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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6-0401(Print)
ISSN : 2383-6334(Online)
The Research Journal of the Costume Culture Vol.25 No.6 pp.847-861
DOI : https://doi.org/10.29049/rjcc.2017.25.6.847

The date estimation of excavated costumes from couple’s tomb for General Lee in Seosan, Chung-nam

Jong-Suk Keum†
Dept. of Traditional Arts and Crafts,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Cultural Heritage, Korea
Corresponding author : (keumjsuk@hanmail.net)
20170301 20171127 20171214

Abstract

As the excavated costumes from the unknown tomb of the Joseon Dynasty were unearthed, estimating the age of the costumes became very important. This research investigat and estimates the age of the excavated costumes from Couple’s Tomb for Lee General in Seosan, Chung-nam. By inspecting and analyzing the costumes, the features can be compared with other similar costumes that have been excavated from other tombs. The result of this study is as follows: First, the period with dopo, cheolrik, jungchimak, and baji for females among the relics of General Lee can be estimated. For dopo, there are morphometric features such as the shape of moo; for cheolrik, there is a ratio of top and bottom; for jungchimak, there is a ratio of width of arm and skit and a ratio of side tim, total length, etc. By comparing relics of same period, it can be estimated to be from the late 16 century around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to the early 17 century. Second, the period with jangui and jeogori among the relics of Couple’s Tomb for General Lee can be estimated. By comparing jangui with the arm and width of sleeves, and by comparing jeogori and the shape of the collar, arm, length, etc., with other relics identical to the period, it can be estimated to be from the late 16 century around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which is a similar date to the one with the husband to the early 17 century.


충남 서산 이(李) 어모장군 부부 합장묘 출토복식의 연대추정

금 종 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초록


    I.Introduction

    조선시대 출토복식은 문중에서 묘를 이장하거나 국토개발이 진행되면서 발굴된 다. 문중의 출토복식은 묘주의 연대로 추정이 가능하나, 무연고는 묘주의 연대를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그 묘주의 연대를 추정하기 위해 복식의 역할이 크게 중요시 되었다. 그만큼 출토복식에 관한 연구가 상당히 활발하고 정확하게 연구가 지속되 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출토복식에 관한 연구는 유물 종류별로 연구되기도 하였 으며(Keum, 2014),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여자복식 과 남자복식의 기준을 연구하여 시대구분을 할 수 있 도록 하였다(Hong, 2008; Song, 2008). 더 나아가 복 식의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을 바탕으로 무연고의 연 대추정을 하기에 이르렀다(Keum, 2017; Song, 2016).

    본 연구 또한 지금까지 연구되어 온 결과를 바탕으 로 이 어모장군 합장묘 복식의 연대를 추정하기 위한 것이다. 유물들은 2015년 3월 6일 충청문화재연구원 에서 충남 서산 사업부지 내 유적에서 발굴조사 중 시 신과 함께 발굴된 것이며,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에 소장 중이다. 피장자의 인적사항은 명정이 남아 있 어 판독을 실시하였으나 명정이 외관 천판의 안쪽과 내관 천판 위에 부분적으로 붙어져 있고, 직물은 퇴화 되어 만지면 부서지는 등 상태가 좋지 않아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인적사항을 분석하여 이 어모장군이었음 을 확인하였다. 배위 묘의 명정은 외관 천판의 안쪽부 분에서 한글자만 확인할 수 있었다. 직물은 남자명정 에 비해 더 많이 퇴화되어 있었으며, 만지면 부서지는 등 상태가 좋지 않아 현장에서 사진만 찍고 인적사항 은 알 수 없었다. 본 연구자는 해포 작업에 처음부터 함께 참여했기 때문에 염습과정을 살펴보고 순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염습한 예는 조선 시대 상장례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연구방법은 본 유물의 복식을 직접 실측하여 형태를 분석하고 바느질 기법 등을 조사하여 출토복식 연구에 기본 자료를 제시한다. 또한 직물은 스칼라 DG-3×를 사용하여 100배 고배로 촬영하여 섬유의 종류를 파악 하였다. 유물의 연대 추정은 조사한 유물의 기본 자료를 바탕으로 남자옷은 도포․철릭․중치막․바지를, 여자 옷은 장의와 저고리를 동시대의 다른 묘주의 유물을 비교하여 최종적으로 추정하였다. 본 연구결과가 출토 복식의 연대 추정을 함에 있어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Ⅱ.The Excavation Site of Costume

    1.Tomb for General Lee

    2015년 3월 4일에 발굴팀은 현장에 도착하였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이틀 후인 3월 6일에 현장에 도착해 서 남자 묘를 해체하였다. 관 위에는 명정이 있었으나 많이 파손되어 관 위에 있던 천판에만 조금 붙어 있었 다. 묘주는 명정을 확인한 결과 이씨 성을 가진 어모장 군임을 알 수 있었다. 대렴 위에 얹어 있는 옷감들(철 릭, 중치막, 포의 소매)을 걷어낸 아랫부분에는 지푸 라기가 보공품을 대신하여 가득 채워져 있었다(Fig. 1). 대렴의 횡교는 7줄의 지푸라기로 하였으며, 종교는 없었다. 대렴금은 없었으며 이를 대용한 자루에 시신 이 넣어져 있었다. 이를 벗기니 소렴한 시신이 있었는 데 소렴금은 없었으며, 머리 부분만 주머니형태로 만 들어 세 겹으로 씌워서 종교는 없이 횡교만으로 묶여 져 있었다(Fig. 2). 소렴금 대용 옷감을 벗기니 바로 얼굴이 보였으며 유골은 미라 형태로 남아 있었다.

    수의 중 상의의 옷들은 묘주의 팔에 끼워 입히지 않았다. 수의 착용순서는 도포, 철릭, 중치막, 포, 과 두, 적삼 순으로 옷들을 한꺼번에 소매를 끼워서 묘주 아래 부분에 깔고 몸의 상체 부분을 감싸고 있었다. 하의부분은 바지 4개를 입고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 째 바지에는 각각 행전을 차고 있었으며, 그 외에는 버선과 미투리를 착용하고 있었다. 염에 사용하는 멱 목, 악수 등은 나오지 않았다.

