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ntroduction
“Victory Over the Sun”은 말레비치가 절대주의(Suprematism) 를 탄생시키는데 초석이 된 작품으로, 그가 입체 미래주의에서 절대주의로 옮겨가게 되는 과정 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따라서 “Victory Over the Sun”은 말레비치가 1915년 절대주의 선언과 함께 추 상작품을 시작하기 위한 예비적 과정이자, 절대주의 의 기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시까지 절대주의라는 용어는 러시아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었다. 그러나 말레비치가 회화에서 표현 될 수 있는 모든 구상적인 요소들을 거부하고, 회화 의 요소들을 단순화, 절대화하여 ‘대상을 존재하지도 않으며, 오직 표시로만 존재할 뿐이다’라는 그의 생 각을 작품 “Victory Over the Sun”(Fig. 1)에 표현함 으로써, 절대주의라는 말레비치만의 새로운 미학이 탄생된다(Douglas, 1980). 절대주의의 Suprematism은 ‘최고의 상태’ 라는 라틴어의 ‘Supremus’에서 유래되 었으며, 러시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탄생한 미학으 로 거의 말레비치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이다 (Bowlt, 1976). 그의 기본적인 형식은 자연에 틀에 박 힌 형태에서 벗어나, 훨씬 더 새로운 실체(reality)를 창조해내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러한 말 레비치의 사상은 1913년 “Victory Over the Sun”이라 는 러시아 오페라의 무대의상과 무대디자인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말레비치의 “Victory Over the Sun” 은 이미 문학과 회화작품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 어, 예술의 종합이라는 관점에서 평가되고 있으나, 실 제로 예술 의상 분야에서는 지나치게 추상화 되어 있 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형식주의 예술의 하나로만 인 정받고 있을 뿐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본 저자가 이미 선행 연구인 러시아 절대주의 예술의 상 연구(Park, 2009)에서 다양한 말레비치의 작품에 등장한 절대주의 예술 의상들을 고찰한 결과, 현재 러시 아 레닌그라드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Victory Over the Sun”에 나타난 예술 의상들은 각각의 테마 에 따라 독특한 선과 형태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 라, 실제 의상 디자인에 이용된 재료들이 직물(Woven) 이 아닌, 종이와 같은 소재를 이용하여 기능주의적 의 상디자인의 발전에 미친 영향이 크다. 뿐만 아니라, 21세기 현대 예술 분야에서도 다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의 빅토리아 알버트(V&A)박물관 에서는 2014년 10월 18일부터 2015년 3월 15일까지 ‘Russian Avant-Garde Theatre’라는 주제로 말레비치 의 작품들을 재조명하였으며, 특히 마틴 마르지엘라 (Martin Margiela)와 샤넬(Chanel)은 현대 패션 디자 인에서 말레비치의 작품들을 재해석한 패션들을 선 보여, “Victory Over the Sun”에 나타난 작품의 본질 을 예술적 디자인의 표현으로 접근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말레비치의 절대주의가 탄생하는데 직 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작품 “Victory Over the Sun” 에 등장하였던 무대와 의상디자인들을 통해, 이것이 현대 패션디자이너 중 마틴 마르지엘라의 작품 속에 표현된 특징들을 분석하여, 21세기 패션디자인에 미 친 영향을 고찰하고자 한다.
II.Background
1.Suprematism and non objective art
20세기 초 러시아 예술은 전통의 변화라는 새로운 가치를 조형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 면에서도 보여주었다. 당시의 예술은 과거의 것을 극 복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다양한 ‘실험 예술’ 자체를 추구하였으며, 말레비치 또한 이러한 실험 예 술가들 중 한 명이다(Gray & Burleigh-Motley, 1986). “Victory Over the Sun” 즉, 태양에 대한 승리는 1913 년 12월 3일과 5일, 2회에 걸쳐 러시아 루나 파크 (Luna Park) 극장에서 공연된 오페라이다. 당시 공연 될 때, 말레비치 스스로도 이 작품이 이후 자신이 ‘입 체 미래주의(Cubo Futurism)’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 예견하게 된다(Malevich, 1968).
1)Analytic Cubism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1909년 과 1911년 사이에 캔버스의 표면을 평면적인 이미지 로 만들기 위해, 물체를 3차원적으로 변형시켜 계속 해서 공간과 형태를 분석하여 나갔다. 즉, 여러 관점 에서 물체를 볼 때, 관찰자는 특별한 분할 즉 겹쳐지 거나 교차되는 분할을 이용하여 재구성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재구성의 결과는 캔버스 위에서 분리되거나, 합쳐지는 일시적인 형상들의 합계로 보았다. 피카소 는 이것을 ‘구성의 합쳐진 형태’하고 표현하였으며, 분열된 것의 합계라고 생각하였다(Hulten, 1987). 1912 년 이후 예술가들은 이것을 ‘분석적 큐비즘(Analytic Cubism)’이라 불렀다.
분석적 큐비즘의 대표적인 작가인 피카소와 브라 크는 ‘자연의 형태를 원추, 원통, 구형으로 나눌 수 있다’는 세잔느의 이론에 근거하여 사물의 순수한 본 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물체를 분해하고, 새로운 차원 의 ‘시간’을 통해 4차원적 공간 개념을 정적인 회화 에 도입하였다(Compton, 1974). 1908년에서 1920년 사이의 큐비즘적 예술 의상들은 신체를 강조하는 실 루엣에서 부드럽고 유연한 원통형의 형태로 변화되 었는데, 이러한 변화는 현대 패션디자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즉, 큐비즘 자체보다는 연극, 문화, 영 화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연관되는 큐비즘 문화가 패 션에 영향을 미쳐, 사물을 보는 방식과 구성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Douglas, 1975).
