러므로 이 머리형태는 나이든 사람과 앞에서 설 명한 생업에 종사하는 젊은 스키타이인들에서 관찰되 므로 나이에 관계없이 나타나는 머리형태로 생각된다. 롤레(Rolle)는 머리 위에서부터 몇 가닥씩 땋아 내려 뜨린 이 머리형태는 그리스인의 곱슬머리를 스키타이 식으로 모방한 모양이라고 설명하고 있어(Rolle, 1991) 이 또한 앞에서 설명한 흑해 북쪽 지역에서 나타난 그 레코-스키타이 문화현상의 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앞머리 형태이다. 이는 머리를 둥글게 말아서 이마 위를 장식한 머리 장식인데,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스키타이인에서 모두 관찰된다. 이 머 리형태는 앞의 생머리의 형태에서 살펴본 앞머리의 형태 즉, 앞머리를 말아 올려 고정시킨 형태를 약간 변형시킨 형태로 이해되며, 이런 앞머리 양식은 머리 의 형태에 관계없이 스키타이인 머리형태에서 보편적 으로 나타나는 특징적 요소임을 알 수 있다.
(3) Tied hair
묶은 머리는 생머리를 뒤통수에서 큰 묶음으로 묶 은 형태이다. 이 머리형태는 쿨오바 출토 금으로 만든 플라그 중 활을 쏘는 전사(Fig. 32 and 33)의 모습에 서 관찰된다. 이는 전사들의 움직임을 편하게 하기 위 한 머리형태로 생각되는데, 높은 머리와 뒤통수에서 묶는 머리는 전쟁에서 두려움을 주기 위한 수단이었 다는 고대 문헌의 서술도 있어(Germania 38, as cited in Rolle, 1991), 이 머리형태는 전사들의 움직임을 극 대화시키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상대방 을 제압하기 위한 심리에서 나온 머리형태라고도 추 측해 볼 수 있다.
땋은 머리와 묶은 머리의 설명은 <Table 2>에서 정 리하였다.
2) Characteristics of hairstyle of Scythians
(1) Characteristics of classification according to period, region and status
본 연구에서 분석한 유물들은 대략 기원전 4세기경 으로 편년되는 유물로써, 이 시기는 흑해 지역에서 그 레코-스키타이 문화가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였다. 따 라서 본 연구에서는 그레코-스키타이 문화의 절정을 이루었던 시기의 스키타이인들의 모습을 자세히 분석 하여 확실한 형태를 도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 면, 시기적인 면에서는 특정 시기만 분석이 가능하여 머리의 형태들을 시기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불가능하 기 때문에 이는 이 연구의 한계라고 생각된다. 그러 나, 스키타이 유물이 이 시기 이외에는 발굴이 많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여서 이는 본 연구만의 한계가 아 니고, 스키타이 연구에 있어서 자료가 갖는 총체적인 한계라고 생각된다.
지역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앞에서 설명한 쿠르간 이 발견된 지역은 드네프르 강 유역, 크림반도 지역 그리고 돈강 상류의 내륙지역 등으로 나뉜다. 크림 반 도의 쿨오바 쿠르간과 내륙지방의 악스주텐시와 카스 테 쿠르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드네프르 강 중간 지역과 하구에 치중되어 있다. 이 지역은 목초지가 발 달한 기름진 땅으로 스키타이인들의 초기 시대에 이 지역의 서쪽과 동쪽 지대(드네프르 강이 흘러들어가 는 Vorskla 지역)에서 이미 농경생활을 시작한 곳으로 이 지역에 살았던 종족들은 농경 스키타이인이었다. 드네프르 강 중간지역에서 산림 초원지대를 만나는 데, 내륙의 악스주텐시 쿠르간은 산림 초원지대에 위 치하고, 카스테 쿠르간은 악스주텐시 쿠르간이 있는 지역보다 더 동쪽으로 내륙의 산림 초원지대에 위치 하고 있다. 이곳에 살았던 종족군들은 유목 스키타이 인이었다(Murzin, 1991; Parzinger, 2004). 기원전 7~6 세기 경부터는 드네프르 서쪽 지역의 산림초원지대는 그리스와의 무역이 시작되면서 발달하기 시작했고, 기원전 6세기 중엽부터는 그리스와의 무역이 활발해 지면서 드네프르 하구와 크림반도 초원지대가 스키타 이인들의 중심지로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그 전성기 는 기원전 4세기경 드네프르 강 하구에 만들어진 수 많은 쿠르간들에서 증명되고 있는데, 이곳에는 왕족 스키타이인(king-Scythian)이라는 종족군이 살았었다. 이 종족군은 이 주위의 많은 종족군들을 지배하는 종 족군이었다(Murzin, 1991; Parzinger, 2004).