    2.Tomb for General Lee's wife

    여자 묘에서는 관을 열자마자 지푸라기가 가득하 였다. 명정은 남자의 묘와 마찬가지로 천판에만 조금 남아 있었고, 유골만이 남아 있었다. 대렴에는 종교만 이 삼베로 여며져 있었으며, 횡교는 지푸라기로 7가 닥 메어져 있었다. 대렴금은 없었으며, 대렴의로 포와 장의를 시신과는 90도 각도로 어긋나게 펼쳐져 있었 다. 소렴으로는 횡교 3줄이 지푸라기로 얽혀있는데 중간 횡교에는 오낭 한 개가 묶여져 있었다. 소렴금은 없었으며 이를 대신하여 머리 부분만 주머니형태로 만들어 두 겹이 씌워져 있었다. 수의 중 상의의 옷들 은 이 어모장군과 마찬가지로 묘주의 팔에 끼워 입히 지 않았으며, 저고리와 적삼 순으로 옷들을 한꺼번에 깔고 상의 부분을 감싸고 있었다. 하의는 바지 3점과 치마를 입고 있었으며, 발에는 행전을 차고 버선 미투 리를 신고 있었다.

    Ⅲ.Excavated Costumes from Couple's Tomb for General Lee

    1.Characteristic of the excavated costumes from tomb for General Lee

    유물은 총 17건 23점이며, 수의는 14점으로 도포 1점, 철릭 1점, 중치막 1점, 포 1점, 과두 1점, 적삼 1 점, 바지 4점, 행전 2점, 버선 1점, 미투리 1점이다. 수 의 이외의 염습제구는 7점으로 오낭 1점, 대렴금 대용 1점, 소렴금 대용 3점, 소렴 횡교 1점, 석(席) 1점이다. 치관거리는 명정 1점, 기타로는 한지 1점으로 전체적 으로 정리하면 <Table 1>과 같다.

    1)Costume

    수의로 착용한 것은 총 14점으로 도포 1점, 철릭 1 점, 중치막 1점, 포 1점, 과두 1점, 적삼 1점, 바지 4점, 행전 2쌍, 버선 1점, 미투리 1점이다. 종류별로 살펴보 면 다음과 같다.

    (1)Do-po(Man’s coat)

    유물의 상태는 전체적으로 양호하여 기본적인 모 양과 치수를 알 수 있다. 직물은 면이며 홑옷이다. 길 이는 125.5cm, 화장은 103cm, 품은 69cm, 진동은 35.5cm이다. 형태는 전형적인 초창기 도포의 형태로 겨드랑이 부분 양쪽에는 2~4.2cm 4개의 주름이 각각 잡혀 있다. 또한 겨드랑이에는 가로×세로 2.2cm의 삼 각무가 달려 있다. 깃은 칼깃이며 너비는 14cm, 소매 는 직배래이며 너비는 33.5cm이다. 고름은 깃머리 부 분에 3cm 너비의 흔적만 남아 있다. 바느질은 박음과 옛쌈솔, 수직감침으로 하였다.

    (2)Cheolrik(Man’s coat)

    철릭의 길과 양쪽 소매는 찢겨져 출토되었다. 겉감 과 안감은 모두 면으로 되어 있으며 겹옷이다. 의(衣) 는 55.5cm이며 상(裳)은 56cm로 길이의 비율은 1:1.01 로 길이가 비슷하였으며, 화장은 103cm, 품은 70cm, 진동은 36cm이다. 깃은 칼깃이며 너비는 13cm이다. 소매는 직배래 착수형으로 너비는 33.5cm이다. 겨드 랑이 부분에는 삼각무가 달려 있으나 파손으로 인하 여 정확한 치수는 알 수 없다. 상(裳)의 1폭 너비는 34~34.5cm이며 총 12폭이다. 주름은 맞주름으로 너 비는 6~6.3cm이다. 바느질은 홈질, 박음과 감침질로 하였다.

    (3)Jungchi-mak(Man’s coat)

    직물은 겉감과 안감 모두 면으로 되어 있으며 겹옷 이다. 치수는 길이 109cm, 화장 99cm, 품 73cm, 진동 32cm이다. 깃은 칼깃으로 너비는 13cm이며, 소매는 직배래의 착수형으로 너비는 29.5cm이다. 겉섶은 이 중섶이며, 안섶은 단일섶이다. 겨드랑이에는 5.5cm의 삼각무가 달려 있으며, 옆선에는 21cm의 트임이 있 다. 깃머리 부분에는 고름의 흔적이 있다. 바느질은 홈질, 박음질로 하였다.

    (4)Po(Man’s coat)

    직물은 겉감과 안감 모두 면으로 되어 있으며 겹옷 이다. 치수는 길이 102.5cm, 화장 91.5cm, 품 66cm, 진동 28cm이다. 특징은 의와 상 부분을 잇고 여러 조 각으로 만든 것으로, 철릭을 만들려고 하다가 옷감이 많이 들어 포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는 과두와 비슷하였다. 깃은 칼깃으로 너비는 12cm이며, 소매는 직배래의 착수형으로 너비는 26cm이다. 겉섶은 이중 섶이며, 안섶은 단일섶이다. 겨드랑이에는 5cm의 삼 각무가 달려 있으며, 삼각무에서 무가 달리는 부분까 지 옆선의 길이는 7cm이다. 깃머리 부분에는 고름의 흔적이 있으며 너비는 1.8cm이다. 바느질은 홈질, 박 음질로 하였다.

    (5)Gwadu(Jacket)

    과두는 조선전기의 남자 상의인 저고리이다(Song, 2010). 직물은 삼베이며 홑옷이다. 치수는 길이 102cm, 화장 98.5cm, 품 67.5cm, 진동 29cm이다. 깃은 칼깃 으로 너비는 13cm이며, 소매는 직배래의 착수형으로 너비는 25.5cm이다. 겉섶은 이중섶이며, 안섶은 단일 섶이다. 겨드랑이에는 5.5cm의 삼각무가 달려 있으 며, 삼각무에서 무가 달리는 부분까지 옆선의 길이는 2cm이다. 고름은 달려던 흔적만 남아 있다. 바느질은 홈질, 박음, 옛쌈솔과 감침질로 하였다.