말레비치는 이러한 분석적 큐비즘을 이용하여 러 시아 현대 예술 의상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끈 오페라 “Victory Over the Sun”의 무대와 의상디자인을 하였 다. 이것은 전통과 현대적인 예술들을 적절히 조화시 킨 형태로서, 새로운 재질이나 종이, 꼴라쥬와 같은 기법과 재료들을 소재로 이용하였다. 이러한 분석적 큐비즘은 1920년대까지 지속되었으며, 당시 러시아 전위 예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2)Cubo Futurism
“Victory Over the Sun”은 미래주의자들의 미래주 의적 작품이다. 음악과 가사(libretto) 그리고 미술이 만나 탄생한 종합 예술로서, “Victory Over the Sun” 은 입체 미래주의라는 배경 하에 만들어졌다. “Victory Over the Sun”이 기획, 공연되었던 1913년, 러시아 미래주의는 큐비즘적 성격이 가미되면서 ‘입체 미래 주의’라고 불리었는데, 여기서 ‘입체 미래주의’란 일 종의 문학과 미술과의 만남을 의미한다(Bowlt, 1982). 마야코브스키(V. Mayakovsky)와 같은 문학가들이 말 레비치와 같은 입체주의 화가들과 만나 교류하면서 자신들을 ‘입체 미래주의자’라고 불렀으며, 미술가와 문학가가 만나 창조된 오페라 “Victory Over the Sun” 역시 바로 이 입체 미래주의자들에 의해 기획되고 제 작된 공연이다.
3)Spatial concept of The Fourth Dimension
말레비치는 우스펜스키(P. Ouspensky)의 4차원적 공간 개념을 “Victory Over the Sun”에 이용하였다. 우스펜스키의 4차원의 개념은 1904년 힌튼(C. Hinton) 이 ‘4차원(The Fourth Dimension)’이라는 책을 출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힌튼의 이론은 19세기에 전개 되었던 비 유클리드 기하학과 n차원의 기하학적 이론의 발달로 인해 탄생한 새로운 공간 개념이다(Henderson, 1975). 우스펜스키는 n차원의 개념을 순수하게 기하 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고, 공간에 대 한 물리적인 인식만큼이나 심리학적인 분석이 중요 하다고 보았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3차원에서 우리 가 지각하는 시간과 움직임은 일종의 환영과 같고, 그것은 4차원의 공간에 비해 불완전한 시각의 결과물 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물리적 현상의 세계인 3차원 을 배재하고, 오히려 인간의 정신이 작용하는 본질적 세계인 4차원의 단편적인 작품이 완성되는 데에 중요 한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Compton, 1974).
오페라 “Victory Over the Sun”은 그 주제 자체가 4차원에 관한 것이다. 이 작품은 태양이 미래주의자 들에 의해 포획되고, 이후에는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시간을 가진 ‘제10국(Tenth Country)’이 도래한다는 내용이다. ‘제10국’에서는 창문이 모두 이상한 방향 으로 안쪽으로 향해 있고, 많은 창문들이 불규칙하게 열 지어 있으며, 괴이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묘사되어 있다(Douglas, 1981). 또 ‘모든 길이 서로 얽혀있는 것이 아니며, 땅을 향해 위로 나 있고, 곁길 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Fig. 2). 이런 기이한 ‘제10 국’의 특징은 4차원적 공간을 암시한다. 4차원의 새 로운 세상인 ‘제10국’의 무대디자인 “Victory Over the Sun”의 제5장은 절대주의의 기원에 논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추상적인 형태를 보인다. 즉, “Victory Over the Sun”의 무대디자인은 절대주의 이전의 구성 회화 시기에서 절대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상 을 보여주며, 말레비치가 4차원의 이론에 노출되고, 이것을 자신의 작품에 표현함으로써 절대주의가 완 성된 것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근거가 되는 작품이다.
2.Victory Over the Sun and Suprematism
문학과 회화 뿐만 아니라, 예술의 종합이라는 관점 에서 ‘청년동맹’의 주관아래 1913년 성 페테르부르그 (Saint Pertersburg)에서 크루초니흐(A. Kruchenikh)의 오페라 “태양에 대한 승리(ПобеДа ңад соЈІ онҵем: Victory Over the Sun)”가 상연되었다. 크 루초니흐가 작사를 하고, 마츄신(M. Matyushin)이 작 곡했으며, 말레비치는 여기서 자신의 절대주의 예술 관의 기초가 되었던 검정과 흰색의 사각형을 응용한 무대디자인과 의상디자인을 하였다. “Victory Over the Sun”은 종합적인 무대장식 예술의 실험장이었다. 이 작품이 지니는 보다 큰 의의는 러시아 회화예술을 새 로운 국면으로, 즉 비구상적인 추상의 형식으로 전개 시켰다는 데 있다(Schouvaloff, 1997).