스키타이인들이 소아시아로 돌아온 이후 스키타이 유목종족들은 그리스와 드네프르 강 중간 지역인 산 림초원지대의 농경지역과의 무역로에 대한 감시를 시 작하며, 흑해 북쪽 초원의 유목종족과 산림초원 지대 에서 농경생활을 영위하는 종족사이에 경제적인 통일 체(한단위)를 발전시켜 나갔는데, 6세기 말에는 흑해 북쪽의 더 넓은 지역 즉, 드네프르 강 유역의 초원지 대와 내륙의 산림 초원 지대를 연결하는 지역에서 강 한 종족연합이 생겨나, 서로 다른 씨족과 종족이 섞이 게 되면서 드네프르 장 유역과 내륙지방은 강한 종족 연합을 만들어 나갔다(Murzin, 1991). 앞에서 설명한 크림 반도의 쿨오바의 제기와 돈 강의 내륙 지방인 카 스테의 제기에 같은 신화의 에피소드가 묘사되어 있 는 현상은 이런 배경에서 나타났던 현상으로 이해된 다. 종족 연합이 일어나면서 그들의 관습 또한 공유하 게 되고, 신분에 따른 머리형태의 모습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습도 그 한 현상으로 이해된다.
본 연구에서 분석한 스키타이 유물들은 주로 4세기 경으로 편년되는 유물이다. 이 시기는 종족 연합이 일 어나기 시작한 6세기에서 200년 가까이 흐른 시기이 어서 종족 연합이 일어난 후 안정되어 종족군의 구별 이 어려울 정도로 섞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앞에서 분 석한 이 시기의 유물에서는 지역별로 나타나는 종족 군에서 머리형태의 차이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신분에 따라 나타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앞에서 살펴본 스키타이인들의 신분은 왕, 왕족, 전사귀족, 기사, 일반 스키타이인 등이었다. 이들에게서 가장 보 편적으로 나타나는 머리형태는 긴 생머리 형태였다. 이는 스키타이인들이 머리털을 신성시 여기는 그들의 우주관에서 생겨난 형태로 사료되었고, 길이는 신분 에 따라서 차이가 있었다. 긴 생머리 형태 이외에 그 리스의 영향으로 변형된 땋은 머리도 신분에 따라 달 라지지는 않았고, 나이에 따라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신분에 따른 머리형태는 <Table 3>에서 정리하였다.
(2) Changes in hairstyle due to influence of external culture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본고에서 분석한 유적들은 기원전 4세기경 그레코-스키타이 문화가 절정을 이루 었던 시기의 유물이어서 그리스적 요소들이 많이 나 타나고 있었다. 이는 그리스의 영향이 사회 전반에 나 타났던 현상임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리스의 영향으로 나타나는 스키타이인들의 머리형태 는 단발형 머리형태와 땋은 머리 형태들이 있었다.