    (6)Jeoksam(Undershirts)

    직물은 면이며 홑옷이다. 치수는 길이 61.5cm, 화 장 68.5cm, 품 69cm, 진동 23cm이다. 깃은 들여 달린 목판깃으로 너비는 12cm이며 한 장으로 마름하여 달 았다. 소매는 직배래로 너비는 24cm이다. 겉섶과 안 섶의 바깥쪽은 식서를 그대로 사용하여 바느질을 별 도로 하지 않았다. 옆트임 또한 식서를 그대로 사용하 였으며, 트임은 27.5cm와 31cm로 양쪽이 다르다. 바 느질은 전체적으로 성근 홈질로 확인되어 수의용으로 급하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7)Baji(Trousers) 1

    바지 1은 수의로 입고 있었던 바지 4점 중에 가장 겉에 착용한 것으로 겉감과 안감이 면으로 만들어진 겹옷이다. 길이는 85cm, 허리둘레는 82cm이다. 바지 의 중심에 당(襠)이 달려서 벌어지는 개당고로, 양쪽 바지가 중심 부분에 4.5cm 겹쳐져 허리말기에 연결되 어있다. 누비는 허리말기에만 3.5~4cm 간격으로 되어 있다. 주름은 중심을 기준으로 양쪽 2개씩 맞주름으 로 되어있으며. 주름의 너비는 7.5cm, 9cm, 10cm로 각기 다르다. 바느질은 말기에는 반박음, 바지폭 잇기 에는 홈질로 하였다.

    (8)Baji(Trousers) 2

    바지 2는 수의로 입고 있었던 바지 4점 중에 겉에 서 두 번째로 착용한 것으로 면으로 만든 홑옷이다. 길이는 77cm, 허리둘레는 86cm이다. 형태는 바지 부 리가 넓고 가랑이 사이에 길게 밑이 달려 있는 합당 고이다. 바지 한쪽에는 4폭의 옷감을 사용하였다. 밑 양옆에는 가랑이 바대가 달려 있으며, 옆트임 부분에 도 바대가 달려 있다. 끈의 너비는 5.7cm이고, 길이 는 파손되어 알 수 없다. 바느질은 홈질로 폭을 잇고, 바지 부리에는 0.2cm 말아감침, 바대는 감침질로 하 였다.

    (9)Baji(Trousers) 3

    바지 3은 수의로 입고 있었던 바지 4점 중에 겉에 서 세 번째로 착용한 것으로 면으로 만든 홑옷이다. 길이는 68.5cm, 허리둘레는 82cm이다. 바지 부리가 넓고 가랑이 사이에 12×18cm 삼각형의 밑이 달려 있 는 합당고이다. 바지 한쪽에는 4폭의 옷감을 사용하 였다. 옆트임은 17.5cm이나 바대는 없다. 말기의 너비 는 8cm이며, 말기에 달린 끈은 1.8cm 너비의 흔적만 파악할 수 있다. 바느질은 폭 잇기에는 홈질, 바지 부 리에는 0.3cm 말아감침, 허리말기의 겉에는 홈질하 고, 안쪽은 감침질로 하였다.

    (10)Baji(Trousers) 4

    바지 4는 수의로 입고 있었던 바지 4점 중에 가장 안에 착용한 것으로 삼베로 만든 홑옷이다. 바지 한쪽 에는 3폭의 옷감을 사용하였으며, 가랑이 사이에 길 게 밑이 달려 있는 합당고이다. 옆트임은 11cm이며, 바대가 달려 있다. 말기의 너비는 6cm이며, 말기에 달 린 끈은 2.5cm 너비의 흔적만 파악할 수 있다. 바느질 은 폭 잇기에는 홈질, 바지 부리에는 0.7cm 접어감침, 허리말기의 겉에는 반박음질하고, 안쪽은 감침질로 하였다. 길이는 55cm, 허리둘레는 82cm이다.

    (11)Haengjeon(Leggings) 1

    바지 1 위에 착용한 겹 행전으로 겉감과 안감 모두 면이다. 가로는 22.5cm, 세로는 34cm이다. 구성은 누 비로 되어 있으며 간격은 2.2cm이다. 직물은 바이어 스 방향으로 재단되어 있으며, 한쪽 부분에는 5.5cm 의 트임이 있고 1.9 × 1.9cm의 삼각무가 달려 있다. 발걸이 고리와 끈은 파손되어 흔적만 남아 있다. 바느 질법은 감침질, 쌈솔, 반박음질이다.

    (12)Haengjeon(Leggings) 2

    바지 2 위에 착용한 홑 행전으로 직물은 면이다. 부 리 끝과 트임 부분에는 끈이 있었을 것이나 소실되었 다. 가로는 23cm, 세로는 38cm이다. 트임에는 덧단이 있으며 길이 방향으로 홈질, 아래 부분은 감침질하였 다. 행전의 사선 부분 바느질은 식서끼리 온박음하였 고 시접은 0.2cm로 얕게 두었다. 트임 부분의 길이는 약 9.5cm이고 덧단을 대었다. 덧단은 트임 부분을 먼 저 홈질하고 뒤집어 안쪽에서 고정했는데 양쪽 변은 홈질하고 아래 부분만 감침질하였다. 덧단 아래 부분 의 너비는 각각 1.5cm, 2.4cm로 차이를 보인다.

    (13)Beoseon(Socks)

    겉감은 면, 안감은 삼베이다. 양쪽 버선 모두 뒤꿈 치에는 직물이 덧붙여져 있으며 시접 부위에는 풀솜 이 확인된다. 길이는 32cm, 발길이는 26.5cm이다. 바 느질은 홈질이며 덧붙인 직물은 시접 없이 감침질로 구성되어 있다. 버선의 오른쪽은 버선코가 훼손되어 그 사이로 풀솜이 확인된다. 버선에 쓰인 바느질은 홈질과 감침질이다. 전체적으로는 홈질로 구성되었으며 직물 을 덧붙인 곳에는 감침질이 확인된다. 홈질은 0.3cm 간격으로 되어 있다. 버선목은 제물단으로 마무리하 였고 오른쪽은 0.6cm, 1.7cm, 왼쪽은 0.4cm, 1.2cm로 측정되었다. 감침질은 시접 없이 식서를 사용하였고 감침질의 간격은 1cm이다.