“Victory Over the Sun”은 ‘태양을 대상으로 한 승 리’, ‘태양을 극복한 승리’를 의미한다. 오페라의 주된 내용은 태양을 패배시키고 난 뒤에 찾아올 새로운 나 라의 도래에 관한 것이다. 오페라에서 극복의 대상이 되는 태양은 기존의 전통적인 모든 것을 상징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시간 체계일 수도 있고, 전통 신앙 일 수도 있다. “Victory Over the Sun”이라는 제목은 러시아 상징주의의 시인이었던 콘스탄틴 발몬트(K. Balmont)의 1902년 시집에 나오는 시의 제목처럼 ‘태 양처럼 되자’에 대한 일종의 답변이었다. 오페라는 총 2막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막은 4장으로, 2막 은 2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1막은 태양을 포 획하고, 관에 넣은 뒤 장례를 치르는 내용을 담고 있 으며, 2막은 태양을 이긴 뒤 도래한 ‘제10국’에서의 삶을 보여준다. “Victory Over the Sun”에서 말레비치 는 절대주의 예술양식을 단순히 회화 작품에만 국한 시키지 않고, 새로운 무대디자인과 의상디자인에 이 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으로 표현하였다. 말레비치는 3 개의 무대디자인과 12개의 의상디자인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절대주의 탄생의 기원으로 보았다(Malevich, 1971). 회화에서 절대주의는 급진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추상적인 노력으로, 판화의 영역에서 벗어 나 말레비치의 영향 아래 인간의 전체 생활공간을 새 롭게 변화시켰다. “Victory Over the Sun”의 무대디자 인에서 말레비치가 검은 정사각형으로 표현하였다는 사실은 곧 ‘말레비치의 정체성으로서의 검은 정사각 형’이 이미 1913년에 확립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Victory Over the Sun”의 무대 디자인에 보이는 검은 정사각형들은 아무 의미 없는, 우연에 불과한 하나의 기하학적 도형들이 아니라 ‘제5장 무대디자인’ (Fig. 3)에서 보듯이, 우스펜스키의 4차원적 공간 이 론의 영향을 받은 순수 기하학적인 형태로서 ‘Black Square’의 원형(原型)을 찾아 볼 수 있으며, 또 이 원 형이 발전하여 1915년 ‘Black Square’(Fig. 4)가 된 것을 알 수 있다.
III.Methods
본 연구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말레비치의 오페라 “Victory Over the Sun”이 탄생하게 된 이론 적 배경을 비구상 예술(Non objective Art)로 한정 지 어, 분석적 큐비즘, 입체 미래주의, 그리고 우스펜스 키의 4차원적 공간개념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이러 한 이론적 고찰을 위해서 볼트(Bowlt, 1974, 1976, 1982)와 그레이(Gray & Burleigh-Motley, 1986), 더 글라스(Douglas, 1975, 1980, 1981), 그리고 말레비치 의 자서전(Malevich, 1968, 1971)과 같은 문헌 자료들 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비구상적 추상 예술의 형식으로 탄생하게 된 절대주의가 크루초니흐의 오페라 “Victory Over the Sun”의 무대와 의상디자인을 통해 가능하였음을 고찰하기 위해, “Victory Over the Sun”의 제2장, 제3 장, 그리고 제5장의 무대디자인을 분석하였다. 1913 년 12월에 초연되었던 “Victory Over the Sun”의 실 제 공연의상과 무대디자인 뿐만 아니라, 말레비치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들을 통해 그 형태와 색채의 특 징들을 살펴보았으며, 1983년에 모스크바 나민 극장 (Namin’s Theatre)과 뉴욕 부르클린 아카데미(New York Brooklyn Acadamy)에서 재 공연된 작품들도 비교하 여, 현대적인 관점에서 구현된 “Victory Over the Sun” 의 무대와 의상디자인도 참고하였다.
다음으로 “Victory Over the Sun”에 표현된 말레비 치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들과 공연 의상들의 특징 을 살펴보았다. 선행연구인 Lee(2006)의 ‘오페라 “태 양에 대한 승리”를 위한 말레비치의 무대 및 의상디 자인 연구’에서는 “Victory Over the Sun”에 표현된 의상디자인을 기계인간의 이미지, 전사의 이미지 등 2가지로 구분하였는데, 이는 단순히 내용상에 드러난 이미지만을 한정지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Victory Over the Sun”에 등장한 말레비치의 의상디자인들이 현대 패션디자인에 미친 영향에 대한 고찰이 없었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말레비치의 “Victory Over the Sun”에 나타난 무대와 의상디자인을 분석하여 그 특 징을 1) 기하학적인 공간구조를 지닌 기계적인 인간 의 이미지, 2) 흑백(Black & White)의 이미지, 3) 전 사의 이미지로 나누어 구분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Victory Over the Sun”의 무대디자인 제5장은 1915년 말레비치가 절대주의를 탄생시키게 되는 가 장 중요한 특징이었다. 따라서 무대디자인을 통해 표 현된 기하학적인 공간구조가 마침내 기계적인 인간 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고 판단하여, 기하학적인 공간구조를 지닌 기계적인 인간의 이미지를 말레비 치 의상디자인의 첫 번째 특징으로 보았다. 그리고 1915년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작품 ‘Black Square’에 서 모든 색채를 검정색과 흰색의 무채색으로 환원시 켜버린 말레비치의 시도는 이미 “Victory Over the Sun”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따라서 오페라의 무대와 의상디자인을 검정색과 흰색으로 표현한 말레비치의 의도에 주목하여, 두 번째 의상디자인의 특징을 흑백 의 이미지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Victory Over the Sun”의 주된 오페라 내용이 태양과 싸워 이긴 인간의 모습이다. 말레비치는 이를 패션일러스트레이션을 통 해 전사의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따라서 세 번째 의 상디자인의 특징으로 전사의 이미지로 보았다.