스키타이인들의 전형적인 긴 생머리는 그리스인들 의 짧은 머리의 영향으로 머리 길이를 짧게 하여 긴 머리는 단발의 형태로 변화되었을 가능성도 추측되기 에 왕족들의 단발머리의 형태를 그리스 영향의 결과 물로 추측해 보았다. 이외에도 땋은 머리 형태에 대해 서는 롤레(Rolle)가 이미 그리스의 곱슬머리의 형태를 모방해서 생겨난 형태일 것이라고 추측하였다(Rolle, 1991).
(3) Formal characteristics of bangs
스키타이 머리형태에서는 앞머리가 이마를 덮는 스타일을 제외하고는 이마 위에서 앞머리가 솟아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는 앞머 리 가닥을 말아 올려 고정시킨 형태로 추측되는데, 머 리형태에 따라 약간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 나, 지역과 신분과 연령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나타 나는 특징이다.
2. Analysis of beard
1) Classification of beard
스키타이인의 수염은 턱수염, 콧수염, 수염 없음으 로 구분된다.
(1) Beard
턱수염은 긴 형태와 짧은 형태가 관찰되는데, 긴 형태는 앞 목부분까지 내려오는 길이로 주로 왕과 왕족 등 지배계급에서 나타나며, 크림반도 쿨오바 쿠 르간과 흑해 북쪽 지역 드레프르 강 유역의 쿠르간 (Prederijewa Mogila, Gajmanova Mogila)과 돈강 상류 내륙지방 쿠르간(Castye) 등에서 관찰된다(Fig. 5, 6, 22, and 24). 왕족 중에서 턱 부분을 감싸듯 덮은 모양 의 짧은 수염은 솔로차의 왕족(Fig. 18)에서 나타나므 로 왕과 왕족들의 수염은 긴 형태와 짧은 형태가 공존 했음을 알 수 있다.
짧은 턱수염은 체르톰릭에서 출토된 금박을 입힌 칼집에 묘사된 그리스인 형상에서도 관찰되고 있어서 솔로차 금빗에 묘사된 왕족의 짧은 수염은 그리스인 의 수염을 모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체르톰릭 칼 집에는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이나 혹은 그리스 의 알렉산더 동방원정 에피소드를 묘사한 것으로 (Alekseev, 2012) 그리스인과 바바리아인들의 싸움 장 면이 표현되어 있다(Fig. 34 and 35). 이중에서 그리스 헬멧을 착용한 사람은 짧은 턱수염을 하고 있고, 그 옆의 바바리안은 긴 턱수염을 하고 있다. 그리스 헬멧 을 착용한 형상은 앞의 <Fig. 15>에서 살펴본 솔로차 금 빗에서 중앙에 말을 탄 옥타마사데스의 형상과 거 의 같은 모습이므로 그리스인의 형상을 모방하여 스 키타이인들의 왕족을 묘사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 는 체르톰릭 쿠르간과 솔로차 쿠르간이 조성될 당시 인 기원전 4세기에 스키타이인들에게 미친 그리스 문 화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증거라 할 수 있다. 왕족이외에 전사들과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스키타이 인들도 짧은 형태의 턱수염을 하고 있어서 턱수염의 길이는 스키타이인들의 신분에 따라서 달라지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체르톰릭 쿠르간의 조성시기는 기원전 340~330년 으로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시기에 조성된 것으 로 보기 때문에 그리스의 영향이 다른 쿠르간보다 더 강하게 나타난다. 솔로차 쿠르간은 기원전 390년 이 후(Dally, 2007)로 편년되므로 체르톰릭 쿠르간보다 더 빠른 시기인데 나타나는 형상들은 비슷하다. 이는 이미 알렉산더 동방원정 이전에도 이 지역에 그리스 의 영향이 강하게 미쳤던 것으로 볼 수 있는 요소라 하겠다.