    (14)Mituri(Hemp sandals)

    길이는 25cm, 너비는 8.5cm이다. 신바닥의 앞축과 뒤 축 부분은 삼껍질로 만들었다. 신총의 재료는 무엇인지 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앞갱기는 신총과 같은 재료로 감 았으나 뒷갱기는 닥 속껍질로 감았다. 신바닥은 4날이다.

    2)Other

    수의 이외의 것은 총 9점으로, 오낭 1, 대렴금 대용 1, 소렴금 대용 3, 소렴베 1, 석(席) 1점, 명정 1점, 한 지 1점이다. 종류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Onang(Pouch)

    오낭은 염습할 때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 손톱, 발 톱을 넣는 주머니로 보통 5개의 주머니를 뜻한다. 오 낭은 머리카락을 넣는 주머니 1개, 좌우의 손톱을 넣 는 주머니 2개, 좌우의 발톱을 넣는 주머니 2개로 구 성되며, 주머니에 ‘頭髮’, ‘左手’, ‘右手’, ‘左足’, ‘右足’ 이 쓰여 있다. 본 유물은 1개만이 출토되었는데 겉에 글이 쓰여져 있지 않아 어떠한 용도의 주머니인지 알 수 없다. 직물은 면이며 홑옷이다. 길이는 3.2cm, 너 비는 3cm이며, 입구 부분에는 끈으로 오므려져 있다.

    (2)Daeryeomgeum substitute

    대렴금은 없었으며 이를 대신하여 자루처럼 간략 하게 만든 대용품으로, 직물은 면이며 홑이다. 길이는 192.5cm, 너비는 32cm이다. 형태는 긴 옷감을 32.5cm 골선으로 접고 머리 아래 부분만 한 폭을 더 이어 너 비를 반으로 접어 원통형으로 만들었으며, 바느질은 홈질로 하였다.

    (3)Soryeomgeum substitute 1

    소렴금은 없었으며 이를 대신하여 시신을 소렴할 때 싸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직물은 면이며 홑이 다. 형태는 머리 부분만 32.5cm 골선으로 접어 홈질로 바느질하여 두 겹으로 만든 것이다. 길이는 118cm, 너비는 31.7~34.3cm이다. 본 유물은 발견 당시 시신 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소렴금 대용은 총 3점으로 이 유물은 가장 겉에 있었던 것이다.

    (4)Soryeomgeum substitute 2

    소렴금 대용은 총 3점으로 이 유물은 중간에 있었 던 것으로 직물은 면이며 홑이다. 직물의 양끝에는 식 서로 되어 있어 온 폭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길 이는 110cm, 너비는 35cm이다. 양 끝은 처리 없이 잘 려 있는 상태이며 끝 부분 27cm가 접혀 있다. 접힌 부분에서 한 쪽 식서 부분은 홈질, 다른 식서 부분은 트여 있다. 접힌 면의 바느질된 부분 길이는 27.8cm 이며 시접은 0.3cm이다. 바느질은 0.2cm 땀으로 홈질 하였으며, 간격은 약 0.8cm이다. 바느질 되어있지 않 은 다른 한 쪽에는 약 0.5cm 간격의 바느질 흔적이 있으며 실 매듭이 남아 있다.

    (5)Soryeomgeum substitute 3

    소렴금 대용은 총 3점으로 이 유물은 가장 안쪽에 있 었던 것으로 직물은 면이며 홑이다. 길이는 107cm, 너 비는 34.5~35.5cm이다. 골선으로 접어 바느질한 길이 는 34cm 정도이며, 출토 당시 시신의 얼굴을 덮고 있었 다. 직물의 끝은 마감을 하지 않고 올이 풀린 상태였 다. 소렴금 대용의 길이는 107cm이다. 직물은 온 폭을 사용하였고 폭 너비는 골선으로 접힌 부분이 34.5cm, 반대편 끝이 35.5cm로 측정되었다. 식서는 약 0.5cm 이다. 바느질은 골선으로 접힌 부분을 아래 직물과 이 어줄 때만 사용됐으며 홈질로 구성되었다. 바느질 길 이는 0.2~0.3cm이며, 바느질 간격은 0.4cm이다. 시접 은 1cm며 아래로 갈수록 시접의 너비가 줄어든다.

    (6)Soryeomhoenggyo

    소렴횡교는 전반적으로 상태가 좋지 못하였으며 직물은 면이다. 남아 있는 소렴횡교는 3점의 조각이 있다. 길이와 너비는 129×7.5cm, 149.5×9.5cm, 93.5× 9cm이다.

    (7)Seok(Mat)

    돗자리는 관의 내부 칠성판 위에 까는 것으로 중간 부분은 삼[麻]이나 칡껍질로 만들고 바깥 테두리는 옷 감으로 싼다. 본 유물은 테두리 옷감은 남아 있지 않 고 안에 삼으로 만든 자리만 남아 있다. 길이는 172.5cm, 너비는 41cm이다.

    (8)Myeongjeong(Funeral banner)

    본 유물은 발굴 현장시 외관 천판 안쪽에서 ‘禦’, ‘公’, ‘柩’를, 내관 천판 겉에 있는 명정에서는 ‘將’, ‘軍’, ‘李’를 확인하였다. 이를 조합해 보면 ‘禦○將軍 李公○柩’의 글씨를 확인할 수 있었으며, ‘정 3품 당하 관의 이어모장군의 묘’로 추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물의 상태가 좋지 않아 현재 잔편으로만 남아 있다. 직물은 면주이며 홑으로 되어 있다. 길이는 37.5cm, 너비는 22.5cm이다.

    (9)hanji(Traditional Korean paper)

    한지는 소렴금 대용 옷감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용도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으며, 크기는 길이가 72cm, 너비가 37cm이다.

    2.Characteristic of the excavated costumes from tomb for general Lee's wife

    유물은 총 16건 18점이며, 이 중 수의는 9점으로 저고리 1점, 적삼 1점, 바지 3점, 치마 1점, 행전 1점, 버선 1점, 미투리 1점이다. 대렴의는 2점으로 포 1점, 장의 1점이다. 복식 이외에 염습제구는 5점으로 오낭 1점, 소렴금 대용 2점, 대렴종교 1점, 석(席) 1점이다. 치관제구는 명정 1점, 기타로는 한지 1점으로 전체적 으로 정리하면 <Table 2>와 같다.