결론에서는 “Victory Over the Sun”이 현대 패션디 자인에 표현된 것을 마틴 마르지엘라의 패션을 통해 알아보았다. 이를 위해 마르지엘라의 2009년 S/S에서 부터 2013년 S/S까지 Ready to wear, The Artisanal collection 그리고 Couture 컬렉션 등을 분석하였다. 특히 마르지엘라는 스스로 말레비치의 “Victory Over the Sun”에 심취하였음을 밝히고 있으므로, 이러한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IV.<Victory Over the Sun> shown on the Contemporary Fashion Design
1.Set design for Victory Over the Sun
“Victory Over the Sun”에서 말레비치는 절대주의 예술양식을 단순히 회화 작품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새로운 무대와 의상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 면으로 표현하였다. 추상적이면서도 전위적인 “Victory Over the Sun”에서는 검정색과 흰색을 배경으로 한 사각형의 무대디자인 뿐만 아니라, 전위적인 의상디 자인을 하게 된다. 표현된 의상들은 독특한 선과 형 태들을 지니고 있는데, 말레비치는 이 작품들을 절대 주의 탄생의 기원으로 보았으며, 이것은 전적으로 기하학 적인 추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Gray & Burleigh-Motley, 1986).
1913년 말레비치는 “나는 의상을 디자인하였다. 이 의상들은 건축물의 벽에 색을 칠하는 것처럼 색의 대 조를 통해 완성된다”라고 하였듯이, 이러한 절대주의 적 구성은 의상디자인을 평면적인 공간속에서 기하 학적인 선으로 대상의 형태를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또 다른 형태로 변화시키는 분석적 큐비즘에 기초하 게 된다(Park, 2011). 말레비치가 절대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인 ‘Black Square’(Fig. 4)의 형태는 이미 “Victory Over the Sun”의 ‘제5장 무대디자인’(Fig. 3)에서 바 로 그 형태를 찾아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Victory Over the Sun”의 ‘제3장 무대디자인’(Fig. 5)에서도 ‘Black Square’의 근원을 찾아 볼 수 있다. 제3장은 태양의 장례식 장면으로 ‘무덤 파는 사람들(Gravediggers)’ (Fig. 6)이 무대로 걸어 들어와서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에서 ‘무덤’, ‘검은 다리’, ‘관’ 등의 단어를 통해 3장의 장례식과 검은 색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제 3장의 무대디자인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 사각형 내 부에 위쪽 가운데에 정사각형의 형태가 보인다. 물론 여기서는 정사각형이 실제로 무대에서 어떠한 색의 정사각형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사에 적힌 3장 의 배경이 ‘검은 벽과 바닥’이라고 되어 있는 점이나 3장의 분위기 상으로 보았을 때 검은 정사각형이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검은 사각 형의 형태가 있는 위치는 ‘0, 10’ 전에서 ‘Black Square’ 가 차지했던 위치와 같다(David, 1986). 검은 정사각 형의 형태는 “Victory Over the Sun”의 커튼 디자인 에서도 보인다. 이것은 작품의 왼쪽 아랫부분에 위치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수직, 수평 그리고 대각선상에 나열된 사각형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절대주의 작 품들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또 한 ‘제2장’의 무대디자인(Fig. 7)에서도 검은 정사각 형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검은 정사각형은 내부 의 사각을 왼쪽 위의 모서리인 태양의 윗부분에 겹쳐 그려져 있는데, 이 사각형이 말레비치를 가리키는 상 형문자라는 것이다. ‘제2장’의 무대 디자인은 “Victory Over the Sun”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오페라의 대본 표지로도 사용되었다. 므그레보프(A. Mgrebov)는 이 작품에서 ‘Kp’는 크루초니흐를, 검은 정사각형은 말 레비치를 그리고 음표는 마츄신을 상징하는 상형문자 (hieroglyph)라고 적고 있다(Zhadova, 1982). 검은 정 사각형이 말레비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말레 비치가 절대주의를 선언한 이후 그가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지속되던 것이다. “Victory Over the Sun”의 오페라 대본 표지 디자인에서 말레비치가 검은 정사 각형으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은 곧 ‘말레비치의 정체 성으로서의 검은 정사각형’이 이미 1913년에 확립되 었다는 말이며, “Victory Over the Sun”의 무대 디자 인 곳곳에 보이는 검은 정사각형들이 아무 의미 없 는, 우연에 불과한 하나의 기하학적 도형이 아니라, 이 원형이 발전하여 1915년 ‘Black Square’가 된 것 을 알 수 있다(Rudenstine, 1981). 즉, “Victory Over the Sun”이 공연된 1913년부터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의 개념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2.Costume design for “Victory Over the Sun”
말레비치의 “Victory Over the Sun”에 등장하는 예 술 의상들은 기하학적인 공간구조의 기계적인 인간 의 이미지, 흑백(Black & White)의 이미지, 전쟁 중 전사(Warrior)의 이미지를 표현한 매우 독창적인 디 자인들이다. 그의 의상디자인들은 분석적인 큐비즘의 불확실성, 공간과 움직임의 모호성 등을 도입하여, 변 화 가능하고 현실에서 벗어난 초월적인 절대 정신들 을 표현한 것이다.