(2) Mustache
콧수염은 코 밑을 덮으며 코 양옆에서 끝이 팔자 모양으로 길게 늘어진 형태와 코 밑만 덮는 짧은 형태 등이 있는데, 턱수염과 같이 나타나는 스타일이 있고, 턱수염 없이 콧수염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턱 수염 과 같이 나타나는 스타일은 내륙지방 카스테의 왕과 왕족(Fig. 3 and 6), 가즈마노바 모길라의 족장(Fig. 22) 그리고 솔로차의 맹세를 서약하는 스키타이인 (Fig. 24)에서는 긴 콧수염이 관찰되고, 그 이외의 대 부분의 왕과 왕족, 전사, 일반 스키타이인들에서는 모 두 코 밑만 덮는 짧은 수염이 관찰되고 있다.
(3) No beard and mustache
수염 없는 모습은 젊은 스키타이인에서 관찰된다. 페레데리제바 모길라 쿠르간 헬멧의 젊은 왕족(Fig. 7), 카스테 쿠르간 제기의 젊은 왕족(Fig. 36)과 톨스 타자 모길라 가슴장식에서 생업에 종사하는 젊은 스 키타이인(Fig. 26 and 31) 등은 턱수염과 콧수염 모두 없는 모습이어서 젊은 스키타이인들은 신분에 관계없 이 수염을 기르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수염에 대한 설명을 <Table 4>에 정리하였는데, 쿠 르간의 조성시기와 지역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미 정 리하였으므로 이 표에서는 다시 언급하지 않았다.
2) Combination of beard and mustache
이 장에서는 턱수염과 콧수염이 어떻게 조화를 이 루며 나타났는지를 신분별로 분석하였다. 턱수염과 콧수염의 조화에는 네 가지 형태가 관찰된다. 첫째, 긴 턱수염과 긴 콧수염, 둘째 중간 턱수염과 긴 콧수염, 셋째 중간 턱수염과 짧은 콧수염, 넷째 짧은 턱수염과 짧은 콧수염의 형태이다. 첫째 형인 긴 턱수염과 긴 콧수염의 형태는 크림반도 쿨오바 제기와 내륙지방 카스테 제기, 또 흑해 연안 북쪽 드네프르 강 유역 가 즈마노바 모길라 제기에서 왕, 왕족, 족장 등에서 관 찰되어 흑해 북쪽 연안 지방의 전반적인 지역에서 주 로 지배계급들이 갖추었던 형태로 확인된다. 두 번째 형태인 중간 턱수염과 긴 콧수염은 솔로차 쿠르간의 왕족에서 관찰되고, 세 번째 형태인 중간 턱수염과 짧 은 콧수염의 형태는 드네프르 강 유역 톨스타자 모길 라 가슴장식의 왕과 지배계급과 솔로차 쿠르간의 전 사와 체르톰릭 쿠르간의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스키 타이인 등에서 관찰되어 신분에 관계없이 나타나는 보편적인 형태로써 확인된다. 네 번째 형인 짧은 턱수 염과 짧은 콧수염의 형태는 솔로차 쿠르간의 왕족에 게서 관찰된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해 보면 왕과 족장 들은 모두 눈에 띠게 긴 턱수염과 긴 콧수염을 하고 있어서 스키타이 사회에서 수염의 길이는 권위를 상 징했던 것으로 추측되며 이는 왕이나 족장들이 머리 털을 중요하게 여겨 긴 생머리를 유지했었던 사실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런데 왕족들은 지배계급 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형태인 긴 수염만이 아니고, 중간 턱수염과 짧은 콧수염 등 수염의 길이가 다양하 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위의 설명을 <Table 5>에 정리하였다.
Ⅳ. Conclusion
흑해 북쪽 지역의 스키타이인들은 기원전 7세기경 유라시아 대륙에서 흑해 북쪽 연안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에서 스키타이인들은 비슷한 시기에 소아시아에 서 흑해 북쪽 지역으로 이주한 그리스인들을 만나 그 레코-스키타이 문화를 창출하였으며, 기원전 4세기경 흑해 북쪽 연안에서 전성기를 맞이했던 스키타이인들 은 그들의 발자취를 그들의 무덤인 쿠르간에 남겨놓 았다. 쿠르간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스키타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데, 스키타이인들은 그들의 언어로 발자취를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 연구 에서는 이 유물들을 분석하여 스키타이인의 머리형태 와 수염을 정리하였다.