    1)Costume

    복식은 총 11점으로 수의는 9점, 대렴의는 2점이 다. 수의로 착용한 것은 9점으로 저고리 1점, 적삼 1 점, 바지 3점, 치마 1점, 행전 1점, 버선 1점, 미투리 1점이다. 대렴의는 2점으로 포 1점, 장의 1점이다. 내 용을 종류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Jeogori(Jacket)

    저고리는 수의로 가장 겉에 입고 있었던 것으로 겉 감과 안감 모두 면이다. 길이는 58.7cm, 화장은 81.5cm, 품은 67cm, 진동은 27.5cm이다. 구성은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을 넣은 솜 저고리이며, 깃 부분만 2.7~3.7cm 간격으로 누벼져 있다. 깃은 겉깃과 안깃 모두 목판깃 으로 섶 바깥쪽으로 1cm 나와서 달려 있다. 섶은 중심 선에 달려 있으며, 겨드랑이에는 가로 세로 4cm의 삼 각무가 달려 있다. 옆에는 삼각형의 무가 달려 있는데 왼쪽 무는 옷감 두 개를 이었다. 바느질은 홈질과 박음 질이며, 수구․겉섶․도련에는 2땀 상침이 되어 있다.

    (2)Jeoksam(Undershirts)

    적삼은 저고리 안에 입었던 것이다. 구성은 삼베로 만든 홑옷이며 깃만 두 겹이다. 길이는 51.5cm, 화장 은 65.5cm, 품은 65cm, 진동은 32cm이다. 깃은 목판 깃으로 겉깃은 4cm, 안깃은 1.5cm내어 달려 있다. 옆 트임은 5cm이다. 어깨에는 30×30cm의 어깨바대를 대었다. 옆선과 수구는 바느질을 하지 않고 식서 그대 로 사용하였다. 바느질은 홈질을 사용하였으며 도련 을 접어 홈질로 눌러 박은 특징이 있다.

    (3)Baji(Trousers) 1

    바지 1은 수의로 가장 겉에 입었던 것으로 겉감과 안감 모두 면이다. 구성은 겉감과 안감에 솜을 둔 면 솜바지이다. 안감은 여러 폭으로 이어져 있으며 개당 고형 바지이다. 바지 한쪽에는 3폭의 옷감을 사용하 였다. 길이는 72cm, 허리둘레는 89cm이다. 옆트임은 15cm이며 찢어진 형태이다. 밑아래 부분에는 성글게 감침질로 앞과 뒤의 바지를 연결하였는데, 23.5cm와 30cm로 치수가 다르다. 바느질은 폭 잇기에 홈질로 하였으며, 밑아래는 감침질, 허리말기는 홈질과 감침 질로 하였다.

    (4)Baji(Trousers) 2

    바지 2는 수의로 겉에서 두 번째로 입었던 것으로 바지 한쪽에 4폭의 옷감을 사용하였으며 면으로 만든 홑옷이다. 길이는 81cm, 허리둘레는 78cm이다. 옆트임 은 28.5cm이다. 말기의 길이는 78cm, 너비는 11cm이 다. 허리끈은 길이를 알 수 없고, 각각 5cm 가량 남아 있으며, 너비는 3cm이다. 밑은 한 쪽이 식서이며, 식서 부분은 홈질하고 사선 부분은 감침질하였다. 주름은 맞 주름으로 앞뒤가 같은 형태이며, 트임 반대쪽 옆구리 부 분의 주름은 해체되었는데 흔적으로 보아 겉주름 너비 가 7cm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밑과 밑아래가 만나 는 지점에는 6×6cm와 11×5.5cm의 바대가 달려있다.

    (5)Baji(Trousers) 3

    바지 3은 수의로 가장 안쪽에 입었던 것으로 삼베 로 만든 홑옷이며, 전체적으로 훼손상태가 심하였다. 바지 한쪽에는 4폭의 옷감을 사용하였다. 길이는 62cm, 허리둘레는 90cm이다. 옆트임은 7cm로 그 아래 부분 에 4.5×6cm의 옷감을 겉에서 덧대었다. 말기는 길이 45cm, 너비 11cm이며, 주름의 간격은 3.5~4cm로 맞 주름이다. 밑은 13×15cm를 반으로 접어 삼각형 형태 로 달았다. 바느질은 폭 잇기와 말기에 홈질이 사용되 었다. 바지부리는 0.7cm 접어서 안보이게 숨뜨기로 마무리하였다.

    (6)Chima(Skirt)

    치마는 수의로 입고 있었던 것으로 훼손되어 두 개 로 나뉘어져 있다. 구성은 겉감과 안감 모두 면으로 되 어 있으며 겹옷이다. 치마의 상단부분에는 직물을 덧붙 였고 그 위로 말기가 달렸다. 치마는 총 10폭이었고, 일부에 주름이 남아 있었으며 남아있는 주름의 개수는 8개이다. 길이는 70cm, 너비는 330cm이다. 치마의 안쪽부분 상단에는 일부 면직물이 덧붙여져 있음이 확인된다. 특이점은 주름이 남아 있는 곳 중 주름 안쪽 에 작은 주름이 접혀 있다는 것이다. 치마 주름이 남아 있는 곳에는 말기가 달렸고 나머지 부분은 치마와 분 리되어 있다. 치마끈은 소실되었다. 치마 폭 수는 겉 감 10폭, 안감 10폭 반이었고 전체 폭은 310~330cm 로 측정된다. 말기는 길이 100cm, 너비 3.5cm이다. 주름 은 왼쪽에서 18cm 들어간 부분부터 시작된다. 남아 있는 주름의 개수는 8개이고, 주름 간격은 4.5~5cm 이며 방향은 왼쪽이다. 바느질은 홈질과 상침이다.