1)Geometric spatial structure of mechanical man’s image
“Victory Over the Sun”에 표현된 의상디자인을 보 면, 신체가 하나의 유기체로 보이기보다는 원통과 원 뿔, 육면체 등의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파편화된 인체 부분들로 이루어진 구성체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인 간의 형상이라기보다는 기계적인 로봇에 더 가깝게 묘사된 인물들이었다. 말레비치는 1912년 신원시주 의(Neo-Primitivism)적 경향에 인문하면서부터 인물 들을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구성된 형태로 표현하기 시작하였으며, 점차 인물들은 기계적인 로봇에 가깝 게 묘사하였다(Bowlt, 1974). “Victory Over the Sun” 에서 보이는 인물들의 표현은 이미 1912년에 확립된 입체주의적인 로봇과 같은 인간의 이미지와 맥을 같 이 한다. 특히 ‘네로’(Fig. 8)는 둥근 한 쪽 어깨의 표 현이라든지, 대각선으로 내려오는 하의(下衣)의 디자 인과 오른쪽 위로 뻗어나가는 손의 표현 등이 기하학 적인 형태들의 독립적인 모델링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하학적 도형들로 이루어진 기계적인 이미지의 의 상 디자인들은 단순히 디자인의 차원에서 멈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제작되어 배우들에게 입혀졌다. ‘연극 과 삶(Teatr i Zhizn)’ 지 1913년 12월에 실린 “Victory Over the Sun”을 보면, 실제로 배우들이 마분지와 철 사를 이용해 말레비치의 개념을 그대로 옮겨 만든 무대 의상들을 입고 연기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Zhadova, 1982)(Fig. 9). 말레비치의 의상디자인 습작들과 무대 의상들을 비교하면,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말레 비치의 개념을 의상디자인에 그대로 실현한 것을 알 수 있다. 비인체공학적인 의상들은 배우들의 움직임 을 제한하였다. 배우들은 기하학적인 형태를 지닌 기 계와 같은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마분지와 철사로 만든 원통과 원뿔과 같은 기하학적인 도형들 속에서 뻣뻣한 자세로 겨우 조금씩 움직일 수 있을 뿐이었 다.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못해 보이는 배우들의 움직임 은 의상과 더불어 이들을 더욱 기계나 로봇과 같이 보 이도록 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미래주의 강자(Futurist Strong Men)’(Fig. 10)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인체들 이 조명의 효과에 따라 더욱 분절되어 보였다. 기계 인간의 이미지는 1910년대와 1920년대의 러시아 문 학과 예술에서 발견되는 인체에 대한 일반적인 세 가 지 관념 중 하나였다. 이 세 관념은 첫째, 인체의 내 부에 대한 관심과 장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바램, 두 번째, 인체의 외양을 관능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 마 지막으로 기계미학의 연장선상에서 인체를 일종의 기계로 해석하려는 태도이다(Bowlt, 1976). 이들 세 관념은 특히 연극, 오페라, 발레 등의 공연 예술의 무대 와 의상디자인 속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의상디자인의 경우, 기계적인 인간의 이미지는 말레비치의 “Victory Over the Sun”에서 가장 처음 발견된다. 말레비치의 의상디자인은 당시의 관객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충격 적인 방응을 얻어낸 혁명적인 것이었지만, 이후 러시 아에서 기계로서의 인체 관념을 표현한 인물상이나 의상디자인에 있어서는 하나의 전통으로 확립되었다. 말 레비치의 “Victory Over the Sun”에 나타난 ‘스포츠맨 (Sportsmen)’(Fig. 11)은 다비드 제커슨(David Jackerson) 의 ‘안테나와 함께 걷고 있는 절대주의 로봇’에 영향 을 미친다. ‘안테나와 함께 걷고 있는 절대주의 로봇’ 은 말레비치의 기계적인 인체이미지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예이며, 다비드는 반원과 직사각형들의 조 합으로 이루어진 기계적인 인간의 이미지를 보여준 다. “Victory Over the Sun”의 의상디자인에서 볼 수 있는 기계 인간의 이미지는 이후 UNOVIS(Utverditeli Novogo Iskusstva: Affirmers of New Art, 1919~1936) 의 제자들을 통해 새로운 오브제로 탄생된다.
2)Black and white image
말레비치가 절대주의의 탄생을 알리는 대표적인 작 품은 1915년에 제작된 ‘Black Square’(Fig. 4)이다. ‘Black Square’에는 흰색의 사각형 안에 검정색의 사 각형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미 1913년 “Victory Over the Sun”의 제5장 무대디자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무대디자인에서 보이는 검은 정사각형들은 아무 의 미 없는 기하학적인 도형이 아니라, 우스펜스키의 4 차원의 공간이론을 순수 기하학의 형태로 옮겨놓은 것으로, 이것은 절대주의 예술관의 기초가 되었던 검 정색과 흰색의 무대디자인과 의상디자인으로 나타난 다. 즉, 말레비치의 “Victory Over the Sun” 뿐만 아니 라, 절대주의의 탄생을 알리는 ‘Black Square’를 통해 회화에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구상적인 요소들을 거 부하고, 회화의 요소를 단순화, 절대화하여 대상이 존 재하지도 않으며, 오직 표시로만 존재할 뿐이라는 말 레비치의 논리를 통해 모든 공간을 검정색과 흰색으 로 변화시켜 버린 것이다. 따라서 ‘Black Square’ 외 에도 “Victory Over the Sun”에 등장하는 ‘미래주의 강자’와 ‘네로’ 그리고 ‘주의 깊은 노동자(Attentive Worker)’(Fig. 12)를 보면 모두 다양한 색채를 배제시 키고, 오직 검정색과 흰색만을 대비시킨 의상디자인 들을 볼 수 있다.