스키타이인들의 머리형태는 생머리, 땋은 머리, 묶 은 머리 등 3가지 형태로 분류되었다. 이 3가지 형태 의 머리는 사회적 신분과 연령 그리고 지역에 따라 명 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여러 계층에서 혼재해 나타나 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머리는 자연스럽게 내려 뜨려진 머리형태로 주로 왕, 왕족, 전사, 생업에 종사 하는 일반인 등에서 나타나고 있어서 스키타이인들의 보편적인 머리형태임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스키타이 인들이 머리털을 존귀하게 여기는 관습에 기인하는 것이며, 신분에 따라 그 길이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었 다. 왕, 왕족의 지배계급은 등 뒤까지 내려오는 긴 머 리를 하고 있었고, 기사나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스키 타이인들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를 하고 있어서 지배계급의 머리 길이가 더 긴 형태임을 알 수 있었 다. 전사귀족은 왕족처럼 긴 머리 형태를 유지하고 있 었는데, 이는 스키타이 사회에서 전사귀족이 왕족처 럼 대접받는 사회임을 외모에서 확인할 수 있는 요소 였다. 땋은 머리는 정수리에서부터 머리 전체를 땋아 내린 머리로 그리스인들의 곱슬머리를 모방한 스타일 이며, 묶은 머리는 뒤통수에서 큰 묶음으로 묶여지는 스타일로 전사에게서 관찰되었는데, 이는 싸움에서의 활동을 위한 실용적 목적에서 나온 머리형태였다.
수염은 턱수염과 콧수염으로 구분되었는데, 길이는 신분에 따라 달라지고 있었다. 긴 턱수염과 긴 콧수염 은 주로 왕, 왕족, 족장 등 지배계급에서 관찰되었고, 중간 길이의 턱수염과 짧은 콧수염은 왕, 왕족, 족장, 전사 등 대부분의 계층에서 나타나고 있어서 이 형태 의 콤비네이션이 스키타이인의 보편적인 수염의 형태 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젊은 스키타이인들은 신분 에 관계없이 턱수염도 콧수염도 기르지 않고 있어서 스키타이 사회에서 수염은 성년이 된 후에 기르는 관 습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스키타이 종족군은 지역에 따라 농경 스키타이인, 유목 스키타이인, 또 왕족 스키타이인 등으로 구별되 었는데, 종족군에 따라서는 머리형태가 달라지지 않 았다. 이는 흑해 북쪽 지역에서 종족 연합이 일어난 이후 200년이 지난 후로 편년되는 유물들을 분석하였 기 때문에 유물에 나타난 형상들은 이미 종족연합이 안정되게 이루어진 후에 묘사된 형상들이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헤로도투스가 ‘스키타이식’이라고 설명하는 의복에 나타나는 문화적 유사성이 머리형태 와 수염의 스타일에서도 종족군을 초월한 스키타이인 전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키타이인의 복식연구는 한국고대복식의 원형 연 구와 연결되어 있는 테마이다. 본 연구에서 얻은 결론 은 유라시아 대륙의 알타이 시베리아 스키타이인의 종족군을 밝히는 연구에 기초자료로 이용되어 광활한 지역의 스키타이계 종족의 머리형태와 수염의 유형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이렇게 정리된 스키 타이계 종족군에 대한 자료는 서론에서 언급한 종족 군이 서로 다른 종족에서 나타나는 비슷한 의복의 형 제가 한 종족군의 원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인 답을 주게 될 것으로 사료된다. 본 연구를 토대로 스키타이 복식 연구에 더 심층 있는 연구가 후속되기 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