    (7)Haengjeon(Leggings)

    행전은 제비부리 모양으로 면으로 만든 홑이다. 길이 는 43.5cm, 너비는 윗부분이 22cm, 아래 부분은 17cm 이다. 부리 끝에는 길이 8cm, 너비 1cm의 끈이 달려 있는데, 부리 모서리에 고름을 다는 방법과 같이 고정 하였다. 방법은 끈 끝의 0.3cm 부분을 먼저 바느질하 고 접어서 1.5cm 떨어진 지점에 바느질하여 고정하였 다. 트임의 길이는 8.5cm이며, 각각 길이 5×9cm와 5×8.5cm의 바대가 달려 있다. 바느질은 트임 부분에 홈질하고 안쪽에서 감침질로 고정한 다음 겉에서 성 글게 홈질하였다. 부리부분은 0.3cm 너비로 접어 감 침질하였다. 사선 부분은 식서끼리 온박음하였고 시 접은 0.2cm이다.

    (8)Beoseon(Socks)

    버선은 겉감과 안감 모두 면이며 그 사이에 솜을 둔 솜버선으로, 발뒤꿈치 부분에 덧단을 주었다. 길이 는 32cm, 발길이는 27cm이다. 옷감은 겉감에 여분을 두고 덧단 크기만큼 이어서 재단하였다. 덧단의 시접 은 1cm이며 성글게 홈질하였다. 버선의 오른발은 발 목부분 안감에 10×15cm 크기로 조각을 이었다.

    (9)Mituri(Hemp sandals)

    본 유물의 한쪽신은 파손이 심하였다. 길이는 23~ 24cm, 너비는 11cm이다. 신바닥의 앞축과 뒤축 부분 은 삼껍질로 만들었으며, 신총과 앞갱기는 같은 재료 로 감았으나 재료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뒷 갱기는 닥 속껍질로 감았으며 신바닥은 4날이다.

    (10)Po(Long coat)

    포는 대렴의로 사용된 것으로 소매, 무, 겉깃 등 남 아 있지 않아 원래의 형태를 추정하기 힘들다. 직물은 면이며 홑옷이다. 본 유물에 없는 부분은 다른 직물과 대조해 본 결과 소렴금 대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겉깃은 깃 자리 형태에 바느질 자국이 남아 있으며, 안깃으로 이어지는 깃 끝에 길이 72cm의 조 각을 이어놓은 작은 겉깃이 달려 있다. 안깃 또한 형태 나 바느질로 보아 본래의 깃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길 이는 110cm, 화장은 56.5cm, 품은 70cm, 진동은 37.5cm, 수구는 42cm이다. 겉섶은 현재 이중섶에서 바깥쪽 섶 이 없어져 있으며, 안섶은 단일섶이다. 겨드랑이 밑에 겉쪽에는 3×4.5cm의 바대가 달려 있다. 어깨바대 길 이는 70.5cm이고 너비는 앞 7cm, 뒤 8cm이다. 바느질 은 겉깃과 안깃을 성근 홈질로 고정하였다. 어깨바대 는 중앙 이음선에 온박음을 하였고 양 끝은 식서를 남 겨 바느질하지 않았으며 감침질로 고정하였다.

    (11)Jangui(Long coat)

    장의는 대렴의로 사용된 것으로 겉감과 안감이 모 두 면으로 된 솜옷이다. 깃은 겉깃과 안깃 모두 목판 깃으로 겉깃머리 끝부분에만 위에서 온박음으로 되어 있으며, 동정은 소실되었다. 길이는 105cm, 화장은 61cm, 품은 78cm, 진동은 30cm, 수구는 27cm이다. 겉섶은 이중섶, 안섶은 단일섶이다. 소매는 일자형의 직배래이며, 겨드랑이에는 6×5.5cm의 삼각무를 박음 질하였다. 바느질은 길과 소매, 겉섶은 홈질로 되어 있으며, 겉깃머리에는 온박음질로 되어 있다.

    2)Other

    복식 이외에 유물은 총 7점으로, 오낭 1점, 소렴금 대용 2점, 대렴베 1점, 석(席) 1점, 명정 1점, 한지 1점 등이 있다. 종류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Onang(Pouch)

    본 유물은 1개만이 출토되었는데 겉에 글이 쓰여져 있지 않아 어떠한 용도의 주머니인지 알 수 없으며, 간략하게 만들어져 있다. 직물은 면이며 홑이다. 길이 는 3.8cm, 너비는 5.2cm이며, 입구 부분은 실로 오므 려져 있다.

    (2)Soryeomgeum substitute 1

    소렴금은 없었으며, 이를 대신하여 시신을 소렴할 때 싸기 위해 전체적으로 면직물로 홑으로 만든 것이다. 길이는 120cm, 너비는 39.4cm이다. 머리 부분만 27.7cm 골선으로 접어 두 겹으로 구성되었다. 본 유물은 출토 발굴 당시 시신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소렴금 대용은 총 2점으로 이 유물은 가장 겉에 있었던 것이다. 길이 가 전체적으로 일정하지 않으며, 포의 옷감을 이어서 만들었다. 바느질은 홈질과 온박음으로 하였다.

    (3)Soryeomgeum substitute 2

    소렴금은 없었으며, 이를 대신하여 시신을 소렴할 때 싸기 위해 전체적으로 면직물로 홑으로 만든 것이다. 길이는 124.3cm, 너비는 35cm이다. 머리 부분만 24.6cm 골선으로 접어 홈질로 바느질하여 두 겹으로 구성되었 다. 본 유물은 출토 발굴 당시 시신의 얼굴을 덮고 있었 다. 소렴금 대용은 총 2점으로 이 유물은 안쪽에 있었던 것이다. 길이가 전체적으로 일정하지 않으며, 포의 옷감 을 이어서 만들었다. 바느질은 홈질로 조각을 이었다.

    (4)Daeryeomjonggyo

    대렴의 종교는 삼베로 되어 있으며, 횡교는 옷감이 아닌 지푸라기로 되어 있었다. 길이는 356cm, 너비는 31~38cm이다.

    (5)Seok(Mat)

    본 유물은 훼손이 심하여 바깥테두리는 없이 가운 데 삼실로 성글게 얽어 짠 부분만 남아 있다. 남아 있 는 부분의 길이는 65cm, 너비는 32cm이다.