3)Warrior’s image
러시아는 1905년과 1917년에 혁명을 겪는 동안 러 시아 전통의 고수와 부정(否定) 사이에서 나아갈 바 를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미술 분야에 서는 민속 예술에 대한 관심과 원시 미술에 대한 동 경을 바탕으로 신원시주의자들이 전통을 고수하려는 입장이었던 반면, 광선주의(Rayonism), 입체 미래주의 자들은 전통을 파타하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자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여러 이념과 예술 사조의 실험장 이었던 러시아의 당시 시대 상황은 “Victory Over the Sun”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였다. 세 번의 혁명을 겪 고, 또 가까운 발칸 반도에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 는 등 20세기 초 러시아에서는 전쟁의 기운이 내내 감돌았다. 러시아의 문학과 예술관련 사람들은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전쟁을 강력히 비난하고, 반전 운동을 벌였다. 특히 미래주의 시인인 마야코브스키 는 전쟁을 저주하는 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 대한 모티브는 “Victory Over the Sun”의 의상디자인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오페라의 등장인물들 중에는 전쟁과 관련된 두 인물, ‘터키 전 사(Turkish Warrior)’(Fig. 13)와 ‘전사(Warrior)’(Fig. 14)가 있다. 이들은 제2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터 키 전사’는 손에 전형적인 이슬람 칼인 사브르(sabre) 를 들고 있고, 그의 오른쪽에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승달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머리는 트럼프 카드의 모양 중 다이아몬드 모양(◆) 을 취하고 있다. ‘전사’ 역시 머리는 트럼프 카드의 스페이드(spade: ♠)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창과 같은 전쟁 무기에 대한 알레고리로 볼 수 있다. ‘전사’ 나 ‘터키 전사’와 같은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 이 있는 등장인물이 아니라 할지라도 “Victory Over the Sun”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 갑옷과 같은 복 장을 하고 있어, ‘미래주의 전사’와 같이 보인다. ‘미 래주의 강자’의 의상디자인을 보면, 영락없이 갑옷을 입은 전사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머리 부분은 투구를 쓴 것처럼 보여 더욱 비장한 전사의 느낌을 준다. 이 러한 전사의 이미지는 ‘세기를 걸쳐 여행하는 여행자 (Traveller through Centuries)’(Fig. 15)에서도 마찬가 지로 나타난다. 마름모꼴의 얼굴은 투구를 쓰고 있는 듯 하며, 기하학적 형태로 나뉘어 표현된 신체는 갑 옷 속에는 인체가 보호 받고 있는 느낌이다. ‘세기를 걸쳐 여행하는 여행자’ 또한 4차원의 이론과 밀접한 관 련이 있다. ‘세기를 걸쳐 여행하는 여행자’의 몸은 종 이로 덮여 있어, 마치 1960년대의 종이 인형 옷(paper dress)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온 몸이 종이로 덮여있 는데, 이 종이에는 ‘석기시대’, ‘중세시대’라고 쓰여 있다. 3차원에서처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세기를 넘나들며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4차원이나 그 이상 의 n차원에서 가능한 일이다. “Victory Over the Sun” 의 전사 이미지는 미래주의 전사로서 마츄신 말레비 치, 홀레브니코프, 크루초니흐의 모습과 중첩되는 것 이다. 이들은 기존의 예술적 전통에 반기를 들고 전 위(Avant-Garde)라는 이름아래 전혀 다른 새로운 언 어와 음악, 미술 등으로 미래의 예술을 위한 선구자 의 길을 걷고자 하였으며, 이것이 “Victory Over the Sun”을 탄생시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전통과 관습 에 저항하려는 그들의 의지가 오페라의 인물들을 통 한 전사의 이미지로 구현된 것일지도 모른다.
3.Victory Over the Sun expressed on the M. Margiela’s Fashion Design
1)Geometric spatial structure of mechanical man’s image
“Victory Over the Sun”에 등장한 무대의상들은 신 체를 기학학적인 도형들이 만들어낸 기계적인 인간 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실제 인간의 형상이라기 보다는 이러한 공간구성으로 인하여, 기계적인 로봇에 더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1913년에 공연된 “Victory Over the Sun”의 실제 공연 장면을 보면(Fig. 16, 17), 무대의상을 입고 있는 배우들의 모습은 다소 비현실 적으로 보이는 말레비치의 개념을 그대로 실현한 것 을 볼 수 있다. 마르지엘라 역시 2013년 그의 SS컬렉 션에서 슬리브가 없는 트라페즈 형태의 재킷을 통해 “Victory Over the Sun”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과 동일한 실루엣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 다. 또한 일반 우븐 직물이 아닌 뻣뻣한 소재를 이용 하여, 큐비즘적인 특성을 나타낸 의상들을 디자인하 였다(Fig. 18). <Fig. 19>에서도 창문으로 보이는 두 개 의 오픈된 공간이 들어가 있는 분절된 형태의 사각형 의 공간으로 구성된 형들이 모여 기하학적인 공간 구 성을 보여준다. 마르지엘라는 여기에서 모델의 다리 는 원래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이것은 마치 인간을 기계적인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2011년 S/S에서도 마르지엘라는 직사각형의 공간으로 구성된 셔츠와 테일러드 재킷, 그리고 트렌 치 코트의 모습을 통해 사각형의 공간으로 표현하고 있다(Fig. 20~22). “Victory Over the Sun”에 등장하 는 기하학적인 공간 구조로 표현된 작품들 중 마르지 엘라를 통해 재해석된 인물들은 제1장에 등장하는 ‘미래주의 강자’(Fig. 10)가 있다. ‘미래주의 강자’는 기 하학적인 삼각뿔의 공간들로 구성된 기계인간의 이 미지를 보여주는데, 마르지엘라는 이것을 테일러드 칼 라와 더블 블레스티드로 여며진 재킷의 그림을 커다 란 역 삼각형 형태의 공간에 표현하고 있으며, 말레 비치의 모델과 마찬가지로 모델의 얼굴을 가려 마치 기계와 같은 이미지로 표현하였다(Fig. 23). 제2장에 등장하는 ‘악의를 가진 자(Ill-Intentioned one)’(Fig. 24) 는 태양과 싸움을 암시하는 투쟁의 순간을 노래하는 장면인데, 마르지엘라는 2012년 A/W컬렉션 작품에서 스커트의 공간을 기하학적인 성의 연속인 기계적인 플리츠 스커트로 표현하였다. 즉, 모델의 플리츠 스커 트를 한쪽은 길게 그리고 한쪽은 미니 스커트로 만들 어 ‘악의를 가진 자’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공간 분 할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Fig. 25). 특히 말레비치의 일러스트에서 더욱 뾰족하게 표현된 한 쪽 발을 의식하듯, 자신의 컬렉션에서도 한 쪽 발을 부각시켜 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디자인은 검정 색(Fig. 26)으로도 제작하였는데, 반짝이는 검정색 상 의가 마치 기계와 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제3장에 등장하는 ‘무덤 파는 사람들(Gravediggers)’ (Fig. 6)은 마르지엘라의 2011년 S/S와 2012년 A/W 컬렉션에서 등장한다. 2011년 S/S에 재해석된 ‘무덤 파는 사람들’은 말레비치의 “Victory Over the Sun” 뿐만 아니라, 이것이 절대주의의 탄생에 기여했다는 증거인 ‘Black Square’를 이미 마르지엘라도 간파하 고 있었다는 것으로 풀이 된다. 말레비치의 ‘무덤 파 는 사람들’의 상의가 검정색의 스퀘어로 표현되어 있 는 것을 마르지엘라는 2011년 S/S에서 아래 위 립 (rib)으로 구성되어 있는 검정색의 사각형 바디스를 기하학적인 공간으로 표현하였으며(Fig. 27), 2012년 A/W에서는 사각형과 사선의 기하학적인 공간 분할 로 이루어진 디자인과 모델의 얼굴을 검정색의 두건 으로 반 정도까지 가려 차가운 기계적 이미지를 보여 준다.
제6장에 등장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자(Old Timer)’ (Fig. 28)는 상의와 하의 모두 사선과 직선으로 구성 된 기학적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르지엘라는 2009년 A/W 컬렉션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자’의 영 향을 받아 기하학적으로 각진 어깨와 신체의 모습들 을 각기 다른 소재를 이용하여 화면 분할을 하듯 어 깨와 소매 등을 사선으로 표현하였으며, 특히 어깨 뒤쪽에 사각형의 장식 판을 덧대어 기하학적인 공간 구성을 표현하려 하였다(Fig. 29~31). 즉, 마르지엘라 는 기하학적인 공간구성을 통해 자연적인 인간의 모 습이 아니라, 기계와 같은 차가운 이미지의 인간을 현대 패션디자인에서 보여주었으며, 이것은 말레비치 사 후 100년이 지난 현재까지 절대주의 작품들이 미 친 영향을 입증해준다.
2)Black and white image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작품 ‘Black Square’는 “Victory Over the Sun”의 ‘제5장 무대디자인’(Fig. 3)에서 이 미 검은 정사각형의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검은 정 사각형은 내부의 사각을 왼쪽 위의 모서리인 태양의 윗부분에 겹쳐 표현하였으며, 이 사각형은 말레비치 를 가리키는 상형문자였던 것이다. 우스펜스키의 4차 원의 공간 이론을 순수 기하학의 형태로 표현하였던 이 ‘Black Square’는 아마도 절대주의의 특징을 가장 잘 함축해 놓은 작품인 것이다. 특히 말레비치는 자 신의 작품에 사용한 간결한 기하학적인 공간들을 대 부분 이 검정색과 흰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르지엘 라는 이러한 색채와 구성의 특징들을 재현한 작품들 을 제작하였다. <Fig. 32>는 각진 어깨의 재킷을 흰색 의 긴 테이프로 격자로 연결하여 ‘Black Square’를 연 상시키는 재킷을 디자인하였다. 현대 패션 디자이너 주나 와다나베(Junya Watanabe)도 2015년 S/S컬렉션 에서 말레비치의 ‘Black Square’를 연상시키는 디자 인을 하였다(Fig. 33). 그는 검정색과 흰색의 색채 대 비를 기하학적인 형태의 패턴으로 디자인한 투피스 를 디자인하였다. “Victory Over the Sun”에 등장하는 작품으로는 제1장에 등장하는 ‘네로’가 있다. ‘네로’ 가 입고 있는 사선의 디자인과 무채색을 응용하여, 마르지엘라는 검정색과 흰색이 대비되는 패션디자인 을 하였으며(Fig. 34), 뮈글러나 브라간자(Fig. 35, 36) 의 라인 또한 말레비치가 디자인한 ‘네로’의 무대의 상을 연상하게 한다. 말레비치가 1913년 “Victory Over the Sun”을 공연하거나 1915년 <0, 10> 전시회 를 할 때만 하더라도, 검정색과 흰색은 모든 회화에 서 배제되는 무채색의 개념 안에 존재했다(Spencer, 1974). 따라서 대부분의 회화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 던 것이 바로 검정색과 흰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20년대 이후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가 유행하게 된지 100년 동안 이 검정색과 흰색은 가장 현대 패션 에서 오랫동안 유행하여온 컬러로서, 마틴 마르지엘 라 역시 이를 더욱 부각시키려 하였다.