    (6)Myeongjeong(Funeral banner)

    명정은 파손이 심하여 현장에서 외관 천판 안쪽에 붙어 있는 명정에서 ‘顯’자만 확인하였다. 직물은 면 주이며, 길이는 74cm, 너비는 25cm이다.

    (7)Hanji(Traditional Korean paper)

    한지는 많은 양이 있었으며, 길이는 25.5~42cm, 너 비는 12~27cm이다. 발굴 당시 한지의 위치는 소렴한 위에 배와 다리 윗부분에 놓여 있었다.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Ⅳ.Date Estimation of the Excavated Costumes

    1.Excavated costumes from tomb for general Lee

    남자 복식은 여자 복식에 비해 형태변화가 뚜렷하 여 유물 종류와 형태에 의한 연대추정을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남자 복식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점차 사 라지거나 새로운 복식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 대적 특징을 근거로 본 유물들에서 주목할 것은 도포, 철릭, 중치막, 바지이다.

    (1)Do-po(Man’s coat)

    도포의 시기를 구분 짓는 가장 큰 형태 기준은 겨 드랑이 부분의 주름일 것이다. 어깨부터 내려오는 한 판의 아래 부분에는 이엽삼이 붙어 있지 않고 옆에 주 름을 잡아 앞길이나 뒷길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초창기 도포의 형태로 지금까지 출토 된 유물은 이석명(1513~1583) 묘의 겹도포, 장기정씨 (1565~1614) 묘의 모시홑도포와 아청명주겹도포, 진 주강씨(1541~1624) 묘의 홑도포과 겹도포가 대표적 이다(Table 3).

    장기정씨 묘의 홑 도포는 무에 외주름이 있어 왼쪽은 앞길에 오른쪽은 무쪽에 고정이 되어 있으며, 겹 도포 는 겹주름으로 되어 앞길에 고정되어 있다(Andong National University Museum, 2000). 진주강씨 묘의 홑과 겹 유물에서는 모두 주름을 두 번 접어 앞길에 고정하였다(Koh, 2005). 본 유물에서는 겨드랑이 부 분에 4개의 주름을 잡아 뒷길에 고정시켰다.

    (2)Cheolrik(Man’s coat)

    철릭의 형태는 깃이 직령이며, 상의에 주름잡은 치마 를 연결시킨 상의하상(上衣下裳)의 포이다. 이러한 철 릭은 시대에 따라 형태가 변하는데 이는 시대를 구분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형태는 의와 상 비례, 깃, 소매, 고름, 주름, 옆선의 길이, 바대 등으로 시대가 구 분된다. 본 유물 철릭의 의와 상의 비례는 1:1.01, 칼깃, 착수형의 직배래, 맞주름, 옆선의 길이는 6.5~7.5cm로 전체적으로 16세기 말의 형태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비슷한 연대로 추정되는 철릭의 의상비율을 살펴보 면 이언충(1524~1582) 묘의 철릭은 1:1.05~1.13과 1.04: 1이며, 정휴복(1529~1604) 묘의 철릭은 1:1.02~1.05, 조 경(1541~1609) 묘 철릭은 1.05:1, 1:1.2~1.7이다(Table 4).

    (3)Jungchi-mak(Man’s coat)

    중치막은 조선시대 중․후기에 남자들이 대표적으로 받침옷이나 평소에 겉옷으로 많이 착용한 포이다. 형 태는 깃이 칼깃모양이며, 옆에는 트임이 있다. 본 유물 의 깃은 칼깃이며, 겉섶은 이중섶, 옆선에 커다란 삼 각무가 달려 있으며, 옆선에는 아래부터 트임이 21cm 이다. 또한 겨드랑이에는 가로 5cm, 세로 5cm의 삼각 무가 달려 있으며 소매는 진동부터 서서히 줄어드는 착수형이다.

    중치막의 시대를 구분함에 있어 품과 밑자락의 너 비의 비율, 옆트임과 총길이의 비율 등으로 구분하기 도 한다. 본 유물의 품은 73cm에 밑자락의 너비는 122cm로 비율은 1:1.67이다. 비슷한 연대로 추정되는 유물을 살펴보면 최진 부인(16세기 중반) 묘 유물의 비율은 1:1.85, 장기정씨(1565~1614) 묘 유물의 비율은 1:1.77, 광해군(1622) 유물의 비율은 1:1.67으로 17세 기 초의 유물과 비슷하다(Table 5).

    (4)Baji(Trousers)

    본 유물에서는 수의로 착용한 바지 네 벌이 있는데, 모두 사폭바지가 아닌 여자의 바지 형태와 같다. 지금 까지 연구결과로 조선전기에는 남자와 여자의 바지가 같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 출토유물에서 김흠 조의 착장모습이 확인되며 본 유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 바지로 사폭바지가 출토된 것은 17세기 부터이다. 전(傳) 박장군(17C초 추정)의 솜만 남아 있는 바지와 정휴복(1529~1604) 바지 2점에서 사폭바지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계속 혼용되어 착용되다 가 사폭바지의 정착은 심설(1570~1630) 이후에 되었다.

    (5)Fabric & Pattern

    직물의 연대측정은 주로 문양과 조직 등으로 구분 되어 왔다. 그러나 본 유물은 면, 삼베가 주를 이루고 면주 1점이 있으며, 무늬가 있는 직물은 없었다. 따라 서 본 유물에서 직물로는 연대를 추정하기 힘들다. 이 처럼 직물로 연대를 측정할 수 없을 때는 유물의 형태 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것들은 한국에 서 출토복식을 연구하는 기준이 되어 왔다.

    2.Excavated costumes from tomb for general Lee's wife

    여자복식의 장의와 저고리는 형태의 기본 구성은 크게 변함이 없으나 크기의 변화 등으로 시대를 구분 할 수 있다. 장의와 저고리를 동시대의 유물과 비교하 면 다음과 같다.

    (1)Jangui(Long Coat)

    장의는 16세기에는 품이 풍성하나 임진왜란 이후 에는 몸에 맞게 변화하게 된다. 또한 소매의 너비도 진동과 같은 너비에서 17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소매의 너비가 진동보다 좁아지게 된다.