3)Warrior’s image
“Victory Over the Sun”의 탄생 배경이 된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전쟁에 반대하는 기운이 고조된 시기였다. 러시아의 문학과 예술가들은 제 1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을 강렬히 반 대하는 반전운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전쟁에 대한 모 티브는 “Victory Over the Sun”의 무대 의상 디자인 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오페라의 제2장에서는 태양 과의 싸움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 전쟁 과 관련된 두 인물, ‘터키 전사’(Fig. 13)와 ‘전사’(Fig. 14)가 있다. 두 전사의 모습은 당시 러시아의 상황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 <Fig. 13>, <Fig. 14>에서 보이 는 전사들은 이슬람인에 대항하는 기독교인들을 의 미하는 것으로, ‘터키전사’가 적군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터키에 대항하는 러시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터키와 러시아의 적대적인 관계는 ‘전사’ 드로잉의 왼쪽 화면에 보이는 비행기 3대에서 나타나 듯이 전쟁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 기적 관계를 말레비치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표현하 고 있다. 즉, ‘터키 전사’와 ‘전사’의 얼굴을 모두 제 거하고 트럼프의 다이아몬드나 스페이드 형태로 바 꾸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마르지엘라는 2012년 S/S 컬렉션에서 모델의 얼굴을 반짝이는 큐빅과 인조 다 이아몬드를 붙여 둥근 구 모양의 형태로 감싸버렸다 (Fig. 37). 이것은 전사들의 머리가 사람이 아니라 다 이아몬드나 스페이드 형태의 기호로 표현된 것과 같 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터키 전 사’에서 보이는 붉은 색의 바지와 재킷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전체적인 실루엣과 붉은 색의 색채 뿐 만 아니라, 삼각형의 뾰족한 네크라인은 마치 ‘터키 전사’의 머리모양을 네크라인에 응용한 것으로 보인 다(Fig. 38, 39). 이러한 전사의 이미지는 ‘세기를 걸 쳐 여행하는 여행자(Traveller through Centuries)’(Fig. 15)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마름모꼴의 얼굴은 투구를 쓰고 있는 듯 하며, 기하학적 형태로 나뉘어 표현된 신체는 갑옷 속에는 인체가 보호 받고 있는 느낌이다. ‘세기를 걸쳐 여행하는 여행자’는 또한 4차 원의 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기를 걸쳐 여행 하는 여행자’의 몸은 종이로 덮여 있어, 마치 1960년 대의 종이 인형 옷을 연상시킨다.
V.Conclusion
“Victory Over the Sun”은 단순히 20세기 초 입체 미래주의 예술로 끝난 것이 아니라, 21세기 현대 패 션디자인에 미친 영향이 크다. 특히 마틴 마르지엘라 는 “Victory Over the Sun”에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 고, 자신의 2009 S/S, F/W, 2011 S/S, 2012 F/W, 2013 S/S 컬렉션에서 말레비치의 공연 예술 의상들 을 재해석하였다. 기하학적인 형태로 표현된 사각형 의 셔츠 디자인에서는 말레비치의 ‘Black Square’를 연상시키게 되며, “Victory Over the Sun”에 등장하는 예술 의상들의 특징을 큐비즘적인 견해로 재해석하 여 기하학적인 공간구조로 표현하거나, 기계적인 인 간의 이미지를 다양한 재단방식과 소재의 변화를 통 해 창의적인 패션디자인으로 컬렉션에서 표현하였다. 흑백의 이미지나 전사의 이미지 또한 기하학적인 형 태와 색채들을 이용하여 매우 독창적인 방법으로 재 해석하였다. 마르지엘라를 비롯한, 21세기 패션 디자 이너들은 재료의 선택과 다양한 표현 방법들을 통해,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자아표현을 자유롭게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패션디자이너들의 주관적 개성과 정신 적 감성들을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표현 으로, 기존의 회화나 조각, 공예 등의 예술 장르를 서 로 혼합, 변형하여, 새롭게 이미지를 창조하는 경향으 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의 이러한 현상들은 패션디자 이너들의 창작의도가 예술 의상 부분으로 영역의 확 장을 넓힘으로써 패션계에 새로운 방향 전환을 가져 왔다. 말레비치의 “Victory Over the Sun”은 현대 패 션디자인의 무한한 창작 영역의 확대를 가져왔으며, 이러한 창의적인 디자인들은 미적 기능과 창조성을 중시하는 현대 패션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후속 연구에서는 21세기의 관점에서 본 “Victory Over the Sun”의 변화 가능성을 통하여, 말 레비치가 과거의 인습적인 사물들의 질서와 논리에 반대하여, 자신만의 전위적인 조형 양식을 구축하게 된 점을 현대 패션디자이너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받 아들이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