    16세기 후반의 장의 유물을 살펴보면 은진송씨 (1509~1580) 묘 유물의 품은 76cm, 소매의 너비는 진 동과 같다. 17세기 초의 순흥안씨(1551~1609) 묘 유 물의 품은 64~73cm이며, 소매의 너비도 진동과 같다. 17세기 중반의 안동김씨가 여인(17세기 중반 추정) 묘의 유물은 품이 56cm, 소매는 진동부터 좁아지는 형태이다. 이처럼 장의의 형태는 17세기 초반까지는 16세기의 형태와 유사하게 유지되다가 중반부터 품과 소매의 너비가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본 유물의 품은 78cm로 넓으며, 소매는 진동과 같은 너비이다 (Table 6).

    (2)Jeogori(Jacket)

    저고리는 깃의 형태와 품 등으로 시대를 구분할 수 있다. 16세기 저고리의 깃은 목판깃, 17세기에는 목판 식 당코깃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광해군비(1622년 추정) 장저고리에서 처음 나타난다. 품은 16세기에는 품이 풍성하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몸에 맞게 변화하 게 된다.

    16세기 후반의 저고리 유물을 살펴보면 은진송씨 (1509~1580) 묘의 유물은 품이 73cm이며 깃은 목판 깃이다. 17세기 초의 순흥안씨(1551~1609) 묘 유물의 품은 58~65cm이며, 깃은 목판깃이다. 17세기 중반의 안동김씨가 여인(17세기 중반 추정) 묘의 유물은 품 이 48~55cm이며, 깃은 목판당코깃이다. 이처럼 저고 리는 목판깃에서 17세기 중반부터 목판당코깃이 나타 나기 시작하고 품도 좁아지게 된다. 본 유물에서 저고 리의 품은 65cm로 넓은 편이며, 깃은 목판깃이다 (Table 7).

    (3)Fabric & Pattern

    여자 묘 유물들의 직물은 면, 삼베가 주를 이루고 면주는 1점만 있었으며, 무늬가 있는 것은 없었다. 따 라서 본 유물들의 직물로는 연대를 추정하기 힘들어 유 물의 형태를 기준으로 시대를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Ⅴ.Conclusion

    2015년 3월 6일 충남 서산 사업부지 내 유적에서 발굴된 합장묘의 유물을 수습 및 보존처리를 하여 남 자 묘를 명정으로 파악한 결과 정 3품 당하관의 이어 모장군의 묘 임을 알 수 있었으며, 여자의 묘에는 외 관 천판 안쪽에 붙어 있는 명정에서 ‘顯’자만 확인되 어 인적사항은 파악할 수 없었다. 합장묘에서 발굴된 복식의 형태 및 직물 분석을 통해 연대를 추정한 결과 는 다음과 같다.

    이 어모장군 묘의 유물은 총 17건 23점이다. 수의 는 14점으로 도포 1점, 철릭 1점, 중치막 1점, 포 1점, 과두 1점, 적삼 1점, 바지 4점, 행전 2쌍, 버선 1점, 미 투리 1점이다. 복식 이외의 염습제구는 7점으로 오낭 1점, 대렴금 대용 1점, 소렴금 대용 3점, 소렴횡교 1 점, 석(席) 1점이다. 치관제구는 명정 1점, 기타로는 한지 1점이다.

    유물 중 도포, 철릭, 중치막, 바지를 동시대의 유물 과 비교해 보았다. 도포의 초창기 형태의 가장 큰 특 징은 겨드랑이 부분에 주름을 잡아 어깨부터 내려오 는 한판의 아래 부분에 이엽삼이 붙어 있지 않고 옆에 주름을 잡아 앞길이나 뒷길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다. 이 어모장군의 도포도 겨드랑이 부분에 4개의 주 름을 잡아 뒷길에 고정시켰다. 철릭의 의와 상의 비례 는 1:1.01, 깃은 칼깃, 소매는 착수형의 직배래, 맞주 름, 옆선의 길이는 6.5~7.5cm로 전체적으로 16세기 말 다른 철릭의 형태와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중치막은 겉섶이 이중섶, 옆선에 커다란 삼각무가 달 려 있으며 옆선에는 아래부터 트임이 21cm이었다. 겨 드랑이에는 가로 5cm, 세로 5cm의 삼각무가 달려 있 으며 소매는 진동부터 서서히 줄어드는 착수형이다. 또한 품은 73cm에 밑자락의 너비는 122cm로 비율은 1:1.67이다. 바지 4개는 모두 사폭바지가 아닌 여자의 바지 형태와 같았다. 이러한 복식의 특징 등으로 살펴 본 결과 임진왜란 전후인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로 추정된다.

    이 어모장군 배위 묘의 유물은 총 16건 18점이다. 수의는 총 9점으로 저고리 1점, 적삼 1점, 바지 3점, 치마 1점, 행전 1점, 버선 1점, 미투리 1점이다. 대렴 의는 2점으로 포 1점, 장의 1점이다. 복식 이외에 염 습제구는 5점으로 오낭 1점, 소렴금 대용 2점, 대렴종 교 1점, 석(席) 1점이다. 치관제구는 명정 1점, 기타로 는 한지 1점이 있다.

    장의와 저고리를 동시대의 유물과 비교해보았다. 장의의 품은 78cm로 넓으며, 소매는 진동과 같은 너 비이며, 저고리의 품은 65cm로 넓은 편이며, 깃은 목 판깃이었다. 직물로는 면과 삼베가 주를 이루고 문양 이 있는 것은 없어 시대를 판별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복식의 특징 등으로 살펴본 결과 남편의 연대와 비슷 한 임진왜란 전후인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로 추정 된다.

    Figure

    RJCC-25-847_F1.gif

    The excavation site 1

    Photographed by the author. (March 6, 2015).

    RJCC-25-847_F2.gif

    The excavation site 2

    Photographed by the author. (March 6, 2015).

    Table

    List of artifacts of tomb for General Lee

    Photographed by the author. (December 1, 2016).

    List of artifacts of tomb for general Lee's wife

    Photographed by the author. (December 1, 2016).

    Changes of Do-po by the times

    Changes of Cheolrik by the times

    Changes of Jungchi-mak by the times

    Changes of Jangui by the times

    Changes of Jeogori by the times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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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end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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